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미 서부지구 행자 대회를 마치고 김명례 LA 정토회 대표님 댁으로 왔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부터 각자 숙소에서 아침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맑고 습하지 않으며 뽀송뽀송한 전형적인 LA 날씨입니다.

오늘은 숙소에서 남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샌디에이고로 이동하여 샌디에이고 대학교 (University of San Diego)와 미국인 불교인들이 운영하는 Dharma Bum Temple(담마 범 템플)에서 영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을 합니다. 오전 7시 김명례 님과 배염 님이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출발하였습니다. 여유롭게 움직이기 위해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고속도로 대신 해안도로를 타고 이동해 보기로 했습니다. 태평양을 오른쪽으로 끼고 내려가는 해안도로는 아주 예쁩니다. 중간에 바닷가에 들러 잠깐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샌디에이고 대학교는 2015년 기준 약 8,300명 정도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으며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립대학입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와 더불어 샌디에이고에서 가장 큰 대학으로 캠퍼스가 아주 아름답습니다.

샌디에이고 대학교 교정에서 강연장으로 걸어가는 스님▲ 샌디에이고 대학교 교정에서 강연장으로 걸어가는 스님

오늘 강연이 열리는 Humanities Center(인문학 센터)가 있는 Serra Hall에 들어가자 강연장 입구에 인문학 센터에서 준비한 강연 홍보물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Humanities Center가 있는 Serra Hall, 샌디에이고 대학교▲ Humanities Center가 있는 Serra Hall, 샌디에이고 대학교

강연 홍보물▲ 강연 홍보물

Serra Hall로 들어서자 이 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번 강연을 위해 스님을 초청한 렉시 스님이 법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스님은 렉시스님께 감사를 표하며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렉시 스님은 60년대 말 티베트에서 출가하였지만 티베트 불교에는 비구니 제도가 없어 70년대 초에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니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렉시 스님은 이미 그때 30세였고 현재 74세라고 합니다. 스님이 인도에서 하는 활동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고 하시며 훌륭한 활동들을 존경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운영하고 있는 티베트 넌(Nun-여성 출가자)들을 위한 절과 인도 여학생들을 위한 학교도 소개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렉시 스님과 만나 뵙게 되어 매우 반갑게 생각하며 앞으로 인도에서 함께 활동하는 기회를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 되어오자 한 두 명씩 강연 장소에 들어왔습니다. 먼저 렉시 스님이 스님을 소개한 뒤 스님이 앞으로 나가 인사하고 참가자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렉시 스님은 티베트식으로 스님을 환영하고자 한다며 하얀 천을 스님께 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점심은 드셨는지요? (모두 웃음)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마음의 음식도 필요합니다. 오늘은 우리 마음의 음식을 먹어보려 합니다. 건강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힘이 세고 강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아프지 않은 게 건강한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즐거움입니까? 즐거움에는 항상 괴로움이 따릅니다. 둘은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분리할 방법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윤회라고 하셨습니다. 괴로움을 멈추고 싶다면 즐거움도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즐거움을 놓지 않기 때문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추구한 것은 열반의 상태,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괴로움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몸을 돌보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돌보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원하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개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단지 우리에게 5개의 교훈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죽이거나 폭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훔치거나 뺏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희롱이나 폭력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지만 말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거짓말이나 욕설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에 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줄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술에 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다섯 가지 교훈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관계없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다섯 가지 교훈에 따라 생활한다면, 그들의 삶에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길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수행자로서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들뜨게 하지 마십시오.
둘째, 사치 없이 검소하게 사십시오.
셋째,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십시오.

이러한 교훈을 지키면 우리는 수행자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간단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겪는 고통을 없애는 방법입니다.

