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님은 지적장애인 거주 시설 애광원 식구들과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에 걸쳐 두 차례 진행되고 있는 연례행사입니다. 마산, 거제, 통영, 함안, 창원, 장유, 김해 법당에서 35명의 봉사자와 9명의 스태프들이 함께 동참하였고, 애광원에서는 25명의 거주인과 김임순 원장님 외 선생님 10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마산정토회에서 주관하였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서 한 달 전부터 스테프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습니다. 장소는 김해 김수로 왕릉입니다. 이번 장소는 작년에 답사한 경험이 있어서 세 번의 답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애광원 선생님들과 최종적으로 답사를 마친 후 장소를 정하였습니다.

오늘 날씨는 정말 화창합니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봉사자들은 13일 SBS에서 방영된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법륜 스님의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삶의 철학을 말씀하시는지 다음주 20일 일요일 6시 25분에 방영될 후편이 무척 기다려진다” 고 하였습니다. 출연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때에 애광원의 차가 도착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각자 맡은 짝지를 찾으며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스님이 따뜻한 봄날에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다고 하자 거주인들은 신나고 즐거운 목소리로 “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스님은 먼저 김해 가야와 김수로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 같이 따뜻한 봄날에 여러분들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겠어요?”

(대중) “네.”

“여러분들은 거제에서 출발해서 지금 김해에 도착했습니다. 거제와 김해는 둘 다 경상남도에 속해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김해시에 있는 김수로 왕릉이에요. 역사를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 지역에는 가야 혹은 가락국이라고 하는 여섯 개의 나라가 있었어요. 그 중 가장 큰 나라가 ‘금관가야’였어요. 그리고 금관가야의 수도가 바로 김해였고, 금관가야의 첫 번째 왕이 수로 왕입니다. 성이 김(金)씨여서 흔히 김수로 왕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김수로 왕릉인데, 보시는 것처럼 이 왕릉은 산에 만든 게 아니라 완만한 평지에 만들었어요. 오늘 이 주변을 산책하러 나왔는데, 산책도 좋지만 이왕 이곳까지 나왔으니까 관련된 역사 이야기도 조금 알면 좋겠지요?”

(대중) “네.”

“우리나라 역사 중 삼국시대라고 일컫는 시대가 있는데, 실제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부여 이렇게 다섯 개의 나라가 있던 오국시대였어요. 그 중 가야는 경상남도 서북지역과 경상북도 남서지역 그리고 지리산 자락이 있는 전라도의 동부지역에 걸쳐서 자리를 잡은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여섯 개의 작은 나라들이 있었어요. 그 여섯 개의 나라 중에는 금관가야가 가장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뒷쪽으로 올라가면 김수로왕이 태어났다는 건국설화의 배경이 되는 구지봉(龜旨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신라에는 여섯 개의 씨족이 살았다고 해서 흔히 ‘신라 육성(六姓)’이라고들 하는데, 가야에는 아홉 개의 씨족이 살았나봐요. 그 아홉 개의 씨족을 구간(九干)이라고 부릅니다. 간(干)이라는 말은 동북아시아에서 흔히 왕을 일컫는 말이에요. 여러분들 ‘징기스칸’이라고 들어봤죠? 거기서도 ‘칸’이라는 말이 왕 혹은 추장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김해 지역에 아홉 개의 씨족이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각 씨족의 족장 아홉 명이 구지봉에 모여서 ‘거북아, 거북아, 너 목을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을테다’ 하고 외쳤더니 그곳에서 금으로 된 여섯 개의 황금알을 담고 있는 함이 나왔다고 해요. 여섯 개의 황금알 중 첫 번째에서 나온 사람이 바로 수로 왕입니다. 첫 번째 혹은 제일 높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 바로 ‘수리’입니다. 수리봉, 독수리에서 쓰이는 ‘수리’라는 말도 다 ‘첫 번째’, ‘으뜸’, ‘가장 높다’ 는 뜻인데, 수로왕에 붙은 ‘수로’도 같은 의미예요.

