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 일찍부터 쌈 채소를 수확하여 포장하고, 상추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이라 모종 옮겨심기에 좋은 날씨였습니다. 아침 공양 후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정토회 고문이신 각해 보살님 49재일이라 재에 참석하여 천도 법문을 하였습니다. 점심 공양 후 오늘은 원주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있어 서둘러 원주로 출발하였습니다.

6월 초, 봄을 서둘러 보내고 이미 여름이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원주 백운 아트홀 뒤로는 푸른빛을 한껏 머금은 백운산이 병풍처럼 길게 펼쳐져 있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건물 내부에는 봉사자들의 바쁜 목소리와 형형색색의 옷들이 겹치면서 아쉽게 보낸 봄의 경쾌함을 다시금 보는 듯했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700명에 이르는 청중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연일 계속되는 무더운 날씨에 청중들에게 ‘많이 덥죠?’라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곤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 인도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봉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의 더위는 아무렇지 않게 된 사례를 들려주시며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본격적인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방탕하게 살아가던 자신을 변하게 만든 스님의 즉문즉설을 딸에게도 권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는 5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을 시작으로, 엄마에게 심한 말을 들으면 죽고 싶다는 46세의 미혼여성, 15년 전에 재혼한 남편이 느닷없이 졸혼 통보를 해서 심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낀다는 50대 초반 여성,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돌보지 못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시집간 딸을 걱정하는 6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서점을 운영하는 30대 후반의 남성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이어서 결혼한 20대 후반의 여성은 일을 앞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보며, 일상에서 내려놓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엄마에게 심한 말을 들으면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40대 후반 여성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제가 잘못된 행동을 해서 어머니가 화가 나시면 저한테 말을 심하게 하시거든요. 그러면 저도 화가 나서 하루 종일 계속 저한테 ‘차라리 죽어야 된다’고 하게 돼요.”

“누가? 질문자가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예, 어머니한테 심한 소리를 들으면 제가 저한테 그렇게 말해요.”

“어머니가 심한 소리를 어떻게 하는데요?”

“아버지 닮아서 인정머리가 없다고 하세요.”

“그건 사실이에요, 사실 아니에요?”(모두 웃음)

“사실이에요.”

“그런데 그게 왜 심한 소리라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런데 그 말 뒤에 ‘종자가 더러워서’라고 하시거든요. 그러면 제 자신이 뼛속까지 싫어져요.”

“싫어지는 건 알겠는데, 아버지 종자는 맞아요? 아니면 다른 데서 태어나서 이 집으로 왔어요?”(모두 웃음)

“맞아요.”

“그런데 그게 왜 심한 말이에요?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요.(모두 웃음) 사실을 듣기 싫다는 거지요?”

“아니, 그건...”

“거짓말을 듣고 싶다는 거예요?”

“아니요... 예... 아니요... 맞아요...(모두 웃음) 그런데 제 고민은요, 그런 어머니 말을 들으면 제가 힘이 빠져서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그냥 방에 누워 있게 되요. 제가 스님 법문을 듣고 좋은 말이 있으면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에 써놓고 카카오톡 볼 때마다 읽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런 날은 제가 화가 나서 상태 메시지에 ‘확 죽어버려야 된다. 어머니가 속이 시원하게 죽어야 된다. 단번에 죽어야 된다. 살아서 도움이 안 된다.’ 이렇게 써놓고는, 밤새 잠이 안 오니까 저 혼자 중얼 중얼 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이해는 가요. 제가 3남 4녀, 7남매 중에 장녀인데요, 부모님이 싸울 때 제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미워해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거든요. 넷째까지는 아버지를 좀 많이 닮았고 다섯, 여섯, 일곱째 동생들은 아버지를 닮지 않았어요. 많이 안 미워해서.(모두 웃음) 미워하면 닮는다는 스님 말씀처럼, 아버지를 정말 미워하고, 아버지 안 닮으려고 정말 싫어했는데, 제가 정말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볼 때 저한테 아버지 모습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걸 바꿀 순 없고, 그런 말을 하시는 어머니를 그냥 편하게 이해하며 들어줘야 되는데... 제가 어떤 마음으로 어머니 얘기를 들어야 저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연세가 어떻게 돼요?”

“저는 46세이고, 아직 미혼이에요.”

