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조금씩 내리다가 후두둑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오늘따라 텃밭에 있는 상추와 고소를 더 정성스럽게 땄습니다. 흙이 거의 묻어있지 않기도 했지만 비가 내려 상추와 고소 잎이 더 싱그럽게 느껴졌습니다. 스님은 딴 상추와 고소를 가지런히 봉지에 담아 서둘러 구미 아도 모례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스승님이신 도문 큰스님의 생신이시자 애국지사 철생 임철호 선생 추모제가 신라불교 초전법륜지 구미 아도 모례원에서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양양 낙산사에서 다문화센터 나들이도 있는 터라 일정이 빠듯하였습니다.

아도 모례원에 도착하니 법사님들과 화엄반 행자님들이 먼저 도착하여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9시부터 사시예불에 이어 천도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삼귀의와 반야심경으로 추모식이 이어졌습니다.

언제나 쩌렁쩌렁 울리는 도문 큰 스님께 법문을 청하고 사홍서원으로 마친 뒤, 조촐하게 생신상을 마련하였습니다. 큰스님의 건강을 기원하는 삼배를 함께 올리고 함께 공양하였습니다. 스님이 아침 일찍 빗속에서 정성스럽게 딴 상추와 고소를 생신상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공양이 끝나자 스님은 서둘러 거세어 지는 비를 뚫고 낙산사로 향했습니다.

JTS 안산다문화센터에서 주최한 이번 다문화 나들이에는 동남아 외국인 130여 명과 봉사자로 이루어진 스텝 30여 명이 참가하였습니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오랜만에 나들이 온 다문화 외국인들의 얼굴에도 싱그러운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우산에 얼굴이 가려 사진엔 다 담지 못했지만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며 모두 한껏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전 11시에 정문 홍예문에서 남방불교식으로 입재식을 하고 낙산사 안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메뉴는 콩고기가 있는 비빔밥이었는데 동남아에서 온 분들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드셨습니다.

점심 공양 후에는 이승용 평화재단 총장님의 낙산사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미얀마, 태국, 베트남, 스리랑카, 네팔 총 5개 나라에서 오셨는데 미얀마 분들이 79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분들이 적었는데, 오늘이 부처님 오신날 행사가 겹쳐서 참여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 오고 싶어 하셨는데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총장님의 안내는 송수신기로 진행되었는데, 5개국의 사람들이 한 명씩 대표로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사천왕문부터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있는 보타전, 해수관음상, 의상대까지 함께 걸으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특히 원효대사님이 의상대사님과 당나라로 유학 가던 길에 마신 해골바가지 물을 통해 ‘모든 것은 마음이 일으킨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를 모두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을 모시는 법당을 보며 관세음보살님은 소원을 들어주고 꿈을 이뤄준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도 하고, 조신스님 일화이야기에 웃기도 하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시 반부터는 '인월료' 라는 건물에서 동남아 외국인들과 스님과의 즉문즉설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식으로 입재식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동남아에서 온 분들께 간단히 인사하시며, 낙산사 구경은 잘했는지, 비와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어보신 후 힘들게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위로의 말씀도 건네셨습니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게 힘들죠?”

“(대중들) 네~.”(모두 웃음)

“말도 안 통하고, 음식도 안 맞고, 기후조건도 다르고요. 겨울에도 무척 춥고요. 그렇지요?”

“(대중들) 네.”

“외국에서 산다는 건 좀 힘든 거예요. 여러분들이 한국에 이렇게 와서 살듯이, 우리 한국인들도 많은 분들이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남한인구가 5,000만 명이고, 북한이 2,500만 명이니까 합쳐서 7,500만 명이 한반도에 살고 있는데, 외국에 나가서 사는 사람이 700만 명이 넘습니다. 그러니까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외국에 나가서 살고 있어요. 미국에 200만 명, 일본에 60만 명, 중국에 200만 명, 구 소련, 즉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 구 소비에트 지역에도 한 5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유럽, 아시아,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로 나가서 살고 있어요.

