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4시 각자의 방에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밤에 스님 방 앞에 놓아두었던 원고는 어느새 보이지 않습니다. 동부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고 덥고 습한 날씨였는데 서부인 캘리포니아 쪽으로 오니 사막 기후 덕분인지 건조하고 화창한 날씨입니다. 오늘 같은 날은 아침 산책 다녀오기 좋은 날씨이지만 7시에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아침 산책은 생략하였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가방을 챙긴 후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박지나 JTS 대표님, 촬영을 맡아 일정을 함께 한 워싱턴 정토회의 민덕홍 님, LA 정토회 김명례 대표님과 배염님의 배웅을 받으며 존 웨인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지난주 목요일부터 5일간 숙박과 운전 지원을 한 이경택 LA 정토회 전 대표님에게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왔기 때문에 짐만 부치면 됩니다. 공항 자동 시스템으로 짐 표를 프린트하여 스님도 가방에 손수 짐 표를 붙였습니다.

1시간의 비행 후에 산호세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보다 짐가방이 먼저 나와 있어 스님도 얼른 짐을 찾았습니다.

짐을 찾아 나오니 김준자 님이 스님 일행을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준자 님은 콜럼버스 정토회 대표를 역임하였고 은퇴 후 몇 년 전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여 현재는 산호세 법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산호세에서 몬터레이까지는 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교통체증이 있을까 우려하여 이동시간을 넉넉하게 잡았더니 예상보다 일찍 몬테레이에 도착했습니다. 작년에도 몬터레이 미해군대학원 (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한반도 평화 관련 강연을 했기 때문에 낯설지 않은 곳입니다. 바닷가에 식당과 상점이 모여있는 Fisherman’s Wharf에 가서 작년에 식사를 했던 곳에서 간단히 수프와 빵으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물개가 놀고 있는 모습도 보면서 잠시 여유를 즐겼습니다.

식사 후 10분 거리에 있는 국방부 언어학교(DLI)에 가니 이번 강연의 실무를 맡아 국제국과 함께 강연을 준비한 한국어학과 강인경 교수님이 게이트 앞에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한국어학과로 가니 학장님과 교수님들이 차와 떡, 과일 등을 준비해놓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인경 교수님과 함께 국방부 언어학교 한국어학과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강인경 교수님과 함께 국방부 언어학교 한국어학과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

몬터레이까지 찾아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환영해주니 감사했습니다. 강연장에는 학생들이 함께 있기 때문에 질문하기 쑥스럽다고 하면서 미혼인 교수님이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질문하자 스님이 ‘눈이 높아 결혼 못하고 있다’고 직설적인 경상도식으로 답변을 해서 모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 강연장으로 들어가니 군복을 입은 학생들이 강연장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군인 학생들과 한국어학과 강사들이 청중이라고 하였습니다. 군인 학생들은 사병이 대부분이고 장교들도 일부 있다고 하였습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들어서자 학생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유튜브로만 보던 스님을 진짜 얼굴을 보게 되니 아이돌 스타를 대하듯 신기해하였습니다. 한국어학과에서는 이번 스님과의 즉문즉설 강연을 위해 학생들에게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을 먼저 보게 하고, 또 한국어로 질문을 미리 준비해오도록 안내하였다고 합니다. 학장님이 스님 소개를 하자 학생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미국에 와서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생긴 게 좀 이상합니다.(청중 웃음) 제 말하는 거 잘 알아 들어요? 여기 교수님께서 첫 번째 시간은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좀 하고 그다음에는 인생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하라고 두 가지 주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 두 개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서 준 주제가 앞에는 한반도 문제, 뒤에는 인생문제인데 여러분들은 크게 구애받지 마시고 이것이든 저것이든 그냥 얘기를 편하게 하세요. 대화를 할 때 이렇게 칸막이를 치면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편안하게 얘기를 해야 합니다. 강연은 없고요. 그냥 대화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강연을 하라고 하니까 한 5분이나 10분 정도 얘기해보겠습니다.

