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에 참가해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거사나들이에 참석해 즉문즉설을 하시고, 오후에는 제 4회 평화재단 통일의병대회에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 거사나들이를 마치고 밤늦게 문경 정토수련원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6시에 정토불교대학 특강수련이 열리고 있는 대수련장에 들어섰습니다.

오늘 특강수련은 강원경기동부, 인천경기서부, 대전충청 지역에서 정토불교대학을 수강하고 있는 4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습니다. 청법가와 삼배로 스님에게 법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 위에 올라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이곳 대수련장에서 하룻밤을 숙박한 대중들에게 “잘 주무셨어요? 이렇게 큰 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자본 것은 처음이지요? 신기록을 두 가지나 세웠네요.” 라는 위트 있는 인사말로 잠자리가 불편했을 대중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이렇게 꼭두새벽에 강연이 잡히게 된 까닭에 대해 “오전 10시쯤 하면 좋을 텐데, 제가 오늘 세 군데를 다녀야 해요(웃음) 이 시간 밖에 법문할 시간이 안나요. 그래도 법문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지요?” 라며 설명을 해주면서 대중들의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학생들의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9분의 질문에 대해 답해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는지, 스님을 비롯한 정토회의 법사님들은 깨달으셨는지에 대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 뿐 아니라 학생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했습니다.

“스님께서 부처님 법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 같은 범부중생의 입장에서는 ‘그 경지에 이르는 게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면, 불교의 역사가 굉장히 오래 되었으니까 부처님 이래로 부처님 법에 따랐던 사람들 중에 벌써 수만 명 이상의 새로운 부처가 나왔어야 될 텐데, 제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과연 우리나라에 수만 명의 부처가 있었습니까?

또 법륜스님이나 정토회 법사님들께서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모두 웃음) 이건 굉장히 외람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사실 저로서는 잘 상상이 안 되거든요. 제가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아, 이 괴로움은 다 내 마음이 짓는 것이구나.’ 하고 이해했다가도, 또 어떤 때에는 막 화도 내고, 남 탓도 하게 되는 등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 상태가 사실 깨달음의 상태는 아닐 것 같거든요.

만약 정토회의 여러 법사님들처럼 수십 년 동안 수행하신 분들도 깨달은 경지에 도달하기가 어렵다면, 저처럼 부덕한 사람은 평생 해도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여쭤봅니다.”

“아주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모두 웃음) 제가 질문자한테 한번 물어볼게요.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한국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사람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렇게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없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을 저마다 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실제 다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아니요.”

“그럼, 행복하게 못 살고 있으니까 행복하게 사는 게 불가능한 거예요?”(모두 웃음)

“행복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는 것 같아서요.”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는 게 일반적이지요. 100% 괴롭게 사는 사람도 없어요. 사람이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예를 들어 예전에는 남편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는데 불법을 만난 후에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남편을 두고도 안 괴로운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대중들) 있어요.”

“그러면 아직 내가 100가지는 다 해결하지 못했지만 한 5가지를 해결해 보니까 나머지도 내가 지금 해결을 못하고 있을 뿐 결국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예요, 없는 문제예요?”

“해결할 수 있습니다.”(모두 웃음)

“그래도 더 물어봐야 되겠어요?”(모두 웃음)

“예, 알겠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예를 들어 ‘괴로움이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이 진짜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이 있으면 뭐하고, 또 없으면 뭐하겠어요?(모두 웃음) 그게 뭐 그리 중요해요?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괴로움이 없는 경지이고,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는 괴로움이 많은 경지입니다. 그러면 수행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괴로움은 점점 줄겠지요. 괴로움이 점점 줄어든다는 걸 자기가 체험할 수도 있고, 경험할 수도 있고, 증명할 수도 있다면 그렇게 가면 되지, 꼭 그 0.1%도 없는 경지에 내가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봐야 되겠어요?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해요? ‘그런 사람을 나 못 봤다.’ 그러면 안 갈 거예요?(모두 웃음)

또 ‘그러면 아예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없고, 그냥 괴로움이 줄어들 뿐이라고 말해 줄 것이지, 왜 없는 경지를 있는 것처럼 말했느냐?’고 꼭 해야 되겠어요?(모두 웃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일상적으로 ‘1킬로미터, 2킬로미터, 1킬로그램, 2킬로그램, 1센티미터, 2센티미터’라는 이런 말을 써요, 안 써요?”

