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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성질이 더러워 사람들과 많이 다툽니다. 어떻게 고치죠?”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성질이 더러워 사람들과 많이 다툽니다. 어떻게 고치죠?”
 



질문자 “저는 성질이 더러워 주변사람들과 많이 다투는 편이고, 사회나 가족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그래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는 말처럼 한국을 떠나 해외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곧 비자가 만료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이는 적지 않고, 성격은 강하고 의지는 약해서 한국에서의 생활이 자 이 없어요. 조언 부탁드립니다.” 

법륜스님 “우리가 ‘아, 그거 저 사람 성격이야’, ‘그게 저 사람 성질이야’라고 말할 때 그 ‘성격’, ‘성질’이라는 용어는 그게 개선이 잘 될 때 그런 말을 씁니까? 개선 이 어려울 때 그런 말을 씁니까?“ 

(대중들) “개선이 어려울 때 써요.” 

“그래요. 그게 마음대로 개선이 안 되기 때문에 ‘아, 그게 그 사람 성질이야’ 라거나 ‘아이고, 너는 그게 그 사람 성격인 줄 몰랐냐?’ 라고 말하잖아요. 쉽게 말하면 질문자가 얘기한 그 성격은 고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러면 저는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나요? 저는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친구랑 싸운 뒤로 안 보고 지내고 있고, 가족 같은 경우에도 어머니, 아버지는 괜찮지만 동생은... 저는 제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가보다 싶어요.” (질문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림) 

“그러면 질문자는 성질대로 사는 대신에 손해를 보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성질대로 살면서 손해도 안 보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제 말은 성질대로 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성질대로 살려거든 손해를 각오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질 문자는 왜 부모한테는 성질대로 못할까요? 동생하고는 이해관계가 별로 없는데, 부모님하고는 이해관계가 많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걸 보면 질문자가 100% 성질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제가 보기엔 질문자가 성질을 부려도 될 만한 데다 부리니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생긴 대로 사세요. (모두 웃음) 



생긴대로 살면 된다고요? 


왜냐하면 성질이라는 건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거든요. 안 고쳐지는 걸 고치려고 하면 나중에 ‘나는 안 된다. 내가 문제다’ 이렇게 자학증세가 생깁니다. 그럼 그게 우울증으로 갈 수도 있거든요. 그게 더 위험한 거예요.” 


“네. 제가 약간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 고칠 생각을 안 하면 돼요. 고칠 생각을 해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손해를 과감하게 보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부모님한테는 성질을 안 부린다는 말을 제가 듣자마자 ‘아, 대충 계산은 하고 성질을 부리는구나. 그 정도라 면 큰 문제가 없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대신에 성질대로 해서 경제적 손실이나 인간관계 손실 등 여러 가지 손실이 많다면 성질을 고쳐야 되겠지요. 

성질을 고치려면 첫째, 성질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도전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대부분 성질을 쉽게 고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쉽게 안 고쳐지니까 좌절하게 되지요. ‘고치기 어렵지만 나는 여기에 도전해 볼 수밖에 없다. 왜? 고치지 않으면 손실이 너무 크니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손해를 막기 위해 고친다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둘째, 연습을 꾸준히 오랫동안 해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은 ‘작심삼일’이라고, 며칠 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잖아요. 성질을 고치려면 10년 목표를 세워서 해야 돼요. 그 10년 안에 다시 3년씩 3번 목표를 세우고, 3년 안에 다시 1년씩 목표를 세우고, 1년 안에 다시 100일씩 목표를 세우는 겁니다. 

‘이번 100일 안에 성질을 다 고치겠다’ 하기보다, ‘이번 100일은 성질이 올라오더라도 바깥으로는 말을 안 해 본다’ 라고 해보는 거예요. 그것도 ‘매번 안 한다’라고 목표를 세우면 너무 어려우니까 ‘세 번에 한 번은 안 해 본다’라든지, 또 전에는 한번 성질이 나면 그 사람이 미워서 한 달 동안 얘기를 안 했다면 ‘성질을 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열흘 안에는, 1주일 안에는, 3일 안에는 화해를 한다’라는 식으로 목표를 낮춰서 잡는 게 좋아요. 


