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을 스치는 부드러운 봄바람과 행복한 대화를 홍보하는 핑크빛 안내판이 더욱 조화롭게 느껴지는 4월 3일, 스님의 즉문즉설이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있었습니다.

강연 소개 영상이 끝나고 사회자의 소개로 스님께서 무대에 나오시자 객석 및 통로와 무대 앞까지 꽉 채운 550여 명의 청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철을 모르고 꽃이 필 때, 과거에는 그저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과학적 원리를 알게 되어 이런 현상들을 일컬어 이상기온이라고 하죠? 이처럼 ‘신기하다’는 말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의 심리작용도 이와 같아서 무지에서 벗어나 현상의 원리를 알면 신비감에 현혹되지 않고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습니다.

“지금 한반도에 계절의 봄은 이미 왔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봄과 한반도 정세의 봄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6.25전쟁 이후 65년 동안 얼어있었던 한반도 냉전이 평창올림픽을 시작으로 하여 북미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등으로 풀릴 기미가 보이고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진정한 평화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때입니다. 또한, 한반도의 정치적 상황과 동시에 한국인의 특성,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갈 때 우리는 살고 싶은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는 인사 후에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총 다섯 분이 질문하였습니다. 직장생활만 15년 하다가 새롭게 개인 사업을 생각하는데 인간관계에 좀 문제가 있어 창업할지 말지 고민이라는 분, 어려서부터 해외 유학생활을 해서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지금은 유학 생활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현재 상황과의 괴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20대의 고민, 인과응보와 인연과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혼란스럽고, 중2 때 친구와의 심한 갈등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18살이 된 지금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아들에게 어떠한 대화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 그리고 오랜 프리랜서 생활로 미래 직장이 불안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인 분 등 안고 있던 고민을 침착하게 풀어놓으셨습니다.

그중 두 아들이 결혼 후 점점 어머니에게 소홀해서 서운하다는 60대 어머니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저는 60대 초반인데, 아들 둘을 결혼시켰습니다. 작은 아들이 먼저 결혼했고, 큰 아들이 나중에 결혼했는데요, 아들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집안에 불화가 없었는데 결혼 후에는 알게, 모르게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이 집에 안 온 게 1년 정도 됩니다. 작은 아들은 ‘엄마, 아빠는 형 말만 믿고, 형의 편이다. 나는 클 때도 소외당했고 지금도 소외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은 아들 몰래 며느리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아들의 마음에 뭔가 쌓인 게 있어서 형네 식구들과 엄마, 아빠를 다 싫어하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처신을 해야 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예,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돼요.(모두 웃음)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질문자가 현실을 안 받아들이고 옛날에 두 아들이 어릴 때, 그러니까 아들들이 7살, 10살, 12살, 15살 때의 그 가족적이었던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예요. 지금 아들들이 다 커서 결혼을 하고 각자 제 가족을 이루어가고 있는 가장들인데, 질문자는 아들들을 그렇게 어린애 취급하는 관점에서 보니까 마치 문제가 있는 것 같은 거예요.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예.”

“그러니까 첫째, 이건 자식들이 나이가 들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두 번째, 결혼을 하면 그러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거예요. 결혼을 하기 전에는 ‘나와 내 부모’가 기본적인 가족인데, 결혼을 하면 ‘나와 내 자식’이 가족입니다. 그래서 큰 아들네 집과 작은 아들네 집은 다른 가족, 이웃일 뿐이에요.”

“예…….”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가족인데, 아들들 입장에서는 다른 가족이에요. 여러분들이 자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사촌과 같은 가족이에요, 다른 가족이에요?”

“(대중들) 다른 가족이요.”

“예, 친척이지만 다른 가족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볼 때는 ‘이 손자와 이 손자가 다 내 손자로서 한 가족’ 같겠지만 그 아이들끼리는 벌써 사촌입니다. 다른 가족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에는 이해관계가 생기는 겁니다. 이해관계가 생기는 게 정상이에요. 그러니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돼요.”