“(대중들) 써요.”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그런 말은 쓸 수가 없어요. 어떤 길이도 딱 1센티미터인 길이가 없고요, 어떤 무게도 딱 1킬로그램인 무게가 없습니다. 그것을 엄밀히 따지면 0.9999센티미터이거나 1.00001센티미터지요. 이럴 때 1cm를 뭐라고 합니까? 근사치라고 합니다. 근사치, 아시죠?”

“(대중들) 예.”

“그래서 우리가 정밀도를 말할 때 소수점 몇 단위까지 쓸 것인지를 따지지요. 일상적으로 쓰는 데는 0.1단위, 즉 소수점 이하 한 자리까지만 있으면 되지 소수점 이하 두 자리까지 갈 필요는 없는데, 우리가 아주 정밀한 기계를 다룰 때는 ‘1센티미터나 2센티미터’, ‘1밀리미터나 2밀리미터’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소수점 세 자리까지는 점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필요에 의한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누구든지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지, 말지는 누가 결정하는 거예요?”

“(대중들) 스스로.”

“예, 본인이 각자 결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행복하게 사는 길을 열어주는 건 가능하지만 열어준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다 그리로 가는 건 아닙니다. 이 질문은 부처님 당시에도 누군가가 부처님께 드렸던 질문이에요.”

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니 행복으로 가는 길은 이미 열려있지만, 가고 안가고는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직접 부딪히면서 계속 연습을 해봐야겠지요.

불대 특강이 끝나자마자 거사들을 위한 즉문즉설 시간이 있어 시간이 없는 가운데에도 스님은 법문 중간에 질문을 신청한 학생의 질문까지 열정적으로 답변을 해준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대수련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유스 호스텔로 이동했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이틀째 거사나들이 일정을 하고 있는 거사님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드린 후 거사들이 정토회에서 잘 쓰이는 방법에 대한 모둠 토론을 했습니다. 모둠 활동하는 도중에 방 여기저기에서 우렁찬 웃음소리도 잇따라 들리며 화기애애함을 느낄 수 있었고 거사님들의 넘치는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각 모둠에서 토론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 끝나갈 즈음 불대 특강을 마친 스님도 유스호스텔에 도착하셨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 시간의 일부를 할애해 3분 동안 스님과 대중 앞에서 자유로이 의견이나 제안을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총 7분의 거사님이 3분 스피치를 해주셨는데요. ‘함께 입학한 도반이 졸업 요건 수업일수에 하루가 모자란데 함께 졸업할 방법이 없는지’, ‘정토회에서 발행된 영어 홍보물의 표현이 매끄럽지 못한 것을 봤는데 전문가로서 아쉬웠다.’, ‘큰 병으로 괴로웠는데 스님 법문으로 극복하게 되어 감사하다’, ‘불교대학, 경전반에 비해 수행 법회를 위한 프로그램들은 취약한 것 같으니 보완했으면 좋겠다’, ‘한 번씩은 법문을 짧게 하셔서 그 시간에 도반들과 나누기를 찐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모든 소임에 대한 명확한 업무지침서가 있으면 좋겠다’, ‘정토회 연간 일정이 담겨있는 달력이 있으면 좋겠다’, ‘8대 행사 같은 주요 행사들은 큰 법당에서 하도록 해서 활동가가 적은 소법당은 불교대학, 경전반에 집중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주의 깊게 들으며 수용할만한 내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고대하던 스님의 즉문즉설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거사님들은 솔직하고 재미있게 질문하였고 스님께서는 지혜롭게 답변해주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중 가정 속 가장들 역할의 구분선이 어디까지인지 물으신 거사님의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거사님들이 많이 모였는데, 이런 자리에 제 질문이 여러 거사님들께 참고가 될까 싶어서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4인 가정의 가장입니다. 저 혼자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요, 지금 중학생 딸, 초등학생 딸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과거에 가장의 역할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정말 의식주만 해결하면 최고의 가장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가장들이 진짜 피가 마릅니다.(모두 웃음) 거사님들 모두 공감하시지요?”

