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전국에 있는 정토법당에서 정토불교대학 입학식이 동시에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서울 서초법당에서 라이브 방송으로 전국에 있는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에게 입학 축하 법문을 했습니다.

114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를 견디느라 모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으셨을 텐데요. 지난주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도 무사히 지나가면서 무더위가 한풀 꺾였고, 오늘은 비까지 내려 날씨가 더욱 선선해졌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서초법당 입구에는 입학식을 안내하는 봉사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생방송으로 스님의 법문이 전국 법당에 전송되기에 실수 없이 진행하기 위해 봉사자들 모두가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입학식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생방송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사회를 맡은 봉사자는 신입생에 대한 배려로 모든 의례를 할 때마다 그 의미를 설명하며 천천히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삼귀의는 깨달은 이, 진리의 가르침, 스승님께 귀의함을 의미하는 의식이고, 반야심경은 불교의 핵심 사상이 함축되어 있어 행사마다 함께 독송하는 경전임을 설명하고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청법가는 가르침을 듣기에 앞서 마음을 열고 스승의 말씀을 듣고 깨닫겠다는 마음의 표현이고, 스승에게 무엇이든 기꺼이 배우겠다는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을 삼배로 표현한다는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법상에 오른 스님은 제일 먼저 환한 웃음과 함께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어서 시종일관 밝은 목소리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입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스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기분 좋음입니다. 기분은 언제 좋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좋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다 자기 뜻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부작용이 따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었을 때 기분이 나빠지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행복에는 반드시 불행이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노력을 해보고, 안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주위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남편, 아내를 잘못 만나서, 부모 잘못 만나서 등의 이야기는 모두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가 이루려는 것이 사람의 힘만으로 되지 않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존재를 상정해서 그 존재에게 도와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빌면 생기지 않던 아기도 생기고, 성적이 좋지 않는데도 대학에 합격하고, 갑자기 장사도 잘 된다고 믿어요. 이런 건 모두 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거나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 세상의 사고방식입니다. 나아가 다른 어떤 존재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종교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둘은 가만히 보면 똑같은 거예요. 그 핵심은 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그러면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기에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릅니다. 즉,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는 괴로움이 따릅니다.

세상을 살아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도 ‘내가 바라면 원하는 대로 될 거야, 혹은 되어야 해.’ 하는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즉, 될 수 없는 것을 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계속 바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도 같이 따릅니다. 이 행과 불행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맞물려서 계속 돌고 도는 것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이 태어나서 죽은 뒤에 때로는 개로 태어나고 때로는 소로 태어나는 것을 윤회라고 생각하지요? 이것은 인도의 힌두교에서 사용하는 윤회의 개념입니다. 부처님이 사용하신 윤회의 의미는 우리의 인생에서 행과 불행,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윤회의 사슬에 묶여 고통을 받고 있다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바뀌지 않아야 하고, 이 행복이 불행으로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행복’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진다면 그것 역시도 지속가능한 행복이겠죠. 그렇지만 이 세상은 원하는 것이 모두 다 이루어질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천당에 가면, 극락에 가면 원하는 것이 뭐든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상상합니다. 죽고 난 다음에라도 지속가능한 행복을 추구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곳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주변의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쳐서 1명을 뽑는데, 10명이 응시를 했다고 해봅시다. 그 중 한 명만 종교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 아홉 명은 종교가 없다면, 그럴 때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도와줘서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열 명 모두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면 곤란해집니다.(모두 웃음) 물론 그 중 한 명은 교회에 다니고 나머지 아홉 명은 절에 다닌다면 또 하느님이 도와주니까 된다, 혹은 한 명은 절에 다니고 나머지 아홉 명은 교회에 다닌다면 또 부처님이 도와주니까 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렇지 않고 열 명 모두가 절에 다닌다면 이건 부처님도 해결할 수가 없겠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이 모두 다 이루어진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만약 어떤 남자나 여자를 좋아할 때, 그것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요?(모두 웃음) 좋아하는 사람 편을 들어주어야 하나요, 싫어하는 사람 편을 들어주어야 하나요? 그러니까 이것은 다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 마치 다 이루어질 것 같은 착각을 하기 때문에 우리의 고뇌가 끝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그것이 자연스러움 이에요. 나를 좋아하면 사귈 수 있고, 좋아하지 않으면 그만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내 자유지만, 상대방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독재근성입니다. 내가 독재를 하면 상대방은 괴롭습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데 강제로 사귀거나 결혼을 하면 괴롭잖아요.

