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북미 동부/중남미 지구(이하 북미 동부 지구) 해외 정토행자 대회 이틀째 날이 밝았습니다. 스님과 정토행자들은 일제히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 미주 정토회관에서 천일결사 기도를 마쳤습니다. 아침 공양을 마친 후 7시 30분부터는 모둠활동으로 해외 각 법당의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였습니다. 3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각 지역 해외 법당의 현황과 개선된 후 좋은 점, 문제점 및 개선방안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외 법당 당면과제와 극복 방안에 대해 발표하는 행자님들▲ 해외 법당 당면과제와 극복 방안에 대해 발표하는 행자님들

각 해외 법당의 다양한 사례와 어려움, 당면 과제 등을 들으며 서로 무언의 공감과 위로가 되었고, 머리를 맞대며 극복 방안에 대해 발표한 후 스님의 정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중 공통적으로 많이 제기된 업무과중에 대한 활동가들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혼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 명이 일을 하려면 협업을 해야 하니 일을 나눠줘야 됩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그 일에 대한 최종 책임을 져야 돼요. 일을 나눠주고 그걸 다시 통합하는 것이 바로 경영이에요.

경영의 핵심은 일 나눠주기와 통합하기, 이 두 가지를 잘해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 대부분 이 경영능력이 없기 때문에 일을 나눠줄 줄도 모르고, 통합할 줄도 모르는 거예요. 인간 심리가 어떤 지 한번 보세요. 여기 절에 찾아오는 사람은 왜 찾아올까? 절에 도움을 주려고 찾아올까요? 아니면 도움을 얻으려고 찾아올까요? 도움을 받으려고 찾아옵니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서 오든지, 뭔가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찾아오니까. 첫째 그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줘야 돼요. 유학생 같으면 밥을 한 그릇 따뜻이 해준다. 이것도 도움을 주는 거죠. 뭔가 도움을 줘야 일단 여기에 올 필요성을 느껴요. 그런데 계속 도움만 주면 나중에 안 나와요. 내가 뭐 잘못했지? 내가 섭섭하게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전화해서 ‘왜 안 나와요?’라고 물으면, ‘저 필요 없잖아요?’ ‘제가 짐만 되잖아요?’라고 합니다.’

인간은 도움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 반면에, 도움을 계속 받으면 심리가 위축됩니다. 인간의 심리에는 뭔가 기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남에게 도움을 주면 어때요? 자기도 모르게 뿌듯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이 뿌듯해지면 어깨가 이렇게 딱 펴지고 고개도 들리죠.

그런데 도움을 자꾸 받으면 심리가 위축이 되고 어깨가 굽혀지고 고개가 숙여집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한테는 내가 기를 못 폅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로 한 반면에 사람이 기여를 하도록 해야 돼요. 여러분들이 100의 도움을 주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80, 70으로 낮추면서 이 사람에게 약간의 기여의 기회를 줘야 돼요. 그 기여의 기회를 줄 때는 시키면 안 되고 같이 해야 합니다. 밥을 가져와서 퍼서 딱 차려주다가, 나중에는 밥을 들고 오면서, ‘아이고, 국 좀 들어줄래요?’라든지, 방석을 깔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방석 좀 같이 깔아줄래요?’ 이런 식으로 같이 하는 거예요.