저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빈곤퇴치, 환경보호, 평화운동과 같은 많은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도 대화할 수 있습니다. 누가 먼저 질문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대화의 서두를 열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 강연은 점심시간에 이루어졌지만 약 60여 명이 참석하여 6명이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1) Hello. The biggest thing that causes suffering for me is that my daughter will have identity crisis upon hearing what I would share with you. I would like to hear your viewpoint because currently I only have fear that it would add trauma to her life. My daughter’s 16 years old. I got divorced 4 years ago with 2 daughters 8 years apart. My oldest looks white, and my youngest looks just like her dad. They were both raised by the same father. The last 4 years, my daughter has gone through a lot with people judging her. My lie is that your grandfather is half white. It’s true but exaggerated truth. She doesn’t know that she has a biological father out there. I don’t know how to tell her and how to express her that it’s not a lie. Her life was never a lie. 안녕하세요. 제 가장 큰 괴로움은 큰 딸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 같아 괴롭습니다. 제가 큰 딸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큰 딸이 너무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아 저는 두렵기만 합니다.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큰 딸은 지금 16살입니다. 저는 4년 전에 이혼을 했고 8살 차이 나는 딸이 둘 있습니다. 큰 딸은 백인같이 생겼고 작은 딸은 아빠와 닮았습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두 딸을 키웠습니다. 지난 4년간 큰 딸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큰 딸에게 “네 할아버지는 백인 혼혈이었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실이긴 하지만 좀 과장을 했습니다. 큰 딸은 생물학적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딸에게 거짓말을 했지만 그녀의 삶이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 Obviously you have taken actions that require a lot of resources. Can you tell us about a moment when it didn’t feel like all the resources are in place to make successful outcome and get moving forward? 자원이 필요한 활동을 많이 하십니다.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신 적이 있으실 텐데 그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3) Your story leads to my question. There seems to be a difference between the dictum and the practice. The dictum is to avoid suffering. The first case when you run into someone suffering, you ran away, and you realized it didn’t work. The next time you might be sympathetic about the suffering but it also was not really participating because you were above looking down someone. It’s only when you feel the suffering they feel that you truly understand. You have to suffer yourself in order to understand the suffering. Therefore in a way it contradicts the dictum to avoid the suffering because on a higher level you have to suffer. Whether you express suffering as a poet, you write a poem and understand the suffering, whether you do it as a peace worker and understand the people who are suffering, it seems to be that you need to transcend the avoidance of suffering to a higher level you then become a compassionate person. Could you explain that contradiction and how that works into a higher level not just avoiding? 스님의 이야기가 제 질문과 연결됩니다. 금언과 수행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금언에 의하면 괴로움을 피해야 합니다. 스님께서 처음 고통을 겪는 사람을 맞닥뜨렸을 때 피했지만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었습니다. 다음번에는 동정심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위에서 그 사람을 내려다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참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괴로움을 피하기보다는 직접 괴로움을 경험해봐야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괴로움을 피하라는 금언과 모순이 됩니다. 다른 이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직접 느껴봐야 합니다. 시인으로써 괴로움을 시로 표현할 때 또는 평화 활동가로써 일을 할 때 괴로움을 이해하려면 괴로움을 경험해 봐야 합니다. 그래야 더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을 피하라고 하지만 더 높은 차원의 이해를 위해서는 괴로움을 경험해봐야 하는데 그 모순점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4) How does the meditation help social activism? 명상이 사회운동에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5) Earlier, you were talking about how not to cause others suffering and not to hurt others. What would you say about when you have to lie someone to not cause them suffering? 스님께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해를 끼치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6) Recently I was at the Myanmar and Bangladeshi border, where the Rohingya are undergoing genocide. Many of the attackers include Buddhist monk and Buddhist soldiers. As peace activists, volunteers, concerned citizens, and Buddhists what can we do to improve that situation? 최근에 미얀마 방글라데시 국경을 방문을 했는데 그곳에서는 로힝야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로힝야인들을 공격하는 사람 중에는 미얀마의 스님과 불자 군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화 운동가로서, 봉사자로서,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불자로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중에서 두 명의 질문과 스님의 대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arlier, you were talking about how not to cause others suffering and not to hurt others. What would you say about when you have to lie to someone to not cause them suffering? 스님께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해를 끼치지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합니다. 돈을 갚기 싫으면 다음번에는 돈을 빌리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과보가 따릅니다."

"Then, would you say that you always have to tell the truth even if it would cause that person to suffer?"
"그렇다면 상대를 고통에 빠뜨리더라도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까 먼저 질문한 여성은 어린 딸에게 친아빠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쁜 의도에서가 아니라 딸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나 딸이 16살 때 그 거짓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아무런 과보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딸이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고 항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예견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진실하면 더 낫지만 실현 불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거짓말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마시고 과보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삶이 소중하기 때문에 살해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호랑이가 우리 어머니를 죽였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서 제가 호랑이를 죽인다면 그것은 복수를 위한 것입니다. 죽은 어머니와 살아있는 호랑이 사이에서 호랑이의 삶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다른 할머니를 죽이려고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할머니와 호랑이 중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할머니의 삶을 선택하고 호랑이를 죽여야 합니다. 이것은 복수의 행위가 아니라 할머니의 생명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호랑이를 죽인 것은 옳은 일인가요? 아닙니다. 과보가 따릅니다.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를 죽인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호랑이를 죽였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 하더라도 할머니의 생명을 구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정확하게 판단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이해하기가 약간 어렵습니까? 이것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내가 물에 빠졌을 때, 둘 다 구할 수 있지만 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만 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자신을 살려야 합니다.”

선과 악에 대한 질문에 참가들의 눈이 반짝반짝입니다. 처음에는 갸우뚱하기도 했는데 스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이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의 선악 개념만 접하다 보니 늘 선악에 대해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데 스님의 위와 같은 말씀이 신선한 것 같습니다.