황금빛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도 김(金)씨라고 하고, 그 중 첫 번째로 나왔다고 해서 이름을 ‘수로왕’으로 지었습니다. 나머지 다섯 개의 알에서도 각기 아기가 나와서 가야에 여섯 개의 나라가 생겼다고 전하고 있어요. 이것이 가야의 건국설화예요.

가야가 신라에 흡수통일 되면서 우리 역사에서 가야의 역사는 많이 소실되었어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의 역사를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 가야는 당시에 문화가 아주 많이 발달된 나라였어요. 지금까지 가야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발굴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발굴하면 앞으로 관련된 많은 유물과 자료들이 나올 거예요.

김수로왕도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에요. 그 중 하나는 김수로왕의 부인이 인도 사람이었다는 것이에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인도에서 건너 온 사람이 금관가야 왕의 부인이 된 거예요. 김수로왕은 기원 후 42년에 왕위에 올랐고, 부인은 그로부터 6년 후인 기원 후 48년에 가야에 왔다고 합니다. 원래는 인도에 있는 아유다 왕국의 공주여서 ‘아유다 공주’라고 칭하다가, 왕후가 된 다음 우리나라 성씨인 허(許)씨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식의 이름도 주어서 허황옥(許黃玉) 왕후가 되었습니다.

김수로왕과의 사이에 아들 10명이 태어났는데, 첫 번째 아들인 거등(居登)은 김해 김(金)씨를 잇는 왕이 되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아들은 어머니의 성씨인 김해 허(許)씨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곱 명의 아들은 모두 스님이 되었습니다. 지리산 근처로 출가를 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그곳에 칠불암(七佛庵)이 생겼습니다. 여러분들 ‘지리산 칠불암’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대중) “네.”

“바로 가야의 왕자 일곱 명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칠불암이라고 한 거예요. 아유다 공주가 인도에서 가야로 건너올 때 장유화상(長游和尙)이라는 스님도 같이 오셨습니다. 사실은 아유다 공주와 장유화상은 불법(佛法)을 전하러 이곳에 같이 오셨던 거예요.

이렇게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는 2천 년 가까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부분의 역사가 잊혀져서 마치 우리나라 불교는 서기 372년 중국에서 고구려로 처음 들어온 것으로 잘못 여겨지곤 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가 1600년 되었다고 말은 여기서 비롯된 것인데, 실제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는 거의 2천 년에 가깝습니다.

김해시 ‘장유면’이라는 지역 아세요?”

(대중) “네.”

“거기서 윗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장유폭포도 있는데, 이런 지명에서도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허황옥 왕후의 능에 가면 인도에서 건너왔다는 ‘파사탑’이라는 돌이 있는데, 그 돌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돌이 아니라 인도 지역에서 건너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김수로 왕릉 앞에 가면 물고기 두 마리가 새겨져있는 문양을 볼 수가 있는데, 이건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능에서는 관찰되지 않고 김수로 왕릉에서만 볼 수 있어요. 이것의 유래도 인도라고 생각되는데, 제가 인도에 갔을 때 아유다 공주가 살았다고 하는 아유디아(AYUDHA)라는 곳에 가보니까 그곳 도시 전체의 상징적인 문양이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문양이에요.

여러 가지를 종합해 봤을 때 아주 오래되긴 했지만 옛날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해 김(金)씨는 많은 자손들이 나왔는데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한 명은 김해 김씨입니다. 통계를 보면 5천만 인구 중 4백 만이 넘는 사람이 김해 김씨라고 해요. 우리나라에 있는 성씨 중에는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데, 몇 년 전에 인도에서 모디(Modi) 총리가 방문했을 때 한국 사람 중 10%는 인도계라는 말도 했을 정도예요.(모두 웃음) 김수로왕과 아유다 공주 사이에서 난 사람들이 김해 김씨의 조상이기 때문이에요.

