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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팔자라는 게 정말 있는 건가요?” 법륜 스님의 답변



11월도 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갑작스레 기온이 뚝 떨어져 추위를 많이 느끼셨을 텐데요.

여러분, 오늘도 행복하셨나요?




오전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강연을 마치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일정을 가졌는데, 출발이 늦어지는 바람에 고속도로를 내달려 대구 아양아트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분들에게 양해의 인사말을 하고 바로 ‘행복한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대구에서는 많은 분들이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질문하는 것이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새로운 곳이나 사람을 만날 때는 긴장하여 설사를 계속해서 여행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했다는 여자분, 딸의 이상행동으로 고민하는 어머님, 학교 친구들에게 사이버 폭력을 당하는 딸의 아픔을 보고 힘들어하는 어머니, 어린 딸의 미래를 설계하는 아버지의 마음 등 다양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지금까지 남에게 베풀며 잘 산다고 살았는데 늘 구설수에 시달려서 팔자가 잘못된 것인지 물어본 아버님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사람에게 팔자가 있다는데 정말 있습니까? (대중 웃음) 저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열 가지, 스무 가지 남한테 베풀어도 저에게 돌아오는 것은 두세 개 밖에 안 돌아왔습니다. 게다가 구설수까지 너무 많다 싶어요. 저는 제 재산을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기도 하는데 상대방은 저한테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늘 남한테도 잘 하려하고,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서 하고, 농사도 지은 것을 저 먹을 양식만 남겨 두고 사람들에게 거의 다 나눠줍니다. 그래도 구설수가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정말 제 잘못인지, 타고난 팔자인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보고 대답해보세요. 제가 앞에 앉아 있는 분에게 ‘오늘 날씨도 추운데 가다가 저녁 식사나 하고 술 한 잔 하세요’ 하면서 10만 원을 드렸어요. 그러면 저 분이 저에게 고맙다고 할까요, 기분 나빠 할까요?”


“고맙다고 그러겠지요.”


“그럼 이번에는 그 옆에 있는 사람한테 100만 원을 주면서 ‘가다가 한 잔 하세요’ 하면, 앞에 10만 원 받은 사람이 고마울까요, 기분 나쁠까요?” (청중 웃음)


“애시 당초 안 줘 버리면 그런 생각이 없는데 차별해서 주면 섭섭하게 생각하겠죠.”


“그럼 저는 두 사람한테 베풀기만 했는데 10만 원 준 저 사람은 왜 저를 섭섭하게 생각할까요, 이건 팔자일까요?” 


“그것은 그렇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구설수가 많다는 건데…….”


“다시 물어볼게요. 제가 저 분에게 올해 농사지은 쌀 한 말을 드렸어요. 그 다음 해도 드리고, 그 다음 해에도 또 드렸어요. 그러면 저 분은 매년 주겠거니 그렇게 생각할까요, 안 할까요?”


“매년 줄 거라고 생각 하겠지요.”


“그런데 올해는 안 드렸어요. 그러면 저한테 욕을 할까요, 안 할까요?”


“욕 하지요.” (청중 웃음)



그런데 욕 할 이유는 하나도 없잖아요. 저는 오로지 주기만 했는데. 그럼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욕을 할까요? 제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욕을 할까요?”


“……”


“어때요, 알아 들으셨어요?”


“예.”


“첫째, 이것은 질문자가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주기만 하면 인사 듣겠거니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지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예요.  


둘째, 칭찬 듣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부처님께서 6년 고행 하신 곳, 인도에서 가장 천대받는 하층 계급인 불가촉천민이 살고 있는, 100퍼센트 문맹인 마을에 가서 학교를 세워 애들 공부를 시켜줬어요. 이 마을 사람들이 저에게 고맙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초등학교 6년을 다니면 다음은 중학교도 가고 싶겠지요. 그런데 제가 이 아이들을 중학교에 안 보내주면 아이들이 저에게 욕을 할까요, 안 할까요?”


“욕하기 보다는 섭섭하겠지요.”


“예. 그러면 제가 중학교는 보내줬어요. 그런데 다시, 이 아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제가 안 보내준다면 어떨까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가려고 할 때 안 보내 준 게 섭섭할까요, 또 고등학교에서 대학에 가려고 할 때 안 보내 준 게 더 섭섭할까요?


이때는 섭섭한 정도가 아니고 원수가 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배운 게 있다 보니 벌써 남을 헤치는 마음을 먹고 ‘돕기는 뭘 도와준다고 그래?’ 하면서 욕하고 다닙니다. 이것은 원수를 키우는 거예요. 처음부터 아이들 학교 보내주고 도와주면 칭찬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이 사람이 어리석은 거예요. 



왜 아이들을 도와주고 욕을 얻어 먹을까. 이것은 전생의 업보도 아니고 사주팔자도 아니에요. 원래 이렇게 도와주면 욕을 얻어먹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욕을 안 먹으려면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욕을 먹더라도 아이들은 제 때에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욕먹을 걸 알고 공부시키는 거예요. 나중에 나와 원수 될 것을 알고라도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면 내 보따리 내놔라고 한다 그러지요. 그러면 안 건져 줘야 할까요? 아닙니다. 안 건져 주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을 건져 주면 분명히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겠다 싶어도 생명이 소중하기에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 줘야 합니다. 건져주고 보따리도 물어주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부모가 재산이 많고 공부도 많이 한 집 아이들이 나중에 유산 때문에 싸우고 원수가 됩니까, 아예 물려줄 재산이 없어서 머슴살이 시킨 자녀가 커서 부모하고 원수가 됩니까. 


