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님은 정토회 서초법당에서 공동체 대중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 후에는 서울공동체 대중들이 준비한 스승의날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젊은 상근활동가들이 준비한 축하 공연이 있었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스님과 법사님들은 환한 웃음으로 젊은 친구들이 준비한 재롱 잔치를 보았습니다.

공연 후에는 스님과 법사님에게 상근활동가들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주었습니다.

이어서 다함께 스승의 날 기념 영상을 봤습니다. 공동체 대중들이 ‘인생을 바꾼 법륜스님의 한마디’에 대해 인터뷰한 영상이었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이어서 공동체 대중들이 스님께 삼배로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이 자리를 마련해준 서울공동체 대중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대중들이 더욱더 자유롭게 행복한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 말씀을 나눠주었습니다.

“서울공동체 사람들은 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과 자신을 자꾸 비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수행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우리가 외딴 섬이나 깊은 산속 같은 데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며 일의 속도를 천천히 늦춰서 생활한다면 아마 여러분들도 ‘내가 수행자다’ 하는 생각을 더 의식적으로 깊이 하지 않겠나 싶어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행복은 주어진 조건에서 얻을 수 있는 일시적인 것이지 항상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온갖 세상일, 그게 장사든, 사회활동이든, 연구든, 이런 세상사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이 대승보살의 길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수행을 하게 되면 시간과 공간을 논하거나, 조건을 따지는 경지를 넘어설 수가 있습니다.

초심자가 자기도 모르게 환경을 탓하는 버릇을 고치려면, 격리된 곳에서 장시간 자기 성찰할 기회를 가진 다음에 밖으로 나와서 경계 따라 단련하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禪)에서는 자기성찰, 즉 ‘아, 내가 이게 문제구나’ 하고 근본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초견성(初見性, 소따빠나Sotāpana)’이라고 하고, 그 이후 일상 속에서 늘 자기 본분을 지키는 수행을 하는 것을 ‘보림(保任)’이라고 합니다. 보림은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렇게 해서 입지(立志), 즉 어디를 가나 자기중심을 세우는 경지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3년 동안 문경에서 행자교육을 했는데도 좀 자리가 덜 잡힌 것 같아요. 오히려 정토회 회원들, 즉 일반대중들 중에는 정진을 통해서, 또는 법문을 듣고 법의 가피를 입어서 변한 사람이 많아요. 이렇게 생활 속에서 터득한 보살들이 많습니다.

제가 어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 저를 보고 단순히 아는 사람을 봤다고 인사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고맙다’ 며 물 한 병이라도 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가 죽으려고 했는데, 이혼하려고 했는데, 낙담했는데 법문 듣고 자기네 삶이 바뀌었다면서, 우연히 이렇게라도 만나서 진짜 반갑다고 말했어요. 그 표정을 보면서 저도 그분들의 진심을 알 수 있었어요. 일상사 속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게 법의 가피예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좀 한적한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생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것만 갖고는 우리가 ‘인류사의 모델’이라고 할 수 없어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돈 없는 곳에서 살 게 아니라 돈이 흘러넘치는 곳에 있으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인류사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식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음식을 조금 줘서 적게 먹을 게 아니고, 음식이 널려있는 데서 스스로 선택해서 적게 먹음으로써 식탐으로부터 진짜 자유로워져야 해요.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아서 내가 편안한 건 환경 때문이지, 내 수행 때문이 아니거든요. 보통사람 같으면 도저히 못 견딜만한 그런 환경 속에서도 편안함을 유지해야 진정한 해탈입니다. 어디를 가나 나는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경지로 나아가야 합니다.

