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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탄핵 판결 이후, 촛불 민심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주권자인 국민의 권한을 확대하고,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헌법 개정으로 마무리 되어야 합니다.” 



질문자 뉴스를 보니까 3월10일이나 13일이 되면 탄핵 결정이 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탄핵 인용이 될 것 같긴 합니다. 인용이 되면 조기 대선을 하게 되고, 현재 상황을 보면 정권 교체가 될 것 같아요.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촛불 민심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한 명이 물러난다고 해서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만약 탄핵이 인용되면 더 이상 10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일은 이제 없어질 것 같은데요. 촛불을 통해 각성된 시민들이 탄핵 인용 이후에는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지, 촛불의 힘이 앞으로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과거 역사를 한번 살펴봅시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10여 년 동안 백성들은 일제의 폭압에 웅크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일제가 ‘이제 조선 사람들이 완전히 일본과 통합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즈음에 전혀 예상치 못하게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꽃처럼 일어났습니다. 일제는 3.1독립만세운동을 1년 만에 모두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3월과 4월, 두 달 동안 집회가 1,214회나 열렸다고 합니다. 60일 동안 매일 20여 곳에서 집회가 열린 셈입니다. 집회에 참여한 연인원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하니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가 2천만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사람이 길거리로 몰려나온 겁니다. 죽은 사람이 7천5백여 명, 다친 사람은 1만6천여 명, 체포된 사람은 4만7천 여 명, 재산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일제의 강고한 무력 앞에 3.1운동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3.1운동, 4.19혁명, 6월 항쟁 모두 국가시스템의 변화 가져와


물론 짧게 보면 3·1운동이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보면 결코 실패한 운동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3·1운동이 일어난 결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렇게 되어있지요. 3·1운동은 실패한 것 같지만, 3·1운동을 계기로 해서 대한민국이 건국될 수 있었던 거예요. 


4·19 혁명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헌법이 개정되어 ‘제2공화국’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핵심이에요. 또 6·29선언을 이끌어낸 87년 6월 민주항쟁도 ‘직선제 개헌’이라고 하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처럼 이번 촛불 집회 역시 역사의 진척을 가져오려면 단순히 정권교체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변화’까지 가져와야 합니다. 


만약 촛불이 정권교체를 6개월 앞당기는 것에 그친다면 …


만약 촛불집회의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에 그친다면, 긴 역사에서 볼 때 그 성과는 선거를 6개월 앞당긴 것 밖에 안 됩니다. 촛불집회를 안 하고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12월이 되면 선거를 하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어도 정권이 교체될 확률은 여전히 높다는 겁니다. 촛불의 성과가 정권교체를 6개월 앞당긴 것으로 끝난다면 너무 미미하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특검을 통해 국정농단세력을 단죄하는 등 단기적인 성과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정권교체를 넘어서서 정말로 ‘촛불혁명’이라고 부를만한 성과를 가져오려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를 시정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합니다. 고질적 병폐의 첫 번째는 ‘제왕적 대통령제’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처럼 너무 막대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비선의 비리 문제가 자꾸 제기되는 이유는 한 사람에게 너무 막대한 권력이 독점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독재 권력이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 헌법을 너무 자기 마음대로 자주 바꾸어 왔기 때문에 제6공화국이 들어선 이후에는 임기를 단임으로 하고 헌법을 바꾸기 어렵도록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나 대통령 단임제는 장기 독재는 막을 수 있었지만 5년 동안은 막강한 권한을 여전히 주게 되었습니다. 임기를 5년으로 한정하는 것만 했지, 제왕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고치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하나같이 비선 실세 문제가 말썽이었잖아요. 측근들 상당수가 감옥을 가게 되었고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도 똑같은 과정을 밟은 것에 불과해요. 


여러분은 이것이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보세요? 제도적인 문제도 좀 있다고 보세요? 


질문자 “제도적인 문제도 좀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나 지난 87년 헌법 개정 이후 6명의 대통령을 보면,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모두들 하나 같이 과오가 많았습니다. 개인만 놓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좀 더 심했다고 말할 수는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탄핵이라는 결과까지 가게 된 것이죠.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도를 고치는 것입니다. 


