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문경정토수련원 대강당에서 불교대학 특강수련 즉문즉설 법문을 했습니다. 서울 제주지역과 경남 지역에서 지난 3월에 입학한 총 378명의 학생이 함께 했습니다. 문경에 처음 오신 분, 절이라는 곳에 처음 오신 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신출내기들이네요. 무엇이 가장 불편한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잠자리와 화장실이 가장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문경수련원의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변과 오줌을 모아 발효시켜 거름으로 사용하여 도시의 화장실과는 다릅니다. 스님은 이 불편함이 화장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습관에서 오는 문제임을 짚어주시며 공부는 관점을 잡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어서 불교대학 공부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3시간 동안 총 7분이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성적인 욕구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질문, 왜 사람마다 태어나는 환경이 다른지에 대한 질문, 육도 윤회 사상을 믿었는데 수업 중 윤회란 고대 인도인의 사상이라고 배웠는데 어떻게 관점을 잡아야하는 지에 대한 질문, 정토행자의 서원 중 나를 버리는 것과 주인되는 것이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 태어나기 전 참나는 무엇이고 깨달은 상태에 대한 질문, 불대를 다니면서 많이 가벼워졌는데 가벼운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 새벽에 기도가 잘 안 되고 저녁에 기도가 잘 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중 욕구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소개하겠습니다.

“오늘 제가 묻고 싶은 건 두 가지 측면입니다. 지난번에 스님께서 말씀하신 오계 중에서 사음(邪淫)에 관련된 건데, 제 개인적인 부분과 사회적인 부분을 나눠서 질문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에 보면 임종을 앞둔 아버님을 간호하던 중에 음욕이 일어나서 옆방으로 가서 부인과 섹스를 합니다. 그런 와중에 아버님이 돌아가십니다. 그러자 간디가 탄식하면서 ‘이런 천하의 짐승만도 못한 게 있느냐’며 굉장히 자책하는데, 간디 정도 되는 사람도 음욕을 이기기가 무척 힘들었던 겁니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게 성(性)에 관련된 문제들인데, 그 부분 관련해서 스님께서 재가자나 출가자들이 효율적으로 음욕을 다스리는 법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웃음)

두 번째로, 저는 섹스하는 게 굉장히 기쁩니다. 그런데 하고 나면 공허합니다.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끊을 수 없을까요? 제가 대학생일 때, 불교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 사실 섹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쁨이라는 걸 한번 느껴본 적은 있는데요, 섹스 관련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욕구가 올라오지만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듭니다. 이런 부분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알고 싶습니다. 스님께서 강의 중에 항상 말씀하셨던 ‘돌이키고, 놓고, 아, 욕망이 올라오는구나 하고 지켜보는’ 수행도 제가 해 봤습니다만, 그런 부분들을 제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을지 스님의 좋은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 사람을 ‘짐승 같다’고 정의해서 사람만의 고유한 특징을 인정 안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람은 짐승과 다르다.’며 사람을 지나치게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규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동물의 일부입니다. ‘동물’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입니다. ‘사람이면 동물이다’는 정의가 성립할 때, 그럴 때 ‘동물’은 사람 되기 위한 필요조건, ‘사람’은 동물 되기 위한 충분조건이지요. ‘필요조건, 충분조건’이라는 건 고등학교 1학년 수학책에서 배운 내용인데, (모두 웃음) 무슨 소리인지 들어본 적 있죠?”

“(대중들) 예.”

“사람과 동물은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어요. 그런데 공통점만 가지고 똑같다고 말하거나 다른 점만 가지고 별개라고 말하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편견, 즉 한 측면만 강조해서 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윤리’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맺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가?’ 라는 겁니다. 그런데 자연생태계에는 이런 ‘윤리’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생태계는 ‘윤리적으로 나쁘다’가 아니라 윤리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 생태계는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제로 베이스(zero-base)예요. 자연현상에서 일어나는 건 그 어떤 것도 윤리적 판단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자연현상을 파악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면 ‘나쁜 놈이다’ 해서 뱀을 잡습니다. 그럼 이것은 사람이 자연현상계를 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지요.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거나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나쁘다, 좋다고 평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것은 그냥 하나의 자연생태계로 봐야 합니다.

인간은 생물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런 생태계와 같은 행동을 합니다. 그랬을 때, 그것을 윤리적으로 나쁘다, 좋다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생물의 일부로서 자연생태계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수가 없는 거니까요.

