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산 동의대학교 석당아트홀에서 2018 국민행복 포럼이 오후 2시부터 있었습니다. 국민행복실천운동본부와 동의대학교가 공동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스님은 행복 포럼의 2번째 강연자로 석당아트홀에 모인 참석자들에게 즉문즉설로 귀한 시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며칠 동안 선선했던 부산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여름 그대로의 날씨를 보여주었습니다. 강연 시작 전인, 1시 50분부터 자리는 빈틈없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강연은 ‘행복은 소유보다는 공유에 의미가 있다’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했습니다. 장소가 대학교였지만, 내빈석에 자리한 스님들과, 1부 강연자인 재불화가이자 심리치료사 르네 추 선생님과 법륜스님을 보러 온 40대 이상의 불자들이 많았습니다. 행사준비는 동의대학교 학생들이 맡아 했습니다.

스님이 나타나자 웅성웅성 소리와 함께 사진 찍는 소리, 환호,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부산KNN방송과, 부산MBC방송에서 취재하는 열기도 매우 뜨거웠습니다.

심산스님의 개회사로 포럼이 막을 열었습니다. 1부 르네 추 선생님의 강연이 끝나자 2부 법륜스님의 ‘일상생활에서의 행복과 바른 생각’이라는 주제의 즉문즉설이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4명이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7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자주 맞고 와서 속상하다고 토로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자는 5학년 손자가 오지랖이 넓어서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자는 친정엄마가 좋고, 만나면 반가운데 막상 만나면 많이 부딪쳐 싸우게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네 번째 질문자는 몸이 아프니, 마음까지 늘 불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 딸과 엄마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세 번째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예.”

“제가 성당에 다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봅니다. (모두 웃음) 저는 친정엄마를 자주 만나는 편인데요, 만나기 전에는 기쁜 마음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티격태격하게 됩니다. 제가 좀 예민한 편이라 그런지 화가 많이 나고요, 애 낳은 후에는 분노가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너무 막 합니다. ‘아, 내 잘못이다’ 하면서도 사실 엄마를 원망하거든요. 그래서 안 좋게 헤어졌다가도 집에 와서는 ‘아, 다음부터는 안 그래야지’ 하고 후회합니다. 그리고 또 잘 잊어버려서 일주일에도 몇 번씩 다시 만납니다. 그리고 또 싸우는 걸 반복해요. 사실 며칠 전에도 엄마한테 화를 내서 지금 마음이 많이 안 좋습니다. 제가 마음공부를 어떻게 해야 엄마한테 스트레스를 안 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저도 스트레스를 안 받았으면 좋겠고요.”

“예, 안 만나면 돼요.(모두 웃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왜냐하면 부부 간에는 안 만날 수 없고, 어린 자식도 내가 안 만날 수 없는데, 이미 질문자는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늙은 부모와 안 만난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보고 싶은데요.”

“보고 싶으면 사진을 보면 돼요.(모두 웃음) 세 가지 방법 중에 선택을 하면 돼요. 첫째, 안 만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가 안 만날 수 없는 관계가 있잖아요. 아이나 남편이나 직장동료는 안 만날 수가 없잖아요.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이혼을 한다든지 자식과 의절을 한다든지 직장을 그만둔다든지 해서 그들과도 안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이 나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니에요. 어떤 수단을 다 해 봐도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대중들) 안 만나면 돼요.”

“예. 그것은 손자병법에도 나옵니다. ‘도망가라.(모두 웃음) 36계 줄행랑을 쳐라’고 나오거든요. ‘36계’라는 게 뭡니까? ‘서른여섯 번째, 즉 마지막 계책’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방법을 다해 보고도 해결이 안 되면 마지막엔 어떻게 하라고요?”

“(대중들) 도망가라.”

“예. 그런데 이걸 처음부터 선택하면 안 돼요. 그러면 후회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덜 해 보고 이걸 선택하면 나중에 ‘이렇게도 좀 해 볼 걸. 저렇게도 좀 해 볼 걸.’ 이렇게 후회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본인이 생각해도 ‘모든 방법을 다해봤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됐다면 그때도 방법은 없는 게 아닙니다.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라고요?”

