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며 궂은 땀을 흘렸습니다. 아침 공양을 하기 전, 조금이라도 선선할 때 일을 시작하기 위해 수행팀과 함께 밭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비가 계속 내렸는데 오늘은 구름보다 하늘이 더 많이 보이는 날입니다.

먼저 밭에 도착해서 가지와 오이, 호박을 수확했습니다. 비가 와서 고추에 병이 생기지는 않았나 궁금했는데 빨갛게 익은 고추가 싱싱하게 주렁주렁 달려있었습니다. 고추를 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아침 공양을 하러 오라는 호출에, 나머지 고추는 공양 후에 따기로 하고 밭을 내려왔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밭에 올라 다같이 고추를 땄습니다.

스님은 밭으로 넘어온 옆 숲의 뽕나무 가지를 정리하고, 옆밭 아저씨가 심어놓은 돼지감자밭에서 넘어온 어른 키만큼 되는 씨를 가득 담은 풀들을 베어내었습니다.

“이 풀씨들이 밭에 떨어져서 나중에 밭이 풀로 엉망이 되니까 미리 정리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밭 주변의 넝쿨과 풀들도 낫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어느덧 스님이 입고 있던 작업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그늘에 잠시 앉아 쉬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습니다. 밭에 작물들이 햇살에 반짝입니다. 노동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들에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점심 즈음에는 해외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고 해가 좀 기울기를 기다렸다가 배추를 심으러 다시 밭을 찾았습니다.

스님은 밭주변 풀들을 마저 정리하고 열무 심을 밭을 한 쪽에서 만들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수박밭을 정리하고, 배추를 심고 무를 심기 위해 비닐에 구멍을 뚫고 유박퇴비를 넣었습니다.



낮 동안 익은 고추를 마저 따고 고추에 병이 들지 않도록 유기농 약을 뿌리고 나니, 해가 어느덧 넘어가 주변이 어두워졌습니다.

씻고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한 후에 오래된 활동가의 시타림에 참석하기 위해 마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활동가 분의 슬픈 마음을 위로한 후 천도 의식을 함께 해주고,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하였습니다.

오늘은 강연 일정이 없었습니다. 대신 지난 상반기 강연 중에서 매우 유익하고 좋았던 즉문즉설 한 편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학교 졸업반인데 해야 할 일을 귀찮거나 하기 싫어서 못하면서도 불안해합니다. 이게 안 해서 못하는 건지 못해서 안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격지심이 좀 생겨요.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선택한 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어쩔 수 없이 선택했을 때는 기쁨보다는 후회나 불평불만이 많은 편입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어떻게 하면 건강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운동 하면 되겠죠.”

“그러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그럴 것 같아요.”

“자, 질문자에게 다시 물어볼게요. 어떤 게 건강한 걸까요? 100미터를 몇 초 안에 달리고 턱걸이를 몇 개 하고 역기를 몇 개 들고 이런 걸로 건강하다는 징표를 체크할 수 있을까요?”

“...”

“건강하다는 건 안 아프다는 게 건강한 거예요. 맞습니까?”

“예.”

“그 사람이 키가 작든 키가 크든, 어린애든 노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체중이 얼마든, 그저 안 아픈 게 건강한 거예요.

그런 것처럼, 어떤 게 행복한 걸까요? 즐거운 게 행복한 걸까요? 즐거우면 반드시 그만큼의 괴로움이 따릅니다. 둘은 같이 붙어 다녀요. 질문자는 지금 ‘어떻게 하면 행복하냐’라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즐거워지냐’라고 저한테 묻는 거예요. 마약하면 즐거워져요. (모두 웃음) 술 마시면 좋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안 괴로우면 행복한 거예요. 육체적인 병을 ‘아픔’이라고 한다면 정신적인 병을 ‘괴로움’이라고 해요. 이건 정신이 병들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괴로워한다’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다 지금 정신적으로 병이 생긴 거예요.

그런데 정신질환에도 과가 다 다릅니다. 미워한다는 건 미움과예요. 슬퍼한다는 건 슬픔과예요. 외로워한다는 건 고독과예요. 이게 정신의 이상증상이란 말이에요. 하느님을 안 믿는다고 벌 받아서 이런 것도 아니고, 전생에 죄를 지어서 이런 것도 아니고, 사주가 나빠서 이런 것도 아니고, 궁합이 안 맞아서 이런 것도 아니고, 정신에 고장이 생겨서 그런 거예요. 내가 몸이 아픈 게 벌 받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몸을 들여다보면 어느 부분이 고장 나서 그래요. 옛날에 이유를 모를 때는 ‘하느님의 벌을 받아서 그렇다’라고 했지만 요즘은 연구해보면 어디가 고장 난 거예요. 그러면 그 고장 난 부분을 고치면 되겠죠. 마찬가지로, 정신도 ‘괴롭다’ 하는 건 마음의 어느 부분에 고장이 났다는 거니까 그 부분을 시정하면 되는 거예요.

고장이 어디서 났을까요? 능력 이상 결과를 바라는 거예요. 그걸 욕심이라고 하죠. 욕심 때문에 고장이 나서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것만 개선하면 누구나 다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어요.

