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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이슬람교, 힌두교까지 다양한 종교를 경험하고 나니 혼란스러워요” 법륜스님의 답변

2016.10.12 델리 즉문즉설 강연



여러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셨나요? 


오늘은 델리에서 한국 교민들과 함께하는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국민행복 프로젝트 2016 법륜 스님과 행복한 대화’가 지구 반대편 인도 땅까지 찾아갔습니다.  


어제 네팔 지진피해 복구사업으로 지어진 학교 준공식을 마치고 새벽 2시에 카트만두 숙소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8시에 카트만두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서는 어제 스님 일행을 안내해 주고, 학교 준공을 도맡아 준 리마 셀프와 수바르마 지가 배웅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감사 인사를 한 후 탑승구로 들어왔습니다. 



9시 30분에 카트두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30분을 비행하여 11시에 델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는 델리불자회 임원 분들과 인도JTS에서 보광법사님과 수자타아카데미 교장 선생님인 닥터 쁘리앙카 지가 반갑게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델리불자회는 스님이 델리를 방문할 때 마다 매년 꼭 한번씩 스님에게 강연을 요청하고 환대를 해주고 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이 열리는 한국문화원으로 향했습니다. 


한국문화원 원장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오후 5시부터 델리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약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로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어제 하루 종일 네팔에 지진 피해가 난 곳에 학교 2개를 새로 지어주고 왔다”고 소개하면서 준공식을 했던 현장 모습이 담긴 영상을 청중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후 즉문즉설의 취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 살다보면 세상 일이 내 뜻대로 잘 안 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행복해질까? 애를 낳으면 행복해질까?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행복해질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여기 저기 다닐 수도 있고, 기술이나 학문을 익히기 좋은 곳이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건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장소를 옮기거나 옆에 있는 사람을 바꾼다고 반드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일시적으로는 해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똑같은 문제가 반복이 됩니다. 


대한민국이 60년 전에는 세계최빈국에 속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수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60년 만에 대한민국은 GDP가 3만 달러에 근접할 정도의 부국이 됐다고들 말합니다. 총 GDP로 따지면 세계 13위, 무역 양으로 따지면 세계 10위이고, 1인당 GDP로 따져도 통계마다 조금씩 다릅니다만 세계 28위 정도 됩니다. 아시아에서 일본 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도는 세계 117위입니다. 세계의 주요한 국가들 중에서는 최하위에 속합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도는 왜 이렇게 낮을까요? 국민들이 욕심이 많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성질이 급해서 그럴까요? 아집이 강해서 그럴까요? (모두 웃음) 


어떻게 하면 우리의 행복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행복도가 낮은 이유는 대한민국이 양적 성장은 했는데 질적 성장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국가는 발전을 했는데 국민은 행복하지 못한 겁니다. 우리 모두의 꿈은 국가는 발전하고 국민은 행복한 건데 말이에요. 그래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행복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 마음을 잘 알아서 마음을 잘 보듬을 때만 행복도가 높아지는 것이지, 외형적 성장만으로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행복도를 높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 마음의 문제를 살피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국민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국민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만들려면 첫째, 사회가 안정되어야 됩니다. 외부적으로는 우선 전쟁의 위협이 없어야 되고요. 그런데 지난 4년 동안 우리 사회는 전쟁의 위협이 훨씬 더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일전도 불사한다’는 말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도 ‘선제공격을 테이블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군사적 옵션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둘째, 우리 사회가 계속 성장을 해 왔는데, 이제는 저성장시대, 즉 성장이 멈추는 시대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빈부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을 해 줘야 돼요. 성장기에 있을 때는 전체가 성장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좀 벌어져도 어쨌든 저소득층의 소득도 조금씩 높아졌지만, 저성장시대나 성장이 멈춘 시대에서는 저소득층의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 커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빈부격차를 줄이고, 사회적인 안정을 가져올 것이냐?’ 하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것은 저도 가끔 조언을 하긴 하지만 사실 이것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오늘 제가 주로 해야 될 일은 여러분들의 심리적인 작용을 잘 이해해서, 이 조건 안에서도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자, 그럼 오늘도 대화를 나눠봅시다.”


