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스님은 인도인활동가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기도, 발우공양을 마친 인도인활동가들과 스님은 동그랗게 둘러앉았습니다.

스님은 인도인 활동가들에게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한국에서 지낸 소감과 궁금한 점을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지금 여기 오기까지 도와준 스님을 비롯한 많은 정토회 활동가들에게 무척 감사하다고 말하며 직접 한국에 와서 각 영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받았다고 했습니다.

상카시아 전법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수바스는 인도에 파견되었던 분들 중 지금 정토회에서 활동하지 않고 나간 분들은 젊은 시절을 인도에서 봉사하여 취직이 어려울 텐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물어보았고, 수라스는 한국의 남북 분쟁의 원인과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바카병원의 의사인 까미스왈은 각종 치료 기계의 도입에 대해 물었습니다.

학교 교장 선생님인 인드라짓은 한국에 와서 서울공동체, 문경공동체를 가보아도, 즉문즉설 강연장에 가보아도 여자가 많은데 여자들이 특별히 괴롭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궁금증을 물어보았습니다. 인도는 아직 남성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더 신기하게 보였나 봅니다.

마을 개발 팀장인 파완은 인도 둥게스와리에서도 마을의 발전을 위해 한국처럼 새마을 운동을 해보고 싶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면 될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또 부처님은 인도에서 태어나서 깨달으시고 열반하셨는데 인도에서 왜 불교가 쇠퇴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지바카 병원 팀장인 삼부는 인도에서는 부처님을 힌두교 비슈누 신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불교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었다며 인도 전법에 대해 물었습니다. 또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정부의 땅을 각 개인 집으로 넓혀서 도로가 좁아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아제이는 한국 유치원에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즉문즉설 강연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병원으로 느껴져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 또한 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돈이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행복한 것을 알게 되었다며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된다고 했습니다. 또 불교대학 학생들을 보며 인도에서도 어떻게 불교대학을 개설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유치원과 중등부를 담당하고 있는 반제이지도 스님의 책이 인도에도 번역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또 인도의 문맹률이 많이 낮아졌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정직함, 성실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어떻게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전 세계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은 나라는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학교의 대외협력을 맡고 있는 아미타브는 스님의 출가하신 사연을 듣고 자신도 어떻게 스님처럼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또 자신이 화가 많고, 전기회사나 교육부에 갔을 때 뒷돈을 요구하며 일을 진행시켜주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스님은 한국의 역사에서부터 불교, 마을사업, 수행 등 다양한 물음에 대해 자상하게 알려주었습니다. 20여년 넘게 인도를 오가며 함께 사업을 해왔던 스님이어서인지, 그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통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또, 깨달음의 장 이후 인도인 활동가들의 수행과 불교에 관심이 많이 늘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인도에서 스님을 뵐 때 생계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제는 마을, 학교, 전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아미타브의 질문과 답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화가 많습니다. 누가 저에 대해서 지적을 하면 짜증부터 올라옵니다. 짜증이 올라온 상태에서 말을 하다보니 화가 나고, 그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또 짜증과 화를 내면서 지적을 하니 그 말을 들으면 더 짜증과 화가 납니다. (모두 웃음)

인도에서는 대외 봉사 소임을 맡고 있는데 전기회사 등 외부에 나가서 일을 처리하려고 하면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뒷돈을 주면 일이 금방 해결되는 점이 있지만, JTS에서는 그렇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의 진행은 더디고, 한 번 찾아간 곳을 여러번 찾아가게 됩니다. 요즘은 뒷돈을 요구하면 신고부터 하고 싶은데, 그 회사라도 있으니까 2~3년이 걸리더라도 뭔가 해결이 되지 그 회사마저 없으면 아예 일 진행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신고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 이유로 요즘에는 그냥 참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요?”

