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정토회 행자대학원 12기 졸업식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한 후 졸업식 시간에 맞춰 문경정토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가운데, 졸업식이 열리는 대웅전은 축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후배 행자들의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습니다. 저녁 예불 후 곧바로 삼귀의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행자대학원 12기 서은실, 허유진 행자는 2015년 2월 백일출가 24기로 입재하여, 예비 행자대학원을 거쳐 행자대학원 3년의 과정 동안 열심히 수행 정진하였고, 대중의 도움으로 오늘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학년 1학기와 2학기는 생태적인 삶과 공동체 운영을 목표로 문경에서 농사, 공양을 하며 일수행을 하였고, 2학년 1학기는 NGO 활동을 통한 사회 실천가로서의 지도력 함양을 목표로 콘텐츠사업국에서 스님의 법문을 다양한 형태의 SNS 콘텐츠로 제작 배포하는 업무를 하였고,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에는 기아, 질명, 문맹 퇴치를 통한 국제 구호 활동을 목표로 필리핀JTS에서 학교건축, 연수, 마을개발 사업을 진행했고, 3학년 2학기는 문경에서 보살의 삶과 경영 학습을 통한 지도자 교양을 목표로 각종 정토회 회의와 행사 바라지를 하면서 3년의 활동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3년 동안 행자 교육을 지도해준 묘수법사님이 참석한 대중들 모두를 향해 인사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두 사람을 위해서 지도법사님께서 먼 길을 달려오신 것은 비단 두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졸업과 더불어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모두 감사합니다.”

이후 유수 스님의 축하 말씀이 있은 후 후배인 행자대학원 13기 도반들의 축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무대 스크린에는 지난 3년의 추억이 사진 슬라이드로 잔잔하게 지나갔습니다. 함께 한 도반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촉촉이 적셔졌습니다.

서은실, 허유진 두 행자님은 졸업 소감 발표를 한 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지도법사님께 꽃다발과 선물을 증정했습니다.

이어서 졸업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긴 세월 동안 도망 안 가고 살아 남은 것만 해도 잘한 일” 이라고 격려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인생의 길을 살아갈 건가, 이것을 선택해야 해요. 내가 못났지만 못난 것을 탓하지 않고 그래도 세상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는, 나도 편안하고 세상에도 도움이 되는 길을 갈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잘났다는 것을 움켜쥐고 나 하나 인생도 못 살아서 괴로워하고 헐떡거리고,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인생의 길을 살 건가? 이제는 이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해요.

이 결정을 하기 위해서 무슨 동서양의 깊은 철학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떤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이 결정을 하려면 ‘내가’ 하는 것을 내려놓아야 해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내가 말이야’ 하는 이걸 내려놓지 못하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늘 ‘내가’ 하는 이걸 붙잡고 괴로워하면서 살아요. 이게 꺾이면 좌절과 절망에 빠지고, 심하면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한 15년 된 일이에요. 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인도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문경수련원에서 행자 생활을 하게 된 젊은이가 있었어요. 이 젊은이는 다시 석사과정에 복귀할 거냐, 아니면 문경에 남아서 정토행자의 길을 갈 거냐를 가지고 고민하다가 제게 상담을 신청해서 이 얘기를 하면서 ‘스님께서 정토행자의 길에 비전을 보여주신다면 제가 석사를 그만두고 여기서 행자생활을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본인은 원래 봉사만 좀 하고 가려고 했는데 같이 살다 보니 이런저런 느낀 바가 있어서 이제 대단한 결심을 하고 질문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얘기했죠. ‘비전? 우리는 비전 같은 거 없어. 대중이 농사 지으면 같이 농사짓고, 구호활동 가자면 같이 구호활동 가고, 참선하자면 같이 참선하고, 이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그저 대중들이 세운 목표를 따라 살려면 여기 살아. 그럴 수 있으면 여기 살고, 안 그러면 석사과정에 복귀하는 게 좋겠다.’ 그 젊은이가 남았겠어요, 복귀했겠어요?(모두 웃음) 그래서 며칠 고민하더니 캐나다로 돌아갔어요.

여기 와서 수행을 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제가 왜 이런 식으로 딱 잘라서 말을 할까요? 자기 개인의 어떤 비전을 생각하면 수행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가 무슨 비전이 있겠어요? 브라만, 왕자, 장자의 지위를 버리고 머리 깎고 분소의 걸치고 그저 아침에 남의 집에 가서 밥 조금 얻어먹고 사는 사람에게 무슨 비전 같은 게 있겠어요?

