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으로 가득 찬 경주 불국사. 오늘은 해마다 봄이면 진행하는 ‘새터민 역사기행’을 함께 가는 날입니다.

겨울처럼 쌀쌀한 꽃샘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부산 울산, 경남, 대구경북, 대전충청 지역에서 온 버스들이 속속 주차장으로 모입니다. 유모차에 탄 아기, 아장아장 걷는 어린이, 초등학생들도 부모님, 조부모님 손을 잡고 봄나들이에 왔습니다. 날씨가 쌀쌀한 탓인지 참여하려 했던 인원보다 많이 줄었지만 모두 40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 넓은 잔디밭에 모여, 서로 어디에서 왔는지 인사하고, 스님은 불국사의 역사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우리나라 문화유산 1호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정도로 의미 있는 곳입니다. 현재 불국사는 원형의 1/4만 복원된 상태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불교문화유산이 소실된 세 번의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첫째, 신라 시대 때 지은 아름답고 큰 절들은 고려 중엽 몽골 침입 때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둘째, 고려조선시대에 절을 복원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관군이 제대로 싸우지 못해 민간인들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들이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이자 스님들이 승병을 조직해 대항하니 절이 군사기지라 생각해서 절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유교 지배 세력의 억불정책으로 절을 짓기 어려웠습니다.

셋째, 그나마 복원된 절들이 6.25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특히 북한의 사찰은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안내자들은 미 제국주의자가 그랬다고 설명합니다. 남쪽은 빨치산들이 산에서 항거를 했기 때문에 사찰이 폭격당했어요. 북한은 거의 복원하지 못해 절이 별로 없는 데 반해 남쪽은 전후 50년 동안 많이 복원되었습니다. 불국사는 60년대 들어 제일 먼저 복원되었어요. 기본 축댓돌로 된 건 다 신라 시대 것, 나무로 된 몇 개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 400년 된 것, 나머지는 60년 전에 복원한 거예요.”

스님은 먼저 역사적인 설명을 한 뒤 불국사 안내도를 보며 전체적인 설명을 하였습니다.

“다른 절과 달리 불국사를 지은 주체는 스님이 아니라 신도여서 종파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걸 다 붙여서 지었다고 합니다. 법화경을 중심으로 한 현실 세계인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 서방정토 극락 세계인 아미타 부처님 세계,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인 비로자나 부처님 세계를 다 섞어지었습니다.”

일주문과 중문을 지나 불국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유명하지만 자세하게 몰랐던 내용을 상세하게 들으며 불국사 경내를 돌아봤습니다. 모두 이어폰을 꽂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스님을 따라가며 귀 기울여 듣습니다.

“산이라 지형이 기울어졌기 때문에 축대를 쌓았는데, 축대 기둥은 다듬은 것이고, 그 사이에는 자연석으로 매끈한 면이 보이도록 채웠습니다. 기둥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기둥을 빼면 축대가 무너집니다. 기둥 같은 사람이 보살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백 명 중 한 명 정도만 중심을 잡고 바르게 살아가면 나머지는 자유롭게 살아도 돼요. 대신 한 가지는 똑바로 해야 해요.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이 질서가 잡혀요. 북한은 모든 사람을 기둥으로 만들려고 해서 여러분이 살기 힘들었던 거예요. 남한은 모두 자유롭게 살려고 해서 세상이 시끄러워요. 기둥 같은 사람은 간간이 있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사는 게 좋지 않아요?

예로부터 훌륭한 절을 지을 때는 노동자가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면 절 짓는 의미가 없다고 해서 이 불국사를 지을 때는 노동자가 다 염불을 하며 즐겁게 지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내가 뭐가 되어야겠다고 꾸는 꿈을 청운이라 하고, 죽을 때 다 헛것인 줄 아는 걸 백운이라고 해요. 여기 아래가 청운교, 위가 백운교인데 이 다리도 국보예요. 서편에는 연화교인데 계단에 연꽃이 하나씩 새겨져 있어요. 위에는 칠보교예요. 저 다리로 올라가면 극락세계라고 안양 문이라 표현한 거예요.