마치 어린아이하고 같습니다. 아이들 교육의 가장 큰 핵심은 같이 따라 하면서 배우기예요. 이렇게 업무를 조금씩 함께해가면서 기여를 하게 해야 돼요. 예를 들어, 평소에 그냥 법문만 듣다가 오늘 몸이 안 좋다고 하면 안 나가고 싶은 마음에 법회에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내가 법회에서 영상 트는 일을 맡았다면 오늘 내가 몸이 안 좋아도, 영상을 틀 사람이 없어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일이 많아서도 법당에 안 나오지만, 일이 없으면 안 나올 확률이 더 높아져요. 법당에 적절한 자기 임무, 역할이 있어야 법당에 나와서 고개 들고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가 뭐든지 다 해주고 딴 사람 배려해주면 사람이 모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다 떨어져 나가 버려요. 그래서 항상 어린아이처럼 어릴 때는 도와주고 크면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가르쳐서 자립이 되도록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반찬을 하나 해오든지, 방석을 맡아서 깔든지, 이렇게 기여를 하면 그 성과도 나눠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다 같이 모여 법당에 필요한 김치를 담갔는데 스님이 총무한테만 칭찬을 하면 기여한 사람들이 기분이 약간 나빠지는 거예요. ‘총무가 얼굴이고, 우리는 그냥 일만 하는 손발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나중에는 돌려주는 것, 회향을 해야 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네 분이 함께 김치를 담갔습니다’ 이렇게 칭찬을 나누어 줘야 합니다. 그러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임도 넘겨줘야 합니다. 김치 담그는 책임을 줘야 돼요. 처음부터 김치 담그는 책임을 주면 부담스러워서 안 하려고 해요. 그럴 때는 이제 김치 담그는 책임은 내가 지고, 여러분은 같이 하자, 이렇게 하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 일은 이제 네가 맡아서 해라’라고 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권한이에요. 책임은 약간 무겁지만, 권한은 사람들이 다 갖고 싶어 하거든요. 그래서 책임을 이렇게 넘겨줘야 돼요. 이런 과정을 적절하게 해야 정착이 잘 돼요. 너무 빨리하면 부담이 돼서 나가떨어지고, 너무 늦게 하면 자기는 여기에 필요 없다고 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경영능력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경영하는 사람이 항상 주위를 살피면서 적절하게 일을 나누는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 힘들어서 얘기하러 왔는데 오자마자 자신의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일만 시키면 떨어지겠죠. 그러니까 처음 오는 사람들은 친절하게 받아들여주고 잘 배려해주고, 우리가 이런 면이 부족하니 좀 더 잘 해야 합니다.

조금 다니는 사람에게는 일 나누기나 기여도를 높이도록 배려하는 경영을 해야 되는데 경영정신이 없기 때문에 다시 떨어지는 거예요. 이런 걸 잘 배려해서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다들 어려워하고 있었던 업무과중 문제에 대하여 경영정신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사안을 해결할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불대 개편안 강의 및 시연이 있었습니다.

불교대학 개편 취지를 설명하시는 선주 법사님▲ 불교대학 개편 취지를 설명하시는 선주 법사님

새롭게 개편되는 불교대학에 관한 선주 법사님의 강의 설명을 듣고, 모둠별로 모여 시연이 있었습니다. 새롭게 참여형 방식으로 진행되는 불교대학의 시연을 해보며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습니다. 참여형으로 바뀌고, 일상에서 매일 수행할 과제와 나누기가 주어지는 개편 내용을 보며 획기적이다, 불교대학을 다시 듣고 싶다 등 수행을 통한 삶의 변화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개편된 불교대학을 모둠별로 직접 시연해 보는 행자님들▲ 개편된 불교대학을 모둠별로 직접 시연해 보는 행자님들

이후 간단한 점심공양을 마치고 스님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10개의 차에 나누어 타고 회관에서 16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Great Falls Park로 향하였습니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에 설레는 하이킹이 시작됐습니다. 쭉쭉 뻗은 푸른 나무와 오밀조밀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길 따라 행자들의 밝은 웃음과 수다가 피어났고 스님도 함께 담소를 나누시며 여정을 함께 하셨습니다.