성질이라는 건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면 이렇게 목표를 낮춰 잡을 수가 있습니다. 100일 동안 ‘그래도 전에는 하루에 열 번 화를 냈는데, 요새는 아 홉 번 낸다. 한 번은 줄였다’, ‘두 번은 줄였다’ 이렇게 하는 건 비교적 쉽다는 거예 요. 이렇게 하면 스스로 ‘할 수 있다’ 하는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오? 나도 되네?’ 하면서 자기가 자기를 신뢰하게 되는 거예요. 




다만 알아차릴 뿐.... 



이런 성질을 고칠 때는 각오하고 결심하는 게 크게 도움은 안 됩니다. 각오를 하고 결심을 하게 되면 자꾸 좌절이 따르거든요. 뜻대로 잘 안 되니까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알아차림’이에요. 화가 나면 ‘아, 내가 또 화가 나네’, 성질을 부려놓고는 ‘아, 내가 또 성질을 부렸네’ 하고, 거기서 조금 더 되면 성질이 올라올 때 ‘또 성질 올라온다’ 하고 알아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성질이 난다고 성질을 따라가 버 
리면 손실이 따르고, 성질이 나는 걸 억지로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화가 올라오는 걸 누르니까 속에 압력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을 ‘스트레스’라고 하는 거 거든요. 



한국 사람들은 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세 번을 못 넘깁니다. 그래서 “‘저게 보자, 보자 하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저게!’ (모두 웃음) 이런 말이 있잖 아요. 터뜨리고 나서는 또 ‘내가 그것도 못 참고 또 화를 냈구나’ 하고 후회를 하 지요. 이렇게 성질을 내놓고는 후회하고, 또 참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나중에 또 터뜨리고, 이렇게 반복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성질을 참지도 말고, 내지도 말고, 뭐만 하라고요?” 
“알아차리기요.” 
“네, 알아차리는 건 후회와 다릅니다. ‘안 내야 되는데 냈다’ 하는 것이 후회이고, 그냥 낸 거를 ‘냈다’라고 아는 게 알아차림이에요. 이 알아차림을 통해서 변화가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알아차림을 꾸준히 해서 훈련이 좀 되면 이제는 찰나찰나에 알아차리게 됩니다. 찰나찰나에 알아차리면 성질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물론 알아차림을 놓칠 때는 성질대로 가지만요. 그래서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유 
지시키는 방법이 바로 수행입니다. 명상한다고 앉아있는 것만 수행이 아니에요. 

앉아있는 거야 나무토막이 제일 잘 앉아있지요.(모두 웃음) 


이렇게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상태를 선에서는 ‘소소영영(昭昭靈靈)하게 깨어있다’라고 표현합니다. 편안한 가운데에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걸 알아차리는 건데, 여기서 ‘무의식’이라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모른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무의식의 작용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거예요. 굉장히 예리하게 알아차리는 훈련을 해야 성질이 일어나는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뭐라고요?” 

“성질대로 사는 거요.” 

“네, 그냥 성질대로 살고 손해를 각오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일 쉬워요. 그런데 손실이 좀 크다 싶어서 조금 개선을 하려면 욕심을 너무 부리지 말고, 목표를 아주 낮게 설정해서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한 100일쯤 수행을 하면 ‘내가 진짜 성질 이 더럽긴 더럽구나’ 이렇게 자기성질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한 3년 쯤 하면 조금 개선이 돼요.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 요새 성질 좀 덜 내시네요’라 
고 말할 정도가 됩니다. 꾸준히 노력하면 사람들이 눈치 챌 만큼 변화가 올 수 있 습니다.”


“성질을 바꾸겠다는 각오와 결심은 좌절을 부릅니다. 
성질을 참지도, 내지도 말고 알아차리는 연습부터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