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님은 싱가포르에서 즉문즉설 강연을 끝낸 후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저가항공을 이용하여 약 18시간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공항에는 유럽지구장 김선희, 베를린 법회 부총무 이희정, 프랑크푸르트 법회 부총무 신재숙 님이 미리 나와 스님 일행을 맞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중 나온 활동가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나사우(Nassau)로 이동하셨습니다. 나사우로 가는 길에는 라인강을 따라 긴 포도밭도 지나고 잘 가꾸어진 숲길도 지났습니다. 작은 산과 풍성한 숲에 싸인 중세의 고성이 있는 나사우는 아담한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나사우에는 최근 유럽지구에서 물색 중인 수련원 후보지가 있는 곳입니다. 나사우는 라인란드 팔츠주(Land Rheinland-Pfalz)와 프랑크푸르트 법회가 있는 헤센(Hessen) 주 경계에 위치하여 교통이 유리하고 독일 정부에서 공식 요양 도시로 인정받은 인구 4600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 꼼꼼하게 여기저기 잘 살펴보시며 질문하시는 스님과 유럽지구장 김선희 님

오래된 호두나무 아래에서 프랑크푸르트 추희숙, 신재숙 님이 준비한 김밥과 유부초밥으로 간단히 점심 요기를 했습니다. 집주인은 생전 처음으로 만나는 스님에게 존경과 호기심을 보이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호두가 많이 열린 나무를 보면서 이 나무가 유럽지구 도반들에게 문경의 서암 큰스님 나무로 불리는 감나무처럼 마음의 기둥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나사우에서 출발하여 오늘 강연이 열리는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 스님은 호텔에서 프랑크푸르트 법회 초기 정토회원들과 간단하게 차담을 나누셨습니다. 자투리 시간도 잘 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시간 강연회 봉사자들은 저녁 7시로 예정된 순회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강연장(Saalbau Schönhof)에서 일찍 준비를 마치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프랑크푸르트뿐만이 아니라 함부르크, 본, 만하임 등 먼 곳에서도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 교민들이 강연장으로 모였습니다. 자주 보지 못하는 지인들을 오랜만에 스님의 강연에서 만나 반가워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오늘은 모두 다섯 분이 다양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미국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30대 주부는 직업상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사는데 본인은 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집도 사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 남편과 갈등이 있고, 함께 사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친척도 없는 외국에서 어떻게 살지 걱정이 된다며 첫 질문을 하셨습니다. 또 다른 질문으로는 일본 정부가 방사능에 오염된 수산물을 한국에 수출한다는 기사에 화가 난다는 분, 미니멀 라이프란 말처럼 식습관, 생활습관, 대인관계를 단순화하면서 아팠던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던 분은 그 과정에서 스님의 말씀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며 스님은 엄청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그 비결을 알고 싶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한 30대 여성분은 스님의 책과 법문을 통해 무아를 이해해가니 세 아이 양육에도 도움이 됨을 느끼지만 지속되지 않아 힘들다며 스님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중 60대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별한 후에 스페인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중으로 어머니의 최종 목표는 남미에 가서 살아 보는 것인데 딸로서 말로는 응원을 하지만 마음은 걱정이 앞선다는 30대 여성분의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올해 60이 되셨습니다. 지난달 갑자기 한국에 있는 집을 팔고, 스페인으로 어학연수를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최종 목표는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배워 남미에 가서 사는 거라고 하십니다. (모두 박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모두 웃음) 저는 너무 싫어요. (모두 웃음)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시고, 혼자서 이모들과 같이 살고 계신데, 집도 팔고 사업도 정리하고 스페인에 가셨다가 혹시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어머니가 체구가 크신 편도 아니고 언어를 아직 잘 구사하시는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왜 질문자가 걱정이에요? (모두 웃음) 남편을 버리고 간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혼자가 되어서 이제는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살겠다는데, 그게 왜 문제예요. 엄마에게도 스페인어를 배워서 정열적인 남자도 만나 데이트도 하고, 남미에 살면서 풍류를 즐기고 살 권리가 있잖아요.”

“그건 맞아요. 엄마도 그렇게 살면 너무 행복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고...”

“그래요. 그러니 질문자는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어야죠.”

“그런가요?”

“그럼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반대를 해도 질문자만큼은 ‘엄마, 잘 결정했어, 그렇게 한 번 해봐’하고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어야 해요.”

“사실 엄마 앞에서는 지지를 한다고 말을 하긴 했는데, 혼자 생각해보면 싫은 마음이 들어서...”

“그건 나중에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을 엄마가 다 써버릴까, 괜히 먼 나라에서 죽어가지고 나를 골치 아프게 할까, 이런 걱정이에요. (모두 웃음) 그런데 질문자도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엄마는 질문자에 대해서 모든 법적, 도덕적, 윤리적 의무를 다 한 상태예요. 질문자도 어머니의 인생에 간섭할 아무런 권리가 없어요. 물론 마음에 안 들면 ‘엄마, 나는 그거 안 좋은 거 같아’ 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자기 괴로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머니가 내일부터 어떤 남자를 만나겠다고 하면 질문자가 보기에 조금 이상한 거 같으면 ‘엄마, 그 사람 이러이러한데 조금 이상한 거 아니야?’하고 물어보거나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반대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찬성을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어머니의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찬성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어머니의 선택이 질문자의 괴로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도 한 번 60세가 되어보세요. 지금 30대, 40대에는 60이 되면 힘이 없고 뭘 잘 못할 것 같지만, 저도 올해 66세인데 아직 팔팔합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가끔 젊을 때보다 몸이 약간 더딜 때가 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젊을 때와 똑같아요. 요즘 60세면 아직 한창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질문자보다 더 젊을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말만 그러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 유학원도 알아보시고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것처럼 준비를 하고 계세요. 그나마 이곳 독일로 오시면 제가 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독일보다는 스페인이 재미있죠. 지금 나이가 들어서 유학을 가겠다는데, 영국이나 독일보다는 이왕이면 정열이 있는 스페인으로 가야죠 (모두 웃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독일로 오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어머니가 떠나겠다고 하는 건 정열로 가는 거지 이성으로 떠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스페인, 남미로 가는 게 맞아요. (모두 웃음)