“어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어머니는 칠순이시고, 아버지는 일흔셋 되셨어요.”



“자기가 자랄 때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싸웠다는 거지요?”

“예.”

“질문자가 봤을 때 어머니가 결혼을 잘 했다고 생각해요,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남편 때문에 자기 인생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예.”

“그런데 어머니가 남편한테 심한 말을 하고 그러면 아버지가 가만히 듣고 있어요? 뭘 집어던지거나 폭력을 행사해요?”

“폭력을 행사하셨어요.”

“그러니까 어머니 속에 불만은 엄청나게 많은데 당사자한테 얘기하면 손실이 따르니까 당사자를 닮은 대타에게 욕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예...”

“그렇다고 벽을 보고 욕을 할 순 없잖아요.”

“예.”

“대상이 있어야 되니까요. 질문자가 7남매 중에 장녀이니까 질문자를 남편 대신 삼아 욕을 하는 거란 말이에요.”

“예.”

“어머니가 무슨 부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니고, 또 참으면 병이 되니까 터뜨려야 해서 맏이한테 터뜨리는 것 아니겠어요?”

“예.”

“그러니까 자기가 아버지 대신 욕을 좀 얻어먹는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어머니가 ‘종자가 더럽다’ 그러면 ‘예, 맞습니다.’(모두 웃음) 이러고, ‘네 아버지 닮았다.’ 그러면 ‘예, 닮았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지요.”

“그런데 또 욕을 심하게 하셔놓고는 먹을 걸 갖다 주세요. 그러면 차라리... 스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사랑해 주고 뺨 때리는 게 맞나? 뺨도 안 때리고 사랑도 안 해 주는 게 맞나?’ 이런 게 있었는데, 정말 저는 심한 말도 안 하고 먹을 것도 안 주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욕하고 먹을 거 갖다 주고...”

“심한 말도 안 하고 먹을 것도 안 갖다 주는 건 도인이에요.(모두 웃음) 아시겠어요? 그런데 심한 말을 하고 또 먹을 걸 갖다 주는 게 이 세상을 사는 보통사람들이예요. 어머니를 질문자는 어머니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그냥 보통사람이에요. 그래서 남편 때문에 화가 날 때는 성질을 내고, 그런데 그 성질을 내고 보니까 이건 애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인 거예요. 그러니까 또 애한테 미안해서 음식을 갖다 줬단 말이에요. 그런데 또 남편이 뭐라고 하거나 남편 생각을 하면 성질이 나니까 또 애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또 정신이 들면 이건 애 문제가 아니니까 또 애한테 음식을 갖다 주고, 계속 그러는 거예요.

제가 여러분들을 만나보면, 자기 딸이 대학을 졸업했는데 시집도 안 가고, 직장도 안 구하고, 말도 안 듣는다고 저한테 막 딸 욕을 해요. 그렇게 한참 욕을 한 뒤에 흥분이 좀 가라앉으면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스님, 어디 좋은 총각 하나 없어요?’ 이렇게 물어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딸한테는 막 욕을 해놓고는 또 딸을 위해서 혼수를 준비하고, 그러는 게 어머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어머니들한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치느라 ‘욕도 하지 말고, 음식도 주지 말라’, 즉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러지 말고, 미워하려면 사랑도 하지 말라’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스님의 그런 법문을 들었다면 질문자가 그렇게 하면 되지요. 어머니는 지금 그런 수준이 아니잖아요.”

“예...”

“아까 옆에 계시던 분이 ‘제가 듣고 좋다고 딸한테 얘기하니까 안 듣는다.’ 하듯이 질문자도 자꾸 어머니한테 ‘스님 법문대로 한번 해 봐라’고 한다고 어머니가 질문자 얘기를 듣겠어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화를 낼 때는 ‘성질이 나셨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어머니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든 그 말을 따지지 말고 ‘어머니가 화가 나셨구나.’ 하세요. 화가 나면 입에서 뭐가 나옵니까?”

“(대중들) 욕이요.”