중간 세찬 물줄기의 폭포에서 단체사진도 찍고 땀방울이 그렁그렁 맺힌 지점에서 잠시 멈춰 도넛과 커피를 나누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3시간여의 하이킹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코 끝에 구수한 저녁 공양 내음이 전해졌습니다.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Great Falls Park 계곡에서▲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Great Falls Park 계곡에서

저녁예불 이후에 활동가들의 법당 내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한 즉문즉설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중에 법당에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거나 정착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활동가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여러분들 저도 옛날에 똑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아마 그때의 제 심정과 같을 것 같아요. 이 좋은 법회에 사람들이 많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세상이 그렇지 않아요. 또 그렇지 않은 것이 지나고 보면 꼭 나쁜 것도 아니에요. 그때 처음에 열명이 와서 들었든, 한 명이 와서 들었든 지금 와서 보면 큰 차이가 없어요. 처음에 한 명이 아니라 열 명이 왔으면 지금쯤 정토회가 열 배 정도 더 커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을 세우고 하는 게 내 수행이 돼요. 내가 정말 원이 크지 않으면 하다가 그만두게 되거든요. 보왕삼매론에도 나오듯이 일이 뜻대로 안 되어야 원이 커져요.

원이 작으면 욕심으로 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서 되면 하고 안되면 포기한단 말이에요. 그러나 원이 크면 되고 안되고 에 별로 구애를 안 받아요. 그래서 원이 더 굳건해진다라는 뜻이 있어요. 그래서 첫째, 내 공부에 도움이 되고, 둘째, 이렇게 귀한 것은 정말 이삭 줍듯이 하나 하나해야 장기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탄탄해집니다. 쉽게 광고를 내서 모이거나 스님 왔다고 모이거나 하면 이 사람들은 스님 가버리면 다 떠나버릴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오히려 차분하게, 그러나 최선을 다하되 결과를 너무 기대하면 안 돼요.

제가 인도에 불교를 새로 일으키고자 하는 원이 있어요. 인도의 전설에도 불법이 2,500년 만에 인도에 다시 돌아온다 하는 이야기가 있듯, 제가 인도로 돌아가서 불법을 전파하겠다고 하면 흔히 제가 그곳에서 불교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인도에 들어간 지 20년이 넘는 동안 불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부다가야에는 외국인들은 서로 와서 절을 짓고 성지 순례하고 기도하는데 정작 그 동네에 사는 인도 사람은 불교신자가 거의 없어요. 다 힌두교도들이에요. 성지순례 오는 불교인들 상대로 장사만 하죠. 그래서 제가 어느 날 물어봤어요. ‘외국인들까지 불교가 좋다고 당신의 나라까지 찾아오는데, 당신들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이곳에 살면서 왜 불교를 공부 안 하느냐’ 했더니 ‘불교가 뭐가 좋은데요?’라고 오히려 되묻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불교는 지혜와 자비라고 설명을 하면서 자비란 ‘어려운 사람들을 내 몸같이 생각하고 돕는 것이다’라고 했더니, 대뜸 자기들은 그런 사람을 못 봤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몇십 년 장사하면서 세계 각국의 불교인들을 다 봤지만, 당신이 말하는 그런 자비심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봤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게 무슨 소리냐’ 고 했더니, 그 외국인들은 여기 길거리에 사람이 굶어 죽든지,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든지, 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전부 탑에 가서 자기네들 식으로 절하고, 절 지어서 자기들 순례객들 먹고 자도록 하고, 인도 사람들은 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다 자기들 필요에 의해서 여기 와서 행사를 하고 하지, 우리를 위해서 관심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그 사람들 상대로 장사만 하면 되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 사람들 종교를 따라가야 하느냐, 그 사람들이 자기들 볼일 보듯이 우리도 우리 볼일만 보면 되는 거 아니냐. 그 사람들 나름의 신앙이 있듯이 우리도 수천 년 내려온 힌두교라는 좋은 신앙이 있는데 그걸 왜 바꿔야 하느냐는 거죠.

제가 그 얘기에 약간 충격을 받았어요. 그 사람 얘기가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아! 지금 여기 인도에는 법을 얘기할 때가 아니구나.. 말로 법을 얘기할 때가 아니고, 지금 이곳에는 뭔가 이 사람들이 감동할 수 있는 실천적 행위가 필요하구나.’라고 느꼈어요.