인도는 현재 경제발전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조만간 중국 다음으로 커다란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요. 인도 아유디아에 가보면 김해 김씨 사람들이 자기들 할머니의 고향이라고 해서 비석을 세워두고 공원을 조성시켜 둔 것이 있어요. 그걸 보면 한국과 인도 사이의 교류가 최근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에도 활발하게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애광원 원장님이 간단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었습니다. 해마다 찾아주며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적인 곳을 오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 말씀이었습니다. 애광원 민들레집 김소영 원장님 또한 간단한 인사로 법륜스님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김수로 왕릉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요디아라는 인도 중부 지방에 가면 신전에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시면서 수로왕릉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이런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경사진 곳을 지날 때에는 김임순 원장님의 휠체어도 밀어주시고 거주인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손도 잡아주면서 산책을 하였습니다.

수로왕릉 한쪽의 숲은 벚나무, 도토리나무, 철쭉, 소나무 적송 등 중간 중간에 벤치가 놓여 있고, 그런 큰 나무 밑 덤불 속에는 조별 색상인 남색, 파란색, 보라색, 빨강색, 깃발이 꽂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보물찾기도 하고 휴식도 취하고 조별 오락을 하였습니다.

거주인들도 흥겨워하였고 무표정한 자기 짝지를 위해서 더욱더 과한 율동으로 춤을 신나게 추는 봉사자 분도 있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틀어 놓은 ‘보약 같은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기 좋고 쉬운 부분만 되풀이하면서 함께 불렀습니다. 모두가 박수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아아아 사는 날까지 같이 가세 보약 같은 친구야~”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가야 테마파크에 갔습니다. 월요일에는 공연이 없는 날인데도 애광원 가족들과 스님이 오신다고 특별히 공연을 하였습니다. 커다란 항아리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발등에 있던 항아리를 머리 위로 굴려 올릴 때에는 혹시나 실수로 항아리를 깨뜨리지나 않을까 숨을 죽이며 보았습니다. 실수 없이 잘해 낼 때에는 박수와 함성을 질렀습니다.

가야 테마파크 사장님이 스님을 친견하고 담소하는 동안 거주인과 봉사자들은 테마파크 주위를 돌면서 조별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4시 쯤엔 태극전 앞에서 간단한 오락을 하였습니다. 짧고 긴 여운을 남긴 애광원 행사였습니다.

마칠 시간이 되자 애광원 선생님들이 체조처럼 자주 함께 한다는 노라조의 ‘슈퍼맨의 비애’ 라는 음악에 맞춰 율동을 보여주었습니다. 봉사하며 사는 천사 같은 선생님들의 모습이 더욱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의 마무리 인사 말씀이 이어졌습니다.

“오늘 마술 잘 보셨어요?”

“(대중)네.”

“그런데 그거 흉내내려고 하면 그릇 깨지니까 안 돼요. (대중 웃음) 마술쇼와 함께 오늘 여러모로 편의를 봐준 테마파크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대중 박수) 저도 오늘 아주 오랜만에 마술을 봤는데, 저는 무엇보다 그릇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이었어요. (대중 웃음)

오늘 점심도 맛있었어요?”

(대중) “네.”

“정토행자들은 어떠셨어요?”

“좋았어요.”

“오늘 이분들 덕분에 여러분도 잘 놀았죠?”

“네. 행복했어요.”

“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게 진리의 길입니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씩 나들이를 나오지만 애광원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매일같이 이렇게 지내시니까 많이 힘듭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이렇게 와서 그 사이에 선생님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평생 이렇게 애쓰신 애광원 원장님께도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드립니다. (모두 박수) 오늘은 저녁 먹고 헤어지지만 가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대중) “감사합니다.”

스님은 애광원 선생님들에게 《지금 여기 깨어있기》 책을 선물했습니다. 애광원 원장님은 우리 봉사자들에게 맛있는 다시마를 주었고, 가야 테마파크 사장님께서는 볼펜과 수첩을 주었습니다. 물질적 선물보다도 더 큰 것은 하루 동안 거주인들과 함께하며 감동받았던 순수한 마음이었습니다.

저녁은 테마파크 안에 있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고 거주인들을 배웅하였습니다.

다들 지치고 피곤하지만 많은 것을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욕심을 비우고 많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며 모두들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정명숙 사진 최영 녹취 조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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