석가모니 부처님 세계에 있는 탑 두 개가 다보탑과 석가탑입니다. 다보탑은 모양이 이 세상에 하나뿐이에요. 법화경을 보면 부처님이 법을 설할 때 땅속에서 아름다운 탑이 솟아 올라와 다보여래가 증명했다는 경전 내용으로 탑을 만들었습니다. 이것도 국보예요.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한 탑이 석가탑이에요. 석가탑의 가운데 층이 깨졌는데 도벌꾼이 보물 꺼내려고 들다가 새벽이 되어 도망갔는데 그걸 떨어뜨려 깨졌습니다. 그 속에 있던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 다라니가 나왔는데 그것도 국보예요.

석가탑 바닥에 연꽃무늬 8개가 돌아가며 있는데 이것을 팔방 금광 보좌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을 설할 때 온 세계 부처님들이 제자를 끌고 와 앉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거예요. 석가탑도 국보예요. 다보탑 앞에 사자상이 있는데, 십 원짜리 동전 앞을 보면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게 사자상을 상징하는 거예요. 원래 네 마리 있었는데 일본 침략자들이 이때 세 마리 가져가고 한 마리만 남았어요.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곳인데, 대웅은 큰 영웅을 말해요.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게 큰 영웅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게 큰 영웅이에요. 부처님은 자기 자신을 이겼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어요.”

두 시간에 걸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불국사를 돌아본 뒤 넓은 잔디밭 곳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지역별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김밥을 기본으로 김치, 견과류와 갖은 채소로 만든 샐러드, 솜씨 좋은 새터민이 만들어온 유부초밥(만두밥이라 부름), 삶은 돼지고기와 쌈, 새콤달콤한 파인애플과 오렌지로 맛나고 풍성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각자 타고 온 버스에 올라 동국대학교로 이동했습니다.

즉문즉설에 앞서 사전 공연으로 ‘달빛 물소리’ 풍물패의 신명 나는 풍물 한마당으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덩따쿵따덩따쿵따 덩덩덩덩~’ 강연장 가득 사물 가락이 울려 퍼져 흥을 돋웁니다. 흥겨운 풍물 한마당이 지나고 곧바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벚꽃이 활짝 피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미 벚꽃이 다 져버려서 아쉽지요? 계절의 봄이 왔는데 한반도 정세에도 봄이 올 듯합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북미 간 대화가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 정상회담, 잘되면 65년간 지속하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어 여러분이 고향에 갈 수도 있습니다. (박수)

여러분이 번 돈 가지고 고향에 가면 가장 빨리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남쪽에서 괄시받으며 살지 말고 고향에 가서 떵떵거리며 살기 바랍니다. 풍물패 잘 봤죠? 자, 이제 여러분들 차례예요. ‘노래는 이렇게 하는 거다!’하고 노래할 사람 있으면 나와서 불러보세요.”

너도나도 노래를 부르겠다고 손을 들었고, 차례대로 나와 신명 나게 노래 불렀습니다.

“해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스님께 감사드리며 통일 아리랑을 부르겠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통일의 아리랑, 삼천리 내 나라 삼천리 내 나라 통일 아리랑...”

얼마 전 노래자랑에 나와서 떨어졌다는 분의 노래에 모두 크게 웃으며 박수로 박자 맞추며 즐거워했습니다. 낯선 북한 노래와 낯익지만 가사가 전혀 다른 북한 노래도 불러 함께 박수를 치며 즐겼습니다. 모두 함께 하나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즐거운 장기자랑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총 다섯 분이 질문했습니다.

이 생애 가족으로 만나는 연이 전생에 어떤 연고가 있어야 가족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인지, 나와 배우자 자식 간에 궁합이 맞는지 궁금하단 첫 번째 질문, 우리나라 아이들이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질문, 수행과 수행병이 어떻게 다른지, 본인이 수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세 번째 질문, 남한에 와서 살이 10kg 정도 쪘는데 다이어트를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네 번째 질문, 마지막으로 제조업 분야의 자동화를 연구하여 사람을 줄이는 일을 하는데 늘 현장에서 보던 사람을 잘라야 하니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질문입니다.

그중 마지막 질문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는 신입사원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스마트 팩토리’라고 좋게 말해서 ‘자동화’, 혹은 ‘사람 줄이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원진들이 항상 ‘어떻게 한 명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라’는 말을 합니다. 그게 제가 하는 일이니까 하긴 해야 되는데... 결국 그러다 보면 나중에 제 일자리도 사라질 수 있고, 또 매일 현장에서 뵙는 분들을 제가 잘라야 된다는 게 가슴도 아픕니다. 물론 이게 전 세계적인 기류이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봤을 때 사회적으로 이걸 어떻게 해야 우리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요?”