“(대중들) 도망가라.”

“예, ‘안녕히 계십시오.’(모두 웃음) 하는 마지막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가 그 마지막 방법을 선택할 때냐는 거지요. 그 마지막 방법을 선택해도 지금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방법을 선택하려고 하니까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또 다른 고통이 따른다는 거예요. 만나서 싸우는 고통이 따르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 안 만나니까 보고 싶은 것을 못 보는 고통이 따른다, 이게 인생의 8가지 고통 중에 2가지입니다. 보고 싶은데 못 보는 걸 ‘애별리고(愛別籬苦)’, 만나서 싸우는 걸 ‘원증회고(怨憎會苦)’라고 하거든요.(모두 웃음) 이건 인간의 원천적인 고통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어머니와 만나는 걸 끊어버리면 ‘원증회고’는 해결되는데, ‘애별리고’가 생겨서 또 괴로운 거예요.

그 다음 방법은, 양쪽으로부터 다 과보를 받는 거예요. 보고 싶으면 가서 만나고, 성질나면 싸우고, 그래서 각자 헤어졌다가, 또 보고 싶으면 가서 만나서 싸우고 또 헤어지고, 그러면 돼요. 이게 ‘윤회(輪廻)’라는 거예요.(모두 박장대소)

사람이 죽어서 말 되고, 소 되고, 개 되는 게 윤회가 아니에요. 그건 힌두교적 윤회이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윤회는 우리의 삶에서 이렇게 애와 증이 늘 교차하는 것, 반복되는 거예요. 우리 삶이 늘 그렇지요. 그렇게 윤회전생을 하시든지, 윤회전생에서 벗어나려면 안 만나든지 그러면 돼요. 그런데 안 만난다고 해결이 안 되지요. 또 애별리고가 생기니까요. 그럼 질문자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어떤 반응을 하시든 ‘네, 어머니’ 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다른 어머니한테는 진짜 잘 되는데요, 우리 어머니한테는 진짜 안 돼요.”(모두 웃음)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하시든 ‘네, 어머니’ 할 수 있으면 해탈할 수 있어요. 어머니가 전화해서 ‘보자’ 하시면 내 상황이 어떻던 ‘네, 어머니’ 해놓고 갈 형편이 못되면 안 가면 돼요.(모두 웃음) 우리는 ‘가야 된다’는 카르마, 사슬에 묶여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번 해보는 거예요. 어머니가 ‘보자’ 하시면 ‘네, 어머니. 그러죠.’ 하고 갈 형편이 못 되면 안 가면 되는데, ‘바빠 죽겠는데 왜 보자 그러냐.’ 이러면서 말싸움을 되풀이하는 것, 그게 윤회전생이거든요. 어머니는 딸한테 보고 싶다고 전화할 자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중들) 있어요.”

“나는 바쁘면 안 갈 자유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중들) 있어요.”

“예. 그런데 내 자유를 막는다고 어머니를 비난하면서 나는 어머니 자유를 막는 거예요. 어머니도 말할 자유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머니 자유도 보장해 드리고, 내 자유도 누리면 돼요. 어머니는 ‘보고 싶다’고 말할 자유가 있고, 나는 안 갈 자유가 있기 때문에 ‘네, 어머니’ 그러고 안 가면 돼요. 그러면 어머니가 전화해서 ‘왜 안 오니?’ 그러면 ‘아, 급한 일이 좀 생겨서요.’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그럼 언제 올 거니?’ ‘시간 봐서요.’ ‘내일 와라.’ ‘네.’ 이러면 돼요.(모두 웃음) 그리고 내일 가고 싶으면 가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면 돼요. 그래서 ‘또 왜 안 왔니?’ 그러면 ‘오늘 또 급한 일이 생겼어요.’(모두 웃음)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가서 싸우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아요. 그런데 일단 갔다면 어머니가 어떤 말씀을 해도 ‘네, 어머니. 네네. 그러죠.’ 이렇게 얘기하면 돼요. 한번 따라해 보세요. ‘네네.’”