“(거사들) 예.”(모두 웃음)

“그러니 스님께서 ‘이 정도라면 가장의 역할은 다 했다고 볼 수 있다’는 선을 좀 제시해 주십시오.”(모두 웃음)

“예. 지금 말씀하신대로 옛날에는 먹고, 입고, 자는 생존의 문제만 해결해 주면 가장의 역할이 끝났다고 봤습니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아왔지요. 그런데 세상이 변했습니다.

이제 여성들도 대부분 직장을 다니고 남자들이 ‘돈 벌어야 한다’는 책임이 줄어들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적으로 가장의 책임’이던 것이 ‘반반 부담’이 되었고, 대신에 남자들도 가사분담, 즉 설거지를 한다든지, 애를 돌본다든지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외부적인 일만 하고, 내부적인 일은 네가 해라.’ 이렇게 전통적인 직업관에 의해서 업무가 분장이 됐던 게 이제 시대가 변해서 그 벽이 허물어졌으니까 집안일도 나눠서 해야 되요. 그런데 다 자기 입장에서 유리한대로 생각하다보니까 여자는 남자한테 가장으로 돈 버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살림도 분담해 줘라. 다른 남자들 좀 봐라.’ 이렇게 추가적인 역할도 요구하고, 남자는 여자한테 ‘살림은 원래 여자들이 하던 일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추가로 직장생활도 할 것을 요구해요. 이래서 서로 어렵지요. 그런데 다 자기한테 유리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불리한 건 문제제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질문자의 부인은 직장생활을 안 한다는 거지요? 그러면 질문자는 가정살림을 좀 덜 도와줘도 돼요.(모두 웃음) 부인이 ‘왜 당신은 방청소 안 해 주느냐? 왜 설거지 안 해 주느냐?’고 하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항상 ‘바쁘다’고 하세요.(모두 웃음) ‘그건 당신이 할 일이잖아!’ 이러면 안 되고 ‘내가 바깥 일 하느라 바빠서 그렇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세요.

그러다가도 은퇴를 딱 하면 바로 앞치마 입고 부엌에 들어가야 돼요.(모두 웃음) 아침에 일찍 부엌에 들어가서 밥 해 놓고 부인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이렇게 말해야 돼요. ‘지난 30년간 밥 한다고 수고 많이 했지? 내가 그동안은 직장 다닌다고 바빠서 못 도와줬는데, 이제는 직장에 안 나가니까 부엌살림은 내가 할게.’ 이런 태도를 보이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직장 다니고 돈 버는 건 액수로 표시가 나잖아요. 그런데 살림은 아무리 해도 표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너 집에서 뭐 했냐?’는 소리를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정말 표시도 안 나는 중노동을 하는데도 ‘집에서 네가 하는 게 뭐냐? 네가 돈을 버냐?’ 하는 이런 말이 부인들이 제일 상처 입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은퇴 후에 부엌살림을 하면서 ‘정말이지 나보다도 네가 더 힘들었겠다.’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은퇴 후에 새로 신혼을 맞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 애가 생기는 바람에 신혼시절은 1년도 못 가져봤잖아요?(모두 웃음) 그래서 애를 빨리 가지면 안돼요. 애가 생기면 여자는 딱 엄마가 되어서 애한테 집중하게 되니까 남편은 완전히 왕따가 되거든요. 그래서 어떤 남자는 쫀쫀하게 애한테 질투하고 그러잖아요. 잃어버린 신혼시절을 되찾는다는 마음으로 은퇴 후에 딱 부엌에 들어가세요.

질문자가 지금이라도 직장생활도 하고 부엌에도 들어가 주고 그러면 좋겠지만 질문자가 그렇게까지 하기 너무 힘들다면 안 해도 돼요. 그런데 ‘그건 네 일이잖아!’ 그러면 싸우게 되니까 ‘미안해, 여보. 내가 바빠서 그래.’ 하면서 빌면서 안 하고 살면 돼요. 대신 은퇴하면 바로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 들어가세요.”

“예.”

“꼭 ‘나는 가장이니까 돈을 벌어야 된다!’ 하는 건 너무 부담스럽잖아요. 한 30년 전의 일인데요, 그때는 주로 남자가 직장을 다니고 여자는 직장을 안 다니던 시대였는데, 부부들을 그룹 지어서 부부상담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청년들을 데리고 정토회를 시작했으니까 그때는 정토회에 아직 부부문제에 대한 상담이 별로 없을 때였어요. 그런데 각해보살님이 계시던 부산 성불사에 부부들이 많아서 그분들을 데리고 수련을 했는데, 제가 거사들만 모아놓고 ‘아내가 당신한테 뭘 제일 원하는 것 같으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1번이 돈이었어요. 이구동성으로 ‘우리 마누라는 돈을 원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그게 부담이지요.