성추행이라는 게 뭐예요? 누군가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좋다면서 나를 껴안으면 그게 곧 성추행입니다.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욕망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이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합니다. 욕망이 없어야 된다는 게 아니라 욕망이 있더라도 그게 이루어지면 다행이고 안 이루어져도 그만이라는 관점을 가지는 겁니다. 그렇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지속가능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인생을 30년, 40년, 50년 혹은 60년 살았으면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한 번쯤 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돈 조금만 더 벌면’, ‘나이가 조금만 더 들면’, ‘자식만 조금 더 크면’, ‘이것만 되면’ 이렇게 생각하면서 늘 조건부 인생을 살아갑니다. ‘남편만 일찍 들어오면’, ‘자식이 공부만 잘하면’ 늘 이렇게 조건을 걸고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행복을 원하지만 죽을 때까지 행복한 상태에 한 번 이르러 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정토불교대학은 불교를 믿게 하기 위해 시작 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내가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공부합니다. 우리 남편이 술을 안 먹으면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질 거라고 ‘부처님, 우리 남편 술 좀 안 먹게 해주세요’라고 비는 건 종교적 행위입니다. 이건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힘 있는 존재가 대신 해결해주는 거예요. 소원 성취, 즉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룸으로써 만족을 찾는 거예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설령 남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다음에는 자식이 문제가 되고, 설령 자식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사업 문제가, 이렇게 뭐가 남아도 남아서 고뇌가 되기 때문에 인생이 고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원래 부처님은 종교적인 행위를 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부처님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러한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직접 경험하셔서 본인 스스로 고뇌가 없는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을 보니까, 사람들이 마치 어두운 밤에 길이 보이지 않아서 헤매듯이 혹은 밝은 대낮에 눈을 감은 채 불을 켜라고 아우성치듯이 헤매고 있는 거예요. 부처님은 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깨우쳐서 지속가능한 행복으로 인도하신 분입니다.

이 지속가능한 행복을 인도 용어로 닛빠나 혹은 니르바나(Nirvana)라고 하고, 그것을 우리말과 한자로 음역(音譯)한 것이 ‘열반’입니다. 그리고 모든 속박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를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불교 공부를 하는 목표는 쉬운 말로는 ‘조금 더 행복하기 위해서, 자유롭기 위해서’이고, 불교 용어로는 ‘해탈과 열반을 증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은 뒤 극락에 가기 위해서’도 아니고 ‘복을 얻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조금 더 행복하고 자유롭기 위해서 합니다.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자유롭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마음입니다. 괴롭다고 느끼는 것도 마음이에요.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이치가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이 마음 작용의 이치를 잘 모릅니다. 무지(無智)라고 하는 것은 지식이 없다는 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이치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행복이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행동은 괴로운 결과를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니 나는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괴로운 결과를 마주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더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나름대로 착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내 인생은 왜 이런가 하는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불교대학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 마음 작용의 이치와 원리’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부딪혀보면 아는 것과 현실에서의 언행이 같지 않습니다. 남편이 술을 먹을 때 ‘남편이 술을 안 먹게 해주세요’하는 것은 복을 비는 것입니다. 결국 남편을 바꾸어서 내가 만족을 얻으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내 생각을 바꾸어 보는 거예요, 즉 관점을 바꾸는 거예요. 남편이 술을 먹긴 했지만 그래도 안 죽고 살아있다, 이렇게요. (모두 웃음) 때로 여러분들은 ‘술 먹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죽고 나면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낫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술을 먹는다는 건 살아서 술을 먹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관점을 바꾸면, 남편은 여전히 술을 먹고, 자식들도 그대로고, 세상도 모두 그대로인데, 나는 괴로움이 줄어듭니다. 관점을 확실히 바꾸면 괴로움이 없어집니다. 예전에는 술 먹고 들어오면 ‘또 술 먹었냐’고 싸우니까 나도 괴롭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는데, 그래도 자기 돈 내서 자기 입으로 먹고 오니까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걸 집에 와서 술상 차려달라고 하면 일이 더 복잡해요. (모두 웃음) 그런데 ‘그나마 먹고 들어와주니까 감사합니다, 길 잃지 않고 집에 찾아와줘서 감사합니다’하고 관점을 바꾸면 저녁에 싸울 일도 없어지고 나도 잠을 잘 자게 돼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일이 너무 복잡해지는 거예요. 그걸 살짝만 내려놓으면 세상이 달리보입니다. 오늘 이렇게 얘기를 들으면 ‘아, 정말 그렇겠다’ 싶다가도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는 꼬라지를 보면 이게 안 돼요. (모두 웃음) 그 모습을 보면 탁 ‘이게 또 술 먹고 들어왔다’는 생각부터 들어서 홱하고 전으로 돌아 가버립니다. 이치를 아는 것과 달리 실제로 부딪히면 지금까지 살아 온 습관이 있어서 자동적으로 나도 모르게 확 가버립니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거예요. 운전을 할 때도 연습이 필요하고, 피아노를 칠 때에도 연습이 필요하듯이 처음에는 어려워요. 그런데 운전을 오래하고 피아노를 오래 치면, 핸들도 필요한 곳으로 저절로 돌아가고 피아노 치는 손도 저절로 움직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이것도 연습을 자꾸 하면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와도 빙긋이 웃을 수 있게 돼요. 이를 악 다물고 참지 않아도 저절로 웃을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아이고, 오늘 한 잔 하셨네. 기분이 좋아요? 몸을 잘 못 가누네. 해장국이라도 끓여줄까요?’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물론 지금은 안 돼요.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흉내를 내도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을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데 연습을 꾸준히 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작용의 이치를 공부하는 게 여기 와서 강의를 듣는 거예요. 그런데 강의만 듣는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반드시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번 주에는 남편을 상대로 연습을 해보고, 다음 주에는 자식을 상대로 연습을 해보고, 그 다음 주에는 내 습관을 상대로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우리가 지식을 공부하는 거라면 강의를 듣고 내용만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작용의 이치를 배워서 아는 척 하려는 게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거니까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에요. 강의를 듣고 이치를 아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첫 걸음일 뿐이에요. 매주 과제를 가지고 실제로 연습을 해봐야 해요. 약간은 얼굴이 간지러운 짓도 해봐야 해요. 이번에는 술 먹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방긋 웃으며 ‘아이고, 한 잔 하셨네요’하는 게 연습과제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모두 웃음) 그걸 연습해보는 거예요.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으면 ‘이게 또!’ 이렇게 하지 말고 이번 주에는 ‘아이고, 게임하니까 재밌나?’라고 말하는 걸 연습해보는 거예요.

