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8.15 광복 6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8.15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저는 “통일”입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는 ‘광복’이 그 시대의 절대 절명의 과제였듯이, 분단된 국가에서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통일’이 이 시대의 절대 절명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만큼은 남북의 통일 문제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1995년 식량난으로 인해 300만명의 북한 동포들이 아사한 사실을 접하고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법륜스님은 지금까지 15년이란 시간동안 통일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해 오신 분 중에 한 분입니다.
8.15 광복절을 맞이하여 통일한국의 비전은 무엇인지 법륜스님에게 물었습니다.
- 질문 : “분단된 상태로 계속 살면 되지, 왜 하나로 합쳐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공동체가 갖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 법륜스님 : “분단이 지속되면 북한은 중국에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로 중화경제권에 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면 커다란 한민족경제권이 형성되어 오히려 동북 3성이 자원과 노동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비시장으로도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한국은 대륙으로의 진출은 물론이고 동해를 중심으로 주변국과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 러시아 연해주의 자원, 중국 동북 3성의 노동력이 결합하여 환동해 경제공동체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통일의 이런 비전적인 측면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지리적으로 보면 지금 한국은 대륙으로 연결된 길목에 북한이 자리잡고 있어서 섬과 같은 조건에 처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사고에는 대륙적 시야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세계를 보는 눈이 크게 열리지 못했고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폐쇄적으로 변한 면도 많습니다. 국토가 오랜 동안 분단된 상태에서 그와 같은 조건에 처해 있다 보니 민족적 심성도 상당히 왜곡되고 축소되어 기형적 심성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예요.
유럽의 젊은이들이 자전거나 기차를 타고 유럽대륙을 다니면, 비행기를 타고 다닐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공동체 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비행기가 아닌 자전거나 기차로 한반도와 동북 3성, 연해주를 누비게 되면 기질과 심성이 달라질 겁니다.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동북아 공동체 의식이 생겨날 겁니다. 그러면 자연히 활기찬 기상이 생깁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은 민족정기를 회복하고 미래와 세계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될 겁니다.”
- 질문 : “통일이 정말 남북한 상생의 길이 될 수 있을까요?”
- 법륜스님 : “통일을 남북한의 어느 한쪽이 패배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통일을 ‘이기고 지는’ 승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를 한번 돌이켜 보면, 신라가 가야를 흡수합병 할 때 가야왕족을 신라왕족으로 인정해주고 받아들였어요. 그 결과 오늘날까지 신라와 가야에 속했던 지방 사이에는 서로 지역갈등이 없습니다. 그런데 백제를 통합할 때는 전쟁을 통해 강제적으로 통합하면서 지배계층을 처벌했기 때문에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라도와 경상도 간 지역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남과 북의 통일과정도 신라와 가야의 사례에서 배울 필요가 있어요.
만약 북한 체제가 붕괴되어 남한에 흡수통일이 된다면 현재 북한의 지배계층은 남한의 법률에 의해 자신들이 처벌받을 거라고 생각하여 중국이나 제3국으로 망명하는 길을 찾을 겁니다. 이는 민족적 비극일 뿐만 아니라 민족 에너지 낭비입니다. 이렇게 민족 내부에서 파괴적․분열적인 데에 에너지를 소모하면 참된 통일국가를 꿈꿀 수 없어요. 통일은 남북한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통해 이뤄야 합니다.
흔히 남한은 자본주의, 북한은 사회주의로 체제가 서로 다르다고 하지요. 그러나 지금의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그 정치체제가 어떠하든 경제구조는 시장경제가 자연스러운 추세입니다. 그러나 시장에 마냥 맡겨놓는 것보다 시장경제를 약간 통제하면서 인간이 좀 더 중심에 서는 시장경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식 시장경제는 너무 무자비할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지속가능한 문명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식 시장경제보다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원리가 좀 더 인간적으로 보여요. 시장원리를 존중하되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전체 인류가 공존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개발’이 가능한 시장경제이어야 합니다. 한국은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로 나아가야 하고, 북한은 봉건적인 시스템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좀 더 다가와서 점차 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질문 : “그렇다면 어떻게 통일을 준비해야 할까요?”
- 법륜스님 :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의 개혁개방과 경제개발을 도와야 합니다. 북한이 경제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방과 개발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개방을 하면 체제붕괴로 가기 쉽고, 개방을 하지 않아도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체제붕괴로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래저래 북한의 체제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이 점차적 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있을 때 체제가 무너지게 되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시기 동안은 오히려 북한체제를 관리해야 합니다. 설령 북한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내부의 체제정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 정권의 붕괴, 혹은 유지는 통일로 가는 길에 있어서 실제로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붕괴나 유지, 이 두 가지 경우를 동시에 고려해 둬야 합니다.
문제는 과연 북한이 개방을 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어요. 개방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1단계 조치로 먼저 외부의 안보 요인을 해결하여 체제붕괴위기에 대한 불안요인을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기초 위에 김정은 1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을 공화국 헌법에 맞게 우선 노동당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적어도 1인 독재가 1당 독재로 전환되어 당내 민주주의 정도라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의 체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그렇게 해 나갈 수 있도록 밖에서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북한의 경제개발은 남한과 연관된 통합경제개발로 나아가야 합니다. 베트남의 경우를 보면 개방 후 20여 년 동안이나 경제발전에 매달리고 있지만 이제야 겨우 성장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경제개발 정책을 취한다면 성공적으로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20년이 지나야 현재의 베트남 수준이 될 겁니다. 그것은 주변 국가들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북한은 베트남과 달리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 통합경제구조로 감으로써 경제성장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 질문 : “지금 북녘 동포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심각한 아사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기에는 지금의 북한주민들의 아사가 너무 심각한 것 같습니다.”
- 법륜스님 : “지금 이 순간에도 북녘 동포들의 아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가치 있는 사회운동을 하더라도 북녘 동포들이 굶어 죽어가는 이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다면 그 어떤 운동도 보편적 도덕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 어떤 운동을 하든지 북한 주민의 기아를 해결하고 북녘 동포들을 살리는 쪽으로 함께 가야 그 운동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한국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북한 동포들의 아사를 막는 일입니다. 남북한과 해외동포를 합한 7천 8백만 우리 민족 가운데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2천만 북한 동포들이예요. 그들이 통일코리아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그런 통일을 우리가 이루어 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있는 통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민주 통일코리아가 이루게 지게 되는 것입니다.”
복잡한 통일 문제가 법륜스님의 입을 통하면 아주 간결해지곤 합니다. 광복절을 기념하여 통일 비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당위적인 통일에 대해 많이 배워왔기에 통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륜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통일은 정말 비전적인 것임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지금도 아사 위기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녘동포들에 대한 생각도 간절해집니다. 이들의 고통을 하루 빨리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8년 전 선조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듯이, 오늘 우리들도 “남북통일 만세”를 불러보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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