그런데 보살들만 모아놓고 ‘남편이 당신한테 뭘 해 줬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그럼 1번이 ‘돈’이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어요. ‘어떻게 무시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냐?’고 물었더니 ‘애들 보는 앞에서 네가 뭘 아느냐고 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애들한테는 왕이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애들 앞에서 부인한테 ‘네가 뭘 아느냐?’고 한다는 거예요. 그게 부인들이 가장 모멸감을 느끼는 말이라는 거예요. 숫제 혼자 있을 때 그러면 괜찮을 텐데 말이에요. 여러분들도 자기 혼자 있을 때 사장이 야단치는 건 괜찮은데 부하직원이 많은 데서 야단치면 좀 모멸감을 느껴요, 안 느껴요?”

“(대중들) 느껴요.”

“그러니까 애들 앞에서 부인에게 ‘네가 뭘 아느냐?’고 하니까 엄청난 모멸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인한테 뭐라고 할 때는 애들 있는 데서는 안 하는 게 좋습니다. 따로 불러서 ‘여보, 이런 게 좀 문제다’라고 얘기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여러 가지 조사를 해 보면 남자들은 ‘우리 마누라는 나한테 이것만 원한다. 그래서 이것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부인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소기업 하다가 망하거나 중간에 은퇴하거나 이런 남자들은 경제적인 문제가 너무 부담되니까 바로 집으로 못 들어가고 어디로 갑니까? 빈 가방 들고 출근하는 척하고 서울역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지 말고, 아이들까지 다 불러 모아서 ‘현재 아빠가 직장을 잃게 되었다’, 아니면 ‘월급이 줄게 되었다. 그래서 생활비를 이렇게 줄여서 써야 되겠다’며 가족회의를 통해 의논을 해야 돼요.

항상 집안 식구들을 ‘멤버’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혼자서 다 책임 진다.’ 이러면 본인도 힘들고, 아이들도 그런 아빠를 원하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같이 나눴을 때 아이들이 성장을 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아이들이 충격을 받는 면도 있지만 아이들이 성장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족은 역할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요즘은 ‘돈만 벌어다 주면 된다’고 생각하면 부인과 같이 못 삽니다. 그렇게 살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이삿날 조심할 일이 생기는 거예요.(모두 웃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돈만 벌어주면 된다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도 벌고, 다른 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마세요.”

“예, 사실은 저희 집에서 제가 설거지하면 옆에서 집사람은 청소기를 돌리고 그럽니다. 제가 얼마 전에 출근하면서 집사람한테 ‘나는 출근한다. 집에서 수고 좀 해 줘.’ 그랬거든요. 그때부터 집사람 얼굴이 더 펴진 것 같더라고요.”(모두 웃음)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여러 거사님들, 괜히 일하러 간다고 뻣뻣하게 굴면 더 욕먹습니다.(모두 웃음) 그냥 ‘여보, 당신도 집에서 수고 좀 하게. 나도 나가서 일하고 올게.’ 그러면 집에서 더 편안해질 겁니다. 고맙습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보세요. 정토회 다니니까 굉장히 변하잖아요.(모두 웃음) 여러분들이 절에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사회적인, 민주적인 의식으로 변하고, 회사에 가서도 권위주의에서 평등주의로 변하고,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평등하게 대하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자세도 바뀌고, 이러면 우리가 앞서 가게 되는 거예요. 괜히 목에 힘주고 똥고집 피우고 그러지 말고 좀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노후에 공덕이 있어요. 목에 너무 힘주면 늙어서 천시 받습니다.