무엇을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라 원칙을 늘 챙겨서 해야 하고, 자기가 자기 욕구에 끄달리는 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끄달리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뭐에 끄달리는지, 먹는 것에 끄달리는지, 자기 견해를 고집하는지, 자신의 어떤 취향을 안 버리고 움켜쥐려고 하는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남에 대해서는 ‘쟤는 뭐가 문제다’ 하는 걸 알잖아요. 그래서 ‘아이고, 그 사람은 다른 건 다 좋은데 그거 하나는 문제야.’ 이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그걸 자기만 모른다는 거예요. ‘그 사람은 그게 문제야’ 라고 할 때 그렇게 문제를 삼는 그 사람도 분별심이라고 볼 수 있지만, 도반이 그런 지적을 했다면 그 속에는 ‘그것만 고친다면 그 사람한테 참 좋을 텐데’ 하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 남이 아는 걸 자기가 아는 게 필요합니다. 내가 나를 잘 모르겠으면 도반에게 청하세요.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내가 어떤 것을 개선하면 좋을지 청하세요. 꼭 개선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한다면, 내가 그것 하나 정도는 고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근본적으로 못 고치면 완화시키기라도 하는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요?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일은 열심히 잘 하는데 좀 불안정한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꾸준히 못하고 기분 내키면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또 있겠다고 했다가 나간다고 했다가 (모두 웃음) 이렇게 죽 끓듯이 하는데, ‘그래서 문제다’ 가 아니라 그런 자기를 가만히 보라는 겁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처럼 꾸준히 하는 게 참 중요합니다. 세상의 일은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해야 신뢰가 형성되는 거예요.

재능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한테 이용당하기가 쉬워요. 재능이 있으면 사람들이 쓰려고 하니까요. 그러나 꾸준히 어떤 일을 하는 건 사람들한테 신뢰감을 줍니다. 신뢰감을 주는 것과 사람들한테 이용당하는 것은 성격이 다릅니다. 이용당하는 게 여러분들은 굉장히 좋은 건 줄 알아요. 대중을 위해서 재능을 쓰되 너무 재능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오히려 어떤 일을 꾸준히 해 나가서 신뢰를 얻는 사람이 수행자입니다. 세상은 늘 시시때때로 바뀌어요. 그러니 사람들 눈치 너무 보지 말고, 일단 꾸준히 추진하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공동체로 같이 살려면 서로 보듬고 다듬는 게 필요합니다. 아무리 수행자라 하더라도 그런 따뜻한 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따뜻한 정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의날 행사를 마친 후 스님은 여러 일정들을 더 가졌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행복한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강서 구민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이 될 거라는 예보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봄이 익어 여름이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여름이 왔다는 느낌은 잠깐의 더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즉문즉설이 진행되는 강서구민회관은 걸으면 숨이 턱턱 차오를 정도의 언덕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숨차게 도착한 강연장 안은 초여름 바깥 더위가 무색할 정도로 후끈합니다. 4시부터 접수를 기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더니 금세 600석이 다 들어찼습니다.

즉문즉설이 시작되기 전 로비는 접수처, 도서 판매처, 강연 후원금 모금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오늘은 18명이 질문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차분히 신청서를 적는 분들을 보니 어떤 사연이 스님과 만나게 될지 지켜보는 이까지 설렙니다.

스님이 강연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관중들이 환호했습니다. 스님은 ‘평화의 봄, 계절의 봄보다 더 중요한 마음의 봄을 함께 맞이하자’라는 인사말로 관중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9명의 질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이 되고 싶은데 불상은 무섭다는 젊은 여성분의 고민, 스님을 통해 배운 앎을 주변 사람들에게 잔소리하듯 말하는 자신이 땡중 같다는 고민을 털어 놓는 남성분, 남편과 이혼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는 마음을 덤덤하게 읽어간 50대 여성분의 고민, 열심히 살아온 20대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게 마음 아프다는 엄마와 20대들이 마주한 불합리한 시스템에 대한 아들의 자뭇 진지한 고민은 기성세대들에게 깊이 와닿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사망한 동생의 몫만큼 의미 있게 살고 싶다는 남성분의 고민, 잔정이 없어 남자 친구,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여성분, 두 번째 이혼을 놓고 갈피를 못 잡는 분의 고민까지 하나같이 나의 고민 같고 내 친구, 내 가족의 고민처럼 다가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최선을 다하는 자신의 노력을 아내가 알아주지 않아 속상하다는 젊은 아빠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결혼 5년차인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았습니다. 제가 37살인데, 혼자 서울로 올라와서 자리도 잡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것도 욕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제 마음속에는 아내에 대해 아직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게 있어서 여쭤보려고 합니다.