그래요. 질문자가 인생의 원리를 모르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욕먹는 게 너무 당연한 건데 ‘왜 나는 욕을 먹을까.’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욕 얻어먹을 일을 했네요. (청중 웃음)


 


농사지어 질문자 먹지 왜 다른 사람 나눠줘요? 주니까 많이 주고 적게 줄 때도 생길 수 있고, 주다가 안 주다가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계속 줄 수는 없으니 그렇게 원수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하려면 욕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욕먹어도 아무렇지 않아요. 


<금강경>에 내가 좋은 일 하고도 욕을 얻어먹는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인가? 욕 한번 얻어 먹으면서 지옥에 갈 죄를 면하는 거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욕 한번 얻어먹으면서 지옥에 안 가는 게 나아요? 욕 안 얻어 먹고 지옥에 가는 게 나아요? (청중 웃음)


‘그 욕을 먹으면, 내가 지금 죽을 운명인데 그 욕 한번 얻어 먹음으로써 내가 안 죽게 되었다.’ 그럼 그 욕은 좋은  것이지요. 그래서 최고의 복이란 좋은 일 하고 욕 얻어 먹어서 명이 길어지는 겁니다.”


“하하하”(질문자 웃음, 청중 박수)


“자신이 엄청난 복을 받고 있으면서도 복인 줄 모르고 사주팔자가 어떻다고 그래요 저도 좋은 일 하고 욕  먹으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 거예요. 욕먹은 과보로 말입니다.


금강경에 ‘이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를 하는 것보다 더 크다. 저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갠지스 강이 있고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를 하는 것보다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는 공덕이 더 크다.’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금강경을 수지 독송 하고 있는데 저 사람이 나에게 와서 욕을 하고 때려요. 그러면 금강경을 수지 독송 하면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는 건 거짓말인가? (청중 웃음) 그때는 그 욕을 한번 얻어먹음으로 해서 내가 지옥에 갈 죄가 다 녹아나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가 나에게 욕할 때 ‘너 왜 욕하냐?’ 이렇게 할 게 아니라, ‘한 번만 더 해 줘, 한마디만 더 해 줘’ 이렇게 해야겠지요?”

(질문자 웃음, 청중 박수)




“이렇게 되면 욕을 얻어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경지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복에 집착해서 경을 읽으면 그것은 법을 모르는 눈먼 사람이에요. 이 원리는 부처님을 비난해도 빙긋이 웃으셨던 경지로 들어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하도 복을 좋아 하니까 제가 복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사람들한테 뭣 좀 나눠줬다고 칭찬 들으려고 그랬어요? 요즘 사람들이 그런 것 몇 푼 준다고 칭찬 합니까, 재수 없다고 욕만 합니다. (웃음) 그러니까 욕 얻어먹을 짓을 했네요. 그래서 당연히 욕 얻어먹을 과보를 받았네요. 


나쁜 일 하고 욕먹으면 당연하고, 좋은 일 하고 욕먹으면 명이 길어지는 복을 받아요. 많이 먹을수록 좋아요. 그러니 ‘저는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이렇게 좋은 일 하고도 욕을 많이 먹습니까?’ 하고 저한테 물었어야죠.” (웃음)


“네. 욕심을 내려놓겠습니다.” (청중 박수) 




억울한 마음으로 질문을 하셨던 아버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늘 구설수에 시달려 팔자가 좋지 않다는 생각에 억울했는데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그 팔자가 바로 복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셨나봅니다. 농사일에, 자영업에 평생 바쁘게 움직이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이 세상의 아버님들도 그러하지 않겠나 살펴지기도 했습니다. 


이미 밤이 깊어 강연을 마무리 할 때가 되자, 스님은 ‘인생’에 대한 관점을 말하며 ‘행복한 대화’를 마무리 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이 다 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울고 불고 난리인 경우가 많아요. 어떻게 이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있어요? 


되는 건 되고, 안 되는 건 안 되고, 안 되면 그만두면 되고, 그래도 되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한 번 더 해보면 됩니다. 그래서 되면 다행이고, 안 되어도 그만인 겁니다. 그래도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 또 한 번 더 해보면 됩니다. 


또 남이 원하는 대로 어떻게 내가 다 해줄 수가 있어요?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줄 수도 없어요. 인생을 너무 정해놓고 규격에 맞춰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각자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손해 날 일이 많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은 게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손해나는 게 있어요. 또, 하기 싫어도 하는 게 덕 되는 게 있어요. 하기 싫으면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 그때그때 맞춰가며 하는 거예요.




다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안 됩니다. 생활할 때는 기본적으로 예의가 있어야 해요. 너무 남한테 칭찬 들으려고 눈치 보는 것은 남의 눈에 노예가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제 마음대로 하면 철면피죠. 그러니 항상 자기 욕구도 절제 하지만 또 남의 눈치도 너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고 예의를 차리는 겁니다. 


사람이 같이 살아가려면 적어도 조금은 예의가 있어야죠. 어떻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삽니까. 하고 싶은 것도 때로는 절제를 하고, 하기 싫은 것도 때로는 해야지요. 오늘 제가 몸이 아파서 강의하기 싫다면 안 해야 할까요? 그래도 해야 되겠지요. 그렇다고 제가 괴로워하면서 할까요? 아니에요. 아픈 것은 몸에서 오는 작용이고, 해야 할 일은 아파도 하고, 안 아파도 하고, 하고 싶어도 하고, 안 하고 싶어도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기의 카르마,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밖의 백 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이 더 큰 영웅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이긴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고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인연을 따라서 갖춰야 할 적절한 자세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그것을 ‘중도(中道)’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인생을 좀 더 자유롭게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행복학교가 전국 130여 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행복학교 찾아서 입학 신청을 해보세요. 행복학교에 입학하시면 행복해지는 방법,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방법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