그러니까 오늘 사람들이 말하는 수행이란 건 관점이 잘못 잡힌 거예요. 선방에 앉아서 ‘탁 깨쳐가지고 큰 스님 되겠다, 세상 사람의 존경을 받겠다,’ 그런 욕망을 가지고 수행을 한다는 거예요. ‘내가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 ‘내가 정계에 진출해서 대통령이 되겠다,’ ‘내가 연예계에 진출해서 인기인이 되겠다,’ 이것과 똑같은 관점으로 ‘내가 수행을 해서 깨달아서 큰 스님이 되겠다’ 이러고 앉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불교만 그럴까요? 아니에요. 기독교도 마찬가지고 천주교도 마찬가지예요. 이 세상은 어디를 가나 다 ‘나다’ 하는 이걸 움켜쥐고 사는 거예요. 이걸 버리는 게 수행이에요.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이걸 내려놓으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 움켜쥐고, 이걸 바탕으로 해서 돈이든 지식이든 지위든 뭘 쌓으려고 하고 있어요. 이걸 바탕으로 해서 도를 얻으려고 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라고 의도한 목표가 있어도 한 생을 다 살고 평가를 해보면 자기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가 오히려 반대 방향에 서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이 많은 세월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과제는 뭘까요? 끊임없이 일어나는 ‘내가’라는 이 에고를 내려놓는 게 수행의 과제예요. 그런데 이게 안 내려놔지죠. 그러면 안 내려놔지는 자신도 인정을 해야 해요. 모든 괴로움이라는 게, 번뇌라는 게 이게 안 내려놔져서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이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자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법사가 되기 위한 행자 교육을 할 때 보면 건강이 좋지 않거나, 재능에 문제가 있거나, 성질에 좀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대중이 볼 때는 ‘아이고, 저 사람이 무슨 법사냐?’ 이렇게 볼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란 건 늘 능력 중심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제가 그런 걸 다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기 에고를 좀 내려놓을 준비를 하고 있느냐, 내려놓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느냐, 못 내려놓고 괴로워서 발버둥 치더라도 적어도 이 문제의식을 알고 있느냐를 보기 때문이에요. 그것만 하면 오케이예요. 남이 뭐라 그러든 그건 신경 쓸 것 없어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하는 거고 못 하면 못 하는 거죠.

오늘 두 분 행자님이 행자대학원을 졸업합니다. 3년을 수행하면서 이 부분이 정리가 됐다고 하면 굉장한 것이지만, 이 부분이 정리가 안 됐다고 해도 낙담할 일은 아니에요. 이 정리가 그리 쉬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리 안 된 자기를 알아야 해요, 부족한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부족하다는 게 어떤 능력이나 재능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를 내려놔야 물처럼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세모난 그릇에 담으면 세모가 되는 거예요. 아직도 내 업식에는 좋고 싫고가 남아 있지만 그게 나를 괴롭힐 정도는 아니게 돼요. 농사일이 있으면 농사짓고, 공부할 일 있으면 공부하고, 상담할 일 있으면 상담하고, 남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게 됩니다.

이게 인연을 따라 나툰다는 거예요. 이것이 진정한 자유고 이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수행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 즉 자유와 행복이에요.”

이어서 스님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자기를 내려놓는 것의 중요함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돌이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니다!’ 할 때 딱 돌이켜야 해요. 구지 선사의 얘기 아세요? 스승을 찾아와서 제자로 받아달라고 겨우겨우 사정한 사람에게 첫 번째로 준 일이 솥을 걸라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아홉 번을 발로 밟으니까 아홉 번째는 완전히 폭발해버린 거예요. 그냥 스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였지요. 그런 순간에 그런 자기 마음을 알아차려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옛날에는 다 깨달음을 얻고 출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승려가 되는 의식을 ‘득도’라고 해요. 지금 ‘언제 득도했느냐’라는 말을 ‘언제 스님이 됐느냐’라는 뜻으로 쓰는데, 원래는 득도를 해야 스님이 됐어요. 스님이 되고 나서 저렇게 수행하는 게 아니라 도를 얻어야 스님이 되는 거예요. 득도를 해야, 초견성을 해야, 이 관문을 돌파해야 스님이 될 자격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 이 관문을 못 돌파해서 나가요.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기 해탈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이 장애를 먼저 넘어야 해요.

이 세상에 있는 대중들의 경우에는 부부생활을 한다, 자식을 키운다는 게 바로 이런 속 뒤집어지는 장애예요. 이걸 대부분 뛰어넘는 사람들은 정토회에서 비록 따로 출가를 안 했더라도 법사를 수계합니다. 이미 자기 남편을 데리고, 아내를 데리고, 자식을 데리고 세상살이 속에서 장애를 극복했기 때문이에요.