“자동화는 현재 문명의 흐름이기 때문에 질문자가 하지 않는다고 멈춰지는 건 아니에요. 질문자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해도 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역사적으로 봐도, 영국에서 처음에 수공업으로 하다가 기계가 발명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많이 잃었잖아요. 그래서 당시 노동운동 중에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즉 기계 파괴 운동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계한테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기게 됐다’며 기계화에 저항했던 건데,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자동화는 역사의 흐름입니다.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예를 들어서, 옛날에 우리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면 사람들이 일일이 다 수금을 했지만 지금은 전부 자동으로 바뀌었잖아요. 그러니까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의 일자리가 아예 없어진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일자리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데, 지금은 ‘단순노동’이 줄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지나면 전문직도 다 줄 겁니다.

예를 들어 의사도 많이 필요 없어질 겁니다. 인공지능으로 하여금 모든 바둑을 둔 기록, 즉 기보를 다 습득하게 하니까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바둑을 잘 두는 걸 봤잖아요? 그런 것처럼 진료기록을 전부 인공지능이 다 습득하게 하면 인공지능이 알아서 환자의 맥박, 혈압 등을 다 체크하고 얼굴, 얼굴색 등을 체크해서 자동으로 검증 결과가 딱 나오게끔 할 테니까요. 지금도 병원에 가면 대부분 기계가 검사를 다 하잖습니까. X-레이도 찍고, MRI도 찍고요. 지금은 그런 게 없으면 의사가 진단을 못 내리잖아요. 옛날 의사들은 그런 거 없이도 진찰을 했는데요.

그러니까 지금은 의사가 하는 역할이라는 게 그렇게 기계가 검사한 결과를 판독하는 것뿐입니다. 판독도 앞으로 인공지능이 훨씬 더 잘 하게 되겠지요. 그런 것처럼 지금 변호사, 판사 등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인공지능한테 역시 수많은 판결의 사례, 즉 판례를 딥 러닝 (Deep Learning)시키면 사람보다 판결을 훨씬 잘 내리겠지요.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그 모든 판결을 살펴보고 기억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기억하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공지능은 며칠 사이에 수 만 건을, 그것도 정확히 습득해 버리기 때문에 한계가 없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미래 세상은 과거와 전혀 다를 겁니다.

우리가 지난 100년, 즉 근대 100년 동안 학교에서 배운 두 가지가 뭡니까? 지식과 기술. 이게 근대학교 교육의 핵심 내용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자동화 시스템, 인공지능, 이런 게 나오면 이런 단순 지식과 기술은 전부 기계가 대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톨게이트 수납원 정도가 아니라 전문직까지도 다 없어질 겁니다. 이미 한국에서 대기업 생산량은 1년에 10% 정도 늘지만 노동자는 매년 줄고 있거든요. 그래서 대기업이 성장한다 해도 취업인구는 자꾸 줄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못 만듭니다.

그나마 중소기업이 활성화되어야 일자리가 늘 텐데, 우리나라로서는 지금 중소기업이 사향 산업입니다. 한국에서는 중소기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임금경쟁에서 못 이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업을 외국에 세우든지, 외국에 있는 노동자를 데려다가 저임금으로 쓰든지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200만 명입니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500만 명으로 늘게 될 거래요. 이게 추세입니다.

