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아침 일찍 밭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두북수련원은 엊그제 내린 우박으로 상추, 고추, 감자 등 그 동안 정성을 기울여 심은 작물들이 잎이 찢기고 여린 잎들은 무참하게 누워버렸습니다. 스님은 상처를 덜 입은 상추 잎과 겨자채들을 정성들여 따서 갈무리 한 다음 상자에 넣어 서울 가는 길에 공동체 대중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잎들을 따고 보니 정원 한쪽에 펼쳐 놓은 돗자리에 한 가득이었습니다.

피해가 많은 밭은 잎을 따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은 갈무리를 한 뒤, 밭을 뒤집어 다시 새 작물을 심었습니다.

아침 공양도 먹는 둥 마는 둥 한 숟가락을 간단하게 드시고는 오전 내내 정리 작업을 하였습니다. 찌는 듯한 햇살에 땀이 비오듯 흘렀습니다. 한참 일을 하고 점심을 드시고 스님은 서둘러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평화재단 운영위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요즘 언론에서 회자되는 불교계 문제에 대한 운영위원들의 질문에 답해주었습니다. “종교계 내부의 윤리 문제와 법을 어기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보아야 한다”며 “일부 스님들의 문제를 스님들 전체의 문제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장은 불교계를 위축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 불교가 새롭게 탄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짚어주었습니다.

오늘 회의는 2가지 주요 의제에 대해 집중 토론을 했습니다. 첫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롭게 변화되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이라는 방향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둘째, 민간단체로서 15년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해온 평화재단이 어떻게 담론을 형성하고 전략과 정책으로 구체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우선, 교육원에서는 남북관계에서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남북경협’에 대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획 강좌를 열기로 하였고, 프로그램에 대해 위원들과 함께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연구원에서는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이라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담론을 형성하고 연구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고, 다음 회의에서는 함께 할 전문가들을 선정하고 세부 계획을 구체화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오늘은 스님의 강의가 없었기 때문에 지난 31일 순천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 중에서 질문과 답변 한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학교선생님과 상담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아이가 숙제를 제출할 때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의 기질을 제가 인정하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서도 아이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에 사로잡히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보면 제 자신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지내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저를 닮아서 그런 기질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같은 반 친구라도 초대해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아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제 마음에 이런 불안이 올라오면 객관적이기 보다 그 불안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도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서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지금 그런 성격을 가지고도 잘 살고 있어요, 못 살고 있어요?”

“저는 만족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게 제가 정말 만족하는 것인지, 제게 주어진 환경을 회피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살고 있는지 못 살고 있는지가 그리 복잡한 질문도 아니고, 잘 살고 있으면 그냥 ‘잘 살고 있습니다’하면 되고 못 살고 있으면 ‘못 살고 있습니다’하면 되지 ‘나는 만족을 하는데 이게 진짜 만족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하네요. (청중 웃음)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인생을 살아요?”

“스님, 그런데 제가 타고나기를 생각이 참 많습니다.” (청중 웃음)

“생각이 많은 건 알겠어요. 그렇게 생각이 많은데도 지금 잘 살아요, 못 살아요?”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를 닮아요, 안 닮아요?”

“닮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닮으니까 아이도 생각이 많겠지만, 마찬가지로 엄마가 잘 살아가니까 아이 역시도 잘 살아갈까요, 못 살아갈까요?”

“잘 살아갈 겁니다.”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 (청중 웃음)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되도록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데...”

“질문자는 행복하게 산다면서요?”

“네.”

“그러면 질문자를 닮은 아이도 행복하게 살 거예요.”

“제 나름대로는 아이에게 잘 하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늘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지금 욕심을 내고 있네요. 자기 수준을 뛰어넘어서 뭔가를 하려고 하잖아요. 그렇게 되려면 부처님처럼 되어야 하는데, 부처님처럼 6년 정도 고행할 수 있겠어요? 질문자가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될 수 있으면 아이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예요. 예수님처럼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보면서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할 정도가 될 수 있겠어요?”

“아니요.”

“안 되면 자기 수준을 알고 살아야죠. 뭘 그리 욕심을 내고 그래요?” (청중 웃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제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에 다가가고 싶어요.”