“평균적으로 보면 한국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보다 짜증이 많은 편입니다. 여러분들은 한국 사람들과 일하면서 그렇게 못 느꼈어요? (모두 웃음) 한국 사람들이 짜증과 화가 많은 이유는 우선 성격이 급해서 그래요. 뭐든지 빨리 해결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은행 업무를 해본 사람을 알 거예요. 뭐든지 처리가 빨리되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한국 활동가들이 인도에 가면 여기에서처럼 일을 빨리 처리하려고 하는데 인도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 사람보다 느긋하니까 한국 사람들이 짜증을 많이 내게 됩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과 다르니까 답답한 거예요.

질문자도 짜증이 많다는 건 성격이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화가 많이 올라오는 건 그만큼 자기 생각이 옳다는 고집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들으면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이 이야기는 맞아, 저 이야기는 틀렸어’ 하고 판단부터 내려지는 거예요. 그러면 화가 많아집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다시 말하면 무언가가 옳다, 그르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 입장에서는 이렇구나, 그리고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렇구나’하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화가 덜 납니다. 그러니 화가 올라올 때마다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아, 지금 내가 내 생각을 고집하고 있구나’하고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을 내려놓는 절 수행을 많이 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뒷돈을 요구하는 문제는 어떻게 보면 뒷돈을 주고 받는 것은 인도 사회 전체에 만연한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문화 전체가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바꾸려면 정부가 작심하고 강단있는 정책을 일정 기간동안 밀고 나가야 가능합니다.

우선 공무원들이 뒷돈을 받지 않고도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게끔 월급도 올려주어야 해요. 동시에 뒷돈을 받는 경우에는 강한 처벌을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공무원으로 하여금 자기 월급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데 괜히 욕심으로 뒷돈을 받았다가 잘리면 큰 손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 사회도 이러한 부패가 만연한 편인데, 요즘 변화의 노력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패를 저지른 공무원들을 요즘 많이 쳐내고 있어요. 중하급 공무원만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아주 높은 고위 공무원도 비리에 연루되면 가차없이 잘리고 있습니다.

한국도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지난 정부와 지지난 정부의 전직 대통령 두 명이 모두 감옥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돈을 조금 받아써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아무리 고위 공무원이라도 법대로 집행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가령, 학교에서 학부형이 선생님에게 뒷돈을 조금 주는 것도 옛날에는 흔한 일이었는데, 요즘에는 모두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선물을 주고 받을 때도 이해관계가 있는 사이에서는 일정한 금액 이상의 선물을 주거나 받으면 법으로 처벌을 받습니다. 공무원들은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우리가 공무원들에게 조금 비싼 식사 대접을 해도 모두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선거 기간에는 특정 후보에게 작은 것 하나라도 얻어 먹었다가 적발되면 받은 액수의 50배를 벌금으로 물어내야 합니다. 10불을 받았다가 적발되면 벌금으로 500불을 지불해야 하는 거예요. 한국 사회는 이러한 정책들로 사회부조리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인도 사회도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면 이런 식으로 변화를 꾀해야 합니다. JTS 활동가들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하는지도 알고 있으니까 인도에서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뒷돈을 요구하면 답답함을 더 느끼게 됩니다. 전기회사에서 자꾸 그런 식으로 뒷돈을 요구하거나 일을 더디게 처리하니까 인도 JTS에서는 20년 가까이 전기없이 지내기도 한 거예요. (모두 웃음)

그렇다고 일을 조금 빨리 처리하고자 뒷돈을 주기 시작하면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뒷돈 없이는 되지 않고, 또 사회적으로도 뒷돈을 받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뒷돈을 주면 한 번만에 되겠지만, 우리는 뒷돈을 안 주고 열 번만에 하겠다는 마음으로 끈기있게 해나가야 합니다. 또 상황에 따라 뇌물은 아니지만 차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융통은 발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JTS의 공금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아주 작은 비용으로 꼭 필요한 경우라면 법사님이나 쁘리앙카에게 부탁을 해서 공금이 아닌 비용으로 조금 충당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으니, 이런 상황이 생기면 주변에 경험이 있거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상의를 조금 더 해보세요. 우선 정토회 원칙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뒷돈을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난 번 성지순례에서도 이런 이유로 일이 진행되지 않아서 인도-네팔 국경에서 하루 종일 기다린 경우도 있어요. 뒷돈을 주면 바로 처리가 되었겠지만, 뒷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막는 바람에 하루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일정을 취소하면서도 우리는 버틴 거예요. 그러니 변화를 원한다면 그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불이익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사업을 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데, 뒷돈을 주면서 진행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물론 뒷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인도 공무원이 ‘보드가야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다 뒷돈을 주고 일을 처리하는데, 왜 JTS만 주지 않느냐?’고 말한 사람도 있었어요. (모두 웃음)