부인이 성적인 걸 싫어해서 ‘난 당신과 잠자리 하기가 싫어’라고 한다면, 싫어할 수가 있지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억지로 남편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에게 고통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자기 욕구 때문에 ‘너는 나와 결혼을 했으니까 네가 싫든지, 말든지’ 이러면서 강제로 잠자리를 하게 된다면 이건 성폭행입니다. 결혼을 한 사이라도 이건 성폭행에 들어가고, 이건 상대를 괴롭히는 행동이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성적인 욕망이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그러나 이것을 행할 때 윤리적으로 비난받거나 범죄가 될 때도 있다는 겁니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지도 않고, 범죄가 되지도 않는다면 그 욕망을 행하는 걸 너무 나쁘게 생각 할 필요는 없어요. 그걸 억제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수행자는 모든 욕망을 떠나야 되니까 성적인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다’면서 혼자 부부관계를 안 갖는 연습은 해 볼 수는 있어요.

그러나 부인이 부부관계를 원하는데 ‘수행해야 되니까 나한테 가까이 오지마’라고 하면 이건 결혼윤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모두 웃음) 상대가 싫다는데도 내가 강제로 하는 것도 일부 범죄행위에 들어가지만 상대가 좋아하는데, 만약에 일반관계라면 거절할 자유가 있지만 부부 사이인데, 특별한 신체적인 하자가 있거나 어떤 이유가 아니라 단지 내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서로 약속한 부부관계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부인이 다른 남자를 만나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럼 상대가 그렇게 하도록 내몬 결과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수행이 아니에요.

결혼은 상호 약속이지요.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도 있지만 ‘당신의 필요에 대해서 내가 일정하게 대응을 하겠다’는 약속도 있어요. 그걸 일방적으로 거부하면, ‘나는 부부관계를 안 갖고 수행에 전념하겠다’면 상대에게 뭘 해 줘야 됩니까? 이혼을 해 줘야 돼요.

자기가 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때는 제어하는 연습,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할 수가 있어요. 그건 자유예요. 그러나 내가 그런 연습을 할 때라도 상대가 요구할 때는 능히 응해주는, 즉 부부의 윤리는 지켜줘야 되는 거예요.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요.

제가 여러분께 늘 말씀드리듯이, 부부는 같이 살려고 결혼을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늘 부부관계에 금이 갈 수 있는 행동은 서로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관점을 그렇게 가지고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성적인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강제로 추행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나쁜 게 아니라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마라’는 거예요. 내가 이익을 보려고 하는 욕구가 나쁜 게 아니라 ‘남에게 손해 끼치지 마라’, 즉 ‘뺏거나 훔치지 마라’는 거예요. 내가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나쁜 게 아니라 ‘남을 괴롭히지 마라’, 내가 말할 자유가 있지만 말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으니까 ‘욕설하지 마라, 사기 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즉 말로 남에게 손해 끼칠 자유는 없다는 거예요. 내가 뭘 먹든 그것은 자유인데, 내가 그것을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힐 자유는 없으니 ‘술을 마시고 취하지 마라’

그런데 술 마신 인간들, 취한 인간들 치고 자기가 취했다고 인정하는 인간들은 없잖아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아예 취하는 성격이 있는 음식은 먹지를 말라고 하게 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몇 시간을 자든, 결혼해서 부부관계를 즐기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나 ‘나는 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자기가 잠을 안 자고 수행하거나 ‘나는 성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자기가 그것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거나 ‘나는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단식을 해 보거나 하는 건 개인의 자유예요. 아시겠어요?

스님은 70일까지 단식해 봤지만 ‘내가 단식했다.’ 이런 얘기 안 하잖아요.(모두 웃음) 밥 놔놓고 안 먹는 건 자기 문제지, 그걸 뭘 자랑을 해요? 다만, 내가 얼마까지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느냐를 살필 뿐이에요. ‘먹는 것’으로부터 한 발 떨어졌을 때 어떤 심리현상이 일어나는지, 비몽사몽간에, 꿈속에서 밥을 먹는 현상이 일어나는지, 신체는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정신적으로는 어떤 환상이 생겨나는지, 이런 걸 스스로 체크하면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는 거지, 이걸 남한테 ‘내가 며칠까지 단식을 했다’고 자랑 할 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채식을 좋아한다.’ 이건 좋지만 ‘육식은 나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러나 육식을 지나치게 하는 건 건강에 좋아요, 안 좋아요?”