이 외에도 스님은 ‘행복’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청중들의 질문이 시작됐습니다. 4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는데요. 그 중 한 가지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손을 든 한 남성 분은 다양한 종교를 접하면서 들었던 혼란스러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어머니를 따라서 개신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는 불교계 중학교로 갔다가 엉겁결에 수계도 받았고, 고등학교는 천주교계로 가서 천주교 교리도 배웠습니다. (모두 웃음) 


그리고 제 부친께서 8남매이셨는데, 그래서였는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제사상이 뒤집어지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저는 유교도 ‘아, 그렇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장 때문에 이슬람 국가에 가서 몇 년 살면서 이슬람문화도 배웠고요, 결국 여기 인도까지 와서 힌두교까지... (모두 웃음) 


그러다 보니까 ‘어떤 종교를 믿어야 되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랑 6살짜리 딸아이들이 한국에 있는데, 가끔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이들과 함께 절에 갑니다. 거기 가면 관음보살상이 수녀상 비슷합니다. 그걸 보고 아이가 저한테 ‘어? 이 부처님은 왜 이렇게 생겼어?’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시골에 내려가면 어머니께서 ‘일요일에 교회 한번 가자’ 라고 하시고요. 그러는 걸 보면 아이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빠,엄마랑은 절에도 갔다가 아빠는 이슬람 이야기도 해 줬다가 할머니는 교회도 가자고 하시니까요. 저부터도 어떤 종교를 믿어야 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종교가 사람을 지탱을 해 주는, 하나의 원동력이라는 건 저도 예전부터 많이 경험했습니다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종교에 대해 어떤 가르침을 줘야 되는 건지, 제가 과연 그런 가르침을 줘도 되는 사람인지, 아이들 스스로 찾아가도록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떤 종교를 믿어야 할까요?” 

  

“자기 좋을 대로 믿으면 되지요. 저한테 ‘어떤 음식을 먹어야 되느냐?’ 라고 물으면 제가 뭐라고 답하겠어요? ‘좋아하는 걸 먹어라’ 라고 하지요. 질문자가 물었으니 저는 ‘당신 좋을 대로 믿으세요’라고 하겠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질문자의 아이가 저한테 묻는다면 ‘우리 몸을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하고, 우리의 정신을 위해서는 말씀이 필요하다’ 라고 대답하겠어요.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고, 말씀으로 산다’는 얘기도 성경에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에겐 ‘말씀’이 필요합니다. 저는 질문자의 아이에게 이렇게 답변해 주겠어요. 


‘우리의 정신은 말씀을 먹이로 삼고, 우리의 몸은 음식을 먹이를 삼는데, 너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식을 좋아하지만 너는 피자도 좋아하지 않니? 그럼 너는 오늘 저녁에 피자 먹을래? 밥 먹을래? 김치 먹을래? 아니면 밥을 주로 먹지만 피자도 조금 먹고, 밥을 주로 먹지만 초밥도 조금 먹고, 밥을 조금 먹지만 짜장면도 먹고, 그러다가 미국에 가서 살 때는 주로 빵을 많이 먹고, 그래도 밥은 먹어야 되고. 그게 몸을 위하는 거 아니니? 어떤 음식이든 다 몸을 위하지만 우리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 있잖아. 그런데 그걸 두고 ‘이게 음식이 더 좋으니 이거 먹고, 저건 먹지 마라’ 이렇게 얘기할 순 없지 않니? 


그런 것처럼 내가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개신교 말씀으로 양식을 삼았다가 불교 말씀도 좀 양식으로 삼고, 무슬림 말씀도 좀 양식으로 삼고, 그렇게 이것도 알고, 저것도 아는데, 너는 그게 왜 문제라고 생각하니? 서양 사람들은 피자에 서양 소스만 넣었는데, 우리가 피자를 만들면 김치를 썰어 넣은 피자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니? 그럼 우리 입맛에는 그것도 맞을 것 같지 않니? 그런 것처럼 예수님 얼굴을 서양 사람들이 부처님 얼굴처럼 그릴 수도 있고, 또 한국 사람들은 된장찌개에 치즈 좀 넣은 퓨전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어도 되는 것처럼, 관세음보살님이 수녀님 얼굴을 할 수도 있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실험을 한번 해 보는 거야. 


음식이라는 건 다양한 게 더 좋은 거야. 그래도 사람은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주로 먹는 음식이 따로 있지 않니? 그럴 때 ‘너는 왜 그것만 먹니?’라고 말해도 안 되고, ‘너는 왜 이것 저것 섞어서 먹니?’라고 말해도 안 되는 거야. 음식은 각자 좋아하는 걸 먹는 거야. 네가 주로 먹는 게 있다고 남이 다른 것을 먹는 걸 비판해도 안 되고, 또 누가 다양하게 이것, 저것 먹는다고 ‘너는 줏대도 없다. 왜 음식을 그렇게 하나만 딱, 제대로 선택해서 먹지, 이것 저것 먹느냐?’고 말해도 안 된다. 그런 것처럼 음식은 몸에 좋고, 입맛에 맞으면 되지,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듯이, 말씀은 정신에 좋은 것이지, 그게 성경에 있거나 불경이나 코란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란다.’