무엇보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작년까지 아버지 잘 돌봤고, 또 지금까지 질문자를 이렇게 키워주셨으니 어머니 몫은 다 하신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와 살면서 아버지 성격이 어땠느냐에 따라 한편으론 정열적인 남자에 대한 미련이 있을 수도 있어요. 혹은 남녀관계를 떠나서 혼자서라도 정열적인 삶을 살아보겠다는 바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남편을 일부러 떠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이제라도 그런 기회를 가져보겠다는 거니까 저는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봐요. 다른 분들은 그 나이에 그렇게 하라고 해도 마음을 못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내키지 않는데도 굳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라는 건 아니에요. 다만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고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래,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이해를 하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모두 웃음)”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여성분들은 어릴 때 부모에게 매여 살듯이 결혼해서도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고 매여서 삽니다. 물론 부모에게서 보호받고 도움을 받고 사는 것이지만, 엄격하게는 그만큼 구속받고 사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남편과 살면서도 남편으로부터 보호도 받고 남편 덕을 보는 것도 많고, 또 남편 역시도 아내로 인해 보호받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서로에게 구속을 당하는 거예요. 그러니 나이가 들어서 배우자가 세상을 먼저 뜨는 건 한편으로는 자유롭게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거예요.

저희는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 탈북자들 등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매년 봄, 가을 두 차례에 걸쳐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바쁘게 활동 중이더라도 일 년에 이 분들과 각각 두 차례씩 시간을 함께 합니다. 장애인들과 함께 모임을 가져보면 신체가 건강한 것만 해도 큰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노인분들과 모임을 가져보면 아직 젊은것만 해도 큰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자들로부터는 한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어요.

시골 할머니들을 뵈면, 한국의 평균수명이 여성이 남성보다 5~7세 길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같이 여행을 가자고 하면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신 분들은 대부분 참여를 못하세요. 이유를 들어보면 영감이 집에 있어서 밥도 챙겨줘야 하고해서 집을 비울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분들에게는 영감님 돌아가신 게 큰 복이라고 말해줘요. (모두 웃음) 제가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영감님이 살아계시는 게 불행이라는 뜻이 아니에요. 영감이 살아계시면 함께 해서 좋고, 돌아가신다고 해도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측면에서 불행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질문자도 아버지가 작년에 돌아가신 게 아쉽긴 하지만, 이제 어머니가 자기의 삶을 자기 뜻대로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슬퍼할 일은 아니에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제 남편도 없고 자식도 다 키웠으니, 자기의 삶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이제 수행을 하든지, 세계여행을 하든지, 스페인이나 남미에 가서 자기 꿈을 실현해보는 것도 좋아요. 그 과정에서 자기 재산을 탕진한다고 해도 괜찮아요.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걸 다 쓰고 죽나, 딸한테 물려주나 어차피 어머니가 쓰는 거 아니니까 별 차이가 없잖아요. 설령 여행하다가 재산을 모두 쓰고 한국에 돌아가도 노인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밥 먹고 사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재산을 모아 두고 조마조마하게 사는 건 우리가 못 살 때 이야기예요. 그러니 아무런 걱정할 일이 없어요.

질문자가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건 이해가 돼요. 다만 그렇다고 반대할 일도 아니라는 거예요.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질문자한테도 그런 기질이 있을 가능성이 많아요. (모두 웃음) 지금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질문자가 걱정이 된다면 ‘아, 내가 어머니 인생보다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있구나’ 이걸 알아차려야 해요. 고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러다가 내 몫은 다 사라지는 거 아닌가’하고 자기 통밥을 굴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모두 웃음)”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온 분들의 표정이 강연 후에 더 밝아진 것 같습니다. 강연에 참가한 분들의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 질문이 심각한 것도 아닌데 질문했다가 스님께 야단맞을까 봐 안 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했더니 제가 어떤 관점을 잡아야 할지 분명해진 것 같아요. 질문하길 잘 했어요"라고 강연 후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영상으로만 만난 스님을 직접 뵙고 질문할 수 있어 좋았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스님께서 책 사인회를 마치시고 먼저 이동하신 후에 마지막 정리를 마친 자원봉사자들이 묘덕 법사님과 나누기를 했습니다.

매년 봉사 경험이 쌓이면서 올해는 더 차분하게 봉사를 할 수 있었고 마음이 편하니 함께 봉사하는 분들과의 소통도 더 원활했다는 분. 전에는 참가자가 많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올해는 편안한 마음으로 맡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분. 봉사할 계획 없이 왔는데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며 다음 강연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습니다.

한 분 한 분 작은 모자이크 붓다를 이뤄 정토회의 역사를 함께 쓰고 있음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뒤셀도르프에서 2박 3일간 유럽지구 해외행자대회가 열립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신재숙, 김세경, 김지현, 이희정, 조태준

<스님의 하루>에 실린 모든 내용, 디자인, 이미지, 편집구성의 저작권은 정토회에 있습니다. 허락없이 내용의 인용, 복제는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