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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거동 못하는 친정어머니, 간병하는 것이 힘듭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

[55화]

거동 못하는 친정어머니, 간병하는 것이 힘듭니다.


“저는 50대 직장인이고 친정어머니는 70대 후반인데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서 거동을 못하세요. 그래서 저희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마음을 다해서 수발을 들고 싶은데 진심어린 마음이 안 들 때가 많아요. 그 원인을 생각해봤더니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깊은 정을 받지 못한 부분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갑게 이야기를 하고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이 나다가도, 어렸을 때 상처가 떠오르면 마음이 탁 막히면서 진심이 안 나오는 때가 많았어요. 엄마는 어차피 앞으로 얼마 못 사실 텐데 어떻게 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진심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되고 고민됩니다. 평소 유튜브에서 그런 질문에 대한 스님 답을 많이 들어서 조금 알고는 있지만 용기내서 한 번 여쭤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아는지 질문자가 먼저 얘기해 봐요.(청중 웃음) 유튜브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 하는 걸 봤다니까 얘기를 한번 해보세요.”


“‘다른 사람은 나에게 밥을 해준 적도 없고 빨래도, 청소도 해주지 않았는데 너희 부모는 그래도 밥 해주고 빨래, 청소도 해주지 않았냐? 그 정도만 해도 아팠을 때 자녀들에게 도움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걸 진심으로 하지 못하느냐? 엄마는 너에게 남보다 더 많은 사랑을 줬는데 너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잘못되지 않았느냐?’ 그런 말씀을...”


“제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전혀 아니올시다. 그 질문자에게는 그런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얘기했는지 모르겠지만요.”


“저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요.” (청중 웃음)


“저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돌보고 싶지 않으면 돌보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질문을 한 사람은 남한테 그런 마음을 내는데 자기 엄마한테는 그런 마음을 안내서 아마 그런 얘기를 했을 거예요. 질문자는 엄마한테 진심이 안 일어나면 안 하면 되고, 진심은 안 나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심 없이 하면 돼요.”


“진심 없이 하기는 또 싫더라고요.”


“그럼 안 하면 돼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나요?”


의무감으로 어머니를 돌보고 있나요?


“네. 생태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미가 새끼를 낳아서 그 새끼가 자립할 때까지 돌보지 않는 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그러므로 이건 죄악이 된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부모가 늙었다 해서 새끼가 부모를 돌보는 건 생태윤리에서는 없어요. 그것은 짐승에게는 없는 현상이고 인간에게만 있으니까 ‘선(善)’이라고 해요. 즉 ‘착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생태적 행위, 다시 말해 자연계에서 생물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그 어떤 행위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에요. 윤리적으로 말하면 ‘제로베이스’예요. 그런데 짐승도 안 하는 나쁜 짓을 하면 ‘악(惡)’이라고 하고 짐승이 못하는 선한 행동을 하면 그걸 ‘선(善)’이라고 이름 붙이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이를 낳아놓고 돌보지 않으면 나쁘다고 이름 할 수 있지만, 질문자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나쁜 행동은 아니에요. 좋은 행동을 안 할 뿐이죠. 질문자가 좋은 행동을 하기 싫다고 하니까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거예요. 안 해도 돼요.“


“그래도 계속 안 하기는 좀 힘든 데요.”


“안 하는게 힘들면 하면 돼요. 그건 선택이니까요.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안 하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짐승 수준이라는 얘기예요.(청중 웃음) 짐승 수준이라는 건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윤리적으로는 제로베이스니까요. 오늘 이 강의는 스님이 하기 싫어도 해야 될까요, 안 해도 될까요?”


“해야 돼요.”


“당연하게 해야 된다고 얘기하네요.(청중 웃음) 제가 돈을 받고 이 강의를 하면 의무가 되겠죠. 하지만 돈을 받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건 자유 선택이에요. 물론 제가 강의를 하면 여러분들이 좋아하죠. 안 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저한테 항의할 게 없어요. 돈 낸 것도 아니니까요.(청중 웃음)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갈 때 돈을 내는 게 의무일까요? 참가비를 얼마를 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건 없었잖아요. 그러니 나갈 때 돈을 안 낸다고 해서 이게 나쁜 행위는 아니에요. 하지만 나갈 때 돈을 내면 ‘좋은 행위’라고 말한다는 거예요.


이처럼 선을 행하는 것은 선택에 속하고 악을 끊는 것은 의무에 속합니다. 그래서 한자로는 ‘지악(止惡)’ 또는 ‘권선(勸善)’, 또는 ‘수선(修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악은 딱 끊어야 해요.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줄 권리가 없어요. 선은 행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질문자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자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과 하면 좋은 것에 대한 스님의 정리에 복잡한 문제가 한결 간단하게 정리된 것 같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어머니를 위한 것일까요, 나를 위한 것일까요?


“그런데 이런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 하기 싫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안 한 것에 대해서 후회할까요, 안할까요? 그 후회를 안 하려고 질문자가 지금 어머니를 돌보는 거예요.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를 돌보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는 지금 어머니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이해되셨어요?”


“네.”


“그러면 질문자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돈이나 힘이 좀 들어도 해야 할까요, 안 해야 할까요?”


“네, 자주 다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 웃음)


“어떤 일을 할 때 이왕 성심성의껏 하면 좋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성심성의껏 해도 되고 대충 해도 돼요. 또 때로는 필요하면 하기 싫어도 해야 돼요. 아침에 회사 출근하기 싫어도 나가야 되고, 청소년 때는 공부하기 싫어도 해야 돼요.


그러니까 ‘꼭 하고 싶어서만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내가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마음이 썩 내키지 않더라도 자주 가보는 게 나한테 유리합니다.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이렇게 딱 관점을 가지면 돼요. 예를 들어서 기저귀 갈아주는데 마음이 내켜서 갈아주나 안 내키는데도 갈아주나, 아기 입장에서는 똑같아요. ‘네가 마음이 있어서 갈아주든 내키지 않는데 갈아주든 나한테는 기저귀 갈아주는 게 필요하지, 네가 무슨 마음먹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이럴 거예요.(청중 웃음)


이렇게 생각해야지 그걸 두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질문자의 어릴 때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거예요. 싫고 좋고는 과거의 업식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거든요. 싫은 것은 ‘아, 내가 어릴 때 엄마한테 좀 상처가 있어서 싫은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이왕 성심성의껏 하면 좋겠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

무슨 마음먹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해야 할 바를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원본] https://goo.gl/VrGr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