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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걱정 돼요." 법륜스님의 답변

질문자 저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합니다. 제가 눈 수술을 두 번을 받았는데요. 처음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결과가 괜찮다고 했어요. 정기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또 눈이 나빠져서 수술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부터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까요?

 

누구나 그래요

 

질문자가 이야기한 그런 마음은 저도 그렇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다 일어나는 정상적인 정신작용입니다. 누구나 시험 치기 전날은 시험을 못 칠까봐 조마조마하고, 마이크를 들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하면 혹시 실수할까봐 덜덜 떨곤 하지요.

 

질문자가 눈 수술을 또 할까봐 걱정이 되는 것처럼,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은 차를 탈 때 마다 또 사고가 날까봐 불안한 마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심합니다. 연애 하다가 실패한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또 배신 당할까봐 불안해합니다. 뱀에 한 번 물린 사람은 산에 가면 또 뱀에 물릴까봐 걱정을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심리작용을 단순히 근심 걱정이 많다고 했는데 요즘은 트라우마(Trauma)라고 표현해요. 다리를 한 번 다치면,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날이 흐리면 욱신욱신 쑤시듯이, 정신적으로도 평상시에는 괜찮다가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면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TV나 영화 속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눈물 흘릴 때가 있죠? 화면을 딱 꺼버리면 실제로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왜 눈물을 흘릴까요? 만약에 여러분이 설거지 해가면서 힐끗 힐끗 영화를 보면 영화 속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죽는 장면이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영화에 집중해서 골똘히 보면 죽는 장면을 현실이라고 착각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일로 착각하니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렇게 일어나지 않는 미래의 일을 자꾸 상상하면 근심걱정이 생깁니다. 또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 생각을 자꾸 하면 괴로워집니다. ‘그 때 엄마가 야단쳤지, 네가 날 때렸지. 돈 빌려가서 안 갚았지.’ 하고 떠 올리면서 막 울먹거립니다. 머릿속에서 옛날 영상이 돌아가요. 가만히 눈 감고 있을 때 주로 옛날 생각이 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괴로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주로 미래의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근심 걱정이 많아서 심리가 불안 초조할 가능성이 높아요.


 

 



생방송은 안보고 녹화방송만 보고 있어요

 

지금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적으로 지금, 공간적으로 여기에, 내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겁니다.

 

불안하면, ‘아 내가 상상 속에 빠졌구나하고 알아차려보세요. 괴롭다면 지금 옛날 필름 돌리고 있구나하고 알아차려보세요. 보통 옛날 필름을 돌리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아요. 옛날 필름을 돌려 보면서 어릴 때 어땠고, 남편이 어땠고, 아이가 어땠다며 울고 있는 거예요. 지금은 아무 문제도 없는데 옛날 필름을 계속 돌리면서 괴로워하고 있는 겁니다. 생방송은 안보고 계속 녹화방송만 보고 있는 거예요.

 

원하지 않는데도 머릿속에서 녹화된 필름이 돌아가곤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채널을 돌려야 합니다. 그 생각이 나면 탁 딴 생각을 하는 거예요. 벌떡 일어나든지, 운동을 하든지, 목욕을 하든지, 다른 책을 봐서 생각을 돌리면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 늪에 빠져들 듯이 계속 그 생각에 빠져들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보면 그냥 앉아 있는 것 같지만 그 사람은 완전히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뱀한테 물리고 나서 또 뱀한테 물리면 어떡하지?’하면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뱀한테 물려봤는데 안 죽네!’ 이렇게 생각하면 상처로 남지 않아요. 한 번도 안 물려본 사람이 뱀에게 물릴까봐 걱정할 수 있지만 한 번 물려본 사람은 안 죽던데?’ 하면서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과거의 일을 상처로 간직하면 장애가 되지만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자산이 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상처로 간직해서 빚으로 만드느냐, 경험으로 간직해서 자산으로 만드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아픈 다리가 욱신욱신 쑤시듯이

정신적으로도 아픈 상처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 깨어 있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