현재의 북한은 UN 제재가 아주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환율의 변동이 없습니다. 1달러 당 북한 돈 8천 원입니다. 쌀값의 변동도 거의 없습니다. 쌀값도 1Kg에 5천 원, 이것도 지금 5년간 김정은 위원장이 올라오고는 거의 변동이 없습니다. 이런 통계 수치로 볼 때는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안정이 되어 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민 생활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수치가 아니고 북한 안에 살던 사람 또는 중국의 조선족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몇 해 전에 비해서 생활이 굉장히 어려워졌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탄광촌 같은 데는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도 생긴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석탄 수출을 못하게 하기 때문에 제대로 월급도 못주고 또 식량 공급도 안되고 있어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식품까지도 중국 제품이 많았는데 현재는 다 북한산입니다. 일반 생필품들은 전에는 거의 90% 이상이 중국산이었는데 지금은 한 70%를 북한 자체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부에서는 경제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시장이 어느 정도 정착이 되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이 500개가 넘어섰습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도 작년까지만 해도 한 350만 개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500만 개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물론 국제 전화는 되지 않습니다. 국내 전화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내부의 개혁은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개방이 아직 안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북미 간에 관계 개선이 되어 개방이 된다면 개방할 준비를 상당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정치적인 문제는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얘기하세요. 지난 20년 간 지방에서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 사이 2년 간 제가 국경 변을 관찰해 본 것으로 보면 새 건물을 짓는 것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민 생활이 좋아졌다는 증표는 특별히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건물을 최근에 와서 짓는다는 것은 뭔가 조금 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 제재에 따른 어려움도 있습니다. 일단 중국에서 수출과 수입에 대한 제한이 굉장히 강력한 편입니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중국 사람들이 ‘잣’이라던지 이런 간단한 선물도 다 금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원료 수입이 잘 안되니까 제품 생산이 낮아져서 시장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이런 불평을 합니다. ‘북한을 변화시키려면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이 제재가 오히려 시장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재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또 외국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사람들이 적게는 5만 명 많게는 10만 명까지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제재가 이뤄지면서 비자(VISA)를 안 주니까 국내로 돌아가야 되잖아요. 북한 주민들이 밖에 나와 세상을 보면서 의식이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것도 다 막음으로 해서 오히려 북한의 변화를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정부를 억제하기 위한 이런 제재들은 주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주민들의 변화를 가로막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제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재가 분명히 북한 주민들의 삶을 굉장히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제재가 북한 정부의 안보 정책 변화를 가져올 만큼 강력한가? 그것은 아닙니다. 북한을 고통스럽게는 할 수 있지만 북한 안보 정책을 바꿀만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현재 북미 간에 남북 간에 대화라든지, 북한의 안보 입장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제가 설명을 안 해도 여러분들이 뉴스를 보고 잘 알고 계시니까 오히려 여러분들이 잘 모르는 주민 생활을 얘기했습니다.

지금부터는 여러분들이 북한에 대해서든, 한국에 대해서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한국에도 가신다면서요? 고국에 가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거나 요즘 한류도 있고 그러니까 뭐든지 물으세요. 저는 모르면 ‘모른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에요. 알면 자세하게 대답을 해 드릴게요."

이렇게 스님이 서두를 열면서 질문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라 영어 통역 없이 스님에게 바로 한국어로 질문을 해보자고 학장님이 제안하여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강연이 한국어로 진행되니 제이슨 림은 다른 과에서 방문하신 학교 직원 분들에게 강연 내용을 영어로 통역해드렸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를 나눈 다음, 스님은 학생들이 대화 내용을 알아들었는지, 그리고 질문이 무엇이었고 답변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손을 들게 하며 점검하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못 알아들었을 때는 알아들었다고 손을 든 학생들이 일어나 방금 오고 간 대화를 영어로 요약을 해주는 방식으로 약 1시간 동안 첫 번째 세션을 진행하였습니다. 두 번째 세션은 한반도 관련해 조금 어려운 내용이 있어 제이슨 님이 통역으로 요약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오늘은 총 9개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1. 한국어 시험에 떨어질까 봐 걱정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2. 저는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같이 다니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에 그 친구한테 정말 나쁜 일이 생겼고 그 친구는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고 남자 친구도 생겼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그 친구하고 관계가 아직 가깝지만 1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씩 잠깐 얘기할 뿐이고 그 친구와 더 이상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나는 널 사랑해, 너는 아직도 중요한 사람이야' 이런 것을 어떻게 그 친구에게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3. 여러 가지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나쁜 습관들이 있습니다. 습관들이 꿈을 이루는데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이 되고 싶고, 수준이 높은 직장을 잡고 싶습니다. 그런데 게으르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습관도 있습니다. 이런 나쁜 습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나다.

  1. 얼마 전에 학생들이 한국을 갔다 왔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북한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2. 통일이 된 후에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차별하는 문제가 없을까요?

  3. 안녕하세요. 요즘에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면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1. 북한은 가난한 나라여서 통일이 되면 한국의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합니다.