이 관문을 못 뚫으면 여러분이 여기 와서 사는 게 낭비일 수 있습니다. ‘돈도 못 벌고 재능도 못 살리고 시간낭비다’ 이렇게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관문을 넘어버리면 삶이 그냥 자유로워집니다. 뭘 해도 좋은 거예요. 결혼을 해도 잘 살 수 있고 나가도 잘 살 수 있어요.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게 아니고 해외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에요. 일이 있어서 해외 가라면 해외 가고, 인도 가라면 인도 가서 살고, 필리핀 가라면 필리핀 가서 살고, 아프가니스탄 가라면 아프가니스탄 가서 살고, 혼자 가서 사는 건 어려우니 둘이 같이 가서 하라면 그렇게 살고, 그냥 둘이 사는 거 결혼해서 살라고 하면 결혼해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혼자 사나, 둘이 사나, 결혼해서 사나, 농사를 짓고 사나, 수행을 하나, 어차피 밥 먹고 하는 일이잖아요. 상추를 심으나 고추를 따나 어차피 그 일이에요. 어차피 밥 먹고 하는 일인데 고추 따는 건 죽을 일이고 상추 심는 건 재미있는 일인 게 아니라는 이 말이에요.

그렇게 보면 두 행자는 아직 차례가 멀었습니다.(모두 웃음) 아직 문턱에도 안 왔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턱 앞에도 못 온 것과 문턱을 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예요. 지금 이 에고의 문턱이 높아서 못 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 졸업 선물은 그런 문턱을 넘으라는 것입니다. 거기 걸려가지고 문턱 밖에서 계속 잔머리 굴려봐야 머리만 아프고 고뇌만 생깁니다. 그래서 그 문턱을 넘어 자기를 자유롭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작은 재능이지만 이 세상에 도움이 돼야 합니다. 정토회에서는 누가 무슨 일을 맡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해외에 누가 파견되느냐, 어느 지역을 누가 맡고 있느냐도 법사님들 중에 그걸 표내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이 사람이 맡으면 이 사람이 하고, 저 사람이 맡으면 저 사람이 하고요. 이것이 수행의 힘입니다. 그러니 이 관문을 일단 돌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 다음에 나머지는 필요 없는 게 아니에요. 나머지는 재능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아요. 재능이 없어도 괜찮고요. 있으면 있을수록 이제 세상을 위해서 유용하게 쓰는 거예요. 일은 효율적으로 하면 좋아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성질내고 짜증내고 하면 수행이 안 된 것이지만, 이 관문을 넘어선 후에는 재능이 있으면 좋고 돈이 있으면 좋아요. 돈이 있으면 보시할 수 있어 좋고 좋은 일 할 수 있어서 좋고, 지위가 있어도 좋고요.

그런데 이 관문을 못 넘어서면서 여러분들이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을 해칩니다. 이 세상을 괴롭히는 건 왕이 세상을 괴롭히지, 일반 백성이 괴롭히는 건 별로 없어요. 잘난 사람이 다 세상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관문을 돌파하면 잘나지 못해도 세상에 이롭고,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세상에 유용하게 씁니다. 그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모두 박수)

졸업하는 두 분과 대중들 모두 큰 박수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졸업 법문은 비단 졸업하는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누가 들어도 꼭 되새기면 좋을 감동적인 법문이었습니다.

다음은 졸업하는 두 사람이 지난 3년 동안 공부하면서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한 가지씩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한 분은 “원칙을 이야기하면 못 견딜 때가 많았고, 스스로도 원칙적인 사람이 아니여서, 대중들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어떻게 원칙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다른 한 분은 “몸에 많이 끄달려서 피곤한데,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고 어떻게 영역을 확장하며 살 수 있을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하여 자상한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어서 졸업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졸업생 2명은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스님으로부터 졸업장을 수여 받은 후 꽃 한 송이도 함께 선물로 받았습니다. 대중들도 뜨거운 박수갈채로 졸업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두 분은 그동안 대중들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무사히 졸업하게 되었는데요. 대중들에게 삼배를 올리며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대중들은 기쁜 마음으로 삼배를 받았습니다.

법문과 질의응답을 끝으로 준비된 프로그램을 사회자가 마치려고 하자, 스님께서는 내빈 소개하는 시간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미리 준비되진 않았지만 스님은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 인사하고 축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법사님들, 문경수련원의 상근자 외에도 3년 전 함께 백일출가를 했던 동기들, 농사를 지도해주셨던 조기환, 박정선 부부님이 먼 길을 달려와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 촬영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3년 동안 정성껏 가르침을 준 스님, 법사님과 함께 한 컷을 찍은 후 이어서 축하해주러 온 도반들과 함께, 또 졸업식에 참여한 대중들 모두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내일은 전국대의원회 회의가 문경 정토수련원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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