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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적폐 청산, 실제로 가능하려면?




정권 교체에만 그칠 것인가 

vs 

제도적인 변화까지 이뤄낼 것인가


 질문자  “이제 각 당의 대선주자들이 확정되고, 본격적으로 19대 대선이 시작되었습니다. 촛불 집회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부정부패한 대통령을 탄핵시켰고,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적폐 청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아직 막연한 느낌입니다. 사람을 처벌하고 구속시키기만 하면 적폐가 청산되는 걸까요? 진정한 적폐 청산에 대해 궁금합니다.”


100만 명의 국민, 연인원으로 1600만 명이 모여서 촛불을 들었더니, 마침내 각종 비리가 폭로되고 대통령을 파면시키는 결과까지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촛불의 성과가 이것만으로 끝난다면 그 성과는 굉장히 미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권 교체는 가만히 있어도 12월이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단지 정권교체의 시기가 6개월 당겨진 것 외에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겁니다. 지난 역사를 한번 보세요. 3.1운동이 일어나고 2백만 명이 이 운동에 참여했지만, 결국 일제의 무력 앞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실패가 실패가 아닌 이유는 그 결과로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져 대한민국의 건국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4.19혁명이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도 이승만 정권이 물러났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 개정을 통해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제6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이렇게 민중의 시위가 혁명이 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단순히 정권 교체에 그친다면 5년 마다 있는 선거가 6개월 당겨진 것 밖에 안 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 처벌하면 

적폐 청산이 다 되는 걸까요? 


왜 최순실 국정농단과 같은 비선실세 문제가 발생하게 된 걸까요? 이건 박근혜 정부 때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때는 황태자, 김영삼 정부 때는 소통령, 김대중 정부 때는 홍삼 트리오, 노무현 정부 때는 봉하대군, 이명박 정부 때는 만사형통, 이런 식으로 늘 비선 문제가 발생했었습니다. 원인은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권한이 막대하니까 그 측근이 아무 공식적 직책도 없이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권력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입니다. 


적폐 청산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첫째,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내각으로 분산시키는 일입니다. 즉,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분산시키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합니다. 헌법 개정을 해서 제도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실질적인 적폐 청산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 처벌하면 적폐 청산이 다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적폐 청산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둘째, 우리나라는 권력이 대부분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권력 배분이 8:2입니다. 최소한 6:4 정도가 되도록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력을 이양해야 합니다. 즉, 지방 분권이 이뤄져야 합니다. 중앙 정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면 중앙 권력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니까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지역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방 분권을 강화하면 지역 갈등이 사라지게 됩니다.


셋째, 우리나라는 선거 제도가 승자독식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서는 특정 당이 싹쓸이를 하고, 전라도에서도 특정 당이 싹쓸이를 하는데, 실제 득표는 6:4가 나옵니다. 득표가 6:4이면 국회의원 수도 6:4로 나와야 하는데 10:0이 나옵니다. 이런 구조는 양당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진입할 수 없게 만듭니다.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거 제도를 비례 연동형으로 바꾸어서 국민의 지지만큼 국회의원이 당선되도록 해야 합니다. 


넷째, 부가 소수에게 너무 많이 몰려있습니다. 재벌과 권력이 결탁되어 있고, 그들의 부정한 결탁이 초법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법의 범위 안에서 결탁한 것이 아니고, 법을 무시하고 결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법 앞에서 모든 국민은 평등해야 합니다. 재벌이 국가 경제의 위기를 내세우면서 자꾸 불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이번 기회에 시정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헌법 개정과 선거법 개정까지 이뤄내야 지난 30년 동안 계속된 적폐를 실질적으로 청산할 수 있습니다. 



적폐를 일으키는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국회의원 수가 300명인데, 법을 하나 통과시키려면 180명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어떤 정당도 180명 이상의 의석을 가진 곳은 없어요. 2개의 정당이 연합해도 180명 이상의 의석을 가지기가 어렵습니다. 최소한 3개의 정당이 합해야 겨우 법 하나를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119석, 국민의당이 38석이에요. 그러니 두 당이 힘을 합해도 적폐 청산을 할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럼 이 상황에서 적폐 청산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통령이 검찰을 시켜서 초법적으로 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이렇게 하면 상대편의 저항이 커집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청산이 되는 듯 하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진정으로 적폐를 청산하는 방법은 적폐를 일으키는 제도를 바꾸는 겁니다. 물론 사람도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적 청산보다는 제도적 변화를 더욱 핵심에 두어야 합니다. 



연정을 하지 않고 실질적인 적폐 청산이 가능할까요?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려면 의회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적어도 3개 정당의 지지를 받아야 헌법 개정과 선거법 개정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상대편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저런 놈들과 손을 잡아서 어떻게 적폐 청산을 하느냐?’ 라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고, ‘저런 놈들과 손을 잡지 않고 어떻게 적폐 청산을 하느냐?’ 라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각각 문재인 후보와 안희정 후보가 한 말인데, 두 사람의 말이 모두 맞는 말이에요. 


그러면 어떻게 적폐 청산을 해야 하느냐? 국민이 원하는 적폐 청산이 100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으로는 80밖에 청산할 수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도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청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중 일부의 동의도 얻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00을 모두 청산하려고 하면 의회 통과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면 청산 자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적폐 청산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적 청산보다는 제도적 변화에 더욱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회에서 최소한 180석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편 당과도 연정을 해야 실질적인 적폐 청산이 가능합니다. 연정을 하지 않고 적폐 청산을 하겠다는 것은 메시지가 선명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이런 안목을 갖고 대선을 지켜봐야 합니다. ‘나쁜 놈들은 싹 쓸어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이것만 갖고는 적폐 청산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또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청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상대의 저항을 불러와서 결과적으로는 적폐 청산이 어려워집니다. 현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적폐 청산의 구호가 선명하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대선 후보들이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제도의 영향이 무척 큽니다. 제도적 변화를 가져오려면 협치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협치를 하려면 상대의 동의를 얻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변화만 100% 요구해서는 안 되고, 상대도 동의할만한 핵심적인 적폐를 1차로 청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재벌과 권력의 정경 유착을 청산하자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문제죠. 



정권 교체에만 그칠 것인가 

vs 

제도적인 변화까지 이뤄낼 것인가



탄핵의 공로는 야당에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편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도 60여 명이 동의해 주었기 때문에 탄핵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적폐 청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탄핵에 동의했던 바른정당의 동의를 얻는 범위까지만 적폐 청산이 가능하지 모든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부터 순차적으로 청산해야지 한꺼번에 다 청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제도적 변화까지 이뤄내면, 이번 촛불 집회는 시위를 넘어서서 가히 ‘촛불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도적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단순히 정권만 교체되는 것에 그친다면,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3년 후에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국민들은 또다시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하고요. 


그러니 정권 교체가 되었다고 해서 촛불 집회를 끝낼 것이 아니라 제도적 변화가 이뤄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 이 대화는 4월 4일(화) 부평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이뤄진 법륜 스님과 시민들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