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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니 속이 탑니다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다가옵니다. 학교 가던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부모들은 잔소리가 부쩍 늘어납니다. 컴퓨터 게임 좀 그만해라, 공부 좀 해라, 책 좀 읽어라, 방학 숙제는 다 했냐, TV 좀 그만 봐라... 바야흐로 아이들과의 전쟁의 시작이죠.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있었던 어떤 학부모님의 질문입니다. 아이의 게으른 행동을 보고 계속 잔소리를 하게 되는 문제로 고민이라며, 그 해법을 물었습니다. 


- 질문자 : “아이의 게으른 행동을 보면서 언제까지 잔소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엄마로서 당연히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아 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잔소리를 안 하고 바라만 보려면 저 자신이 참 힘듭니다. 제 잔소리가 그 아이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제가 답답합니다.”


- 법륜스님 : “이런 문제는 꼭 부모 자식 사이에만 있는 일은 아닙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생기는 일입니다. 이때에 보통 사람은 애를 나무랐다가 자신을 나무랐다가 왔다 갔다 하며 고민합니다. 그러나 우선, 잔소리를 하는 것도 잔소리를 안 하는 것도 아이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잔소리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니까 내 원하는 대로 되라고 잔소리하는 것이고, 잔소리를 안 하는 것은, 내 말을 안 들어 주니까 ‘에라, 모르겠다. 네 맘대로 해라.’고 해서 잔소리를 안 하게 되는 겁니다. 


잔소리를 할까 말까 갈등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게 좋을까, 안 하는 게 좋을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지요. 사실은 안 하려니 답답하고, 하려니 애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게 싫고, 그래서 둘 중에 어느 게 더 이로울까 재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이를 위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는 게 나한테 더 좋을까 고민하는 것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아이가 “엄마, 저 권총 사 줘.” 했어요. 그러면 엄마는 안 된다고 거절하지요. 장난감 권총 하나 사 달라는 아이에게 안 된다고 할 때에는, 아이를 위해서 좋지 않다고 판단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아이가 땅바닥에 앉아 울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고함을 치며 가자고 해도 안 가면, “그래, 그래. 알았다.” 하고 사 주는 경우 있지요? 이럴 때 우리는 ‘너를 위해서 사 준다.’라고 생각합니다. 


안 사 주려고 한 것도 자식을 위해서 안 사 주는 것이고, 사 주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 사 주는 것이라 생각하지요. 


그런데 아이가 울고불고 해서 사 주는 것은 달래려니까 귀찮기 때문에 사 주는 것입니다. 정말 아이를 위해서 안 사 주려고 했으면 아이가 아무리 울고불고 팔짝 뛰어도 안 사 줘야지요. 아이를 위해서 사 준다면 처음부터 사 줘야지 왜 그렇게 괴롭힌 다음에 사 줍니까? 


그러니까 나의 문제로 봐야 번뇌가 사라집니다. 아이 문제라고 보는 한 해결책이 안 나옵니다. 


- 질문자 : “아이가 공부는 안 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니 속이 탑니다.”


- 법륜스님 : “그 아이는 다만 그럴 뿐이지요. 컴퓨터 게임을 할 뿐이고, 놀 뿐인데 그걸 보는 내 생각, 내 기준 때문에 분별이 일어나고 화가 일어납니다. 그걸 보고 내가 못 참아서 문제 삼은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야단치는 것은 내가 화를 푸는 방법에 불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잔소리가 되는 거지요. 


이럴 때 잔소리를 안 해야 한다는 것은, 잔소리를 하고 싶지만 참는 거지요. 이때 자기를 봐야 합니다. 


‘아이가 저런다고 내가 왜 화가 날까, 아이가 저런다고 내가 왜 괴로울까?’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살펴야 합니다. 내 의견을, 내 취향을, 내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답답하고 화가 나고 괴롭고 슬픈 것입니다. 그 고집하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합니다. ‘애가 저런다고 내가 왜 화가 날까?’ 이것을 돌이켜보는 거지요. 그래서 화가 나지 않게 되는 것이 수행입니다. 화를 안 내는 게 수행이 아니고,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화가 나지 않으니까 참을 게 없지요.


이것은 내 문제인데, 내 문제에 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 잔소리를 해서 답답함을 푸는 사람도 있고, 그 부작용이 싫어서 참는 걸로 대응하는 사람도 있어요.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도 참아 가면서 해요. 참는다는 사람도 가끔 잔소리를 해요. 그러니까 그 비중이 서로 다를 뿐 근본적인 행위는 똑같습니다. 


잔소리를 참을 때도, 잔소리를 할 때도 늘 자기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를 중심에 놓고 사물을 보는 ‘자기’라는 것이 있는 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것이 만병의 원인입니다.” 


- 질문자 : “감사합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질문자가 웃음을 띠었습니다.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잔소리를 안 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결론을 들으려고 했는데, 스님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를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고, 어떻게 하는 게 나한테 더 좋을까 고민하는 것에 불과하단 말씀은 정곡을 찔러 준 느낌입니다. 자기 성질에 못 이겨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한다면, 아이들은 반항심만 생기지 아이들의 행동을 고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화가 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아이들에게도 진정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