“예, 그건 쓰레기예요. 아시겠어요? 우리가 음식을 사다먹거나 하면 반드시 음식도 있지만 그걸 포장한 쓰레기도 나오듯이, 화가 나면 입에서 쓰레기가 나오는데 그게 욕이란 말이에요. 누가 쓰레기를 질문자한테 집어던지면 질문자는 그걸 받아서 휴지통에 넣으면 되지, 그 쓰레기를 오늘 또 뒤져보고, 내일 또 뒤져보고, 모레도 또 뒤져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쓰레기를 줄 수 있느냐? 다 먹고 껍데기만 나한테 줬네.’(모두 웃음) 이렇게 계속 그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중얼중얼 욕을 하는 게 지금 질문자의 상태예요. 그러니까 딱 열어봤더니 쓰레기라면 쓰레기통에 바로 던져버리면 돼요. ‘어머니가 화가 나셔서 쓰레기를 나한테 던졌구나. 그럼 내가 그걸 쓰레기통에다가 던지면 되지’라고 생각해야지, 그걸 곱씹는 건 그 쓰레기를 계속 열어보고 시비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데 스님, 어머니가 또 혼자 중얼거리시다가 ‘둘 중에 하나 죽어야지.’ 하시거든요. 저는 그 소리가 정말 듣기 싫어요. 그 말은 정말 듣기 싫은데 그럼 그 말도 똑같이 쓰레기통에...”

“칠순 된 어머니께 ‘고치라’고 한다고 고치시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래요? 죽을래요?”

“아니오.(모두 웃음)”

“어머니 말이 또 진실이라면 자기가 죽든지 어머니가 죽어야 되는데, 자기가 죽을래요? 어머니를 죽일래요?”

“아니, 둘 다 싫어요.”

“예, 그거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

“예.”

“그런데 그렇게 실현가능하지 않는 일을 가지고 계속 이렇게 시비하는 건 자기를 학대하는 거예요. 어머니한테 ‘어머니,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한다고 어머니가 고쳐질 분이에요, 안 고쳐질 분이에요?”

“안 고쳐질 분이에요.”

“안 고쳐질 분인데, 그럼 그걸 갖고 계속 시비하면서 괴롭게 살아야 돼요?”

“아니오.”

“그러니까 ‘어머니는 살아오신 인생이 저렇게 힘드셨구나. 어머니가 힘드셔서 저러시는구나.’ 그렇게 받아들여야 돼요. 어머니를 지금 어떻게 할 순 없잖아요.”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그런데 이게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욕하고 챙겨주고, 또 욕하고 또 챙겨주고... 그런데 이게 부모예요. 엄격하게 말하자면 챙겨주지도 말고 욕도 안 하는 게 제일이에요. 여러분들, 애들이 방을 어질러놓으면 어질렀다고 욕을 하면서도 또 치워줘요, 안 치워줘요?”

“(대중들) 치워줘요.”

“욕을 하면서 치워주고 그러잖아요.(모두 웃음) 그러니까 욕을 하지 말고 안 치워주는 게 나도 좋고, 애들한테도 훨씬 좋은데, 왜 우리는 치워주고 또 욕하고 그럴까요? 그러니까 욕을 할 때는 제 뜻대로 안 되니까 독재근성 때문에 욕을 하는 거고, 또 지저분한 걸 보면 치우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치워주지를 말고 욕도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치우는 애도 쓰고, 또 욕을 해서 아이한테 상처도 주고, 또 아이를 불쌍히 여겨서 치워주고, 그러지요.

그런데 저런 분들이 어머니 돌아가시면 또 그리워할까요, 안 그리워할까요? 엄청나게 그리워하면서 ‘살아계실 때 조금만 더 잘 해드릴 걸’ 그럽니다. 이게 우리의 이중심리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을 잘 알아서 지혜롭게 대응하는 게 수행입니다. ‘이건 내가 고칠 수 있는 거냐? 아니, 고칠 수 없다.’ 그러면 질문자와 어머니는 부부사이도 아니니까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질문자가 집을 떠나면 됩니다. 지금 나이도 마흔이 넘었다니까 집을 떠나서 어머니와 안 부딪치면 되지요. 그런데 저분은 어머니와 연락 안 하고 살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자기도 똑같아요. ‘상처 입는다.’ 그러면서 또 어머니와 연락하고, 가서 뵙고, 그렇게 안 하고는 못 삽니다. 어머니에게 죄스럽고, 불효 같고, 그럴 거예요.