연습이 처음에는 잘 안 돼요. 그래도 과제를 받은 그 주에는 연습을 해보는 거예요. 이렇게 꾸준히 연습을 해나가야 실제로 삶이 행복해집니다. 오늘 남편에게 방긋 웃는 연습을 해봤더니 ‘약 먹었나’, ‘왜 안 하던 짓을 하냐’, ‘돈이 필요하나’ (모두 웃음) 이런 식의 상대방의 반응이 있을 거잖아요. 애한테 그랬더니 ‘엄마, 왜 이래?’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요.(모두 웃음) 처음에는 열에 한 명이나 ‘웬일이고’하는 반응을 보이지, 대개는 부작용이 더 생깁니다. 그렇지만 자꾸 해보면 나도 좋아지고 반응도 좋아져요. 이렇게 연습을 해보고 그 과정을 도반들과 나누기 해봅니다.

이렇게 강의를 듣고, 연습하고 나누는 과정이 불교대학에 모두 다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수업만 듣는 게 불교대학이 아니고, 또 제 이야기를 꼭 외우지 않아도 돼요. 무엇보다 매주 배운 내용을 꾸준히 연습해나가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다시 한 번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법문이 끝나자 입학생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서울정토회의 상임법사인 묘덕법사님의 환영 인사가 있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은 1년 과정입니다. 가볍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불교를 공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법문 들으면서 점점 익숙해질 것입니다. 바른 불교, 쉬운 불교, 생활 불교를 실천하다 보면 내 생활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자유롭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입학하신 모든 분이 졸업까지 함께 가시면 좋겠습니다.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다음은 정토회 소개 영상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개 영상을 통해 정토회의 역사와 산하 단체, 1년 간 진행되는 활동과 수련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각 법당의 불교대학 담당 봉사자들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불교대학을 얼마 전 졸업한 경전반 학생들의 축하공연도 펼쳐졌습니다. ‘행복해요’라는 제목으로 율동을 하며 후배들의 입학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상단을 향해 반 배, 서로 마주 보며 반 배, 다시 상단을 향해 반 배를 한 후 단체 사진을 함께 촬영했습니다. 오늘 전국의 모든 정토법당이 서초법당처럼 행복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며 설레는 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서초법당을 빠져나온 스님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기획위원회는 정토회의 중장기적인 비전을 만들어가는 회의인데요. 스님은 기획위원들과 함께 정토회 30년사 출간, 정토불교대학 교과과정 개편 등 다양한 안건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기획위원들에게 정토회의 설립 목표에 따른 이후 사업방향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해주었고, 기획위원들은 각 분과별로 더 활발한 토론 및 연구를 진행한 후 다음 회의에 모일 것을 약속하며 회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저녁 후에는 불사 위원들과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내일은 경전반 입학식이 서초법당에서 전국 생중계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바다, 조태준, 전은정, 이준길, 김미정

아직 입학할 수 있어요 정토불교대학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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