이대로 2, 3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노동 과잉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할 일이 없어 사람이 남아도는 거예요. 그러고 실제로 필요한 노동은 아주 고임금을 받는 창의적인 일부의 노동이 될 거예요. 그래서 지식, 기술직은 거의 필요가 없게 될 겁니다. 이런 시대가 도래하면 빈부격차도 엄청나게 커져서 이게 사회문제가 될 거예요 이런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먼저, 스위스에서 제기된 ‘기본소득’ 개념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살고, 못 사는 거랑 관계없이 예를 들어,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 혹은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무조건 한 달에 100만 원이든 20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먹고살게끔 지원하되, 더 잘 살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면 되는 거지, 못 산다고 기본생활도 유지할 수 없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런 최소한의 생계는 국가가 보장해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재능껏 살도록 해야 되겠지요.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이런 거겠지요. 수학 공부하고, 영어 공부하라고. 그러나 이런 공부는 100년 전에 서당엘 다녔던 수준으로써, 미래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럼 지금 미래의 젊은이들은 어떤 공부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우리가 해 왔던 ‘O, X’ 즉 이건 맞고, 이건 틀리고 이런 공부는 이제 필요가 없고, 항상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어떤 과제를 주면 선생님이 ‘이건 틀렸어, 이건 맞았어.’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와, 그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야’, ‘그건 선생님도 생각 못해봤는데’, 이런 식으로 정답이 없어야 됩니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전제 위에서 하니까 여러분들과 대화를 잘할 수 있는 거예요. 정해진 답이 있으면 ‘너 틀렸다.’ 이런 말이 나갈 텐데, 저는 그런 말을 절대로 안 하잖아요. 누가 ‘이혼하겠다’고 해도 저는 ‘해라’ 이러지요.(모두 웃음) 그럼 스스로 ‘애는 어떻게 해요?’ 그럽니다. 그건 이혼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대중들) 안 하겠다는 거예요.”

“예, ‘그럼 살아라’라고 하지요.(모두 웃음) 그러면 ‘남편이 술 마시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요. ‘그럼 그만둬’라고 하지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먼저 해 보는 거예요. 이렇게 대화하면 문제가 아이한테 있다는 거예요, 남편한테 있다는 거예요, 나한테 있다는 거예요?”

“(대중들) 나한테.”

“예, 나한테 있다. 그러니까 남편이 술 마시는 건 사실이고, 안 마시면 좋겠지만, 먹는 걸 어떻게 해요? 그러니 이런 남편하고 어떤 식으로 살 것인지를 누가 결정해야 합니까?”

“(대중들) 나.”

“예, 그건 ‘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대화, 예를 들어 우리 종교계에서 지금까지 목사나 신부나 스님이 늘 옛날 책 꺼내서 줄줄줄 읽고, 해석하고, 그런 식으로 설교하거나 미사를 보거나 법문을 하니까 다 앉아서 졸잖아요.(모두 웃음) 이런 옛날 방식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되는 것처럼, 모든 부분에서 이렇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 창의적인 교육을 시키려면, 북한 같은 사회는 옛날 방식에서는 강점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훈련을 시키고, 참고, 견디는 장점이 있었지요. 남한 아이들은 잘 못 참잖아요. 그런데 어떤 건 해야 되고, 어떤 건 안 되고 이렇게 가르치면 나중에 창조적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은 현 상태로 버틸 수는 있지만 앞서 나간다는 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길게 보면 전망이 없어요. 그렇다고 여러분들의 생각처럼 북한이 금방 망하거나 그러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워낙 강하게 짜여 있기 때문에. 그러나 스님이 멀리 내다볼 때 이건 인류문명의 발전 방향과 안 맞는 거예요.

한국의 삼성도 지금 전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제일 잘 나가는 기업이긴 하지만 이 세상에 없는 걸 새로 만드는 아이디어는 없거든요. 누군가가 만들어놓으면 그걸 보고 3개월 안에 그것보다 더 잘 만드는 능력만 있을 뿐입니다. 아이폰에서 새로운 걸 만들면 삼성은 그것보다 더 값싸게, 그것보다 더 기능 좋게 만드는 기술은 있는데, 이 세상에 없던 걸 처음으로 만든 건 없었어요. 창의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모든 교육이 모방 훈련 위주였거든요. 그런데 모방할 수 있는 건 전부 자동화로 대체가 가능합니다. 그래도 저처럼 나이 든 사람은 걱정을 안 해도 돼요. 우리는 어차피 갈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에.(모두 웃음)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질문자가 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질문자가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열심히 일하는 건데요, 어떤 게 더 나쁘냐 하면, 과학자가 미사일을 만드는 것 같은 건 문제예요. 미사일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쓰이는 기술 아닙니까. 그런 건 우리가 더 생각해 봐야 됩니다. 한 사람이 가진 재능을 사람 죽이는데 써야 되겠어요?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이 기술을 이렇게 무기 만드는데 쓰는 건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나는 월급이 절반이나 줄더라도 사람들이 편리하게 쓰는 쪽으로 활용하는 회사로 가겠다’는 사람은 미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함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일자리 뺏는 건 맞는데, 그건 범죄라고 할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다니세요.”(모두 웃음)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이런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새로운 시대가 온다고 인간이 더 행복해질까요? 사람의 능력이 옛날보다 커졌어요, 적어졌어요?”

