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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고2 아들이 좋은 대학에 못 갈까봐 걱정돼요.”법륜 스님의 답변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스님은 부산 금정산에 위치한 천 년 고찰 범어사에서 마련한 초청 강연에 참석해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스님은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을 차례대로 참배한 후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오늘 범어사에서 스님을 초청하게 된 이유에 대해 소개하면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범어사가 화엄 10찰인데도 불구하고, 화엄 사상에 대한 특별 법회를 한번도 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000일 동안 화엄 사상에 대한 법문과 더불어 가정의 평온을 기원하는 화엄기도도 함께 할 계획입니다. 그 시작에 앞서 오늘 음력 초하루를 맞이해 첫 번째 선지식으로 법륜 스님을 초청한 것입니다.” 







11시부터 보제루(普濟樓)에서 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보제루 안팎으로 마련된 자리에 1000여 명의 대중이 함께 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화엄경의 요지를 담은 의상조사 법성게를 소개하면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범어사는 신라시대에 의상 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시 의상조사는 많은 절을 지었는데, 그 중 범어사는 화엄 10찰 중에 가장 대표적인 절입니다. 화엄 10찰이라고 하니까 도대체 화엄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많이 궁금하잖아요. 그런데 화엄경은 너무 방대해서 재가 신자들이 다 공부하기는 너무 양이 많고, 그 사상도 매우 깊습니다. 승가대학에서도 졸업반 스님들이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경전입니다. 그런데 이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을 엑기스만 뽑아서 요약한 것이 의상조사가 지은 법성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법성게의 요점을 아주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면서 법성게의 핵심 구절 중 먼저 ‘법성원융 무이상(法性圓融 無二相)’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쉽고 명쾌한 설명에 시작부터 곳곳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이어서 ‘불수자성 수연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또 법성게에는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 隨緣成)’이란 말이 나옵니다. ‘작다, 크다, 깨끗하다, 더럽다, 선이다, 악이다’ 하는 스스로의 성품(自性)을 갖지 않는다(不)는 말이 ‘불수자성(不守自性)’입니다. 근본교설로는 ‘무아(無我)’, 대승불교의 언어로는 ‘공(空)’이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연을 따라서는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말이 ‘수연성(隨緣成)’입니다. 예를 들어, 이 컵은 본래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것도 아니지만, 촛대와 비교하면 작다고 하고, 컵뚜껑과 비교하면 크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듯 모든 것은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아내입니다’, ‘저는 엄마입니다’ 라고 하지만 여러분은 아내도 엄마도 아닙니다. 아이를 만나면 엄마라 불리고, 남편을 만나면 아내라 불리고, 택시를 타면 승객이라 불리고, 가게에 가면 손님이라 불리고, 절에 오면 신도라 불립니다. 인연을 따라 불리는 것뿐입니다. 인연을 따라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사실은 그 무엇도 아닙니다. 이걸 생활 속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의 친구가 죽고 그 부인이 생활이 어려워 조그만 주점을 한다고 합시다. 남편은 그냥 도와주면 친구의 부인이 자존심 상할 것을 배려해서 매일 그 주점에 가서 맥주 한 잔 씩을 먹고 옵니다. 친구의 부인이 볼 때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겠지만, 아내인 내가 볼 때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겁니다. ‘그 사람이 네 동생이라도 되나? 네 부인이라도 되나?’ 라고 따지겠지요. 이렇게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보입니다. 


한 면에서만 보면 상(相)을 짓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이 상(相)에서 벗어나려면 앞면도 보고, 뒷면도 보고,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고, 위도 보고, 아래도 보고, 다 봐야합니다. 이렇게 전체를 보는 것을 ‘통찰력’이라 하고, 다른 말로 ‘지혜’라고 합니다. 한 면만 보고 상(相)을 지어 집착하면 괴로운데, 그 상을 깨고 나면 괴로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부처님은 팔만사천법문을 하셨지만 모두 이것을 근본으로 두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제가 하는 즉문즉설이 얼핏 들어보면 인생 상담 같기도 하지만, 모두 그 바탕은 이것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이쪽 면을 보고 이야기하면, 저는 ‘저쪽 면을 보면 어떨까?’ 라고 하고, 질문자가 저쪽 면을 보고 이야기하면, 저는 ‘이쪽 면을 보면 어떨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도님이 ‘남편이 돌아가셨다’ 라고 해서 문상을 갔더니 막 울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조용히 다가가서 귀에 대고 ‘아이고, 너는 좋겠다’ 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랬더니 그 신도님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보길래 ‘시집 한 번 더 갈 수 있겠네’ 하고 이야기 해준 적이 있습니다. (모두 웃음)





이렇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돌아가셨다는 것에 집착하면 앞이 새까매집니다. 아무리 위로해도 거기서 못 벗어납니다. 그럴 때 옆에서 ‘밥 먹어라’ 하면 눈물 닦고 와서 밥을 막 먹잖아요. 생각이 ‘죽었다’에 집착되어 있다가 밥을 먹으면서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겁니다. 집착을 놓으니까 괜찮아지는 거예요. 밥을 다 먹고 나서 또 ‘아이고, 죽었잖아’ 하면서 집착하면 다시 눈물이 나는 겁니다.