“저도 그냥 두고 보고 있습니다. 뭐 어떻게 저도……. 할 역할도 없고요.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이 자랄 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가르쳤거든요.”

“그건 아이들이 어리니까 한 얘기지요.”

“예.”(모두 웃음)

“그렇게 따진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다 형제처럼 지내야지요.(모두 웃음) 위로 올라가보면 우리는 다 단군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니까요.(모두 웃음) 질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들들이 한 가족이지, 아들 관점에서는 이제 한 가족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자기의 여형제, 남형제, 사촌형제들 모두와 다 사이좋게 지냅니까? (모두 웃음) 우리가 그렇게 잘 안 됩니다.

그러니까 첫째, 아이가 스무 살이 넘으면 성인이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집에 들어와도 되고, 안 들어와도 되고, 즉 제 마음대로 할 권리가 생깁니다. 그때부터는 부모인 내 말을 듣고, 안 듣는 문제가 아니라 성인과 성인 사이에 의사를 소통해야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는 부모가 아들에게 ‘내 말을 들어라’고 할 수 있는 아무 법적, 사회적 권한이 없는 거예요.”

“그러면 그냥 그대로 보고 있으면 됩니까?”

“그대로 보고 있을 필요도 없어요.(모두 웃음) ‘보고 있다’는 건 ‘잘 되나, 안 되나 보겠다’는 거 아니에요?”(모두 폭소)

“형제간에 잘 화합이 되게끔 제가 역할을 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그게 궁금해서요.”

“그럴 필요 없어요. 첫째, 질문자가 ‘내가 역할을 하겠다’고 해도 될 일이 아니에요. 그래도 질문자가 굳이 역할을 하겠다면 ‘너희 둘이 어느 날 같이 오면 내가 돈 천만 원씩 줄게.’(모두 박장대소) 그러면 돼요. 그러면 몰라도 그냥 말로 ‘화합해라’ 하는 건 하나마나 한 얘기예요. 그건 아예 할 필요가 없는 얘기예요.”

남자형제들 입장에서는 형과 동생이 형제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결혼한 부인들 입장에서는 동서가 형제는 아니에요. 이건 남성중심의 가족제도이니까 남자들은 형제라 그러지만 부인들은 딴 집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건 남성중심의 제도에서 온 모순이지, 여자들이 속이 좁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거꾸로, 여형제들끼리는 서로 자매라 그러지만 사위들끼리는 남이에요. 만약 여성중심의 사회였다면 그런 남자들한테 ‘속이 좁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남자들이 잘못 들어와서 집안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했겠지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이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생긴 문제이지, 여자가 본래 속이 좁아서 생긴 게 아니에요. 여자가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고, 남자를 중심에 놓고 보니까 여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스무 살이 넘으면, 남자든 여자든, 이러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즉 아이가 스무 살 밑일 때 부모는 보호자이고, 아이는 피보호자예요. 그때 피보호자는 보호자의 말을 들을 책임이 있고, 보호자는 피보호자를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런데 스무 살이 넘으면 보호자, 피보호자의 관계는 끝이 납니다. 그때부터는 1 대 1의 대등한 인간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들을 키운 습관 때문에 성인이 된 자녀도 자꾸 어린애 취급을 해서 ‘내 말을 들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1 대 1 인간관계로, 사회적 계약 관계로 관계를 재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에 성인이 된 자녀가 집에 늦게 들어오면 야단을 칠 게 아니라 ‘내가 방을 너한테 공짜로 하나 준 대신에 이러이러한 조건들은 지켜야 된다’라고 계약 관계로써 접근을 해야 돼요. ‘안 지키려면 나가라’고 해야 돼요. ‘네가 이 집에서 밥을 먹고 있는 대신에 청소하고 쓰레기 버리는 정도는 해야 된다.’, ‘취직을 했으면 반드시 방세를 내야 되는데, 취직을 안 했으면 방세 대신에 집안일을 거들어라.’ 이렇게 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그러면 부모자식이 절대로 원수는 안 됩니다.