“(대중들) 안 좋아요.”

“지나친 육식은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됩니다. 지나친 목축은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를 과량 배출하는 큰 원인이거든요. 여러분들은 맛에 집착하기 때문에 자꾸 고기를 찾는 거예요. 물론 채소 맛에도 집착하지만 고기처럼 그렇게 집착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계율도 ‘맛에 집착하지 말라’는 게 핵심이지, ‘고기 먹지 말라’는 게 핵심은 아닙니다. 자, 관점을 그렇게 가지고 공부를 해야 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대중들) 예.”

“오계의 정신은 아주 간단해요. 누구나 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자기가 살 수 있는 행동은 뭐든지 다 해요. 그런데 내가 살고자 남을 죽이지는 마라, 남을 때리지는 마라는 거예요. 내가 이익을 추구하는 건 좋지만 내 이익을 추구하려고 남을 손해 끼치지는 말라는 거고요. 또 내가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 좋은데 남을 괴롭히지는 말라는 거예요. 내 즐거움을 추구하려고 남을 괴롭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게 성적인 거예요.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괴로운 삶을 삽니까? 본인은 잠깐 즐거움을 추구했다지만 상대는 그것 때문에 평생을 괴롭게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잠깐의 행위가 엄청난 죄를 짓게 되니까 이건 현명한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행위입니다.”

3시간을 꽉 채웠지만 모든 질문을 다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미안하다고 하시며, 이번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수업도 듣고, 봉사도 하고, 남산순례도 가보면 다른 기회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불교대학을 끝까지 잘 다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수행도, 봉사도, 보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행의 관점을 잡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짚어주시며 9시에 즉문즉설을 마무리 했습니다.

스님은 문경수련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근교의 유스호스텔로 9시 30분까지 갔습니다. 다가오는 8월에 있을 동북아역사대장정 청년팀의 사전교육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승용 평화재단 총장님께서 자세히 설명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 청년대표님이 인사라도 하고 가라고 그래서 부랴부랴 달려왔어요.”

스님은 동북아역사대장정이 시작하게 된 취지를 설명하고 질문도 받았습니다. 청년들은 동북아대장정 준비를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통일이 된 후 좋은점과 우려되는 점을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짧은 시간이지만 성심껏 답하고 11시부터는 평화재단 청년역사학교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충주 청소년 수련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청년 역사학교 1기는 2018년 4월 개강하여 오늘 수료식을 진행했습니다. 20, 30대 청년들이 모여 매주 평화재단 이사장인 법륜스님의 역사 강의를 듣고 토론을 통해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수원화성, 국립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경주, 경주, 강화도, DMZ 다양한 역사유적지를 직접 답사하며 역사기행도 진행했습니다.

청년학교 학생들은 매주 영상으로만 뵈었던 스님을 수료식에서 실제로 만났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영상으로만 강의를 들어서 어렵진 않았는지 따뜻하게 물어보시며 청년들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했습니다.

첫번째로 질문하신 분은 30대 여성분이었는데, 통일이 우리의 미래라고 하지만 당장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만약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통일이 된다면 문제가 생기진 않을지, 그런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물어봤습니다. 두 번째는 20대 젊은 남자 분이었는데 군대에서나 사회생활을 할 때 욕설이나 비난을 듣는 게 괴로워서 너무 힘들다고 어렵게 속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세 번째는 어제 방문한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일본인 친구를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은지 궁금하다는 30대 여성분, 키우고 있는 강아지가 죽으면 슬픔을 어떻게 이겨낼지 모르겠다는 30대 여성분, 악단에 들어가서 악기를 다시 연주하고 싶은데 열등감과 자존감이 낮아 적응하지 못해서 걱정된다는 20대 여성분, 현재 회사에서 노동자와 조직을 운영하는 직원들 사이를 조정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젊은 활동가들을 설득하는게 어렵다는 30대 여성분까지 총 6분이 질문해주셨습니다.