우리 모두 인도에서 경험해 본 바이기 때문에 뒷돈을 주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데 생기는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원칙을 가지고 끈기있게 처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친절하게 하고, 한 번 찾아갈 것을 여러 번 찾아가서 일이 되게끔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도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게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그 사람들이 직접 보고 감동받아서 변화가 일어나게끔 해야합니다. 그 과정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우리가 긴 시간에 걸쳐 해내야 하는 일입니다. 인도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을 알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인도인활동가들은 스님께서 어릴 때부터 먹여주고, 가르쳐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91년 인도에서 구걸하는 이를 본 스님은 그들은 외면하지도 않고, 지원하면서도 의지해서 살게 만들지도 않는 길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28년을 지나, 한국에 온 인도인활동가들이 그 결실이 아닌지, 감동스러운 현장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스님은 청춘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하러 대전으로 갔습니다.
6월이 되자마자 한여름처럼 쨍쨍하던 더위가 한소큼 가라앉은 오늘, 날씨가 좀 흐렸지만 선선해진 날씨덕분에 마음만은 맑았습니다.

대전에서 진행되는 청년 강연 ‘청춘톡톡’은 대전충청지부 청년들 21명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소 적은 봉사 인원으로 준비하다 보니 총괄을 맡은 김형섭 법우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 저곳을 채우느라 바빴습니다.

강연시작 15분 전, 스님이 도착하자 접수하던 분들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스님에게 반가운 인사를 드렸습니다. 강연 참석자들은 도착한 스님을 보고 차마 말은 걸지 못하고 한참 바라만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먼저 살가운 말씀을 건넸습니다.

“청년 강연인데, 자기들 청년이요?”라는 질문에 주변에 큰 웃음이 터졌습니다. 한 중년 어르신께서 “제 애가 청년입니다.”라고 대답하며 호탕하게 웃어 보이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중년분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강연시간 막바지까지 사람들이 몰아치는 대부분의 즉문즉설과 달리, 오늘 강연장에서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분들은 조급한 표정도 없었습니다. 충청도의 여유가 강연장에도 한껏 들어찬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밝은 미소로 등장해 청년 관중들은 반겨주셨습니다. 고생을 너무 안 하려고 하거나, 실패를 너무 안 하려고 하면 발전이 없다, 이미 결정한 일은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받아들이고 실패하면 연구해서 다음 결정에 참고하면 되니, 어떤 일을 시도할 때 너무 망설이거나 두려워할 필요 없이, 경험삼아 가볍게 해보라고 청년들을 격려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왕따를 계속 당하고 있어 교우관계가 고민이라는 고등학생, 고민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데 자는 방법이 궁금하다는 분,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신 분, 꿈이 없고 특별한 재능이 없고 고민인 분, 평화를 지키고 난민을 돕는 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할지가 고민이라는 분이 나왔습니다.

오늘은 남을 위한 일이 어떻게 나를 위한 일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자세하게 들어보겠습니다.

“언젠가 스님의 강연에서 ‘남을 위하는 일이 곧 나를 위하는 일이다’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생활을 하다보면 그게 진실인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스님께서 설명을 해주시면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은 저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립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여기에 꽃이 한 송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꽃을 보고 ‘이야, 이 꽃 예쁘다’라고 하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제가 좋습니다.”

“꽃이 좋아야지 왜 자기가 좋아요? 꽃이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면 꽃이 좋아야 하잖아요?”