자연생태계를 보세요. 부모자식이 원수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 사이에서만 부모자식이 원수가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스무 살 넘은 자식도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자식은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부모한테 어린애처럼 의지를 하니까요. 그래서 자식은 스무 살 넘었다고 제 권리는 다 행사하고, 부모로부터는 ‘나를 보살피라’고 요구하고, 부모는 ‘스무 살이 넘었으니까 스스로 책임지라’고 하면서도 말은 ‘내 말을 들어라’면서 ‘결혼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고 요구하니까 갈등이 생기지요. 자연의 원리대로, 또는 현재 민법에 규정된 원리대로만 딱 입장을 가지면 부모자식 간에 갈등이 생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이유도 없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간섭받을 이유도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옛날에 보호자, 피보호자였던 관계로써, 서로 도왔던 관계로써 사회적인 계약을 누구보다도 더 상대를 신뢰하면서 계약을 할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는데, ‘과잉’, 서로의 이 과잉 때문에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서 지금 원수가 되요.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 집에 오고, 안 오고는 그의 자유예요.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걸 몰래 어떻게 해 보려고요? 제가 얘기 들어보니까, 여러분들은 자식한테 김치를 담가주려고 자꾸 며느리한테 연락하고, 집에 찾아가고 그러던데,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 집이 ‘우리 집’이잖아요. 독립이 됐는데, 자꾸 와서 간섭을 한다고 느끼는 거예요. 부모는 ‘내 자식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내 주거지에 들어와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못 오게 하거나 오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사실은 며느리가 ‘어머니, 이렇게 하시는 거 싫어요! 오지 마세요!’ 이렇게 해야 정확한 건데,(모두 웃음) 차마 그렇게 말을 못 하니까 전화를 안 받는다든지, 아니면 문을 잠가놓는다든지 하는 거예요. 그건 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주책머리가 그 김치를 담아서 경비실에 맡겨놓고 가고……. 그래서 제가 그 경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요, 이렇게 부모가 갖다 준 김치니, 채소 같은 걸 뜯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버리는 게 많다는 겁니다. 실제로 손도 안 대고 그대로 버린다는 거예요. 이런 게 ‘과잉’이라는 거예요. 결혼한 자녀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리고 부모 본인도 결혼해서 살아봤으니까 잘 알잖아요. 이 남자가 내 남자인데, 이 남자 뒤에 늙은 여자가 또 하나 붙어있는 거예요.(모두 웃음) 내 남편이 ‘누구의 아들’에서 이제는 ‘나의 남편’으로 독립을 해야지, 아직도 누구의 아들이라는 꼬리가 붙어있는 걸 원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제대로만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아들이 오면 오고, 가면 가고, 친한 사람으로서 자주 오면 좋고, 안 오면 우리끼리 잘 지내서 좋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세요. ‘지켜본다.’ 이런 얘기는 하지 마시고요.(모두 웃음) ‘나랑 화목하게 살자’고 원하지 말고, ‘너희 부부랑 자녀가 화목하게 살면 좋겠다.’ 이게 자식에 대한 축원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그동안 작은 아들이 명절 때 집에 안 오고 그러니까 말은 안 해도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살겠습니다.”

“명절 때 오면 질문자 일거리만 늘지 뭐가 좋아요?”(모두 웃음)

“네, 감사합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며 웃고 박수치는 사이 어느덧 두 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삶의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의 관점을 바꾸면 지금 당장이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계절도 봄을 맞이하고 있고 여러분의 얼었던 마음도 저와의 대화를 통해 봄을 맞이했으니 한반도 정세에도 봄이 올 수 있도록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악관 청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당부하시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질문하셨던 분께 다가가 소감을 여쭈어보았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꽉 막혔던 가슴이 명쾌해졌어요.”라고 하셨고, 오랜 유학 생활로 지쳐있던 20대 여자 분도 “갈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후련해졌어요.”라며 밝은 미소로 화답해 주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의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청중들은 스님의 친필 사인을 받기 위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해주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의 환한 미소가 봄꽃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봄과 함께 한반도 정세에도 봄이 오길 기대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경혜, 하태철, 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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