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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외로워서 힘들어요.” 법륜스님 즉문즉설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외로워서 힘들어요.”

질문자 “저의 고민은 외로움입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낍니다. 그리고 멋진 상대도 만나고 싶은데, 막상 그런 사람이 다가오니까 제가 소극적이 되어 못 다가가고, 제 자신이 상대방이 생각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들키는 것이 두렵습니다. 상대방이 실망하고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납니다…”


법륜스님 “술을 마셔서 외로움이 심해지면 술을 안 마시면 되고 멋진 사람을 만나서 위축되면 멋진 사람을 안 만나면 되잖아요.”


“그런데 저는 둘 다 하고 싶거든요.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하고, 멋진 사람도 만나고 싶어요.”


“정 그러면 술 마시고 외로움을 좀 느끼고, 멋진 사람을 만나서 좀 위축되면 되잖아요.”


“어.. 위축되면 되나요… (청중 웃음)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겁나요.”


“그러면 겁을 조금 내면서 관계를 맺으세요.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제가 질문자에게 스님하기가 참 힘들다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새벽에 일어나서 예불하려면 졸립고, 절하려면 무릎 아프고, 참선하려면 허리가 아프고, 염불하려면 목이 아프고, 혼자 살려고 하니 외로워요. (청중 박장대소와 박수) 이러면 질문자는 뭐라고 하시겠어요?”


“계속 그렇게 살거나 그만두거나…”


“지금까지 몇 십 년 동안 스님으로만 지냈는데, 이제 와서 그만두면 앞으로는 뭘 하고 사나요?


이렇게 되물으면 질문자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계속 하라고 하겠죠? 지금 질문자가 하는 질문도 이와 비슷해요.


“그러게요. 그러면 그냥 감수하고 계속 하는 건가요?” (청중 웃음)


“물건을 사고 싶으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려면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필요한 일을 하는 거예요. 일을 안 해서 돈이 없으면 물건을 사고 싶어도 안 사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사고 싶으면? 그래도 안사면 돼죠. 그래도 사고 싶으면 빚을 내거나 돈을 마련해서 사면 돼요. 무엇을 하든 어려운 건 없잖아요.”


“아, 그러면 제가 지금 고민을 하는 이유가 그런 뒷감당을 하기 싫어서 그런 걸까요?”


“네. 이제야 알았군요.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면, 자기랑 비교했을 때 자기가 못나 보이니까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의 필연적인 결과예요.


키가 커 보이고 싶으면 나보다 키가 작은 사람을 만나면 되고, 예쁘게 보이고 싶으면 나보다 못생긴 사람과 같이 다니면 돼요. 꽃 앞에서 사진 찍으면 꽃이 더 예뻐 보일 수 있으니까 사진도 주로 고목나무 앞에서 찍고 그러면 돼요. (청중 웃음)”


“네, 감사합니다.”


모든 존재는 다만 그 것일 뿐


“지금 여기 병이 보여요?”


“네.”


“병과 마이크를 비교하면 병이 큰가요, 작은가요?”


“작아요.”


“병은 그 옆에 있는 뚜껑보다는 커요, 작아요?”


커요.”


“병은 마이크보다 커요, 작아요?”


작아요.”


“자, 그러면 이 병은 커요, 작아요?”


“중간…. 아니,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요.”


그래요. 이 병 자체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도 이와 같이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다만 그것일 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사물을 인식할 때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 크다, 작다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여기 있는 병도 마이크와 비교를 해서 작다고 인식하고, 뚜껑과 비교해서 크다고 인식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크다, 작다는 것은 사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질문자는 잘난 사람도 아니고 못난 사람도 아니에요. 훌륭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자기는 다만 자기일 뿐입니다. 그런 자기를 두고 키 큰 사람과 비교하면 작은 사람으로 보이고, 키가 작은 사람과 비교하면 큰 사람으로 보이는 거예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상대방 역시 다만 그 사람일 뿐 잘나고 못난 것이 없는데, 질문자가 상대방이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상대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못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즉, 자기 자체가 못난 사람이어서 못난 사람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니까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존재 자체가 열등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질문자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열등하게 여기는 거예요.”


원래 잘나고 못난 것이 없어요. 그걸 제대로 알려면 무엇이 잘났고 무엇이 못났는지 스스로 한 번 따져보세요. 여기에 있는 물병이 잘났어요, 못났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도 우리가 누구는 잘나고 누구는 못났다고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로 잘나고 못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나 비교 대상에 따라 그렇게 인식할 뿐이에요.


실제로 그 대상이 그런 게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정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인데도, 우리는 마치 그게 그 대상의 성질인 양 착각을 해요. 이 착각은 우리 인식 상의 오류입니다.


질문자보다 키가 작은 사람과 늘 같이 다니면 스스로 키가 큰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질문자 자체는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닌데, 그런 인식이 반복되다보면 스스로 키가 크다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다만 주어진 조건에서 그렇게 보일 뿐인 것을 마치 존재 자체에 크고 작음이 있는 줄 착각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그 착각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예요. 이 착각을 없애는 방법은 애초에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났음이 없는 줄 아는 거예요. 애초에 잘난 사람이 없으면 그와 비교해서 생기는 열등한 자신도 없습니다.


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외로운 것


그리고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운 거예요.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남녀가 같이 있어도 외롭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이 뭔지 아세요? 큰 성벽보다 더 높아 보이는 것이 토라져서 등 돌리고 누워있는 남편의 뒷모습입니다. (청중 공감의 웃음) 몸을 껴안고 있어도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외롭고, 깊은 산속에 혼자 살아도 마음의 문을 열고 있으면 외롭지 않습니다. 누구와 함께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또 외부에서 외로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누구를 만나서 외로움을 해소하게 되면 막상 사람을 만나면 귀찮아집니다. 그러다가 헤어지면 또 외로워하고, 그래서 누구를 만나면 또 귀찮아져요. 그렇게 왔다갔다 방황하면서 살게 됩니다.


물은 경사면을 만나면 빠르게 흐르고, 직각면을 만나면 폭포가 되고, 웅덩이을 만나면 고요한 호수가 됩니다. 그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주어진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괴로워집니다. 사람이 없을 때 누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니까 외로워지고, 사람과 같이 있는데 혼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귀찮아지는 거예요.


같이 있을 때는 같이 있어서 좋고 혼자 있을 때는 또 혼자 있어서 좋고. 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조건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존재 자체가 열등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질문자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열등하게 여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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