여러분들, ‘시어머니는 모시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시아버지 모시기보다는 쉬워요. 시어머니는 집에 있으면 설거지라도 거들고, 방청소라도 하고, 급할 때는 밥도 하고 시장도 좀 봐주는 등 일손을 덜어주잖아요. 그런데 시아버지는 밥상 따로 차려줘야지, 치워줘야지, 방에도 이불을 깔아줘야지, 그러니까 집에 있으면 불편한 거예요. 시아버지가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거예요. 시아버지의 바로 그런 태도, 밖에서 돈 좀 번다고 목에 힘주고 그러다가 몸이 굳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가정에서도 천대받는 거예요. 남자 수명이 짧아서 일찍 그나마 다행이지요.(모두 웃음) 여러분들이 ‘마누라가 어쩌네, 저쩌네.’ 해도 마누라가 있으니까 지금 대우를 받지, 마누라 없이 홀아비로 있어 봐요. 대우받을까요? 마누라 같은 사람 없습니다. 나이 들면 진짜 마누라 고마운 줄 알아야 돼요. 요즘 신세대 자식들 하는 거 보세요. 어림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자식이 스무 살이 넘으면 무조건 쫓아내거나 관심 끊고 부부가 같이 지내고, 은퇴 후에도 부부가 같이 놀아야지, 애들한테 너무 신경 쓰는 건 아무 도움이 안돼요. 여러분들이 좋으나 싫으나 ‘내 짝’이 제일이에요. 그러니까 다들 ‘내 짝’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사는 게 좋습니다. 그게 싫으면 절에 오는 게 제일이에요.(모두 웃음)”

스님과 대화를 하며 거사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변하는 듯했습니다. 긴 시간 다양한 부분에 걸친 이야기에 피곤할 법도 한데 스님은 시종일관 그윽한 미소로 청중들의 마음을 밝혀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남과 북이 교류하게 될 때를 대비해 정토회에서는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묻는 분, 회사에서 나이 어린 직장동료가 상사로 승진한 후부터 자신에게 갑질을 하는 것 같아 힘들다는 분, 회사 가기도 싫고 정토회 나오기도 싫다는 분, 최근 천일결사 경전 읽기에 나오는 경전의 내용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 금강경에서 바라는 마음을 내지 말라고 하는데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도 바라는 마음이 아니냐는 분, 퇴직 후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분, 25년간 만성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이것을 수행적 관점으로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는 분, 불교에서는 화가 상대가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온다고 가르치는데 불교 공부를 먼저 한 아내가 계속 나 때문에 화난다고 따져서 고민이라는 분까지 총 아홉 명이 질문을 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토끼도 다람쥐도 다 제 앞가림은 하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동물 수준보다 낫다면 제 앞가림은 당연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느냐’라며 인생의 방향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잡을 것을 강조하며 법문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1박 2일 동안 거사 나들이 활동 동영상을 함께 시청했습니다. 거사님들은 어제의 좋았던 기억들을 되살리며 즐거워했습니다. 중간중간마다 호응의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거칠 기만 한 것 같던 거사님들의 눈빛들이 촉촉해지고 강당에는 훈훈함이 가득했습니다.

