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의처증을 갖게 되면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의처증을 가진 남편과 결국 이혼을 했지만, 그 후에도 계속 전화 연락이 와서 고통스럽다는 한 여성분이 법륜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비록 이혼을 했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의 바램이겠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를 행복하게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법륜스님의 답변입니다.
- 질문자 : “욕설, 폭언에 의처증까지 있어서 이혼을 했습니다. 이제 3개월 쯤 됐는데 아이나 재산 문제를 핑계로 자꾸 연락을 합니다. 재산도 아이들도 다 주고 나왔는데 주위를 맴도니 괴롭습니다. 단호히 끊어버리고 싶지만 아이가 중심을 못 잡고 방황하는 데다 진로 문제도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줍니다. 소송을 해서 아이들을 데려올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법륜스님 : “의처증 있는 배우자와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 살아본 사람은 모른다고 합니다. 동네만 나갔다 와도 따지고, 전화 한 통도 따지고, 미칠 지경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게 다 병증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힘 드는 건 이해하지만 결혼은 상대가 병들고 아프더라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중풍 걸려 똥오줌 받아내는 배우자는 버려도 됩니까. 지금 생각으로는 의처증으로 겪는 괴로움보다는 그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겠지만 겪어보면 그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으로 환자 상담하듯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같이 사는 것 보다는 가끔 상담해주는 게 백번 쉽지 않습니까. 이미 헤어진 사이인데 전화 오는 정도로도 괴로운 이유는 그의 아내였던 과거의 카르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고 카르마의 그물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전화가 오고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핵심은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직장에서 고객의 전화 받듯이, 선생님이 학부형 전화 받듯이 내 아이 아빠로 대우하면 됩니다. 아이 아빠와 내 남편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와 나 사이는 이제 남자 여자로서의 의미가 끊어진,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관계일 뿐입니다. 그의 병은 오직 아내나 애인한테만 나타나는 특수한 질병입니다. 그것 하나만 고장이 난 거지요. 내가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고 카르마에서 벗어나면, 의심을 받아도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이 딱 잘라버리고 감정상의 문제로까지 끌고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아버지를 나쁘게 생각하면 내 아이가 잘못되어버립니다. 형편없는 아버지의 자식이 어떻게 자존감을 가진 당당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는 좋은 사람인데 다만 환자일 뿐이라고 생각해야 아이가 좋아집니다. 아이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로서의 그의 인격을 존중하라는 말입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병이 됐으니 평생을 약속한 아내로서 마땅히 돌봐줘야 하는데 내가 부족해서 괴로움을 못 견디고 모른 척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참회해야 합니다. 다시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그렇게 풀어야 합니다.
아이가 찾아와 아버지에 대해 나쁘게 말한다고 같이 비난하면 안 됩니다. “어디 아버지한테 그런 소릴 하느냐, 내가 부족해서 헤어졌지 네 아버지는 좋은 분”이라고 이해시켜 돌려보내세요. 아이랑 같이 아이 아빠를 비난하면 아빠 핑계대고 자기 욕구대로 하려는 아이의 잘못을 부추기는 꼴이 됩니다. 내가 남편한테 참회하고 남편을 두둔하는 것은 사랑하는 내 아이가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에게 야단맞으면 엄마한테 오고, 엄마가 잔소리하면 아버지한테 가고, 양쪽 사이에서 제 유리한 쪽으로 왔다갔다 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잘못됩니다. 내 집에 데려다가 밥 차려주고 옷 입히는 게 사랑이 아니라 사람 되게 하는 게 사랑입니다.
우선 오늘부터 백일 간 하루에 300배씩 참회기도하세요.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데! 재산이고 뭐고 다 주고 나왔는데!’하며 자꾸 잘잘못을 따지고 손익을 따지면 죽을 때까지 괴롭다가 죽습니다. 환자 두고 온 내 잘못만 생각하고 고개 숙여 진심으로 참회해야 내 상처가 녹아납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문제는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가 아니라 어떻게 자기 내면에 상처를 치유하느냐, 내가 어떻게 마음을 내야 해탈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그동안 나의 잘못으로 아이 문제는 앞으로 계속 불거져 나올 겁니다. 평생을 짊어져야 할 과보이고, 죽어라 기도해도 10년에 끝날까말까 하지요. 자꾸 핑계대고 적당히 합리화하면 남편 문제가 끝나도 자식은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됩니다.
꾸준히 참회기도를 하면 내 마음 속에서 남편이 좋은 사람이 되고, 그러면 남편 만나서 내 인생 버렸다는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러면 무엇보다 내가 좋고, 아이들도 차츰 좋아집니다.”
- 질문자 : "네,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와 청중들 모두 스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가 아니라 어떻게 자기 내면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짚어주신 부분에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면 미워할 수밖에 없는 남편이지만, 아이의 행복과 내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미움과 원망이 아닌 이해와 긍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 누구에게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참 깊이 있는 말씀에 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즉문즉설은 질문하는 당사자의 고민과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거나 보편화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법륜스님의 새책 <인생수업>이 출간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은 말합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행복하게 나이드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즉문즉설과 함께 쉽고 재미나게 엮어져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서점에서 구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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