옛날에 외국으로 나가서 살 때는 다 한국이 살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외국으로 나간 한국인들이 주로 했던 일이 접시닦기, 설거지, 막노동이었습니다. 지금은 다 자리를 잡았지만 초기에는 다 그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또 그 분들이 외국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 즉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 돈이 한국 개발의 초기자금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이 겪는 경험을 한국인들도 3, 40년 전에 똑같이 겪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서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사는 게 어렵다는 걸 이해할 텐데, 한국에 살면서 외국에 나가 살아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여러분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모를 겁니다. 저는 한국인으로서, 여러분들이 한국에서 여러 가지 차별도 받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충분히 돕지 못해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또 외국인들이 한국에 사는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들에 대해서 제가 한국인을 대표해서 먼저 사과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여러분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여러분들을 잘 이해하고, 또 공정하게 대우하는 게 올바른 일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그렇지 못한 거죠. 우리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은 하겠지만 정작 여러분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변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그럼 그런 변화가 오기 전까지 여러분들은 냉동실에 들어가 있다가 30년쯤 후에야 변화된 이 세상에 나오는 게 좋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변화하지 않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이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게 우리 각자가 내려야 할 인생의 선택입니다. 불만을 갖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인지, 이것은 여러분들 각자가 선택할 일입니다.

우리에게 왜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부다담마(Buddha Dhamma)가 필요한가 하면,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도 우리가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그 길을 안내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망하고, 미워하고, 괴롭게 살아가는 이런 세상에서도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준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보통 ‘불교다’라고 말하는 건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종교로서의 불교이고, 하나는 철학으로서의 불교입니다. 종교(religion)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불교와 철학(philosophy)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불교가 있다는 건데요, 제가 말을 너무 어렵게 합니까? (모두 웃음) 우리 대부분은 ‘종교로서의 불교’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로서의 불교는 믿음을 기초로 합니다. ‘믿음을 기초로 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려울 때 부처님께 도움을 청하면 부처님이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한편, 철학으로서의 불교는 인생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치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스님들이나 불자들이 대학에 가서 불교철학을 배우는 것은 ‘철학으로서의 불교’이고, 절에서 기도하는 것은 ‘종교로서의 불교’입니다. 그런데 ‘오리지널 불교’는 종교로서의 불교도 아니고, 철학으로서의 학문도 아니고,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괴롭지 않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제가 먼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편안하게 저한테 물으라는 뜻입니다. ‘지식, 철학’ 같은 것을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한국에 살면서, 또는 고향 생각하면서 괴롭거나 힘들었을 때에 대해서 저한테 물으면 제가 부처님 법에 의거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면 괴롭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조금 도움을 드리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편안하게 물으세요. 저를 종교지도자로서 스님 또는 어려운 학문을 가르치는 박사님 같은 스님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친구처럼 생각하고, 친구들끼리 앉아서 ‘이게 힘들어죽겠다. 이것 때문에 못 살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저한테 질문하세요. 그러면 제가 조금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30년 전에 경제가 어려울 때 미국 등 해외에서 설거지 같은 막노동으로 시작해서 외국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남은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모른다고 하시며, 한국을 대표해서 미안하다며 대신 사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바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모인 다섯 개 나라 모두 불교의 나라이지만 원래 불교는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시며, 괴로운 사람들은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베트남 문화원에 계신 40대 베트남 여성분이었는데, 한국에 베트남 교민이 참석할 수 있는 불교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질문, 초록색으로 염색한 20대 젊은 청년은 왜 요즘 한국에 불교신자가 줄어드는지에 대한 질문, 30대 네팔 남성분은 부처님이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물어보았고, 미얀마20대 청년은 한국에서 스님이 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계를 지켜야하는지 물었고, 40대 여성분은 한국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불교 교육이 있는지, 30대 남성분은 정신적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야 좋을지, 20대 미얀마 청년은 한국에서는 개종을 할 수 있는지 물었고, 개종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는 30대 남성분까지 총 8분이 질문하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 정신적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야 좋을지 질문한 분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질문은 신체의 문제는 약을 먹으면 낫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까 질문과 비슷한데요, 보통 우리에게는 육체적인 문제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데, 육체적인 문제는 약을 먹거나 하면 치료가 되지만 정신

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 ‘정신적인 문제’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저희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한국까지 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자가 되기에는 불충분하고, 또 저희 가족들이 저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어서 ‘빨리 돈을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다’는 압박감을 줍니다. 또 저희가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심적인 부담을 많이 느끼는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질문을 드렸지만 사실 언어장벽도 있고 해서 제대로 표현이 안 된 것 같은데, 그런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괜찮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묻겠습니다. 여기 컵 뚜껑이 있고, 컵이 있고, 컵 받침이 있습니다. 이 컵이 중심입니다. 이 컵은 이 뚜껑보다 큽니까? 작습니까?”