이건 피할 수 없는, 어머니만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도 안 되는 문제라는 거예요. 지금이라도 질문자가 ‘어머니,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어머니는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죽을 순 없으니까 제가 눈앞에서 안 보이겠습니다.’ 눈앞에 안 보이는 게 죽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연락을 딱 끊고 살면 되지요.

그런데 질문자는 실제로 연락을 끊고 살 수 있을까요? 잘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사셨겠냐. 저런 남자 만나 결혼해서 사느라 얼마나 힘드셨겠냐.’ 이렇게 생각하고, 또 아버지도 그렇게 화를 내고 하는 건 그런 어머니와 같이 살다보니 답답해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질문자가 어렸을 때는 항상 아버지가 문제인 것 같았는데, 아버지도 그런 여자랑 살려면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답답하니까 화를 내셨겠다.’ 이렇게 지나고 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부부 사이가 아주 좋은 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겠다’고들 생각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서로 좋아해서 살다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부부가 그 아이 때문에 살아요, 자기네 좋아서 살아요?”

“(대중들) 자기네 좋아서요.”

“예. 만약 아이가 죽거나 하면 그래도 살까요? 아니면 아이가 없으니까 둘이 헤어질까요? 그래도 살겠지요?”

“(대중들) 예.”

“하나를 더 낳아서 살든지, 입양해서 살든지 그럴 거예요. 그런데 부부 사이가 굉장히 나빠서 매일 싸우면서 애들을 키운 집은 애들 때문에 살까요? 남편이나 아내가 좋아서 살까요?”

“(대중들) 아이들.”

“예. 만약 아이가 죽거나 하면 그 부부는 계속 살까요, 헤어질까요?”

“(대중들) 헤어져요.”

“예. 그러면 아이 입장에서는 싸우는 부모로부터 더 사랑을 많이 받은 걸까요? 사이좋은 부부로부터 사랑을 더 많이 받은 걸까요?”

“(대중들) 싸우는 부부.”

“예. 싸우는 부모로부터 사랑을 더 많이 받은 거예요. 이상한 논리죠?(모두 웃음) 그러니까 부모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 때문에 산거예요. 그러니까 자식에 대해 굉장한 애정을 갖고 있는 거예요. 자기 성질을 못 이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에 성질을 못 이겨서 욕을 해 놓고도 먹을 걸 챙겨준 겁니다. 그런 어머니, 그런 아버지에 대해 질문자는 ‘감사합니다. 두 분이 그렇게 같이 살기 어려웠는데도 우리 때문에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헤어지면서 우리를 고아원에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도 안 버리고 우리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질문자 가슴에 있는 트라우마, 부모님으로부터 입은 상처가 치유됩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되면 어머니가 그런 성질을 부려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이고, 어머니께서 또 힘드시구나.’ 이렇게 넘어갈 수 있어요. 질문자에게 상처가 있으니까 어머니가 그러시면 다시 그 상처가 도져서 ‘죽느냐, 사느냐’는 문제가 되는 거예요.”

스님의 명쾌하고 빈틈없는 답변에 강연장이 숙연해졌습니다. 간간히 스님이 가볍게 청중들에게 물으면 청중들이 조심스럽게 답변하는 모습에서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장하게까지 느껴지던 질문자의 표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스님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는 여유까지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모두의 고민을 듣고 때로는 크게 웃기도 하고, 질문자의 안타까운 현실에 같이 공감했습니다. 다소 민감하고 불편한 주제에 대해서도 스님은 냉정을 잃지 않고 질문자에게 끝까지 성의껏 답변하였습니다.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 중인 50대 질문자에게 ‘버릴 때 신중하라. 버리고 나서 50점짜리 구하지 말고, 60점 70점짜리에게 잘해주라’는 스님의 익살 품은 비유에 질문자는 공감의 실소를, 청중들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소중한 무엇을 찾기보다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책 사인회에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을 듣고 총총히 강연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나마 삶의 시름을 잊고 행복한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원주 정토회 자원봉사자 67명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무더운 날씨 수고해주신 봉사자들에게 덕담을 해주고 떠나는 스님께 봉사자들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의 밤공기는 시원했습니다. 스님의 해법으로 가슴이 상쾌한 느낌처럼 말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진창욱, 조연서,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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