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북한현실 모임 조찬이 있는 날입니다. 오전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함께 북한의 현실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손님들 상에 스님이 손수 농사지은 상추가 올랐는데, 신선하고 맛있다며 좋아했습니다. 한 달 여 만에 만나는 연구위원 분들이라 서로 근황을 주고받으며 환담을 나누었는데, 아무래도 주요 화제는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었습니다. 참가자 분들이 관련 전문가들이다보니 당시 감동적이었던 현장 얘기와 배경 설명을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이 북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앞으로 취할법한 시나리오를 짚어보기도 했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평화와 안보 문제에 힘을 기울여야 해요. 아무래도 당분간 정부 주도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다보면, 민간 부문의 역할이 크게 주어지기는 어려울 겁니다. 당장은 안보 문제를 풀어야 하니, 현실적으로 민간 영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차분하게 관망하면서 본격적인 민간 교류 협력을 준비해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남한 정부는 북한과 협의할 때, 민의 역할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라, 적절하게 민관의 역할분담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민간 영역 대북 사업이 과열 양상을 띠지 않도록 경계하고, 재벌 기업이 지나치게 개입해서 국가 균형 발전을 저해하지 않도록 앞으로 남북교류협력사업 역시 매우 세심하게 접근해야 할 겁니다.”

전쟁 가능성이 담긴 시나리오를 짚어보던 작년 연말과 비교해보면, 다들 웃으며 밝고 가볍게 얘기할 수 있어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오전 11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평화재단의 사업 방향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분석과 향후 전망, 그리고 북한과의 교류협력 분야나 그에 관해 민간의 역할에 대한 방향 모색, 우리가 하고 있는 평화활동에 대한 검토와 장기적 비전에 대한 토론과 대중교육 필요성 등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늦은 오후에는 미국 CUNY(뉴욕시립대학)의 이규 교수님이 학술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틈을 타서 스님을 만나뵈러 왔습니다. 문화, 철학, 역사, 젠더, 이데올로기 등 흥미진진한 토론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며 밤이 깊어갔습니다. 한껏 미소를 띄고 아쉬운 듯 자리를 뜨는 교수님을 배웅하고 스님은 업무 마무리를 좀 더 하고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강연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3일 대구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강연 중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즉문즉설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바리스타의 꿈을 가진 고3 학생입니다. 바리스타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솔직히 성적도 좋지 않고, 주변 선생님들께서도 제 적성에 맞는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입니다.”

“바리스타가 뭔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바리스타는 커피를 제조하는 사람이에요.”

“네, 질문 계속 해보세요.”

“요즘 시험기간이다 보니 공부를 하고는 있는데, 가끔 대학을 꼭 가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꿈이 바리스타가 되는 것이니까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구나 성적이 그리 높지 않으니 좋은 대학교에 가기도 어려울 것 같아요.

그리고 작년 10월부터 정신과에 다니고 있는데, 치료를 받게 된 계기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 증상이 느껴져서입니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구토를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구토를 하는 것이 너무 무서운 구토공포증이 있습니다. 이 증상도 극복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 지 잘 몰라서 오늘 질문을 드립니다.”

“우선 대학을 가는 문제는 본인이 결정하면 되고, 구토를 하는 문제는 병원에 가서 물어보면 돼요. (모두 웃음) 구토를 어떻게 멈추는지는 그 분야의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선생님에게 물어봐야 하겠지만 (모두 웃음) 그래도 오늘 질문을 했으니까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선 대학 문제는 저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스님이 되었는데 대학교를 가지 않았던 것이 지금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를 가지 않는 것에 대해 제 견해를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저는 대찬성이에요.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대학교에 다닐 이유가 뭐 있겠나 하고 생각해요.

물론 의사나 간호사 등 전문 직종에 종사하고자 하거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자 하면 대학을 가는 것이 좋아요. 대학이라는 곳이 원래 학문의 전당으로서 만들어진 기관이니까 전문 지식을 배우고자 하면 대학에 가는 것이 좋겠죠.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학들을 보면 사람들이 학문을 하기 위해 대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 가지 않나 싶어요. 사람들 만나면 나 어느 대학 나왔다, 이런 정도의 말을 하려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학과를 졸업해서 의사가 된 사람들이나 간호학과, 약학과를 졸업해서 간호사나 약사가 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학 때 전공과 사회에 나와서 갖는 직업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학과를 졸업하는 사람들 중에도 1년에 한 두 명 정도만 불교학과 교수가 되기 위해 공부를 계속 하는 정도이지 대부분은 불교학과와 관계없는 곳에 취직을 합니다.