“...”

“반대로 ‘이 꽃은 뭐 이렇게 생겼어?’하면 꽃에게 나빠요, 나에게 나빠요?”

“제게 나쁩니다.”

“그러니 ‘그 사람 참 착실하더라, 그 사람 참 좋더라’ 하고 남을 잘 봐주면 누구한테 이익이에요?”

“저한테요.”

“남을 잘 봐주면 나에게 좋고, ‘그 사람 뭐 그래?’하면 자기 마음이 불편해요. 그러니 남을 좋아하면 그 사람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제가 좋아요.”

“남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제가 좋아요.”

“그런데 우리는 흔히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어요. 문제는 사랑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도 나를 사랑하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 마음이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미움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 미움은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미워하는 것은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서예요?”

“...”

“내가 사랑하지 않아서 미운 거예요.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사랑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청중 웃음)

미움이라는 심리 현상은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데에는 부작용이 없어요. 사랑받으려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괴로움이 생기고 슬픔이 생기고 미움이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이 산이나 바다를 좋아할 때는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라’는 대가성 요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좋아해도 거기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야 되지 않느냐’며 거래를 하려고 해요. 쉽게 말하면 장사를 하려는 마음이에요. 장사를 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미움이 생기는 거예요. 이 ‘손해’, ‘적자’라는 생각은 받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실제 심리현상은 그렇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지는 게 아니라,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대개 자기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사랑을 했다 하면 사랑이 돌아오지 않을 때 부작용이 큽니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도 상대로부터 받으려는 마음이 있는데, 이제는 사랑하기까지 했으니까 더 돌려받으려는 거예요. 그런데 상대로부터 돌아오지 않으면 손해봤다는 생각이 더 들어서 크게 밑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저한테 좋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나요. (청중 웃음) 그 마음에는 대개 부작용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누가 좋다고 하면 우선 도망부터 가요. (청중 웃음) 왜냐면 좋다는 마음이 클수록 나중에 그만큼 요구가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대개 사랑을 하려고 해요, 받으려고 해요?”

“(청중) 받으려고 해요.”

“그러니까 계속 괴로운 거예요.

사람들이 예수님, 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을 찾아가서는 대개 그분들한테 뭔가를 달라고 해요, 그분들한테 베풀려고 해요?”

“(청중) 달라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그분들은 어디를 가든 자기들한테 뭘 달라는 사람밖에 없어요. 그런데도 그분들은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성경이나 불경에서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사람들이 자꾸 뭘 해달라고 해서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 보셨어요? (청중 웃음)

베풀려는 마음만 내면 거기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습니다. 베풀지도 않고 자꾸 바라는 건 범부중생이에요. 이런 사람은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을 바라니까 평생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베풀고 베푼만큼 받으려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에요. 이 현인은 범부중생에 비해서 베푼 다음에 받으려고 하니까 그래도 이치에는 맞는 거예요. 그런데 여전히 바라는 마음이 있고 게다가 자기가 베풀기까지 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을 때의 부작용은 오히려 범부중생보다 큽니다. 반면 성인은 베풀되 받으려는 생각이 없고, 사랑하되 사랑받으려는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부작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은 괴로움이 없고 미움이 없는 거예요. 그건 받으려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눈에 성인은 대개 바보같이 보입니다. 가족 중에도 성인이 있으면 대개 가족들은 성인을 보고 바보라고 불러요. 세속적인 기준으로 따지면 성인은 바보예요. 그렇지만 바라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결국 성인은 괴로움이 없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베푸는 것이 곧 나에게 좋은 거예요. 중생의 모든 괴로움은 얻으려는 마음 때문에 생깁니다.

질문자가 베풂을 통해서 명예를 얻겠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장사를 하는 거예요. 사회에도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속내를 보면 장사꾼들이 많아요. 베풀지도 않고 받으려고 하거나,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을 받으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지만, 베풀고 그만큼 돌려받으려는 것은 장사꾼 심보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실제로 그 밑에는 받으려는 마음이 많아요.