  2. 만약 북한과 한국이 통일된다면 우리는 군대인데 어떤 할 일이 있을까요? 또한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계속 있을까요?

  3. 통일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스님의 새로운 백 년을 읽었습니다. 통일에 앞서서 남한사회의 통합이 우선이라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노무현이나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을 남남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남남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두 번째 질문자와 스님의 대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같이 다니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에 그 친구한테 정말 나쁜 일이 생겼고, 그 친구는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고 남자 친구도 생겼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그 친구하고 관계가 아직 가깝지만 1주일이나 2주일에 한 번씩 잠깐 얘기할 뿐이고, 그 친구와 더 이상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나는 널 사랑해, 너는 아직도 중요한 사람이야' 이런 것을 어떻게 그 친구에게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요?"

"가까이 사귀던 친구가 전처럼 계속 똑같은 상황에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친구의 심정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가장 나쁜 상황이라면 친구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 친구가 죽어도 질문자는 살아야 돼요, 따라 죽어야 돼요?"

"살아야 돼요."

"살아야 되겠지요? 그런데 이 친구는 지금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안 죽었어요."

"죽는 게 나아요, 아니면 무슬림으로 바꾸는 게 나아요?"

"뭐라고요?" (청중 웃음)

"친구가 사고가 나서 죽었다 하더라도 나는 살아야 되겠죠? 그런데 그 친구가 교통사고 나서 죽는 경우하고 무슬림으로 종교가 바뀌는 것 하고 둘 중에 어느 것이 나아요?"

"죽는 것하고 무슬림으로 바뀌는 것하고…"

"그 친구가 죽어도 자기가 살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무슬림 개종은 죽는 것보다 낫잖아요. 내가 원하는 것, 교회에 계속 다녔으면 좋겠다는 것은 안 되었지만 살아있는 것은 다행이잖아요. 내가 원하는 만큼이 안 되었을 뿐이지 살아있는 것은 다행이잖아요. 아무 문제가 아니에요. 종교는 자유예요, 자유가 아니에요?"

"자유예요."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에요. 내가 불교인이 되든, 이슬람이 되든, 크리스천이 되든 자유예요. 두 개를 다 해도 자유예요. 크리스천 하다가 불교로 바꾸어도 되고, 동시에 두 개를 다 해도 돼요. 두 개 다 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크리스천 부디스트라고 해요. (청중 웃음)

한국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해요? 코리안 아메리칸. 옛날에는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것처럼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서 크리스천이 되고, 불교 집안에 태어나서 불교인이 되어도 돼요.

둘째,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지만 불교도도 되고, 두 개 다 하고 싶으면 두 개 다 해도 돼요. 그래서 부디스트 크리스천, 크리스천 부디스트, 둘 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이렇게 친구한테 말해야 돼요. ‘네가 무슬림이 되든 네가 무엇이 되든 너는 항상 나에겐 친구야.’ 이게 진정한 친구예요."

스님이 이렇게 답변을 하자 처음에는 약간 무겁게 질문을 하였던 질문자의 마음이 스님과 대화 후에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 세션을 시작하자 스님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세션에서 재미있었어요? 아까 마지막 질문은 사실은 전문적인 질문이라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서두에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고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전문적인 것이라 알아듣기 힘들 것 같아 아예 언급을 안 했어요. 여러분들이 군인들이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이 어떤지 좀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10분만 통역해서 북한의 안보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설명할게요.

저는 지난 20년 정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왔고 북한에서 넘어온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우리가 도운 사람만 자료로 있는 것이 한 2만 명 정도 됩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한 자료가 2천 명이 넘습니다. 제가 직접 만난 사람만 해도 200명이 넘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좀 아는 편입니다. 그래서 생활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질문하면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도적 지원과 인권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20년을 노력해도 해결이 안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북한의 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보 문제에 대해 조금 얘기하겠습니다.