“네네.”

“네, 어머니.”

“네, 어머니.”

“그것만 하면, 싸울 일이 뭐가 있어요?(모두 웃음)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죠. 왜냐하면 지금 법문을 듣고 아는 건 의식이 아는 거고, 어머니의 어떤 행위, 즉 내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거나 냄새 맡아지거나 혀에 맛 봐지는거나 신체적인 접촉이나 머리에 드는 생각은 내 무의식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거거든요. 나도 모르게 거부반응이 먼저 일어나는 거예요.

질문자는 어릴 때 어머니한테 뭔가 야단을 맞았거나 해서 무의식세계에 어머니에 대한 억압된 심리나 저항감이 있는 거예요. 원망심이 있다, 이 말이에요. 어머니의 그런 말투,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별 거 아닌데 무의식적으로는 그냥 거부반응이 생기는 거예요. 옛날의 상처 때문에. 이 상처를 카르마라고 해요. 무의식에서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해도 잘 안 됩니다. ‘이번에는 어머니를 만나서 싸우지 말아야지! 싸우지 말아야지!’ 이렇게 결심해도 이 결심보다는 무의식적 반응이 더 즉각적입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가도 어머니 말투만 들으면 막 화가 나는 거예요.(모두 웃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치유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이걸 아는 거예요. ‘이건 어머니의 행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나한테 그런 카르마, 그런 업식, 그런 상처가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 문제다.’ 이렇게 아는 게 중요합니다. 어릴 때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금은 누구 것입니까? 내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탁 반응이 나올 때 자기가 알아차려야 돼요. ‘오~ 내 카르마가 작용하는구나. 아, 또 내 업식이 작용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림을 통해서 멈추는 것. 억제하는 게 아니고요. ‘참아야지’ 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먼저 알아차려야 돼요. ‘오~ 또 시작하네. 또 반응을 하네.’ 이렇게. 그러면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가도, 알아차림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멈춰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 번째 그럴 때마다 무조건 이를 악 다물고 참지 말고, 일단 수긍을 하세요. 어머니의 어떤 행동도 내가 뭐라고 받아들인다? ‘네’ 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어요. ‘네’가 안 되면 ‘아~ 내 잘못이다.’ 이렇게 해서 어머니를 더 이상 문제 삼으면 안 돼요. 어떤 것도 ‘네’가 안 되면 그건 누구 문제라고요?”

“(대중들) 내 문제.”

“예. ‘소를 지붕 위에 올리라는 어머니의 요구는 잘못된 거다. 이건 말이 안 되지 않냐!’ 이렇게 접근하면 못 고칩니다. 어머니가 ‘소를 지붕 위에 올려라.’ 그러면 ‘알았어요, 어머니’ 하고 소를 몰고 지붕 밑에 가서 어머니에게 ‘어머니,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왔는데 안 올라갑니다.’ 이렇게 얘기해야 돼요. 그러면 어머니가 ‘안 되면 놔둬라.’ 그럴 거예요.(모두 박수) 그런데 질문자는 더 빨리 고치고 싶지요?”

“예.”

“간단합니다. 어머니와 만나서 싸우고 올 때마다 전기충격기로 지지면 돼요.(모두 박장대소) 그럼 까무러치겠지요. 카르마가 소멸되려면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돼요. 그래서 이걸 성경에서는 ‘거듭 난다’ 그러잖아요. 그렇게 거듭 나야 돼요. 그런데 거듭 난다는 건 업장이 소멸된다는 거거든요. 그럼 이 전기충격기로 지지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생존 본능이 어떤 정신적인 습관보다도 우선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 번만 지지고 나면 어머니에게 화를 딱 내려고 하는 순간 몸이 먼저 부들부들 떨려요.(모두 박장대소) 이런 것과 거의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해서 절에서는 삼천 배를 시킵니다. 질문자가 어머니에게 한번 화낼 때마다 삼천 배를 한다, 한번 화내고 8~9시간 걸려서 삼천 배를 한다면 그 고통이 굉장하겠지요?”