제가 이런 문제의식과, 캘커타에서 구걸하는 여인을 외면했던 내 자신의 모습, 이런 걸 생각하며 마침 부처님이 6년 고행한 둥게스와리에 갔는데, 그곳 아이들이 구걸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때 제가 학교를 시작하게 된 거였어요. 학교를 운영하면서 제가 지금까지 거기 있는 동네 사람에게나 학생들에게 불교를 믿으라거나 불교에 대해 강의한 적이 20년간 한 번도 없었어요.

초기에 자원봉사 선생님들을 모았는데, 상카시아의 석가족들 청년들이 인연이 되어서 여기 와서 선생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불교신자여서 아이들에게 인도식 삼귀의 염불을 가르친 건 있었어요. 그러나 그 삼귀의 외에는 어떤 불교적인 것도 아이들에게 가르친 적이 없었어요.

많은 한국 불교인들이 저에게 와서 ‘왜 아이들에게 불교를 안 가르치느냐, 왜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안 가르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건 과거에 우리도 겪었잖아요. 서양사람들이 와서 우리에게 ‘제사 지내지 마라, 기독교 믿어라’ 학교 지어주는 대신 그렇게 했잖아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종교, 그들의 문화는 그들이 하고 나는 문맹 퇴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애들이 천민들이다 보니 늘 자신감이 없이 위축되어 있는 거예요. 인도에서 태권도를 배운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이 자신감이 있어요. 그래서 태권도가 우리나라 것이어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거예요. 한국 태권도 선생이 아니라 인도 태권도 선생이 와서 가르치도록 했어요.

그리고 요즘 인도에서도 한류가 불어서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굉장한 선망의 대상이에요. 그렇다 보니 대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와서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한국 사람이라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인도 사람들의 요구인 거예요. 그러면 우리 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도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어요.

그간 20년 동안, 매년 제가 가서 선생들, 스텝들과 토론할 때면 나오는 얘기들이 있어요. 늘 월급 더 달라, 복지비 더 달라 이런 얘기들이 주로 나와요.

그런데 3년 전에, 저는 여느 때처럼 같은 얘기들이 나오겠거니 하면서 우선 올해 소풍은 어디로 가겠느냐 물었어요. 우리가 매년 캘거타나 라즈길 이런 지역으로 소풍을 가거든요. 그랬더니 대뜸 ‘스님이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 한국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부처님이 6년 동안 고행한 이 곳과 보드가야를 늘 안내하는데, 우리는 여기서 태어나 자랐는데도 그곳이 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도 한국사람들에게 하듯이 이 지역을 자세히 설명해 달라’ 고 하는 거예요. 20년 만에 그런 요청은 처음 받아봤습니다. 그래서 내가 소풍은 안 가도 되냐고 했더니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소풍 가듯이 이 지역을 가면서 쭉 설명을 해줬어요. 설명을 하면서 선생들과 얘기를 해보니 나름대로 자기들 아이디어도 내고했어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궁금했던 것 중 하나를 풀게 되었어요. 가섭 삼 형제 얘기가 나오는데, 우르벨라 가섭, 나디 가섭, 가야 가섭 이에요. 우르벨라 마을에 수행도량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지명을 따서 우르벨라 가섭, 가야는 가야 시내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가야가섭인데 나디 가섭은 나디라는 마을이 그 지역에 없었어요.

나디 가섭 수행터는 강 두 개가 모여서 Y자 모양을 이루며 하나의 강이 되는 지점에 있었거든요. 제가 그 얘길 하면서 나디 마을이 없는데 왜 나디 가섭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중 청년 하나가 ‘스님! 나디는 인도말로 강입니다. 두 강이 모이니까 강가 마을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아! 맞다. 맞다!’ 그래서 그 궁금했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현지 사람이라는 건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질 수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이렇게 강이 흐르면 부처님이 산에서 내려와서 강에서 목욕을 했다고 할 때 지형적으로 보면 강의 산기슭 쪽에서 목욕을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이 목욕하다 쓰러졌다는 곳이 강 저쪽 기슭이에요. 그러면 그것도 궁금하잖아요. 산에서 내려오면 산 쪽에서 목욕을 해야 하는데 왜 강 저쪽에서 목욕을 했을까… 그런데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강물이 우기에는 다 물이 흐르지만, 건기에는 건너편 오른쪽 기슭에만 물이 흐르는 거예요. 완전 건기에는 아예 말라버리고요. 그래서 강은 강이지만 경사가 있는 거예요. 우리 눈에는 잘 안 보이지만 물이 적을 때는 강 저쪽으로만 흐르고, 물이 많을 때는 바로 산 아래쪽까지 물이 차오르는 거예요. 그러니 강 저쪽 기슭에서 목욕을 했다는 것은 부처님이 우기가 아니라 약간 건기 때 목욕을 했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것들이 다 궁금해요. 왜 강 저쪽일까? 왜 나디라는 이름일까? 늘 궁금했는데, 인도 청년들과 얘기하다가 알게 되었어요.