북한은 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 않습니다. 북한은 3가지 국가 운영의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가 자주국방입니다. 안보 문제는 어떤 나라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둘째, 정치적으로 어떤 나라의 간섭도 받지 않습니다. 셋째, 경제적으로는 자립 정책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제가 굉장히 낙후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규제를 해도 버틸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상대하고 있는 남한은 경제가 굉장히 부흥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군사적인 무기체계도 최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군사동맹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에 대해 굉장한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자기 체제를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볼 때는 정권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국가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국가가 군사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민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재래식 무기로는 더 이상 경쟁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핵을 개발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를 없애려고 하면 같이 죽는다’ 이런 입장입니다. 그들의 안보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이 핵개발입니다. 이것을 쉽게 포기할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쪽으로는 경제를 개발해야 합니다. 그들은 90년대 말에 3백만 명이 죽는 큰 비극을 겪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나라를 세웠고, 김정일 위원장은 안보를 지켜냈습니다. 이제 김정은 위원장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이 과제입니다. 지금 북한의 최고 관심사는 경제개발입니다. 그러나 핵을 가진 한 국제적인 제재 때문에 경제 개발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경제 개발을 위해 핵을 포기할 것이냐? 그것은 자기들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이어서 이것도 안 됩니다. 이것이 북한의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정책이 나온 것입니다.

북한은 안보만 보장이 된다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작년까지는 절대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포기한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제제를 풀겠다고 합니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면 핵을 폐기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시 갈등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조금 나누어서 한 발씩 한 발씩 가자’ 이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아니다, 한꺼번에 완전히 포기해라’고 합니다. 큰 틀에서는 안보를 보장해주고 핵을 폐기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둘 사이에서는 합의를 했지만, 구체적인 것에서는 갈등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 이것이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합의를 봤기 때문에 저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갈등이 있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으로 봅니다.

제가 볼 때 가장 좋은 것은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을 북한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출발과 결과를 좀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출발은 핵확산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즉 위험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핵물질을 더 이상 생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핵기술을 더 이상 개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제 3국으로 이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까지 올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폐기해야 합니다. 이러면 일단 핵 위험은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북한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핵을 완전히 없애라’ 하는 것은 북한이 안전 보장을 우선시 요구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안전 보장은 1~2년 만에 될 수도 없고 서류에 사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제 성장도 1~2년에 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야 조금씩 진전됩니다.

그래서 먼저 핵확산 방지를 약속하고, 그것이 확인되면 제제를 풀어주고, 대신에 보상은 하지 않고요. 그러고 나서 시간을 두고 핵물질을 폐기하는 순서만큼 양보하는 것이죠. 위험을 막는 것은 2년 안에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북한은 지금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한꺼번에 다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상황을 말씀드리고요. 미국 안에서의 여론을 보면 대통령은 풀려고 하고, 전문가들은 안 될 거라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회도 반대가 많고요. 민주당 쪽은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것은 안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반대 입장인 것 같고요. 미국 전체 일반 여론은 찬성과 반대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같은 민주사회가 아닙니다.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왕조 사회입니다. 최고 지도자와 협의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키입니다. 탑다운 방식이 오히려 맞습니다. 일반적인 나라 사이에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합의를 하고 그다음에 최고지도자가 사인을 하는 이런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북한 문제를 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난 20~30년 간 아무런 문제가 풀리지 않은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방식은 북한이 하는 방식에 맞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 하더라도 제가 생각할 때 북한 정책은 조금 지지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해결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능력이 아니라 탑다운 방식이라는 것이 북한 방식에 맞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상황은 대충 이렇습니다. 이 정도로 말씀드리고 다시 질문을 받겠습니다.”

다음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현재 북미 간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자 군인들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나온 것보다 훨씬 더 큰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3개의 질문을 더 받고 대화를 마치면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들 한국말 배우기 어렵죠? 특히 어른을 존중하는 존칭어가 배우기 어렵습니다. 영어에는 존칭어가 별로 없죠. 그래도 여러분들이 한국에 가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언어를 좀 알아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 와도 언어를 모르니까 미국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한다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꼭 직업적으로 가 아니라도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제력이 미국에 비해서는 아주 작지만 세계 12위입니다. 통일이 되면 한 7위 정도로 프랑스, 영국, 이태리 정도 수준으로 10년~20년 안에 G7, G8 정도는 될 것입니다. 요즘 한국은 한류라고 해서 아시아에서는 그 문화가 아주 창의적입니다. 그래서 꼭 직업적으로 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인생에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제가 하는 즉문즉설이 앞으로 유명해질 거예요.(청중 웃음) 이것을 알아들으려면 한국어를 해야 합니다. 제가 60이 넘어서 영어를 배우기도 힘들고, 여러분들이 스님의 즉문즉설을 알아듣기 위해서라도 한국말을 알아야 합니다. 알았죠?"

"네."

