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자 하는 일들이 뜻대로 안되면 화가 나지요. 화가 나서 상대에게 감정을 표출하고 나면 뒤늦게 후회도 되고 관계도 안 좋아집니다. 그렇다고 화를 꾹꾹 참으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화를 참아야 할까요? 화를 표출해야 할까요? 화를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까요?
법륜스님에게 “화 다스리는 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화를 참는 것도 아닌, 화를 표출하는 것도 아닌, 화를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 질문자 : “스님, 저는 화가 나면 말을 하지 않고 속으로 삭입니다. 말을 하자니 사안이 너무 소소하고, 안 하자니 화가 나요. 화가 날 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 버리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꾹 삭이는 것이 좋을까요? 화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세요.”
- 법륜스님 : “화가 일어났을 때 우리들이 취하는 행동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화가 일어나니까 화를 내 버리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화가 일어나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꾹꾹 참는 경우입니다. 화가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바깥으로 다 표출해 버리는 게 제일 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질대로 화를 낼 때를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화를 벌컥 낼 때는 모르지만 지나고 보면 사실 화내는 일도 힘이 듭니다. 굉장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때문에 무척 피곤합니다.
화를 내면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잘못했다고 용서를 빕니까?
주로 더 세게 맞받아치기 때문에 화가 더 나죠. 그리고 힘이 부족할 때 화를 내면 두들겨 맞기까지 합니다. 내가 욕한 것보다 더 많은 욕을 얻어먹을 수 있지요. 그래서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손해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가 나지만 참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화를 참기로 선택한 것은 누구를 위해서입니까? 사실은 나를 위해서 참는 겁니다. 참고 싶어서 참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참는 거지요.
그런데 화를 참는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요? 참는 것은 좋은데 참다가 못 참아 터지면 더 나쁜 결과가 나오죠. 아이를 야단칠 때도 두세 번은 참다가 화가 터지면 아이를 마구 두들겨 패게 되듯이, 화를 참다 그 화가 폭발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집니다. 그래서 살인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살을 하는 등 극한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몰고 가기도 합니다.
참는 것은 나에게도 괴로움입니다. 그래도 참을 만하면 괜찮은데 이것이 터지는 게 문제이지요. 또 터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참는 것이 오래 누적되면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스트레스가 자꾸 쌓이면 목이 뻣뻣해지고 뒷골이 아프다가 조금 더 심해지면 눈이 침침해지고 거기서 더 심해지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특히 부인들이 참는 게 약이다 해서 너무 참다가 다른 나라 사람에게는 거의 없는 ‘화병’이 많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화를 내지 못하도록 너무 억눌러 온 문화였기 때문에 정신과에서는 환자들에게 화를 내도록 유도합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으니 화나게 만든 상대의 얼굴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실컷 욕을 하게 한다든지 몽둥이로 두들겨 패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면 좀 시원해지지요. 그러나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화가 난다고 화를 내 버리는 것은 제1의 길인 쾌락에 속합니다. 화가 날 때 무조건 참는 것은 제2의 길인 고행에 속합니다. 제1의 길, 제2의 길도 해탈의 길은 아닙니다. 해탈의 길은 두 길을 떠난 제3의 길 ‘중도(中道)’입니다. 우리는 화가 일어났을 때 화를 내거나 참거나 하는 두 가지 길 밖에 모르지요. 그러면 제3의 길인 중도의 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건 ‘알아차림이 없다, 제정신이 아니다, 무지의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화가 일어날 때는 첫째, 화가 일어나는 줄을 빨라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기서 ‘화가 일어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른 말입니다. 화가 일어나는 것은 자기 속에서 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화가 일어날 때 자기 자신은 잘 모릅니다. 화라는 것은 ‘내가 화를 내야지’ 하고 생각을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순간에 화를 내는 본인은 자신이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도 자신이 화가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화를 벌컥 밖으로 내게 되는 것입니다. 화가 일어날 때 곧 알아차리면 화는 사라집니다. 마치 두 개의 부싯돌이 부딪쳐 불이 일어났을 때 옆에 불이 옮겨 붙을 솜이 없으면 그냥 사라져 버리지만 솜이 옆에 있어서 솜에 불이 옮겨 붙으면 급속히 커져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첫째, 알아차림에 대한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알아차림이 없는 무지(無知)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깨어있어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순간순간에 깨어 있으면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요.
화가 일어나는 순간에 그 화를 알아차리면 사라지지만, 화가 약간 많이 일어났을 때는 알아차려도 금방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둘째, 화가 사라지지 않을 때는 화를 지켜봐야 합니다.
화를 내거나 참는 쪽으로 가지 말고, 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태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는 알아차림의 지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만 알아차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알아차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하면 화가 일어나는데서부터 시작해 화가 사라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알아차림이 계속돼야 하는 것이지요.
알아차리면 그 화가 더 이상 커지지 않습니다. 알아차림이 지속되면 일정하게 지속되던 화가 저절로 사라집니다. 알아차린 상태에서는 화가 1년이고 2년이고 계속 유지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1초간 유지되다가 사라지거나 10분간 유지되다가 사라지거나 합니다. 그런데 화를 참았을 때는 계속됩니다.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1시간이면 1시간 지속됩니다. 그런데 알아차림만 있으면 화가 저절로 사그라집니다.
그래서 참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화가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지속하면서 저절로 사그라질 때까지 지켜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화의 존재를 매우 뚜렷이 바라본다는 뜻에서 이를 ‘관법(觀法)’ 이라고 하지요. 원어로는 ‘위빠사나’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알아차림이 없이 이미 화가 나 버렸다면 화가 난 후에라도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려야 하고 지속적으로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켜보아도 화가 계속 난다면, 그 때에는 상대편 입장에 서서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화를 내 버렸거나 화를 계속 참고 있다면 참회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그런데 내가 너무 내 입장만 고집해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신을 미워했으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참회기도는 이렇게 생각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곧 내가 참회하기로 직결됩니다. 참회한다는 것은 상대편 입장에서 이해하기의 일환입니다. 이것이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수행해 나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 질문자 :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화나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 분명한 지침과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수한 감정들에 휘둘리지 말고, 알아차리고 지켜보기를 계속 유지하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생활 속에서 화가 날 때마다 알아차림과 지켜보기를 한번 해보세요. 이게 잘 안되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 한 시간 정도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며 참회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화를 다스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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