부부가 왜 싸우겠어요? 결혼하기 전에 인물, 가족관계, 학교, 직장 등 온갖 것을 다 따집니다. 왜 그렇게 따질까요? 나한테 얼마나 이득이 되는지 계산을 하느라 인물과 능력을 보는 거예요. 그렇게 온갖 것을 다 따진 다음에 결혼을 하는데, 막상 같이 살아보면 나한테 그리 큰 이득이 안 돼요. 이득이 별로 없으니 ‘괜히 결혼했다’는 마음이 생기고, 오히려 나한테 손해가 되는 것 같으면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다 계산을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사랑이에요, 이건 장사잖아요? 이런 상담을 많이 하면서 ‘그게 무슨 사랑이냐, 사람을 두고 장사를 하지 말라. 사랑을 하려고 하면 장사를 하지 말고, 장사를 하려고 하면 때론 밑지는 것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모아서 책도 나왔어요. 장사를 하는데 투자를 잘못하면 손해가 나기도 하잖아요? 결혼에서는 인물이나 능력에 투자를 했는데 투자가 잘 못 되어서 그에 따른 손해도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장사를 해놓고는 사랑을 했다고 하면 안 되고, 장사를 했으면 내가 어디에 투자를 했는데 그게 이익이 되었는지 손해가 생겼는지를 제대로 계산해야 하는 거예요. 이런 내용을 모아서 책 제목으로 ‘사랑 좋아하시네’라고 지었어요. (청중 웃음) 그런데 출판사에서 그런 제목은 안 된다며 ‘스님의 주례사’로 바꿔서 낸 거예요. 하지만 그 내용을 요약하면 결국 ‘사랑 좋아하시네’예요. (청중 웃음)

속마음은 장사를 하면서 사랑이라고 포장하면 안 돼요. 그렇게 포장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거예요. 처음부터 장사라고 인정을 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어요. 장사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면밀하게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적자가 생겨도 투자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를 갖고 상대를 대하니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동차 주식이 오를 거라고 투자를 했는데 주식이 내려가면 자동차를 미워하해야 해요, 내가 거기서 투자를 포기해야 해요? (청중 웃음)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가 투자해놓고 적자가 생겼다며 상대한테 책임을 묻는 것과 같은데, 그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결혼 생활에 적용해보면 부처님은 같이 살아라, 같이 살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같이 살든, 같이 살지 않든 그것은 네 자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를 미워하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자세에서 생기는 거예요.

결혼은 인물을 보고 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옷을 아무데나 벗어놓고 음식도 안 맞는 등의 생활 습관으로 부딪히는 일이 많아요. 실제 생활에서는 서로의 생활 습관으로 다툼이 생기지 인물로 다투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결혼하기에 앞서서 이 사람의 생활 습관이 어떠한지, 동거인으로서 어떠한지를 따져봐야 해요. 무슨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버럭 화를 내는 성격적인 차이도 같이 살기가 힘듭니다.

인물은 연애할 때의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동거의 기준은 아니에요. 연애에는 좋은 감정이 핵심입니다. 거기에는 나이도 그리 중요하지 않고, 외국인인지 한국인인지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감정만 있으면 돼요. 물론 그 감정이 식으면 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연애는 우선 별거하면서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 습관이 부딪힐 일이 많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같이 있어야 성격도 부딪히는데, 하루에 한 두 시간 만나서는 성격이 부딪힐 일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은 많이 다릅니다.

물론 좋은 감정도 있고, 생활 습관까지 잘 맞으면 금상첨화예요. 그런데 둘 다 좋은 경우는 드물어요. 둘 중 하나를 선택 해야 한다면 연애는 비교적 감정에 치중하고, 결혼은 생활 습관이 더 중요합니다. 친구들과 같이 지낼 때도 무거운 짐이 있으면 그걸 들고 가는지, 캠핑을 갔을 때 고기를 구워서 잘라주는지 이런 걸 봐야 해요. (청중 웃음) 그런 태도가 결혼을 한 다음 부엌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걸 한참 같이 산 다음에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해요. 말 몇 마디만 들어도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가 저를 찾아와서 ‘스님, 저희들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을까요?’ 하고 물으면 저는 단번에 ‘원수지간이었겠지’ 그래요.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알아요?’하고 되묻는데, 저한테 와서 전생에 대해 묻는다는 건 지금 사이가 좋다는 거예요, 안 좋다는 거예요? (청중 웃음) 사이가 안 좋으니까 와서 묻는 거예요.