“(대중들) 커졌어요.”

“예, 옛날보다 능력이 커졌어요. 짐승하고 비교해도 사람이 더 능력이 있지요. 그런데 토끼가 스스로 ‘미약한 존재’라며 자살하는 거 봤어요?(모두 웃음) 소가 ‘내가 뭐, 밥 먹고 여기 살다가 죽는 것밖에 더 있냐?’ 해서 미리 죽는 거 봤어요?(모두 웃음) 없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인간 스스로 자신이 너무 미약하다, 하찮다고 생각하는 병이 있고, 그래서 자살에 이르는 병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 우리 존재가 미약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의 육체 작용은 짐승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신작용의 역사는 한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어서 급격하게, 폭발적으로 발전을 했습니다. 바로 이 정신작용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바로 ‘사람의 기대가 커진 것’이에요.

내가 가진 능력이 옛날엔 50이었다가 지금은 100이 되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 기대는 옛날에는 100이었다면 지금은 500이 돼버린 거예요. 그래서 옛날에는 내 기대가 100이고, 내 능력이 50이면 차이가 50인데, 지금 내가 100이 되었는데도 기대가 500으로 높아지니까 이 차이가 400이나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꼬락서니, 나 자신’이 너무너무 하찮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만 자기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병이 있는 거예요. 동물한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한 마디로 욕심이 너무 많아졌고, 기대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생긴 병이에요. 그러니 우리의 행복도가 높아질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내가 옛날에 월급을 10만 원 받을 때는 2, 30만 원 받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 20만 원이 부족해서 괴로웠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월급으로 200만 원이나 받아도, 내가 바라는 건 500만 원이에요. 그러면 그 차이가 300만 원이 나서 옛날보다 지금이 더 괴로워요.

이것 때문에 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의 괴로움은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옛날엔 하루 종일 일해도 먹고사는 것만 겨우 해결했지만 요즘은 먹는 것만 딱 해결하려면 하루에 2시간만 일해도 가능하잖아요. 그럼 요즘 사람이 바쁠까요, 옛날 사람이 바쁠까요? 요즘 사람이 더 바쁘지요. 또, 옛날 사람이 스트레스 더 받을까요, 요즘 사람이 더 받을까요? 그러면 사람 사이의 갈등은 옛날 사람들한테 많았을까요, 요즘 사람들한테 많았을까요? 짜증이 옛날 사람들한테 많았을까요, 요즘 사람들한테 많았을까요?(모두 웃음) 그러면 행복도가 옛날 사람이 높을까요, 요즘 사람이 높을까요?”

“(대중들) 옛날 사람.”

“예. 그런데 우리 한국만 따지면 1960년보다 지금의 GDP가 300배 늘었습니다. 제가 60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GDP가 100불이었어요. 북한보다 훨씬 못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만 불입니다. 300배 늘었는데, 우리가 300배 행복해요? 아니에요. 30배 행복해요? 아니에요. 그럼 3배 행복합니까? 아니에요. 더 행복합니까? 몰라요. 그래서 경제적인 문제만으로는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의 욕망은 끝없이 커지기 때문에. 그래서 이 욕망에 대한 적정한 조절 없이는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북쪽에서 살 때만 생각하면 중국만 가도 천국 아닙니까?”

“(대중들) 예.”

“어떤 분이 저한테 ‘중국은 사회주의 천국입니다’라고 하기에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으니까 ‘중국에서는 개새끼도 이밥을 먹습디다.’ 하더라고요.(대중들 웃음) 중국에 가보니까 개도 쌀밥을 먹더라는 거죠. 그 말이 늘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여러분들을 쫓아내지만 말고, 월급만 조금이라도 준다면 ‘천국’이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중국에서 한 10년 살면서 한국 소식을 들어보니 중국이 못 살 나라였지요?”

“(대중들) 예.”

“여러분들이 중국에서 살 때는 우리 조선족이 아주 좋아 보이고 여러분들은 힘들었는데, 한국에 들어와 보니까 여러분들이 낫잖아요. 조선족은 여러분들처럼 국적을 획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만약 중국에 가서 조선족과 결혼을 하면 거기서는 그들이 주인이고 여러분들은 그 밑에서 힘들 텐데, 그 부부가 딱 한국에 오면 누가 주인입니까?”