“큽니다.”

“그럼 이 컵은 이 받침보다 커요, 작아요?”

“컵이 작습니다.”

“한 번만 더 묻겠습니다. 그러면 이 컵은 커요, 작아요?”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그게 크다고도 할 수 없고, 작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컵이 10,000달러라고 하고, 이게 1,000달러라고 한다면, 10,000달러를 가진 사람은 1,000달러를 가진 사람에 비해서는 부자예요, 가난한 사람이에요?”

“부자예요.”

“그러면 100,000달러를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10,000달러를 가진 사람은 부자예요, 가난한 사람이에요?”

“가난한 사람이에요.”

“그러면 10,000달러를 가진 사람은 부자예요, 가난한 사람이에요?”

“마찬가지로, 비교를 하지 않는다면 10,000달러를 가진 사람이 부자라고도 할 수 없고, 가난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그러면 당신은 부자요, 가난한 사람이에요?”

“오~, 그거예요.”(모두 박수)

“이해하셨어요?”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여러분들은 부자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도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지금 그대로 아주 소중한 사람이에요. 여러분들이 지금 한국에서 일하고 월급으로 10,000달러를 받는다면, 한국인들과 비교해서 많이 받아요, 적게 받아요? 적게 받지요?”

“(대중들) 예.”

“그런데 고향에 있는 여러분들의 친구와 비교해 보면 많이 받아요, 적게 받아요? 많이 받지요?”

“(대중들) 예.”

“그럼 여러분들은 많이 받는 거예요, 적게 받는 거예요?(모두 박수) 이게 부처님의 법, 부다담마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은 키가 큰 사람도 아니고 작은 사람도 아니에요. 그냥 각자가 소중한 사람이에요. 키 큰 사람과 비교하면 작은 사람이 되고, 작은 사람과 비교하면 큰 사람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언제나 이대로, 이 상태 그대로 완전합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깨닫는다면 여러분들이 바로 붓다입니다. 이런 이치를 확연하게 깨달으면 여러분들 각자가 붓다, 즉 ‘완전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부자다, 가난하다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게 아니고, 내가 비교해서 인식할 때 생겨난 인식상의 문제,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비굴할 것도 없고, 잘난 척하고 교만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수행자는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어디서 살든 당당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또 여러분들은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대중들) 예.”

“우리가 만약 돈을 벌고 싶었는데 못 벌었다거나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거나 해서 괴롭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건가요? 종교는 어떤 식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까요? ‘저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 ‘제가 좋아하는 저 여자가 다른 데 가지 말고 나를 좋아하게 해 주세요.’ 이러는 게 종교적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해결하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첫째, ‘내가 괴롭다.’ 그러면 둘째, ‘왜 괴로운가?’, 즉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그 원인을 찾았을 때 ‘정말 이 일이 괴로워할만한 일인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들어가 보면 ‘괴로워 할 일이 아니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을까요?’ 이렇게 해서 이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 즉 열반(Nirvana)에 도달하는 게 수행입니다.