“질문자는 지금 거꾸로 알고 있는 거예요. 마음이 그렇게 바라는 게 아니라, 머리로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마음은 그러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만약 마음이 그렇게 되고 싶었다면 벌써 그렇게 되었을 거예요.

아침에 알람 맞춰놓고 못 일어나면 흔히들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못 일어난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일어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일까요?

이건 간단한 실험 하나만 해보면 알 수 있어요.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나야 되는데…’ 이렇게 열 번만 반복해보세요. 그러면 무엇을 알 수 있어요? 일어나야 된다는 말은 지금 일어나기가 싫다는 말이에요. 그렇게 마음 속에서 일어나기가 싫으니까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고 싶으면 벌떡 일어나버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기 싫은 것은 습관이에요.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것이 습관이 아니라 하기 싫은 것이 습관인 거예요. 질문자도 생각으로는 욕심을 내서 ‘훌륭한 엄마가 되어야지’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이고,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은 ‘지금까지도 잘 살았는데 뭘 하루 아침에 바뀐다고 그래’ 하고 있는 거예요.

이건 마치 학교 다니는 아이가 ‘내일이 시험이니까 오늘은 밤에 잠 안 자고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욕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시험을 잘 치면 뭐하고 못 치면 뭐해, 졸리면 자야지’ 하니까 밤에 졸리면 그냥 자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마음을 따라갑니다. 습관을 제어하려면 정신력이 아주 강해야 해요. 질문자는 생각으로는 바꾸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그만큼 정신력이 강하지 않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문제냐면 그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대로 살면 됩니다. 바뀌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질문자도 잘 살았으니까, 아이도 잘 살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 거예요. 아이는 질문자를 닮겠어요, 다른 사람을 닮겠어요?”

“저를 닮아요.”

“그래요, 질문자를 닮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부족하듯이 내 아이도 부족할 거예요. 또한 내가 부족하지만 잘 살듯이, 내 아이도 부족하지만 잘 살 거예요. 그래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나는 부족하지만 우리 아이는 부족하지 않도록 할 수는 없을까요?’라고 하는데, 그건 욕심이에요. 이건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과 같아서, 나는 부족한데 우리 아이는 부족하지 않게 될 수는 없어요. 정말로 그것을 원한다면 자기부터 바뀌어야 해요. 자기를 바꾸려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강단 있게 자기 변화를 시도 해야 하는데, 지금 그걸 하려면 자기 변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 수 있겠어요?”

“아니요.”

“그러니까 생긴대로 살라는 거예요. (청중 웃음) 질문자를 얕봐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대부분 바뀌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바뀌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하라고 하면 안 합니다.

그러니까 괜히 욕심내서 자기를 괴롭히지 말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도 괜찮으니까 지금 이대로 살라는 거예요. 자기를 괜찮게 받아들이면 아무런 문제될 게 없어요. 내가 괜찮으면 우리 아이도 괜찮은 거잖아요. 그러니 아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자꾸 욕심을 내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데, 그런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또 ‘엄마가 되어서 어떻게 자식한테 욕심을 안 부려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 말도 맞는 말이에요. 대신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긴다는 거예요. 욕심을 부릴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인데, 왜 괴로운지 물으니까 그건 ‘욕심내서 괴로운 거다’라고 알려주는 거예요. 안 괴롭고 싶으면 욕심을 버려야 하고, 욕심을 못 버리겠으면 그냥 조금 괴롭게 살면 돼요. 여기에 특별한 다른 방도가 있는 게 아니에요.”

“제 욕심으로 인한 괴로움은 감수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을 한다면...”

“네, 지금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하면 돼요. 또 우리가 각자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저도 지금 통일이 안 되는 걸 어떻게든 되게 해보려 하고,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어떻게든 안 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건 혼자 힘으로 잘 안 되니까 정토회 회원들도 다같이 함께 동참시켜서 노력하고 있어요. 미국도 가고, 중국도 가고, 북한 사람들도 만나서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고 설득하고 그래요.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만약 전쟁이 나면 나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는 거예요.

노력을 했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울거나 하지도 않고, 트럼프나 김정은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예요. 제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제 뜻대로 다 되겠어요.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내가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으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과대평가 하는 거예요. 자기가 노력한다고 된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청중 박수)

조태준, 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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