관점을 이렇게 딱 잡고 있으면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저는 늘 밥을 먹어요. 그런데 어제처럼 네팔에 가서 하루 종일 못 먹을 때도 있어요. 아침에 빵 사왔기에 빵 하나 먹고, 저녁에는 먹을 게 없어서 비스킷 하나 먹고, 오늘 아침에는 숙소에 갔더니 빵에다가 뭘 발라주고, 감자튀김도 줘서 그것을 먹고, 또 비행기를 탔더니 인도 음식을 줘서 그것도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비행기 안에서 배탈이 나서 혼이 났습니다. 그렇게 안 맞는 음식을 먹으면 설사도 하지만 설사했다고 꼭 나쁜 건 아니에요. ‘설사 했으니까 다음에는 이런 음식 안 먹겠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런 음식도 2번, 3번 먹으면 괜찮아지니까요. 저는 그런 음식을 안 먹다가 갑자기 먹으니까 배탈이 난 거거든요. 


그렇듯이 우리가 힌두교문화를 갑자기 접하게 되면 좀 어색하고, 이상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적응해 보면 거기에도 또 일리가 있는 것 같잖아요. 또 교회 다니던 사람이 절에 가보면 귀신을 섬기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무당을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무당이 굿하는 걸 옆에서 구경해 보면 굉장히 신나고, 재미도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것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국적의 음식을 수용해 보면 그것들이 섞여서 제3의 음식이 나오기도 하는 거잖아요. 여기 인도에서도 오리지널 한식만 팔아서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인도사람들에게 맞게, 약간 조정해서 퓨전으로 성공할 수도 있잖아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면 의식도 약간 한국식으로 조정이 되거나 불교가 서양에 가면 서양식으로 약간 조정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의 종교를 너무 절대화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오늘 어떤 분이 저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해서 한국 식당에 갔는데, 제가 계속 빵을 먹고 속이 메스껍고 설사가 나서 ‘칼국수를 먹으면 어떨까?’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스님, 외국에 와서 칼국수를 먹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빔밥이 안전합니다’ 라고 하기에 비빔밥을 시켰는데, 제가 칼국수 얘기를 한 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분이 뒤늦게 칼국수도 시켜주셨어요. 그래서 조금 먹어보니까 이건 칼국수가 아니고 울면 맛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게 무슨 칼국수 맛이냐? 울면 맛이지’라고 했더니 옆에 있던 사람이 먹어보고는 ‘맛이 좋은데요. 뭘’ 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칼국수’라는 기준을 가지고 ‘칼국수 맛이 아니다. 이게 무슨 칼국수 맛이냐?’ 라고 얘기했던 것인데, 옆에 있던 사람은 ‘칼국수든 뭐든 먹어보니 맛있다’ 라고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칼국수에 집착해서 먹으니까 영 칼국수 맛이 아닌 거였어요. 



이처럼 음식도 평가기준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한테는 오리지널 김치나 칼국수가 중요하지만 인도 사람한테는 입에 맞으면 되지, 오리지널 김치나 칼국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들은 ‘김치’면 어떻고, ‘기무치’면 어떻겠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기무치’는 안 되고 ‘김치’여야만 되잖아요. 물론 ‘오리지널 한식’도 필요합니다. 그거 필요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도 필요하고, 퓨전으로 섞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것들에 마음이 열려있고, 또 다양한 것들을 수용할 때 창조가 일어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다양한 비유 덕분에 질문자는 금새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청중들도 유쾌하게 웃으며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의 전쟁 위기를 걱정하며 아들을 군대 보내기 걱정스럽다는 분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금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 위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개인 질문이 거의 없고 사회 문제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스님은 “왠 일이에요? 델리 교민들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는지 오늘은 사회 질문들만 계속 하셨네요.” 하며 웃었습니다. 


약 2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눈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다함께 무대 앞으로 나와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이 “실실 웃어요~” 라고 하자 모두들 함박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모두들 오랜만에 델리를 방문해 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합장으로 화답을 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한국 문화원 원장님이 건물 1층 까페에서 저녁식사를 대접해 주어서 한국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 후 건물을 나왔습니다. 



델리불자회가 운영하고 있는 법당에 도착해서 짐을 푼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델리를 출발해 나가푸르로 출발합니다. 나라푸르에서는 INEB(세계참여불교네트워크)의 초청으로 닥터 암베르카르 개종 60주년 행사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이 행복하면 내일도 행복하고 
나날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행복해 지는길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영상강좌 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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