그 날 제가, ‘이 마을이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는 가난한 마을 일지 모르지만, 전 세계 몇 억이나 되는 불교인들에게는 꿈에도 그리는 부처님이 6년 고행하신 성지 부다가야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마을에 태어나고 자란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설명해 주었어요.



▲ 2016년, 인도에서 인도인 청년들과 대화하는 스님

그다음 해에 갔더니, 이젠 법문도 해달라고 해서 법문 듣고 하다가 드디어 작년에는 깨달음의 장을 한 거예요. 힌디어로 통역을 해서 깨달음의 장을 마치고 그 사람들이 전부 천일결사에 입재해서 매일 기도를 하거든요. 그래서 올해 제가 처음으로 이 사람들을 한국에 초대했어요. 한국에 와서 일주일간 돌아보고, 인도에 있는 자신들을 위해서 한국에서 어떻게 모금하는지를 다 보고 갔어요. 전에는 한국 사람이 책임자, 인도 사람은 10년을 일해도 부 책임자였는데 이제는 바꿔서 인도 사람이 팀장이고, 한국사람이 오면 그 밑에 부팀장이 되고, 주로 회계만 한국 사람이 관여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다 인도 사람들이 운영하도록 시스템을 바꿨어요.

이렇게 되는데 94년에 시작했으니 25년 만에 겨우 깨달음의 장 한번 했어요. 그동안 그곳에 돈 투자한 것만 해도 수십억이 될 거예요. 그런데도 제가 불교 얘기 한 번도 안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딴 종교는 조그마한 거 하나 해주고 자신들의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데 왜 스님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제가 ‘불법은 너무 귀한 것입니다. 밥 먹여주고 불교 믿으라는 식으로 값싸게 팔게 아니다. 밥은 그냥 먹여주고, 자기가 정말 불법을 알고 싶다고 할 때 줄 만한 귀한 선물이지, 이것을 밥하고 바꿀 그런 수준의 일이 아니다.’라고 농담으로 얘기를 하거든요. (대중 웃음)

처음으로 진행 된 인도인을 위한 깨달음의 장▲ 처음으로 진행 된 인도인을 위한 깨달음의 장

귀한 것이라서 함부로 전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귀한 것이기 때문에 한 번 듣고 눈을 번쩍 뜨는 사람이 드물다는 뜻입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마 열명에 한 명 정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임하면 괜찮습니다. “

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거의 20년이 넘어 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인도인들과 그제야 법을 설해 주신 스님의 모습을 보며,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더 큰 원을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을 가지고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이 귀하고 좋은 법을 한 분 한 분께 정성스럽게 전하고 간직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이 끝나고, 둘째 날의 마지막인 하이라이트 캠프파이어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다 같이 어우러져 회관 밖 야외에 장작불을 피우고, 간식도 먹으며 서로 마음껏 대화도 나누고, 법당 별 장기자랑으로 노래와 춤도 선보였습니다.

캠프파이어를 위해 장작불을 붙이시는 스님▲ 캠프파이어를 위해 장작불을 붙이시는 스님

신명 나는 장기자랑으로 모두가 즐겁고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진 이후 정리하고 취침을 준비하며 오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선태, 김재명, 김승주, 박승희, 김민석, 이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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