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내린 비로 한결 맑고 깨끗해진 공기 속에, 수원 SK아트리움 앞의 커다란 소나무가 강연장을 찾는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봄을 알리는 나무의 새순이 새록새록 눈을 정화해줍니다.

이번 강연은 85명의 봉사자들이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강연준비는 4시부터 봉사자들의 다짐 박수로 시작되었습니다. 수원지역 활동가들이 입구에서부터 환한 웃음과 함께 사람들을 맞이했습니다. 또한, 멀리 포천과 원주에서도 온 봉사자가 있어 스님의 행복 강연에 대한 뜨거운 봉사 의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백악관 청원 서명운동」 봉사팀의 홍보 결의가 대단했습니다. 스님께 질문하기 위해 미리 와서 질문지를 작성하는 분들로 라운지가 붐비기 시작했고, 입장하려고 줄 서 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백악관 서명을 받느라 아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750여 명의 청중으로 가득 찬 강연장에서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오늘 강연에 참석한 염태영 수원시장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법륜스님이 수원에 오시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20년 전부터 스님을 오래 따랐었고, 서초법당까지 찾아가서 스님의 법문을 들을 정도로 스님의 뜻을 따라왔다고 하면서, 청중들의 마음에도 행복이 깃들길 바란다고 덕담을 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께서는 봄과 함께 찾아온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꽃피는 봄이 오고, 한반도에도 봄이 오려 하는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건, 얼어있는 우리 마음에 봄이 오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마음에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또한, 국민들이 좀 더 행복해지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복학교를 열고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이 강의가 끝나고 행복학교에 꼭 등록하고 가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시면서 즉문즉설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강연에서는 총 6명이 스님께 질문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남성분은 임신한 아내가 출산 후 아기를 1년만 키우게 할지, 3년을 키우게 할지 고민이라는 질문, 유방암 치료 중인 여성분은 우울증이 와서 일상생활로 돌아갈 용기가 안 생긴다는 질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백악관 청원운동에 대해 홍보하고 싶은 선생님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의무 때문에 망설여지는데 과연 학생들에게 홍보해도 괜찮은지에 대한 질문, 전업주부로 3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성분은 7살짜리 둘째가 지나치게 폭력적인데 엄마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 몸이 힘들어 퇴직한 남성분은 자기의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자녀 교육문제로 아내와 갈등이 있어 고민이라고 질문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와 너그럽지 못한 어머니 때문에 아이도 안 낳기로 했다는 50대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1남 6녀 중의 넷째 딸로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아들을 낳겠다는 일념으로 딸을 여섯이나 낳은 끝에 막내인 남동생을 보셨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감기 걸릴까 봐 데운 물을 일일이 안방으로 날라서 세수를 시켜주셨고 마당의 풀 한 포기 뽑게 하지 않을 만큼 일이나 고생을 일절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과잉보호하듯 기른 것 같지만 아버지는 한편으로는 덕담과 칭찬 한 번 해준 적이 없었고 악담과 욕설, 폭력을 일삼았습니다.(질문자 울먹임)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비방하셨고, TV뉴스에서 교통사고 사망 같은 소식에는 별 말씀이 없어도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을 땐 ‘에이, 잘 뒈졌다. 추운데 그런 델 왜 가서 그 지랄을 하느냐’라고 악담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우리를 때릴 때 ‘다른 집 애들은 잘도 죽는데 우리 집 애들은 하나 죽지도 않아. 병신 같은 새끼들’이라는 말씀을 수시로 하셔서 그 어린 마음에도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질문자 울먹임)

어머니는 우리를 크게 때리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잘못하거나 실수를 할 경우에 덮어주고 보듬어주는 것이 아니라 떠벌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을 항상 이간질시켜서 형제들 간에 우애가 있기는커녕 항상 원수처럼 다투고 싸웠습니다. 몇 년 전에는 언니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서 병문안을 갔더니 어머니도 와 계셨습니다. 병원 식사시간에 언니는 환자식을 먹고 보호자식은 주문하지 않아 나오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병원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와서 혼자 드셨습니다. 빵과 우유를 두 개씩 살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저도 밥을 안 먹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 앞에서 말없이 빵과 우유를 드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 모두 분노조절장애 같습니다. 가족 모두 정서가 불안하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피해의식도 강하고, 매사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잘 내서 별 일 아닌 것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아들을 낳기 위해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딸을 여섯이나 낳고는 기르는 동안 힘들다고 자식들에게 독설과 저주, 폭력을 휘두른 아버지가 많이 원망스럽습니다. 우리를 그러려고 낳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질문자 울먹임) 그러나 아버지는 지금도 집에 혼자 계실 때는 전깃불과 보일러, 선풍기 같은 것도 켜지 않을 정도로 평생을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버지에게 연민의 정 같은 것도 느낍니다.

