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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제사 지내는 시간을 옮겨도 되나요? / 법륜스님 즉문즉설

질문자 저는 40년 가까이 제사를 12자정에 지내왔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조카가 밤 10시에 제사를 지내면 안 되는지 물어보길래 시간을 옮겨서 10시에 지냈어요그날부터 꿈에 조상님이 보이고 꿈자리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3일 동안 안 좋은 꿈이 연속적으로 나오고 무서워서 칼을 머리맡에 두고 자보기도 했는데요...”
  
법륜스님 칼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하시려고요? (청중 웃음)”
  
동네 어르신들이 악몽을 꿀 때 칼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악몽이 없어진다고 말씀들을 하셔서요이렇게 시간을 옮겨서 제사를 지내도 될까요?”
  
제가 안 된다고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스님이라 할 것이고제가 된다고 하면 법도(法度)에 어긋나는 것을 가르치는 스님이라고 할 것이잖아요그래서 말하기가 참 어려워요. (청중 웃음제사는 질문자 자신을 위해서 지내요아니면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지내요?”
  
일단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지내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지낸다고요그런데 그 분들은 지금 살아있는 사람이에요몸이 없는 귀신이에요?”
  
지금은 귀신이지요.”
  
그럼 귀신은 뭐든지 다 잘 알아요아님 뭘 잘 몰라요?”
  
아는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우리말에 귀신같이 안다라는 말이 있는 거 아시죠무슨 뜻으로 하는 말일까요?”
  

  
“‘귀신같이 안다라고 할 때 귀신은 뭐든지 다 아는 존재라는 뜻이지요?”
  
그렇지요.”
  
쉬운 예로서로 아는 사람이 셋 있는데 그 중 둘만 한사람 몰래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약속했어요그렇게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정작 따돌리기로 한 사람이 그 자리에 나타나면 이야귀신같이 알고 왔네!’라고 하잖아요. (청중 웃음이걸 보면 귀신은 뭐든지 다 안다는 뜻이에요.
  
이런 귀신은 제사 지내는 시간을 옮기면 그걸 알까요모를까요? (청중 웃음)”
  
귀신같이 안다고 하니까… 알겠네요.”
  
그러면 제사 지내는 장소를 옮기면 그걸 알까요모를까요?”
  
그것도 알겠지요
  
그럼 앞으로 제사를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냥 평소대로 12시에 지내야겠네요그지예? (청중 박수와 웃음)”
  
아니 왜 잘 나가시다가 마지막에 결론이 그렇게 돼요? (청중 웃음다시 한 번 천천히 잘 생각해봐요귀신은 뭐든지 다 안다잖아요그러니 장소를 변경해도 귀신은?”
  
알아요.”
  
시간을 변경해도 귀신은?”
  
알아요.”
  
그러니 밤 12시 경에 지내던 제사를 밤 10시로 옮겨서 지내면이번에는 귀신이 몰라서 못 찾아올까요아니면 그것도 다 알고 때맞춰서 찾아올까요?”
  
…….”
  
귀신은 뭐든 다 아니까 알아서 올까요못 올까요?”
  
오시겠다그지요? (청중 박수와 웃음)”
  
그러면 시간을 옮겨도 될까요옮기면 안 될까요?”
  
되겠습니다! (질문자 웃음과 청중 박수)”
  

  
제사를 12시에 지내는 진짜 이유

그러면 제사는 왜 12시에 지내게 되었을까요
  
제사는 돌아가신 날 중 가장 이른 시간즉 첫 시간에 지내요만약 조상이 3월 1일에 돌아가셨다면 이듬해 3월 1일이 오기까지 1년을 굶으신 거잖아요그런데 2월 28일 밤까지는 아직 1년이 안 된 시간이에요그러니 음식을 1년이 되는 3월 1일에 드리긴 하는데 그 중 가장 빨리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3월 1일의 시작시간인 자시(子時)에 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또 새벽닭이 운 뒤에는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요새벽닭이 운 뒤는 이미 자시(子時)와 축시(丑時새벽 1-3)를 지나고 인시(寅時새벽 3-5)도 지난 때인데 1년이나 굶은 조상님들께 이렇게 늦게 음식을 드리는 것은 성의가 없다고 생각해서 나온 이야기예요.
  
그런 이유로 전통적으로 자시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점차 잊혀지다 보니까, ‘자시가 천문이 열리는 시간이다귀신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간이다등의 설명이 그 후로 생겨나게 된 거예요.
  
그러니 제사는 전날 앞당겨서 지내는 게 아니라 돌아가신 당일 첫 시에 지냅니다그 시간이 주로 그 전날 밤 자시부터 시작하니까 사람들이 흔히 전날 밤에 제사를 지낸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어떤 행사든 1주년 혹은 1주기 기념식을 하면 그 전날 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되는 당일에 기념식을 합니다그러니 제사도 굳이 풍속 상의 원칙을 따진다면 당일의 가장 이른 시간인 자시에 지내고사정상 자시에 제사를 지내기 어려우면 전날 당겨서 지내는 게 아니라 당일 오전에 지내는 게 합당합니다사회에서도 모든 기념식을 전날 하는 게 아니라 당일 오전이나 낮에 합니다절에서 1주기 재()를 지낸다고 해도 전날 지내지 않고 당일 오전 법회에서 지냅니다.
  
법도만을 생각하면 제사는 당일 자시에 지내고, 1주기 기념식은 당일 낮에 지내는 것이 맞습니다그런 측면에서 저녁 8시든, 10시든 굳이 따지자면 전통적인 법도에는 맞지 않지요그러나 돌아가신 분을 위한 제사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겨보면 귀신은 시간이나 장소를 옮겨도 크게 구애받지 않으니까 전날 저녁으로 옮겨도 크게 무리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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