이는 대학교에서 전공하는 학과와 훗날 갖게 되는 직업이 그리 밀접한 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현실입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커피를 제조하는 것이 전문학과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지식이나 기술이 있다면 4년제 대학이든 전문대학이든 상관없이 가는 것이 좋아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 졸업장을 따기 위해 대학교에 가는 경우라면, 대학교에 가고 가지 않고는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대학교 졸업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성적이 낮아서 좋은 대학교에 가기는 어렵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질문자가 명예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바리스타가 되어서도 나는 어느 대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걸 조금 내세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질문을 시작할 때 ‘좋은 대학교에 갈 성적은 안 되고’와 같은 단서가 붙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질문자가 살펴봐야 할 부분은 ‘바리스타가 되려고 하는데 꼭 대학교에 가야됩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거예요. ‘바리스타가 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대학교에서 배우는 게 아닌데도 대학교에 꼭 가야됩니까?’라는 의미로 질문한 것이라면 그건 본인의 선택이고 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반면 그 질문을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하찮게 여겨서 ‘바리스타가 되려는데 뭐 꼭 대학교까지 나올 필요가 있습니까?’라는 의미로 한 것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어떤 직업이라도 하찮게 여긴다면 그건 학생의 잘못된 관점입니다. 고대로부터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직업에도 귀천은 없습니다. 모든 직업이 평등해요. 내가 재능이 있거나 좋아하는 일이면 그것이 농사짓는 일이든 청소하는 일이든 그 무엇이든 좋은 직업이지, 월급이나 사람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내려지는 좋고 나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은 봉건시대에 신분의 구분이 있을 때 주로 관리직은 양반들이 맡고 농사짓고 대장간을 운영하는 기술직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주로 맡은 데서 생겨난 관념이에요. 당시 사람들의 생각에는 직업에 귀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직업에 귀천이 없어요. 다만 불법적 행위나 부도덕한 행위,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행위를 선택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 부분만 유의한다면 그 외에는 어떤 직업을 가져도 좋아요.

학교 공부를 계속 하는 문제는 하고자 하는 일이 꼭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전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가에 따라 판단을 내리면 돼요. 만약 의사가 되고자 하면 의과대학을 나와야 의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니까 그런 경우에는 대학교에 가야하겠죠. 혹은 학교선생님이 되고자 하면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을 나와야 그 자격이 주어지니까 대학교에 가서 전공 선택을 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에요. 그렇지만 바리스타가 되는데 있어서 그러한 자격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면 꼭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혹은 특정한 학문에 관심이 있어서 더 배우고 싶다면 꼭 그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대학교에 가서 더 공부해보는 것도 좋아요. 기타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불교공부를 더 할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대학교에 다니는 것에는 인적관계를 넓히는 요소도 있어요. 그러니 살아가면서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그 때 가서 고려를 해볼 수도 있어요.”

“바리스타는 대개 카페에서 일용직으로 시작하는데, 제 꿈은 바리스타 기술을 배워서 언젠가는 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에요. 이제 곧 스무살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될텐데 막상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건 카페를 운영하거나 바리스타를 직접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게 좋아요. 가서 ‘제가 이 일을 직업으로 택하려고 하는데,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대학 졸업장이 꼭 필요합니까?’ 하고 물어보면 그 사람들이 알려줄 거예요.

어떤 직업은 학력이 너무 높으면 채용하는 쪽에서 너무 부담스러워 하기도 해요. 그리고 어떤 직종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한 사람이 오히려 금방 배우기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그런 부분은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까페에 취직을 해도 처음부터 커피 제조하는 일은 안 시켜줄 수도 있으니까 1년 정도는 서빙을 하고 그런 다음 커피 제조하는 기술을 배우고, 그렇게 몇 년 정도 일하면서 용돈을 모아서 작은 가게라도 하나 차리는 길이 생길 거예요. 혹은 꼭 당장 카페를 운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되더라도 성실하게 일을 하다보면 가게 주인이 갑자기 몸이 아프다든지 다른 더 좋은 자리가 생겨서 가야된다든지 하는 일이 생겨요. (모두 웃음) 그런 경우에 주인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성실한 사람에게 가게를 물려줄 수 있겠죠.

이런 건 계획을 세운다고 되는 게 아니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인연이 도래합니다. 게다가 지금 구토공포증도 있고 심리적으로 아주 건강한 상태도 아니니까 제 생각에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바로 직업을 구해서 자기 적성을 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가 대학교에도 꼭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직장을 다니면서 방송통신대학이나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더 배우는 방법들도 있어요.

가장 우려스러운 건 전공이나 직업이 아니라 지금 질문자가 건강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럴 때는 긴장을 완화시키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학교 공부를 하는 것에 아무런 긴장이 느껴지지 않으면 계속 공부를 해도 되는데, 만약 시험 때문에 긴장이 되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면 대학교에 가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영원히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당분간은 건강을 위해서요.”

“제가 공부와 직업 고민도 있지만 인간관계도 협소한 편이에요. 목소리도 나긋한 편이고, 평소에도 남자들과 친구하기가 어려워요. 학교에서도 저랑 성향이 비슷한 몇몇 친구들만 사귀고 있어요.”

“인간관계를 왜 꼭 폭넓게 가지려고 해요, 나중에 정치하려고 해요?” (모두 웃음)

“아니요.”

“그런데 뭘 그렇게 꼭 폭넓게 사귀려고 해요? 바리스타가 되려고 하면 그냥 커피 제조만 잘하면 되고, 사람들이 내 가게에 와서 커피만 맛있게 먹고 가면되지 뭣하러 친구는 많이 사귀려고 해요?

저도 어릴 때부터 절에 살아서 친구가 거의 없어요. (모두 웃음) 지금 여러분들처럼 그냥 하루 와서 잠깐 보고 가는 사람들만 많지 (모두 웃음) 친구는 없어요. 그런데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모두 웃음) 그런데 왜 ‘친구가 많아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해요?

굳이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 사람들을 폭넓게 사귀면 돼요. 그런데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친구하자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건 그저 욕망일 뿐이에요. 친구를 사귀고 싶으면 계속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사귀면 되고, 성격적으로 그런 게 잘 안 맞으면 본인은 누가 다가와서 친구하자고 하면 사귀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면 돼요.”

“사람 관계가 좁은 것이 제가 나중에 바리스타가 되었을 때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커피 제조하는 거랑 친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모두 웃음)”

“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새롭,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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