이어서는 스님과 악수 시간을 가졌습니다. 270여 명의 거사님들이 강당을 빠져나가며 법륜스님과 유수스님을 차례로 악수했습니다. 환하게 웃으시며 스님께서는 거사님 한 분 한 분과 눈을 맞추며 악수하셨습니다. 어제 입재식부터 악수까지 거사님들을 향한 스님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사님들은 유스호스텔에서 점심 공양을 마치고 유수스님과 문경새재 산책 시간을 가졌고, 오후 1시 30분부터는 같은 장소에서 제4회 평화재단 통일의병대회가 열렸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200여 명의 통일의병들은 오전에 문경새재 산책을 다녀온 후 스님과의 대화 시간을 위해 강연장으로 모두 모였습니다.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큰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4년 전 6월 17일 오늘, 처음으로 통일의병 창립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렇다 할 통일운동이 두드러지지 않은 시기, 한 발 앞서 평화와 통일을 중심과제로 설정하고 맨 땅을 갈고 닦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스님과의 대화 시간에 앞서 지난 5년을 돌아보는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영상을 보니 가슴 뭉클한 순간들, 절실했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의병들은 얼마전 방송된 집사부일체 스타일로 스님께 법문을 청했습니다. “법륜스님, 어서 오세요” 라고 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에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먼저 통일의병들이 걸어온 그동안의 노고에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통일을 망각할 수가 있습니다. 평화에 안주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럴 때 우리가 통일의 물꼬를 여는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지금의 정부가 통일지향적 정부, 즉 평화를 추진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라고 할 때 다음 정부 정도는 통일을 추진하는 정부를 만들어낸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감격,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평화에 도움이 되는 건 누구한테든지 다 부탁을 했어요. 그것이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천신이든, 지신이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하면 '다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부탁하고, 미국이나 중국이나 북한도 설득을 하고, 통일지향적 정부를 구성하는 데도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간절한 기도에 천지신명이 감응한다고 하는 일, 사람의 힘으로는 생각도 못한 일, 천지가 뒤바뀌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원을 세워서 이렇게 가도록 추동을 하고 여기까지 온 우리조차 이 상황에 좀 어리둥절하고 '너무 잘 되니까 혹시 뭔가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데, 하물며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리둥절하겠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라가지고 지금 이렇게 눈이 둥그래져서 쳐다보는데(모두 웃음)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더 막막하겠는지를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준비된 우리가 나서야 해요. '어려울 때도 준비된 우리가 돌파해야지 준비 안 된 사람들이 어떻게 돌파하겠느냐? 또 이런 변화된 정세 속에서 준비된 우리라도 정신을 차리고 준비해야지, 준비 안 된 일반인들이 어떻게 이걸 감당하겠느냐?'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은 이 변화된 상황에서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해요. 이게 바로 우리가 원하던 거 아닙니까? 이제 여기서부터 우리가 차분히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작년만 하더라도 평화와 통일을 추진하면 정신 나간 사람인 양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그래서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있었어요. 여러분만 이런 주장을 했다 이거예요. 이제 시대가 바뀌니까 여러분들이 마음껏 활동할 시기가 온 것 같은데 역시 장애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 활동을 쥐나 개나 다 하게 생겼어요.(모두 웃음) 그래서 여러분의 아이덴티티가 불분명합니다. 수많은 단체들이 본래부터 자기들이 한 것처럼 나서는 속에서 여러분들을 보고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해왔다고 칭찬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자기들도 좋은 시절이 오니까 마치 자기들이 한 것처럼 설치는구나. 사실은 우리는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 데서 우리 단체 입장에서 볼 때는 이렇게 좋은 시절이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항상 한 발 앞서가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갑자기 봄이 왔는데 꽃이 피면 온갖 꽃이 다 피니까 변별력이 없어져요. 꽃이 피려면 2월 달에 펴야 해요. 1월 달에 피면 얼어 죽어요.(모두 웃음) 2월 달에 피면 얼어 죽을 위험도 있지만 그래도 '선견지명이 좀 있구나. 아, 봄을 예고하는구나' 이런 소리를 듣거든요. 그래서 매화가 꽃이 특별히 예쁜 것은 아니지만 봄을 예고하는 꽃이라고 해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통일의병은 지금 다른 단체들하고 너무 경쟁하려고 하지 말고 차분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우리가 해서 변했다'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고요. 다만 이건 확실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원했어요, 원하지 않았어요?”

“원했어요.”(모두 크게 대답)

“예. 우리의 노력이 티끌만큼 밖에 보탬이 안 됐다 하더라도 간절히 바라던 상황이 실제로 왔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가장 기뻐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우리가 찾아나가야 해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자, 그런 관점에서 지난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해온 여러분께 격려 말씀을 드리고 축하를 드립니다. 만세를 불러도 좋아요.

그러나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해나갈 건지가 문제예요. 보나마나 지금 단계는 큰 틀에서 말로만 합의가 된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이 외에도 2시간 30분 동안 선거법 개정 방안, 헌법 개정의 필요성, 북미정상회담 이후 국제관계는 어떻게 흘러갈지, 평화재단의 역할은 무엇인지, 베트남식 통일과 독일식 통일 중에서 우리의 지향은 무엇인지, 통일시대를 앞두고 새터민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북한이 겪을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방안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은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사회자의 제안으로 통일의병들은 평창 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개최하고,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까지 이끌어내는 등 지금까지 선전해 준 관군에게 무한 박수를 보내며 통일의병대회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풍물패의 신나는 장단에 맞춰 어울림 한마당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로 통일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는 통일의병들의 흥겨움이 온 몸으로 발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울림 시간이 끝나고 스님은 통일의병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내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단체 사진을 함께 촬영하는 것을 끝으로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친 후 스님은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두북에서 농사일을 한 후 오후에는 문경정토수련원으로 이동해 해외총무단 수련 입재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노희동, 오세욱, 정란희, 손명희, sns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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