스님은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청년들을 위해 현재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선 주변국과의 협력, 무엇보다 통일이 필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대국인 미국도 캐나다와 멕시코와 협력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고있고, 중국도 많은 나라와 교류하고 있고, 독일, 영국과 같은 유럽의 부유한 국가도 더 이상 그 나라만의 발전이 아닌 유럽 전체의 발전을 향해 힘을 합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강대국이 아닌 한국은 더욱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고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는 더 이상의 발전을 도모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한국이 중국의 변방, 속국으로 살고자 하면 상관없지만, 우리의 역사를 지키고 자주적으로 자긍심을 갖고 앞으로 발전하고자 한다면 주변국과의 협력은 필수이고, 이 과정에서 통일하지 않고는 국가의 비전을 갖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대한민국에는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이 필요하고, 북한에는 남한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니, 우선 경제적으로 서로 협력하여 동아시아의 미래의 발판을 구축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이 협력할 수 있는 적기라고 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고 그동안의 활동을 영상으로 보고, 매주 청년역사학교 수업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이정혜님의 소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졸업생 한명 한명에게 수료증을 전하며 악수했습니다.

저녁 5시부터는 인도인 활동가들과 인도에서 봉사했던 한국인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1991년, 스님이 인도의 불교성지를 순례하는 중에 구호사업을 발원하고, 1994년부터 인도 둥게스와리 마을 주민들과 학교를 짓기 시작하고 지금의 인도 JTS가 있기까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0년 가까이 인도에 파견되어 봉사를 했던 모든 한국인 봉사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오래 전에 파견되었던 한국인 활동가들은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인도 아이들이 학교, 병원, 마을을 책임지는 JTS 활동가로 성장하여 한국에서 다시 만난 것을 무척 감동스러워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뿐만 아니라 함께 활동했던 한국인 활동가도 만나는 반가운 자리였습니다.

시기별로 활동했던 한국인 봉사자들을 소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인도 JTS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도 한 사람씩 무대로 불러 소개와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인들은 깨끗하고 발전된 한국의 모습과 스님, 정토회 활동가들에게 받은 감동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지바카 병원의 의사인 까미스왈은 과거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했는데 깨달음의 장을 통해 돈보다 중요한 것을 깨달아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며 밝은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아마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한국에서 파견되신 분들도 파견되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좋았던 점, 어려웠던 점을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제한된 시간에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를 나누지 못해서 좀 아쉽습니다. 그때, 그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이런 봉사활동이라는 게 좀 무의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인생을 10년, 20년, 30년 이렇게 지나고 보면 우리가 개인의 어떤 이익을 위해서 활동했던 일들은 사실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넓은 집에서 자나, 좁은 집에서 자나, 지나고 보면 넓은 집에서 잔 꿈을 꾼 거나 좁은 집에서 잔 꿈을 꾼 정도밖에 안돼요. 또 사회적 지위라든지 경제적인 풍요 같은 것도 지나고 보면 꿈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작아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크게 보이는 것이 이런 유의미한 일들이에요. 또, 현재 굉장히 큰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 게 이 세상사이고요.