"한국은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오래된 전통문화도 많고 아름다운 전통 템플도 많습니다. 인연이 되면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참가한 군인 학생들이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화기애애하고 즐겁고 유쾌한 강연을 마쳤습니다. 학장님도 끝으로 "귀한 시간을 내서 국방부 언어학교까지 방문한 스님과 정토회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말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늘 강연장은 마치 콘서트장처럼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어제 담마 범 템플과 오늘 국방부 언어학교처럼 젊은 층들의 가볍고 밝은 분위기가 스님의 웃음 코드와 맞아떨어지니 강연장에 큰 웃음이 터지고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젊은 사병들이라서 그런지 스님과 호흡이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 SBS 프로그램 ‘집사부 일체’에서도 스님과 청년들 간의 호흡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었는데 미국에서도 그런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한반도 관련 답변에서는 스님의 지혜가 빛을 발해 모두들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많은 학생들과 한국어과 교수님들이 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VIP로 초대받아온 타 학과 학장님도 스님께 ‘스님의 북한 관련 말씀에 깊이 동의를 한다’고 하며 인사를 했습니다. 한국어학과 교수님들도 잔칫날처럼 즐거워했고 스님이 매년 찾아주실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학장님과 강인경 교수님이 학교 근처 풍광이 아주 좋다고 안내를 해주겠다고 하여 차로 한 바퀴 돌고 산호세로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근처 풍경이 좋아 관광객이 많았습니다. 한국 동해안과 비슷한 풍경이고 날씨가 일 년 내내 좋아서 많은 분들이 찾는 것 같습니다.

주차장에서 스님은 두 분에게 사인한 책 ‘행복’을 감사의 선물로 드리고 산호세로 출발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법당에 도착하니 조영미 총무님과 법당 회원들이 저녁 식사를 준비해놓고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법당에 참배를 하고 모두들 1년 만에 법당을 찾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하며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특히 고옥희 님은 갓 태어난 둘째를 안고 와서 모두 축하하기도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스님은 잠시 업무를 본 후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회원들과 둘러앉아 저녁 식사 준비해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여러 가지 주제로 말씀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수행을 당부하였습니다.

“수행의 가장 핵심은 자립하는 것입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자기 삶을 사는 것은 생명의 원리입니다. 여러분은 괴로울 일이 없어야 합니다. 잠시 괴롭다 하더라도 알아차려야 하고 곧 원래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괴로울 일은 없어야 합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수행이 절만 하고 참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자기 마음에서 시비와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이런 시비와 갈등이 나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입니다. 이것에 조금 도움이 되는 것이 명상이고 절입니다.

일상에서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일상에서 알아차림이 잘 안되니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연습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오랜 습관이 들어있기 때문에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것을 부처님은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해라’ 고 했습니다.

이번에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8번 강연을 하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4번 강연을 했는데, 미국인들이 불교를 신비주의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수행을 잘 모르지만 수요는 굉장히 많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수행의 관점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미국인들이 자꾸 방법론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명상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데, 수행을 학습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것을 쥐고 자꾸 어떻게 놓느냐고 하는데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수행은 결국에는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뜰 것입니다. 스님 말이 맞는지는 20~30년이 지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진 잘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1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세계 종교 의회에 스님이 일주일 간 참석할 예정이라 제이슨 님, 국제국 활동가들과 일정을 논의했습니다. 미네아폴리스, 콜럼버스, 워싱턴 디씨, 샌디에이고, 몬트레이에서 통역을 위해 수고해 준 제이슨 님은 워싱턴 디씨로 출발하기 위해 스님에게 인사를 하고 11월에 만나자고 하면서 떠났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격려하며 11월에 토론토에서 보자고 하며 출국심사대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한국 시간으로 9월 27일 새벽 5시 경에 서울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일정은 한국에서 소식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스님의 해외 일정은 정토회 해외사무국 주관으로 지구별로 총 4번의 정토행자 대회와 총 4번의 교민 대상 즉문즉설 강연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국제국이 준비한 7회의 영어 통역 강연과 1회의 한반도 평화 관련 미국인 대담회, 그리고 3일 간의 한반도 평화 관련 워싱턴 디씨 일정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영어 통역 강연은 주로 스님을 초청한 학교나 단체에서 준비하였는데 이번에는 해당 지역의 정토행자들이 국제국과 함께 직접 강연을 준비하거나 초청 학교와 단체가 국제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미국인들 사이에 수행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것과 스님의 가르침이 미국인들에게 충분히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확실히 느낀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수행의 중심을 잡고 청정과 화합의 정토법당을 만들어 간다면 이것이 중심이 되어 2차 만일결사에는 외국인 전법을 널리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김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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