제가 아내를 무척 좋아해서 쫓아다니며 ‘결혼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막상 결혼해보니 생활습관이 다른 게 많아서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러나 아기가 일찍 생겨서 다투기보다는 빨리 육아를 같이 해야 해서 그냥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둘째를 가지면서부터 생활습관 때문에 서로 다툼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작년에 장인 어른께서 ‘우리 딸이랑 살려면 법륜스님 말씀을 좀 들어보면 좋을 걸세’ 라고 권유해 주셨어요. 아내는 장점도 많습니다. 제 입장에서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에 대부분은 해결이 된 상황인데, 아직 포기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제가 저희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가정적이고 좋은 남편으로 살려고 많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땡’ 하면 집에 들어가고요, 아기는 무조건 제가 씻기고, 주말엔 무조건 놀아주고, 돈도 나름 벌고 있고요. 제가 딱 한 가지 필요한 게 있다면, 아내가 저한테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잘한다. 수고한다. 고맙다’는 등 공감과 애정 표현을 해주는 거예요. 스님도 어떤 법문에서 ‘남자는 다루기 쉽다. 궁댕이만 두들겨 주면 된다’고 하신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도 그런 공감이나 사랑 표현이 필요합니다. 이건 제가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겠어요. 그런 부분까지 제가 내려놓고 살아야 되는 건가요?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면 ‘설악산도 어차피 대답 안 하니까, 그렇게 살아라’라고 하실 것 같은데, 그런 말씀을 스님께 직접 듣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청중 박수)

“여자들이 질문할 때는 남자들이 문제인 것 같았는데, 여러분, 이 젊은이의 얘기를 한번 들어보니까 어떠세요? 남편을 알아주고 격려해 주면 좋겠지요? 사람들한테는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옆에서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해 주면 죽기살기로 달려가게 돼요. (모두 웃음) 여러분들, 이 젊은이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남편도 저럴지 모르겠다’는 생각 좀 해 보셨어요?”

(대중들) “예.”

“남편들 좀 격려해 주면 안돼요? (모두 웃음) 그런데 아내가 격려를 안 해 주는 걸 어떡해요? (모두 웃음) 물론 아내가 격려해 주면 금상첨화지요. 그런데 안 해 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어떡해요? (모두 웃음) 이게 문제예요. 부드럽기 때문에 솜을 택해 놓고 자꾸 여기다가 ‘쇠 같은 강함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것과 같아요. 날카롭기 때문에 칼을 선택했는데 ‘솜 같은 부드러움이 없다’고 자꾸 불평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이미 선택을 했는데 어떡해요?

보통사람은 10개 중에 마음에 드는 게 1~2개밖에 없고 8~9개가 문제라서 힘들어 하거든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8~9개는 괜찮은데 1개만 좀 해결해 달라는 거잖아요.” (모두 웃음)

“8개 정도 안 좋았는데 제가 스님 말씀 들으면서 6~7개 정도는 스스로 해결을 했고, 나머지 1개만 남았다는 겁니다.” (모두 웃음)

“나이 37살에 덩치도 저렇게 큰데, 무의식 세계는 아직도 유아적 사고를 갖고 있어요. 아직도 엄마가 머리 쓰다듬어 주고 볼 만져주면서 ‘아이고, 잘한다’ 하는 걸 그리워하는 거예요. 이걸 ‘사랑고파병’이라 해요. (모두 웃음)

지금 아내한테 엄마의 사랑을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어릴 때, 특히 3살 이전에 충분히 사랑을 줘야 됩니다. 그래야 사랑고파병이 안 걸립니다.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못 받아서 지금 껄떡거리는 거예요. (모두 웃음)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사랑을 줘도 밥을 먹었지만 덜 먹은 것처럼 껄떡거리게 돼요.