제가 귀에 대고 ‘시집 한 번 더 갈 수 있겠네’ 라고 이야기하면, 제가 한 말에 끌려가서 ‘안 그래요!’ 하면서 순간 집착을 탁 놓고 웃게 되죠. 그 때는 평생 혼자 살 것처럼 울지만 지나놓고 나면 생각이 또 바뀝니다. 만약 그 순간이 전부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살겠어요. 그 때는 곧 죽을 것 같아도 지나놓고 보면 또 살 길이 열립니다





지금 앞에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나는 늙었다’ 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늙었다는 것에도 실체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도 2학년 학생들에게 ‘젊은 너희가 물 떠와라’ 라고 합니다.(모두 웃음) 양로원에 가서 85살 된 어르신께 ‘양로원에서 대우 받으시겠네요’ 하면 ‘무슨 소리야. 90살 넘은 노인들 차 심부름 한다’ 라고 합니다.(모두 웃음) 


그러니 존재 자체는 늙음도 없고 젊음도 없는데, 우리가 비교해서 ‘늙었다’, ‘젊었다’ 라고 인식 하는 것입니다. 나이 칠십이 된 사람에게 늙었다고 하지만, 나이 팔십이 된 사람이 볼 때는 ‘그 때가 한창이다’ 라고 합니다.(모두 웃음) 


그래서 늙었다는 것도 집착입니다. 비교하는 데서 생긴 하나의 상(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을 탁 놓아버리면 ‘늙다’, ‘젊다’ 하는 것에서도 자유로워 질 수가 있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쉽고 재미있는 설명에 행사장은 순식간에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화엄경의 요지에 대한 설명에 이어 곧이어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자, 그러면 누구든지 손들고 질문해 보세요. 사는데 애로가 있으면 물어보세요” 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아이의 학업이 걱정인 40대 여성 분의 고민과 스님의 답변이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주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제가 혹시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고 2인 큰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아이가 공부를 못 하면 주위 학생들과 비교도 많이 합니다. 


저는 엄마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다 커서 돌아가셨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질문자 나이가 몇 살이에요?” 


“47살이요. 주위에서 친정 엄마에게 김치 얻어먹는 거 보면 울컥합니다.” (모두 웃음)

 

“먼저 ‘아이가 잘 크나, 못 크나’ 하는 문제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새끼를 키우면서 ‘새끼를 어떻게 잘 키울까’ 이런 걱정을 할까요? 또는 새끼를 어떻게 키우는지 유아교육학과에서 배우고 키울까요? (모두 웃음) 

저희 어머니도 저를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나’ 하고 연구하면서 키운 게 아니라 내버려두고 키웠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잘 큰 것 같아요, 못 큰 것 같아요?”


“잘 컸지요.” (웃음) 


“그럼 됐잖아요. 너무 잘 키우려고 하면 오히려 못 크게 되는 거예요. 아이에게 밥 먹였어요, 안 먹였어요?”


“먹였죠.”


“옷 입혔어요, 안 입혔어요?”


“입혔죠.”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보살폈어요, 안 보살폈어요?”


“보살폈어요.”





“그렇다면 질문자가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다 한 거예요. 질문자가 걱정하고 키우면 걱정을 끼치는 자식이 되고, 걱정 안하고 키우면 걱정 안 끼치는 자식이 됩니다. 아마도 질문자의 아이는 걱정을 끼치는 자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유는 질문자가 걱정하면서 키우고 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아이가 걱정을 끼치더라도 아이를 나무라지 마세요. 누가 잘못한 거예요?”


“제가...”


