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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아버지를 원망하는 어머니에게 자꾸 화가 납니다

 

- 질문자 : “어릴 때부터 어머님과 아버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저는 엄마를 고생시키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다 제가 큰 병을 앓으면서 가족 모두가 불교를 접하고 지금은 서로를 이해하는 도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자꾸 어머니가 수행하는 모습을 평가하고 분별심을 내게 됩니다. 얼마 전 폐암 진단을 받으셨는데, 어머니가 가여워 눈물을 흘리다가도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며 살아서 병이 생긴 거라는 생각을 하고, 수행하는 사람에게 죽는 게 뭐 대수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합니다. 또 별것 아닌 일에도 여전히 버릇처럼 아버지를 의심하고 원망하는 어머니에게 화가 납니다. 그때마다 참회하고 기도하지만 내려놓기가 힘듭니다.”

 

- 법륜 스님 : “상대를 위해서 깨우쳐 주려는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문제제기하는 말은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저 같은 경우 공식적으로 대중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질문하는 분들도 스스로 조언을 요청하는데도 결과적으로는 질문자가 상처를 받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자기 문제를 인식하고 질문을 하면서도 막상 위로받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길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니 제가 자처해서 악역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서로가 인정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자식이든 형제간이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의 수행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깨우침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가르치고 강요하신 게 아니라 다만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인연을 맺어 주셨을 뿐입니다. 실제로 가족 간에 상대의 수행을 평가하고 지적하고 가르치는 말을 통해서 마음이 돌이켜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참견은, 사실은 어머니가 단번에 성격이 달라져서 내가 좀 편안해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는 속에서 자유로움을 얻는 게 수행이지, 남을 고쳐서 내가 편해지겠다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세상에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 상대를 고치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더욱 내가 화가 나게 마련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미워하고 불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자꾸 어머니를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미워하며 고치려고 했던 것이나 지금 어머니를 고치려는 것이나 똑같은 마음병입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한다고 아버지를 미워할 게 아니라 ‘엄마가 지금 마음이 많이 아프시구나’ 하고 다만 어머니의 아픔을 이해해드리면 되는 일이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원망하면 ‘아직 옛날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셨구나. 상처가 깊어서 저러시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우리 엄마, 시집와서 고생 많이 하셨네” 위로의 말을 해드리면 됩니다. “엄마, 또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부처님 말씀은 어디로 들었어? 괴로움은 다 자기 마음에서 온다고 하잖아!” 이런 식으로 어머니를 가르치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화내고 성질부리는 사람을 볼 때 ‘저 사람은 아직 멀었구나. 수행한다는 사람이 저러면 안 되지’ 하며 평가하려 들지 않고, ‘저 사람이 지금 많이 힘들구나. 저렇게 자기 생각에 빠졌을 때는 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 하고 그 마음과 처지를 이해하는 게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어머니가 힘들어 한다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암에 걸려 죽게 됐다고 슬퍼하고, 아버지를 원망한다고 가타부타 어머니를 가르치려 들고, 그렇게 경계에 끌려 들어가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괴로움은 더 깊어지기만 합니다.

 

남의 일 보듯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 보듯이 하라는 것은 어머니의 아픔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괴로움에 함께 빠져 허덕이지 말고 일단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어머니를 위로하고, 괴로움을 덜어드리고, 내 인생도 행복하게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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