즐겁게 산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스님은 늘 즐겁게 산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 돼요. 혼자 사는데 즐거울 일이 뭐가 있겠어요?(모두 웃음) ‘스님은 괴로울 일이 없다’ 이런 얘기예요. 뜻대로 안 되면 여러분들은 괴로워하지만, 뜻대로 안 되면 다시 하면 되잖아요.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 그게 무슨 큰일이에요?(질문자 웃음)

관점을 그렇게 가지면 별 거 아니에요. 지금 질문자는 자기를 약간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현실의 내 능력이 100이라면 질문자의 머릿속에서는 자기를 200으로 평가하고 있는 거예요. 200이 되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현실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200이 안 돼요. 질문자의 이상으로 볼 때 질문자의 현실은 너무 부족해 보이겠죠. 그래서 질문자가 지금 자학증상이 생기는 거예요.

개나 고양이에게는 자학 증상이 있을까요? 거의 없어요. 동물은 자기를 과대평가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갭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괴로울 일이 없는 거예요. 사고로 다치거나 하는 이런 일만 괴롭죠. 그런데 질문자는 200으로 목표를 정해놨는데 현실은 100밖에 안 되니까 이 갭 때문에 자기의 100이 초라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이 100을 끌어올려서 200이 되도록 할 건가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계속 그런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것이 때로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됩니다. 그러나 괴로움에서는 못 벗어나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를 200으로 평가하는 걸 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해요. ‘내가 100이구나.’ 그럼 100에 맞게 생활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스트레스는 없어요. 논문도 내 실력만큼 쓰는 거고요. 우리에겐 시간도 제한돼 있고 능력도 제한돼 있습니다. 능력을 어느 정도 키울 수는 있지만 우리의 욕심처럼 그렇게 능력이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안 커요.

그래서 저는 제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항상 도전을 합니다.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한 목표를 세워놓고 살기도 해요. 여러분들이 볼 때는 욕심이 아니냐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서 적절한 노력을 하고 연구를 할 뿐이지 괴로워하지는 않잖아요. 제가 통일운동을 하거나 평화운동을 하고 있지만, 통일이 안 돼도 괴로워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늘 노력을 할 뿐이죠.

그런데 제가 하는 일 100가지 중 99가지는 안 돼요. 늘 실패입니다. 그런데 10년을 지난 뒤에 보면 그쪽으로 굉장히 많이 와 있는 거예요.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자학이라는 건 없어요.

저도 저를 한 번 자학해볼까요? 인물을 보면 배우보다 못생겼어요. 말재주도 김제동씨보다 못하고요. 노래도 여느 가수보다 못하고요. 이렇게 생각하면 잘난 게 하나도 없죠. 그런데 저는 저대로 능력이 있잖아요. 질문자는 늘 남하고 비교해서 ‘나는 누구보다 키가 작고, 누구보다 못생겼고, 누구보다 재주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자학 증상이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보기에 질문자가 괜찮아요, 안 괜찮아요? 키도 인물도 저만하면 됐죠?”

“예!” (청중 크게 대답, 웃음)

“그런데 질문자 스스로는 자기가 그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하찮아 보이는 거예요.

여기 있는 여러분들 모두 다 괜찮은 사람이에요. 나이가 얼마든 관계없습니다. 그렇다면 나이가 든 사람은 문제가 있을까요? 나이가 든 사람은 이만큼 산 것만 해도 대성공이에요. 중간에 죽은 사람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오, 내가 나이 70, 80이 되도록 살았다’라고 하면 다른 성공을 따지지 마세요. 지금껏 산 것만 해도 성공이에요. 돈을 많이 벌고 젊은 나이에 죽는 게 나아요, 돈 못 벌고 70까지 사는 게 나아요? 물론 개인의 선택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이런 욕심만 버리면 모든 사람은 다 성공한 사람이에요. 모든 다람쥐는 다 다람쥐 나름대로 성공했어요. 모든 산에 있는 짐승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 성공했어요. 그런데 왜 사람만 늘 실패했다고 할까요?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래요. 실제로 사람이 제일 능력자잖아요. 그런데 내가 형편없다며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 원인은 욕심이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결혼한 것만 해도 성공이에요. 내 남자, 내 여자가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될 뿐이지, 그 사람 자체는 괜찮아요. 그러나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안 되는 건 맞아요, 그건 인정해요. 그런데 원하는 만큼 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결혼한 것만도 다행이다’, 아이가 건강하면 ‘건강한 것만도 다행이다, 학교 가주는 것만도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질문자는 지금 대학생이랬잖아요. 여러분들 중에 대학 못 간 사람도 있는데 대학 온 것만 해도 다행이잖아요. 남은 대학도 못 다니는데 자기는 대학 졸업반이라면서 무슨 불평을 해요?(모두 웃음) 그런데 뭐가 불만이에요? 그만큼만 해도 다행이죠. 욕심을 내면 끝이 없어요. 자기를 학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다들 행복하게 사세요. 행복하게 살라고 해서 기분 좋게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괴로울 일이 없다는 거예요. 항상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지, ‘왜 넘어졌나, 난 왜 이럴까’ 이런 생각에 빠질 필요가 없어요. 자, 스님을 좀 기분 좋게 해주려면 박수를 세게 쳐주세요.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과 큰 박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함께 만든 사람들
김은경, 손명희, 이준길,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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