인도에서 여러분들이 봉사한 일들은 한 사람이 할 수 없어서 우리가 모두 조금씩 나눠서 했던 건데, 그 결과, 길거리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성장을 해서 도움을 받다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됐고, 어쩌면 이분들에 의해서 인도라는 국가 차원은 아니더라도 자기가 태어난 마을에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씨앗이 되지 않을까요? 이제 20대 후반의 나이이니까 앞으로 30년은 더 활동을 안 하겠어요? 어떤 변화가 올 건지, 우리가 안 죽고 살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인도를 잊지 마시고, 개인생활을 하시더라도 틈나는 대로 가서 조금씩 함께 해 주면 좋겠어요. 아직 학교 파트를 제외하면 나머지 병원 시스템이나 마을 개발시스템은 사실 기초도 제대로 안 잡힌 상태인데, 이런 파트들도 자리를 잡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그 도움도 제가 볼 때는 10년 정도만 필요할 것 같아요. 현재 인도의 발전 속도를 봤을 때 10년이 넘어가면 우리가 도울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그때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담마(dharma, 법法)가 필요하지, 경제적인 지원 같은 건 필요할 것 같지가 않아요. 지금 우리가 중국에 가서 경제적 지원을 할 여지가 별로 없거든요. 물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은 계속 있겠지만 한 나라의 경제규모가 커지면 우리가 가진 이런 돈 정도로 거기 가서 활동할 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이미 인도도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어요. 땅값도 100배씩 오르고, 모든 물가가 다 올랐어요. 건축도 전에는 싸게 지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거든요. 우리의 경제규모는 늘더라도 느리게 늘지만 인도 같은 데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유의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아마 앞으로 10년 정도일 거예요. 그 이후에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지원할 궁리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분들이 휴가를 한두 달 내고 인도에 가서 도울 수 있는 일도 있고, 또 1년씩 시간을 내서 가서 도울 수 있는 일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땀을 흘린 곳이 결과적으로 잘 되면 여러분 인생에도 보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다 이렇게 멀리에서 시간을 내서 와주신 것에 감사드리고요, 인도 스텝들이 비록 8박 9일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전 스텝이 다 왔기 때문에 학교를 장기간 비울 수도 없지요. 그래서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에서 이렇게 보고, 들은 후에 인도로 돌아갔을 때 자기들 나름대로 어떤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다 싶어요.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세워라, 저렇게 세워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대로 따라 오기도 어려워하는데, 어차피 자기 나라, 자기 마을이니까 이제는 자기들 스스로, 우리가 이렇게 견학의 기회를 주면 거기서 보고, 느낀 것을 자기들 현실에 맞게 아이디어를 내서 할 수 있으면 제일 좋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2년 전부터는 스텝 책임자도 다 인도사람으로 바꿨어요. 전에는 신입이라도 무조건 한국인이 책임자를 맡고 인도인들은 아무리 오래 있었어도 밑에서 일하도록 했는데, 지금은 인도인들이 책임자가 되고 한국에서 가시는 분들은 이분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위치를 바꿨어요. 한 2년 됐는데 이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은 단체로 견학을 왔지만 앞으로는 전공분야별로, 개별적으로 들어와서 그 분야만 전문적으로 견학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박지나 대표님은, 제가 처음 이 마을을 방문해서 마을사람들과 학교에 대해 얘기하는 과정, 또 초기에 학교를 지은 과정, 그 이후에 인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 또 성지순례, 이런 일들이 자리 잡도록 통역사로서, 또 풍부한 사업적 경험을 바탕으로 큰 역할을 해 주신 분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우리 박지나 대표님에게 모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

선주법사님은 처음에 혼자, 20대 때 인도에 파견이 됐는데요, 파견될 때 제가 이런 얘기했어요. ‘첫째, 당신이 가서 죽었다고 한들 내가 고발을 하는 등 문제를 삼지 않을 것이다. 둘째, 당신이 가서 폭행을 당하더라도 내가 고발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지역은 어차피 위험한 지역인데, 한국인이 가서 죽거나 무슨 피해를 입었다고 내가 고발을 하게 되면 그 동네사람들을 다 범죄자로 만들어야 한다. 내가 그 동네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서 그 동네에 들어간 게 아니고, 그 동네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들어간 건데, 그 동네사람들은 지금 뭘 모르기 때문에 범죄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런 각오가 있으면 가고, 그런 각오가 없으면 가지 마라. 지금 이런 각오 없이 가면 오히려 폐가 된다’고요. 그런데도 선주법사님이 가겠다고 하셔서 실제 처음에 가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모두 웃음) 1대 사무국장이 수레스이고, 2대 사무국장이 한국인 선주법사님이고, 그 다음이 싼디시스터, 그 다음이 아칸사시스터, 그 다음이 대광법사님인 만따시스터, 그리고 제이제이브라더, 지금은 보광법사님 이렇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라니시스터가 조금 하다가 보광법사님으로 넘어갔네요. 그리고 또 많은 인도인 봉사자들이 있었고, 또 한국인 봉사자들은 100명이 넘을 거예요. 설성봉 거사님처럼 한국인으로서 희생된 분도 계시고, 또 아룬지 같은 분은 스텝으로 일하다가 병사(病死)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우리가 기초를 닦은 거고, 이제는 발전의 기회가 오지 않았나 싶어요. 자, 인도에 대해서 아직도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이렇게 인도스텝들을 환영하기 위해서 먼 거리를 달려와 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모두 박수)

작은 정성이 모여 큰 물결을 이루듯이 많은 봉사자들의 정성과 노고로 인도JTS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인도인 활동가들은 "큰 은혜를 입은 것 같다"고 감사해 했고, 인도JTS를 거쳐간 봉사자들은 "내 인생의 가장 보람있었던 시간을 다시 추억할 수 있어 기뻤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마무리 말씀을 마친 스님은 참석자 모두와 악수하고, 인사한 뒤 기념 사진을 찍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정란희, 조아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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