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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낙태 후 자살시도,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법륜스님의 답변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기를 낙태하고 자살시도를 했다가 살아난 분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길을 물었습니다. 어렵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질문자는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2주 전, 제 몸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빠는 헤어진 남자친구였습니다. 저는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남자친구와 이별이 괴로워 술도 마시고 정신과에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아기에게 너무 큰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병원에서도 출산을 권유 하지 않았고, 저 역시 환영 받는 출산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기의 존재를 안지 3일 만에 유산 시키고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시도를 했어요. 제가 자살하는 것을 어머니가 목격하셔서 지금 이 자리에서 스님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연애도. 취업도 너무 겁이 납니다. 재기하기가 너무 힘이 들고 어떻게 하면 저의 이런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네. 질문자에게 위로의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자, 만약에 질문자가 ‘내가 자식도 죽였는데 살면 뭐할까? 약 먹고 죽자’ 해서 약 먹고 죽었어요. 질문자가 죽는다고 죽은 아기에게 도움이 될까요?”


“아무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그럼 지금 질문자가 뭘 하면 죽은 아기한테 도움이 될까요?” 


“잘 모르겠어요.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요.” 


“혼란스러워요?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돼요. 예를 들어 등산을 하는데 길을 잘 모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멈출 것 같아요.”


“그래요. 안 올라가면 되죠. 그게 뭐가 어려워요. 질문자가 아이를 위해서 뭘 해야 될지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안 하면 됩니다. 지금은 질문자가 길을 모르니까 산에 올라가봤자 도로 내려와야 할 수 있어요. 공연히 헛수고할 필요 없습니다. 길을 아는 사람이 올 때 까지 산 아래에서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아기를 위해 뭘 해야 할 지 알게 될 때 까지 놓아두면 됩니다.”


“네.”

 

“지금 몇 살이에요?”


“서른 한 살이에요.”


“서른 한 살이면 부모님이 주는 밥 먹고 살아야 할까요? 질문자 스스로 밥벌이를 해야 할까요?”


“제가 돈을 벌어야 해요.”


“다 큰 자식이 밥 먹는 것 까지 늙은 어머니가 신경 쓰도록 하면 안 됩니다. 그럼 먼저 질문자는 직장을 가야겠지요? 밥벌이만 된다면 무엇이든지 해도 괜찮습니다. 도덕적,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파출부든, 청소부든, 간병인이든 내 능력과 형편이 되는대로 일을 시작하면 됩니다. 


먼저 일을 시작해서 밥벌이를 하면서 자기 재능에 맞고, 원하는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조금씩 옮겨가면 되요. 처음부터 가만히 앉아서 ‘삼백만 원 벌어야지’ 한다고 누가 삼백만 원짜리 직장을 질문자에게 구해주지 않습니다. 먼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보면 사람이 생기가 돕니다.”


“네. 사실 제 전공도 아이를 돌보는 일이고 그 쪽으로 경력도 쌓아왔어요.”



“지금은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나쁜 짓을 했으니 하지마라’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볼 때 마다 자꾸 죽은 아기 생각이 나서 죄책감에 시달릴 거예요. 그러니 아기 생각이 안 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해야 됩니다. 


질문자는 가능하면 육체노동을 많이 하고 몸이 피곤해서 푹 잘 수 있는 일을 하면 좋습니다. 그렇게 한 2,3년 일을 하면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심각한 정신 질환은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이런 경우는 보통 2,3년만 지나면 자연치유가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어요. 


감기는 보통 자연적으로 낫지만, 열 명 중 한 명은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폐렴으로 심해지기도 해요. 감기라 하더라도 병원에 가서 일단 진단은 해야 합니다. 질문자도 병원에 가서 ‘제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아기가 생긴 줄 모르고 술도 먹고 약도 먹었어요. 아기가 혹시 신체장애로 태어날까봐 낙태를 했습니다. 너무 죄책감이 들어요.’ 하고 한두 번 의사와 상담을 해보면 약을 처방해 줄 수도 있어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으면 잠도 잘 오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아보고 이제부터 직장에 나가서 열심히 살다보면 자연적으로 괜찮아집니다.



질문자의 심리가 안정되면 다시 전공을 살려서 아이 돌보는 일을 해도 좋습니다. 질문자가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아기를 더 잘 볼 수도 있어요. 죽은 아기를 생각해서 아이들을 더 열심히 돌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내가 더 잘 돌보자’하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지금은 어린이집에 가면 자꾸 죽은 아기에 대한 기억이 나서 더 나쁜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에게 낙태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자리 잡으면 계속 아이만 보면 그 생각이 날 수 있어요. 그러니 먼저 치유를 해야 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죄의식을 가지고 괴롭게 살아야할까요? 질문자가 무슨 경험을 했든,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을까요?” 


“...행복할 권리가 있죠.”


“연애할 권리는 좀 뒤로 미뤄놓고요. 질문자가 연애를 다시 할 수 있을까하고 제일 먼저 물었잖아요. (모두 웃음) 지금 그건 조금 뒤로 미뤄놓아야 합니다. 제가 그걸 콕 찝어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질문자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자꾸 질문자의 상처가 연상될 수 있기 때문에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는 뒤로 미뤄야 됩니다. 


질문자가 먼저 자신을 치유해서 심리상태가 안정되면, 그때는 연애를 해도 괜찮고 아이 돌보는 일을 해도 괜찮아요. 본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스스로 자기 치유를 하는 게 제일 급합니다. 스스로에게 ‘행복한가’ 하고 물어보세요. ‘나는 남자를 안 만나도 행복하고, 아기를 안 보고도 행복하고, 청소를 해도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면 건강해진 겁니다. 그러면 질문자는 뭘 해도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기 어려웠을 질문자, 그 질문자에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 그리고 ‘질문자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지요?’하고 묻는 스님. 질문자는 잠시 망설이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감동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질문자의 경험이 어떻게 살려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일어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고 하지요. 오늘 힘들었던 일이 내일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