“(대중들) 저희요.”

“예, 여러분들이 주인이 되고, 조선족 남자는 맥도 못 추게 되잖아요.(대중들 웃음) 제가 보니 그런 예가 많더라고요. 맞지요?”

“(대중들) 예.”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한국에 오면 천국에 온 게 되는데, 지금 여러분들 얼굴을 보니 천국에 사는 사람들 같지가 않고, (대중들 웃음) 지옥에 사는 사람들 같아요. 그래서 ‘못 살겠다. 미국으로 가자’ 해서 미국에 가보면 거기가 과연 천국일까요?”

“(대중들) 아니요.”

“예, 아니에요. 미국에 가본 사람들은 또 다 ‘죽겠다, 힘들다.’ 그래요. 대신 미국에 가면 북에서 왔다는 차별은 없겠지요. 왜? 미국 사람이 볼 때는 남쪽에서 왔든, 북쪽에서 왔든 뭐가 중요하겠어요? (대중들 웃음) 중요하지 않아요. 베트남 안에서는 하노이대학 법대 나온 사람과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큰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둘이 한국으로 와서 공장에서 일하는 걸 한국 사람이 볼 때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래서 차별이라는 건 끼리끼리 안에서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서 ‘차별받는다’ 싶어서 캐나다로 가보시면 아마 그런 차별은 없을 거예요. 거긴 남쪽 출신인지, 북쪽 출신인지 안 따지니까요. 대신에 거기는 우리 모두를 ‘유색인종’이라며 차별하겠지요. 차별의 종류가 다른 거예요.

여러분들이 중국에 가면 ‘조선에서 왔다’고 차별을 받고, 한국에 와도 차별이 있지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적절하게 조절을 하셔야 돼요. 미국이나 캐나다를 가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가셔도 돼요. 그런데 간다고 이게 해결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거기 가서 한번 살아보겠다’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 오신 분들 중에 가끔 ‘도로 북으로 가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없어요?”

“(대중들) 있어요.”

“예,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돈도 싫고, 여기서 사는 게 머리 아프니까 도로 북쪽으로 가서 가족들과 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건 개인의 자유예요. 그런데 우리나라가 진짜 자유주의 국가라면 가겠다는 사람을 보내줘야 될까요, 안 보내줘야 될까요? 보내줘야 돼요. 가겠다는 사람 보내주고, 못 살겠으니 또 남으로 오겠다면 또 받아주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 뭐가 된다고요?”

“(대중들) 통일!”

“예, 통일이 되는 거예요. 국경이 있어도 괜찮아요. 국경을 없애고 군대와 정부를 하나로 만드는 게 통일이 아니고,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고, 투자하고 싶으면 투자하고, 이러면 통일이 된 거나 다름이 없는 거예요.(모두 박수) 자, 그런데 완전히 통일이 된다는 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왔다 갔다 하고, 북한에 투자도 좀 하고, 또 북쪽에 있는 형제도 이쪽에 와서 노동도 하고, 가족도 만나고, 그러는 건 사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여러분들한테 제일 중요한 건 통일이 되고, 안 되는 게 아니라 일단 북쪽 가족과 연락을 하는 것, 돈 번 것을 송금할 수 있는 것, 또 그것을 북한 정부에 안 뺏기고 그대로 전달하거나 투자를 보장해 주는 것, 이런 거잖아요. 여러분들이 나중에 북쪽에 가서 사업 같은 거 하려고 할 때 투자를 보장해 주는 것, 거기 가서 사업할 때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런 정도만 되면 여러분들은 만족하잖아요. 통일을 해서 대통령을 한 명 뽑던 것 그런 게 여러분들과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대중들) 예.”

“그러니까 우리가 통일을 너무 정치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생활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고, 조만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대중들) 예.”

“그리고 열심히 사세요.”

“(대중들) 예.”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즉문즉설을 끝낸 후 마지막으로 강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옆 사람과 손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습니다. 함께 부르니 더욱 가슴이 벅찹니다.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즐겁고 유익했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올해도 윗동네 아랫동네가 만나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 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종전협정이 끝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통일에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한 백악관 청원 서명에 힘을 모아보길 다짐합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도경화, 박용석, 정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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