이어 마지막에 남자 분이 최근 로힝야 난민 문제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Recently I was at the Myanmar and Bangladeshi border, where the Rohingya are undergoing genocide. Many of the attackers include Buddhist monk and Buddhist soldiers. As peace activists, volunteers, concerned citizens, and Buddhists what can we do to improve that situation? 최근에 미얀마 방글라데시 국경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는 로힝야인들에 대해 집단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로힝야인들을 공격하는 사람 중에는 미얀마의 스님과 불자 군인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화 운동가로서, 봉사자로서,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불자로서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불자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상황을 조금 완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봤습니다. 방글라데시에 우리 멤버들이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도 했습니다. 이 상황이 근원적으로 해결되려면 미얀마 측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불교 지도자들과 회의를 하면서 로힝야인들이 미얀마로 돌아올 때 정착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불교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그 아이디어를 쉽게 실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민족과 종교 갈등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식민지였던 미얀마의 민족주의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영국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을 할 때 로힝야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미얀마 국민들에게 많은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무슬림에 대해서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13세기에 인도의 무슬림 왕국은 불자들을 학살했는데 그 피해의식이 현실을 왜곡하고 그들의 감각을 과장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을 원주민이라 하지 않고 미얀마에 불법 체류하는 방글라데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로힝야족을 소수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벵갈리라고 부르며 외국인으로 취급합니다. 미얀마 원주민으로 인정받게 된다면 중국이 이 지역에 송유관을 개발하게 되고, 그래서 이와 관련된 경제적 문제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민족적, 종교적 갈등 뿐만 아니라 경제적 문제도 섞여 있습니다.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웅산 수지 여사도 국민의 저항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치적 권리를 잃을 수 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방글라데시 쪽에 있는 난민을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금 난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취사 문제입니다. 산림이 점점 황폐화되어집니다. 어떤 소녀들은 땔감을 모으기 위해 저 멀리 떨어진 숲 속으로 갈 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해서 큰 고통을 겪습니다. 산림파괴로 인해 비가 오면 산사태가 발생합니다. WFP(세계 식량기구)와 논의할 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품목은 조리용 가스버너(가스레인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사용하는 데는 약간의 안전 문제가 있지만 다른 것에 비한다면 훨씬 덜 위험합니다. 그래서 난민들에게 휴대용 가스 버너를 공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난민이 70-9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한 가구당 4-5명으로 계산하면 18만 가구가 됩니다. 따라서 최소 18만 개의 가스버너가 필요합니다. 18만 개의 가스버너를 우리 자력만으로는 지원하기는 힘들어서, KOICA에 도움을 요청해서 얼마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단체에서는 총 10만 개의 가스버너를 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스 버너는 우리가 지원하고, 가스는 WFP에서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워싱턴 D.C. 를 방문했을 때 WFP 워싱턴 소장이 부족한 8만 개의 가스버너를 미국 USAID(국제개발처)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얘기가 잘 끝나 추가로 8만 개의 가스 버너를 로힝야 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고난을 겪고 있어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자로서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불교는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릅니다. 스리랑카에서도 타밀족을 탄압했습니다. 거기에는 종교 갈등보다 민족 갈등이 큽니다. 이전에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민족적 차별이 종교적 차이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미국인들은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그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이렇게 로힝야 문제에 대한 답변을 마쳤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자 스님은 “시간이 다 됐다고 하네요. 오늘 답은 좀 길었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대화에서는 보통 간단한 답변을 하므로 다음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짧은 답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라고 하면서 오늘 샌디에이고 대학교에서의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을 마치자 참가자들이 스님께 큰 박수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앞으로 나와 스님과 인사하였습니다. 스님은 초청해주신 렉시 스님과 인문학 센터의 Brian Clack(브라이언 클랙) 소장님에게 사인한 책을 선물로 드리며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장에서 첫 질문자는 처음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차츰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밝게 웃으면서 감사하다고 하며 웃음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스님께 질문드리기 위해 직장에도 하루 휴가를 내고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스님이 ‘본인에게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에 자책하지 말라’는 말을 하자 밝게 웃으면서 대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표정을 보니 정말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듯하여 기뻤습니다.

강연에 참가한 분들은 모두 다 진지하게 스님의 대화를 경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메모하는 분들도 많았으며 적은 인원이었지만 사뭇 진지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백인 여성분께 오늘 스님과의 대화 시간이 어땠는지 질문하니 ‘너무 좋았고 굉장히 훌륭한 가르침이었고, 특히 스님께서 인도에서 구호활동을 하게 된 배경이 흥미로웠다’ 고 했습니다. 스님이 또 방문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한 청년은 대추를 달게 내놓은 것을 가져와서 스님과 일행들에게 대접했습니다.

렉시 스님도 스님의 방문을 또 기다리겠다고 하자 스님은 1월에 인도에서 만나자고 하며 오늘 행사에 대해 감사인사를 전하고 행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 날 저녁에 렉시 스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교수진과 학생들 모두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또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강연 후 캠퍼스에서 참여자와 얘기 나누는 모습▲ 강연 후 캠퍼스에서 참여자와 얘기 나누는 모습

이어서 다음 편에서는 저녁시간에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Dharma Bum Temple에서 진행된 영어 통역 즉문즉설 강연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순영,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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