질문자의 아내가 덜 사랑해 주는 게 아니고 질문자의 껄떡거림을 채워줄 만큼은 충분하지가 못한 거예요. 아내 문제가 아니고, 질문자의 껄떡거림의 문제예요. 질문자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 어른이 돼야 해요. 누가 칭찬해 주기를 바라지 마세요. 그리고 질문자가 처음부터 설거지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돌봤다면, 그런 문제들로 싸우면서 살다가 스님 법문 듣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이도 돌보게 되면 아내가 좋아했을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결혼하자마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아내는 그게 너무 당연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엄마한테 섭섭한 게 있는 이유는, 엄마가 해 주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남이 그렇게 해 줬다면 엄청나게 고마워했을텐데 엄마한테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는 게 제일 중요한데, 매일 숨 쉬면서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아내는 질문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거예요.

‘아이는 내 아이일 뿐만 아니라 당신 아이이기도 한데, 자기 아이 자기가 돌보면서 무슨 칭찬을 바라느냐?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게 무슨 칭찬할 거리냐? 같이 사는 데를 청소하면서 무슨 칭찬을 바라냐? 자기 옷을 자기가 빠는데 그걸 왜 내가 칭찬해 줘야 되느냐?’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잖아요? (모두 박장대소) 그래서 그런 걸로 칭찬 받으려고 하면 안돼요. 알았지요?”

“예, 알겠습니다.”

“질문자는 ‘아내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아내가 없으면 어차피 아이도 질문자가 봐야 되고, 밥도 질문자가 해야 되고, 청소도 질문자가 해야 되잖아요. ‘아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예요. ‘없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돼요. ‘나하고 결혼만 해 주면 내가 뭐든지 다 할게’ 라고 했던 때로 돌아가셔야 된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아내한테 무릎 꿇고 ‘결혼만 해 주면 내가 뭐든지 다 할게’ 라고 했을 거 아니에요? 아내는 지금 ‘자기가 다 하겠다고 해 놓고 왜 다 안 하느냐’ 는 생각만 하지, 질문자를 칭찬해 줄 생각이 전혀 없어요. (모두 웃음) 다 한다고 해 놓고 안 하니까 오히려 입이 나와 있을 거예요.”

“예, 맞습니다. 아기도 낳기 싫다고 했는데 둘째까지 낳았기 때문에 제가 사실 할 말이 없긴 합니다.”

“매일 아침 ‘저하고 결혼해 주고 살아줘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이러면 불평이 싹 없어질 거예요. 아내가 가버리면 질문자는 어떡할래요?” (모두 웃음)

“예.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젊은 부부 이야기를 남편 입장에서 들으니 새로운 관점이 보였습니다. 스님도 여성분들의 질문을 주로 받다가 남편의 질문을 받으니 새롭다는 말로 답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위한 답, 남편을 위한 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답변을 하는 중에도 질문자에게 다시 되물어가며 질문의 속뜻을 한 겹 한 겹 벗겨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의 공감과 인정이 간절하다는 젊은 남편의 고민은 누군가의 공감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해서 스님의 답변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9명의 질문과 스님의 답을 듣다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스님은 괴로운 일도 한 단계 한 단계 분석해보면 괴로울 일이 없다고 언제나처럼 가벼운 답을 보여줬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질문의 끝까지 자신을 탐구하는 끈기가 없어서 이유를 찾지 못할 뿐이라며 답은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스님은 ‘별 일 아니네’라는 답을 찾을 때 비로소 모든 갈등과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일깨워주며 즉문즉설을 마무리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로비에는 책 사인회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책을 미처 구입하지 못한 분들은 스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표정입니다.

아내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질문자는 “sns에서 간접적으로 뵙던 스님을 직접 뵙고 싶어 왔는데 질문에 대한 답까지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며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아빠 역할, 남편 역할까지 하다보면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힘들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은 직접 현장에서 스님 말씀을 들어야겠다” 라며 작은 다짐을 하며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습니다.

강서구민회관에서 즉문즉설이 있던 날은 마침 5월 15일 스승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봉사자와 스님의 기념촬영이 끝나자 깜짝 이벤트가 이어졌습니다.

봉사자들은 ‘스승님을 만나서 행복합니다’라는 플랜카드와 함께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스님에게 색다른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류상미, 하수엽,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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