아까도 이야기했잖아요. 누가 찾아와서 ‘스님, 우리 남편은 매일 술먹고 참 문제예요’ 이렇게 말하면 저는 바로 ‘아, 남편에게는 장점이 많겠구나’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남편에게 단점만 있으면 벌써 헤어졌지, 같이 살지 말지를 고민하며 저한테 물으러 오지 않습니다. (청중 웃음) 술 먹고 행패부리는 단점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장점이 있기 때문에 헤어질지 말지를 고민하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넌지시 ‘그럼 헤어져라’라고 말해봅니다. 그러면 단번에 ‘그러면 아이는 어떡해요?’하고 다시 물어요. 그러면 ‘그럼 같이 살아야지’하고 말아요.

저한테 신통력이 있어서 아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질문을 할 때 저한테 답을 다 알려줍니다. (청중 웃음) 저는 그냥 그 이야기에 비위를 맞춰주는 것뿐이에요. 헤어지고 싶다고 하면 ‘그래, 헤어져라’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로 헤어지면 그건 저한테 묻기 전에 이미 헤어지기로 각오를 하고 왔다는 거예요. 남이 헤어져라 한마디 한다고 헤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속으로 헤어질 각오를 거의 다 해놓고는 스님한테 책임을 나누려고 물어보는 거예요. (청중 웃음) 그래서 ‘헤어져라’라고 할 때 ‘알겠습니다’하면 그건 이미 속으로 어느 정도 결정을 하고 온 거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반면 헤어지라고 하는데 아이는 어떡하냐고 물으면 그건 아직 결심이 덜 선 경우예요. 그러면 저는 ‘아직 이익 볼 게 조금 남았구나’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청중 웃음)

이런 걸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사물의 한 면만 보고 판단을 내리는데, 사물에는 앞과 뒤, 좌와 우, 위와 아래 등 다양한 면이 있습니다. 그 전체를 다 볼 줄 알아야 해요. 위와 아래를 다 봐야 하는데, 위만 보고 결정을 하면 나중에 후회를 하게 돼요.

조금만 분석을 해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나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장기적으로는 장사를 잘못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이익을 줘야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곧 나에게 장기적으로 이로운 거예요.”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입에 단 약은 몸에 나쁘고, 입에 쓴 약은 몸에 좋습니다. 그러니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 나에게 나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입에 단 것처럼 우리는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늘 장기적으로는 손실을 보게 됩니다.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내라는 것도 윤리 도덕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해서 조금 더 현명하게, 단기 투자하지 말고 장기 투자하라는 거예요.”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고 관객들은 첫번째로 질문을 했던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내가 상처를 받은 것이지, 남이 잘 못해서 나에게 상처 입힌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다는 분들이 특히 많았는데, 이게 비단 그 질문자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런 심리가 조금씩은 다 있어서 그런 것 같다며 좋은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오늘 강연 총괄을 맡았던 김형섭 법우님은 그동안 아쉬움과 뿌듯함이 교차한다면서, 조금 흩어지는 분위기가 있었던 대전 청년 법우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뻤다며 밝게 웃어 보였습니다. 바쁘게 지내는 청년들은 법회에는 자주 못 나오기도 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청년 강연이 열리는 날은 명절처럼 특별히 시간을 내어 봉사자로 또 참석자로 모두 강연장을 찾습니다. 오늘 유쾌하고 유익했던 법문 덕분에, 이 강연이 씨앗이 되어 좀 더 많은 청년들이 대전법당을 찾을 것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윤희, 장재경, 조태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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