첫째, 주권자인 국민의 권한을 확대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권력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한 때 국민의 94%가 반대를 하는데도 안 물러났잖아요. 이것은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즉 국민이 ‘대통령 소환권’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권한을 위임했는데도 잘 행사하지 못하면 ‘다시 돌려줘!’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서는 국민소환권이 있는데,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아직 국민소환권이 없어요. 지역 주민이 주인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이라면 그 지역 주민에게 충성해야 하는데, 국회의원 대부분이 공천권이 있는 중앙의 권력자 한 명에게만 충성하잖아요. 이것은 임금이 주인인 시대에 존재했던 임금과 신하의 관계와 별로 차이가 없어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모든 정치인은 국민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지역주민의 뜻에 반하는 정치인은 국민이 바로 소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법이 지금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국민이 소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하는 거예요. 


현재 대한민국의 헌법은 법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이 국회의원들에게만 주어져 있어요. 법을 발의할 수 있는 자격도 국회의원과 정부밖에 없어요. 국민들은 법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법을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을 ‘국민발안권’ 이라고 합니다. ‘이런 법이 필요하다.’, ‘이런 법은 폐지하자.’라고 국민 10만 명이 서명해서 제출하면 국회에서 이것을 검토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권한이 국민에게 없어요. 이것은 민주공화국에 맞지 않는 법체계입니다. 


둘째,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켜야 합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세기 때문에 삼권 분립이 안 되고 있습니다. 사법부인 헌법재판소 소장과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을 합니다. 행정부의 일을 감시 감독하는 감사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공정거래위원장, 방송통신위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국정원장도, 국세청장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모든 조사기관과 감사기관의 책임자를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어떻게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겠습니까?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 소장을 임명하는 독자적인 임명 기구가 있어야 합니다. 감사원장은 행정부를 감사하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 사법부나 입법부로 가야 합니다. 검찰청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국정원장 등 조사기관의 경우 대통령이 임명할 수는 있지만, 그 임기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중간에 쫓아내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또 지방분권을 강력히 추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모든 권력과 돈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중앙권력이 너무 비대합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 비율이 현재 8:2 정도 된다고 해요. 이것을 최소한 7:3이나 6:4까지 바꿔야 합니다. 지방정부가 좀 더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분권이 되어야 해요. 이것이 안 되니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예산을 따내려면 무조건 중앙정부로 달려가야 합니다. 싹싹 빌어서 돈을 얻어 와야 도정이나 시정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지자체가 중앙정부에 목을 매달게 되는 이유는 지방분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부형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4년 중임제로 할 것이냐, 대통령은 외교 안보만 맡고 내정은 총리와 내각에게 맡기는 이원집정부제로 갈 것이냐, 아니면 내각책임제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국민 여론이 현재 반반입니다. 정치인들의 의사도 반반이고요. 


이 문제를 제외하고는 앞에서 얘기한 모든 내용은 여야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정치인들이 다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헌법이 개정되어야 합니다. 헌법 개정이 되어서 이 두 가지가 먼저 고쳐져야 합니다. 


셋째, 선거법을 고쳐야 합니다. 


승자독식의 양당 구조를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구조로 바꾸어야 합니다. 독일처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와 권역별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경상도에서도 야당 국회의원이 당선되고, 전라도에서도 여당 국회의원이 당선되도록 개선을 해야 돼요. 이렇게 국민의 다양한 의사가 골고루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반복되는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그런데 지금 대통령 선거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야당에게 굉장히 유리한 형국이에요. 유리해진 야당은 이런 헌법 개정을 나중에 하자고 하고 있고, 그동안 헌법 개정을 하지 말자고 버티던 여당은 자신들이 불리해지니까 헌법 개정을 하자고 하고 있는 이런 판국입니다. 물론 늘 정치권은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늘 말을 바꿔오긴 했죠. 


촛불 민심의 성과가 역사에 남으려면 국민의 주권이 더 분명해지는 쪽으로 헌법 개정을 해서 대통령이나 정치인 몇몇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이것이 촛불 민심의 성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채 야당 쪽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3년 쯤 지나면 지금과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대통령 선거를 하기 전에 헌법 개정을 빨리 하면 가장 좋겠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정말로 어렵다면, 누구든지 대통령이 된 뒤에라도 빨리 헌법을 개정해서 이런 불행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촛불도 같이 꺼져버리면 촛불의 민심이 정권 교체의 일익을 담당한 것 밖에 안 됩니다. 여기에 머물지 말고 촛불의 민심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조금 더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 대화는 3월2일(목) 경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이뤄진 법륜 스님과 시민들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