“질문자가 밥을 덜 줘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내가 걱정하면서 키워서 자식이 걱정거리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론 걱정 안해야지’ 하고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두 번째,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상위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반에서 20등인데 10등은 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10등 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아이를 성적이 좀 낮은 학교로 전학 시키면 금방 됩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전국에서 1등하는 아이만 서른 명 모아서 한 반으로 편성하면 꼴찌가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또 전국에서 꼴찌 하는 아이만 서른 명 모아서 한 반으로 편성하면 1등이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모두 웃음)


우리 아이가 늘 기죽고 살기를 원하면 좋은 학교로 보내면 되고, 우리 아이가 기 펴고 살기를 원하면 성적이 낮은 학교 보내면 됩니다. (모두 웃음) 아이를 성적이 높은 학교에 억지로 보내니까 늘 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아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간 이하를 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 능력을 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엄마가 어리석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니 엄마가 ‘그 정도 학교에서 20등이면 괜찮아’ 이렇게 격려를 해주면 됩니다. 아이가 ‘엄마, 나 성적이 낮아.’이러면 ‘학교가 좋아서 그래. 걱정 마. 잘하는 거야.” 이렇게 격려를 해주는 것이 엄마입니다. 아이가 성적이 오르고 싶어 하면 시골에 있는 학교로 보내면 금방 상위권으로 올라갑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아이를 키울 것이냐’예요. 그게 엄마의 지혜입니다.  


엄마가 내 딸이 제일이다 해도 객관적으로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사는 엄마가 딸이 문제라고 하면 나가서 제대로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스스로 자녀를 계속 나쁘게 만듭니다. 걱정을 하고 키우면 아이는 걱정거리가 됩니다. 일체(一切)가 모두 유심조(唯心造)이기 때문에 일체(一切)가 다 마음이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여기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봅시다. 다 엄마에게 잔소리 많이 들었죠?”


“네.”


“질문자는 엄마가 없어서 잔소리 안 듣고 컸어요. 첫 번째, 그게 엄마가 없는 공덕입니다.(모두 웃음) 두 번째, 엄마가 있으면 나이 40이 다 되도록 다 해주기 때문에 살림하고 생활하는 능력을 키울 겨를이 없습니다. 질문자는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밥하고 빨래하는 생활 조기 교육을 받은 거예요.(모두 웃음) 이게 대학보다 더 중요한 겁니다.


저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가난한 농촌에 태어났습니다. 아주 일찍부터 조기 교육을 받았어요. 호미질하고, 낫질하고 이런 것들을 다 배워서 생존능력이 굉장히 뛰어 납니다. 동남아에서 구호 활동 할 때도 어느 동네에 가서 주민에게 ‘몇 살이요?’ ‘37살이요’, ‘아이는 몇이요?’ ‘4명이요.’, ‘농사는 얼마나 지어요? 1헥타르-3000평이요.’ 이렇게 몇 마디 주고받고서 “아이들 중학교 보내기 어렵겠네.”하면 “아이고, 스님 그걸 어떻게 알아요?’합니다. 어릴 때 우리 동네 이웃, 누구누구 집과 비슷한 상황이니 딱 감이 잡히는 거예요.


이런 것은 대학 다닌다고 알 수 없습니다. 다 조기 교육 덕분이에요. 이런 정도로 조기 교육을 받으려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전생에 복을 너무 안 지었기 때문에 이생에 부잣집에 태어서 조기교육도 못 받은 거예요.(모두웃음) 그래서 질문자는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본인의 상황을‘좋은 거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 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 적용한 즉문즉설이 펼쳐졌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어서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이 되었습니다. 특히 즉문즉설 시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생 고민을 해결하는 데에 적용되는 실제 사례를 직접 보면서 대중들은 더욱더 기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여러분, 즐거웠어요?”


“네!”


“유익했어요?”


“네!”





“부처님의 법은 항상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나도 좋고, 남도 좋게 해주는 아주 좋은 법이에요. 그러니 억지로 인상 쓰면서 인생을 살지 말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으셔야 해요. 알았지요?”


“네!” 


“이것은 요즘 세상에 나온 가르침이 아니라 2600년 전에 나온 가르침이에요. 부처님은 천민이라고 괴로워하고, 여자라고 기죽어 사는 사람들에게 ‘천민이란 본래 없다’, ‘죄를 지어서 여자가 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제법이 공한 이치를 깨우치게 해서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고개 숙인 사람이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고개를 쳐들고 잘난 척 하는 사람들에게는 ‘잘난 게 본래 없다’ 라고 깨우치게 해서 겸손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제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말씀인 숫타니파타(Sutta Nipata)를 함께 따라하면서 마치겠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부처님의 법의 가피를 받아서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모두 박수)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대중들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했습니다. 





법문이 끝난 후 스님은 밀린 농사일을 하러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긴 했지만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오후 내내 농사일을 했습니다. 늘 그렇듯 스님에게는 농사일이 최고의 휴식입니다. 


스님이 땀흘리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영상보기] “무우 뽑고, 고추 따고, 배추 묶고, 오랜만에 농사일...”





여러분도 오늘 스님의 하루를 읽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 생활 속에 적용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유드립니다. 좋은 사례가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그럼,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