“(대중들) 예.”

“그러니까 삼천 배만 하고 나면 화가 날 때마다 온 몸이 떨려요. 또 8시간 동안 절해야 되니까요.(모두 웃음) 그럴 때는 알아차림이 금방 작동하거든요. 정말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런 극단적인 처방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처방을 주면 대부분 여러분들이 ‘아이고, 그렇게까지 해서 고쳐야겠습니까?’ 이런단 말이에요.(모두 웃음) 뭐라고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고칠 게 뭐가 있겠냐?’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생긴 대로 살아라’고 하는 거예요.(모두 웃음) 보고 싶으면 가서 보고, 싸우고 또 와버리고, 또 보고 싶으면 가서 보고 또 싸우고, 보고 싸우고, 보고 싸우고,(모두 웃음) 그러라는 거예요. 그럴 때도 괴로워하지 말고 ‘아, 윤회전생하는구나. 내가 윤회 속에 살고 있구나.’ 이렇게 윤회를 선택하든지, 도저히 안 되면 전기충격기로 지지든지, 한번 싸울 때마다 삼천 배를 하든지. 이렇게 인생은 고치는 방법도 있고,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대중들) 예.”

“고치려면 굉장한 충격을 줘야 됩니다. 고쳐지니까 성질이라 그래요, 안 고쳐지니까 성질이라 그래요?”

“(대중들) 안 고쳐지니까.”

“예, 그러니까 어떤 걸 시도할 때는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안 고쳐진다는 걸 전제로 하고 내가 도전을 하기 때문에 안 고쳐지는 것에 대해서 쉽게 실망하거나 자학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까 100번 안 되면 101번 하고, 1000번 안 되면 1001번 하면 돼요. 그렇게 계속 도전을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카르마가 생긴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결심한다고 안 고쳐집니다. 안 고치고 살든지, 고치려면 독하게 마음을 먹고 충격기로 지지든지 해야 돼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항상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조금 시간이 걸리지만 알아차림이라는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자기 마음을 잘 살펴서 어머니로부터 ‘기분 나쁨’이 일어날 때 ‘또 내 카르마가 작동하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림, 깨어있음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초심자들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이 ‘호흡 알아차림 연습’을 해서, ‘마음 알아차림’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예, 그런데 스님 만나서 다 고쳐진 것 같습니다.(모두 웃음)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내 성질도, 내 습관도 한번 길들여진 걸 고치려면 잘 고쳐져요, 안 고쳐져요?”

“(대중들) 안 고쳐져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남의 것은 너무 고치고 싶어 해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수행을 하면 남에게 너그러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를 한번 고쳐보려고 하니까 잘 안 고쳐진다는 걸 알게 되니까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자연히 너그러워지는 거지요. 남편이 안 고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잘 안 고쳐지는 거구나 이렇게 이해가 되는 거예요. 애가 내 말을 안 들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이해를 못해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이해 시키면 되고, 아니면 말은 알아들으면서도 안 한다면 그건 그 애도 안 고쳐져서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다리는 게 좀 필요합니다. 포용이 좀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자기 건 안 고치고 남 건 자꾸 빨리 고치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남의 눈의 티끌은 보고 자기 눈에 있는 대들보는 못 본다’고 하셨잖아요. 이런 얘기도 다 수행과 관계가 있는 얘기입니다.”

스님은 유쾌한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엔 질문자도 위로 받은 듯 밝은 표정이었고, 청중은 박수로 스님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습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괴로운 이유는 현실에 맞지 않는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긍정적인 사고를 하세요. 이미 벌어진 일은 받아들이세요. 한 번의 화살을 맞았으면 그걸로 끝내야지 제2, 제3의 화살을 스스로 만들어서 맞지 말고 한 번에서 멈추세요. 항상 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에 깨어있길 바랍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질문자를 만나보았습니다.
“스님께 질문하고 마음이 편해져서 엄마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억압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밝아진 질문자의 모습을 보니 듣는 이도 전염이 된듯 대중들도 행복해진 모습으로 삼삼오오 강연장을 나섭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정지혜,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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