아까 부자가 되고 싶은데, 부자가 못 되어서 괴롭다고 질문한 분이 계셨잖아요? 그래서 저와 컵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하다 보니까 ‘부자라고 할 것이 본래 없다. 가난하다고 할 것도 본래 없다’는 걸 알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공(空)’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도 아니다’는 결론, 이걸 공이라 그럽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나트만(anatman)’, 또는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자각하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육체, 즉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과 꼭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첫째, 몸이 아프다. 둘째, 의사가 그 원인을 찾지요? 진찰을 하잖아요? 그러면 셋째, ‘아, 이건 나을 수 있다. 이건 치료할 수 있다.’ 이러잖아요. 그리고 넷째,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 방법을 찾아보잖아요. 그래서 치료하면 병이 낫는 거죠. 그러니까 몸이 아픈 것이 병인 것처럼 마음이 아픈 것도 마음의 병이니까 똑같이 그렇게 치료하는 거예요. 이것이 붓다담마,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요즘 이 법이 지금 새롭게 미국이나 유럽에서 더 환영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종교로서 불교를 믿어라’고 안 하고, ‘왜 괴롭니? 괴로움의 원인이 뭐니?’ 이런 식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지도를 해 주기 때문에 기독교인이든 불교인이든 종교가 없는 사람이든 아무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의 법문을 유튜브를 통해 듣고 강연장에 찾아옵니다. 지금까지 스님들은 ‘두카(고苦, dukkha), 아나트만(무아無我, anatman), 아니짜(무상無常, Anicca)’ 등 지식을 자꾸 가르치니까 젊은이들이 싫어했던 것이고, 또 자꾸 ‘빌어라’고 하니까 ‘빈다고 되나?’ 하는 의심이 들어서 젊은이들이 종교를 싫어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체 그런 용어나 형식 없이

‘뭐가 문제니? 얘기해봐.’
‘저는 애인하고 헤어져서 괴롭습니다.’
‘애인하고 헤어졌는데 왜 괴롭니?’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한단 말이에요. 여러분들은 애인하고 헤어지면 괴로워요?”

“(대중들) 예.”

“왜 괴로워요? 헤어져야 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잖아요.(모두 웃음) 이 좋은 세상에 한 사람과 만나보고 죽는 게 좋아요? 여러 사람 만나보는 게 좋아요? (모두 웃음) 어떤 남자가 여러 여자를 만나려고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나면 비난을 받잖아요. 그런데 여자 스스로 떠나주니까 다른 여자를 만나도 비난 을 안 받아도 되잖아요. 그래서 헤어져도 괴로울 일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붓다담마라는 것은 미래에 우리 인간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새로운 희망입니다. 오늘 ‘괴롭다’는 질문을 딱 한 사람만 하고 아무도 그런 질문을 안 했는데, 만약 그런 질문을 했다면 오늘 여러분들은 굉장히 도움을 얻었을 거예요. 다음에 만나면 그런 질문을 하세요. 혼자 속으로 끙끙 앓지 말고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질문을 못하고 전부 불교에 대한 지식적인 질문을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지식적인 대답을 했는데, 그런 질문보다는 ‘왜 괴롭냐?’, ‘부자가 안 되어서 괴롭다’, 이런 질문이 여러분들게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겁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네팔에서 온 질문자에게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컵에 비유해주신 스님의 이야기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는 말씀도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는 남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된다, 우리는 각자 고유의 가치가 있다(Unique quality)'고 했습니다. 말하는 모습을 보니 스님의 대답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같이 말해도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았는데, 불교국가에서 살아서인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단박에 이해하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고민이 해결되어 밝아진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스님께서는 2시간 이상동안 즉문즉설을 진행하신 후, 버스를 타고 낙산해수욕장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온 바다에서 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사진 찍는 동남아 외국인들을 보니. 처음 만났는데도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태국스님께서는 어렸을 때 여름에 수영했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들과 스님들은 한참동안 즐겁게 바다를 보며 사진 찍으셨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분들이었지만 모두 한마음으로 함께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희 봉사자들도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참가한 외국인들은 특히 외국 사람들과 함께 처음 여행해보는데,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JTS와 안산다문화센터에 감사하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외로운 타지생활에서 아주 의미있는 하루였다고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헤어지는 게 아쉬웠지만 다음에 또 만날 날을 기대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전 세계에 잊고 있던 친구들이 참 많았다는 걸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해가 질 때쯤, 모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스님은 낙산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즉문즉설이 끝나자 곧바로 밤을 달려 울산 두북 수련원으로 갔습니다. 내일 양산에서 강의가 있고 또 오전에는 농사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정란희, 조아영, 원성목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