저는 결혼했지만 자식을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아기를 낳지 않았습니다. 현재 부모님은 많이 노쇠하시고 형제자매들도 중장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만나면 싸우고 다툽니다. 이럴 바엔 서로 안 보는 게 상책이다 싶어서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가 다들 10년에서 20년 이상 되어 갑니다. 중간에 한두 번씩 만나봤지만 예전처럼 싸우지는 않더라도 서로 상처 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은 현재 동산과 부동산을 포함하여 10억에서 15억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딸들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고 몽땅 아들에게만 주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재산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압니다.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그런 것은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렸을 때 당했던 끔찍한 학대는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많이 괴롭습니다.(질문자 울먹임) 그 결과 자존감도 매우 낮아졌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불행하게 사는 것이 너무 속상합니다. 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 되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올해 아버지가 83세신데 현재는 건강하신 것 같아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텐데 지금처럼 이렇게 계속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도 되는지 답답합니다.”(모두 격려의 박수)

“질문자는 자라면서 입은 마음의 상처들이 나이가 많이 들고 나서도 트라우마가 돼서 지금의 삶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해요. ‘어릴 때 이렇게 자랐고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규정짓고 계속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길이 하나 있고, ‘내가 어떻게 자랐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했든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나는 지금부터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렇게 선택하는 길이 있어요. 이 둘 중에서 질문자가 오늘 이 자리에서 선택을 해야 해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질문자 울먹임)

“그러면 첫째, 생각해보세요. 질문자는 지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일, 이미 지나가버린 일을 가지고 계속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학대를 했다, 엄마는 어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과거에 내가 입은 상처를 계속 건드리는 것밖에 안 됩니다. 옛날에 내가 상처 입고 어려웠던 시절의 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매일 아침마다, 점심마다, 저녁마다 틈만 나면 틀어놓고 보는 것과 똑같아요. 옛날 생각을 자꾸 하는 것은 지금 현실의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계속 옛날 비디오를 보면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질문자가 이 괴로움에서 헤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아직까지 안 죽고 살았다는 게 중요해요.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안 해주었어요. 내가 원하는 건 이거죠.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돌봐주고 정서적으로도 좀 잘 돌봐주었다면 좋겠다. 설령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더라도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보살펴줬으면 나는 그게 더 좋겠다.’ 여러분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부모님께 바랐을 거예요.

그런데 부모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을 정서적으로 돌봐주는 것 보다 경제적으로 잘 돌봐주는 것을 중요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도 저를 붙들고 한탄했어요.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공부시키려 아이하고는 외식도 한 번 같이 하지 않고 여행도 한 번 같이 가지 않은 채 죽어라고 일만 해서 공부 뒷바라지를 했는데 아이가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니 후회가 된대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애들하고 같이 식사라도 좀 하든지, 애들하고 주말에 여행이라도 좀 가든지, 주말에 가게 닫아놓고 아이하고 좀 놀든지 했을 텐데 왜 바보같이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내가 그렇게만 했어도 이렇게 한은 안 되겠는데 지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현실로 돌아오면 여러분도 똑같이 그래요. 공부를 잘하니 못하니 하는 것은 이웃집 아줌마나 선생이 할 얘기지, 엄마인 내 입장에서 자식이 공부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안정이 돼 있느냐, 이걸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비록 밥은 굶기더라도 따뜻하게 보살펴야 해요. 이게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아이 때는 알지만, 막상 자기가 부모가 되면 또 그 생각을 안 합니다.

질문자를 때리고 야단쳤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질문자를 낳아준 것도 부모고, 밥 먹여준 것도 부모고, 학교 보내준 것도 부모잖아요. 법륜 스님은 질문자를 한 대도 안 때렸지만 질문자에게 밥 한 끼 해준 적도 없고, 옷 한 벌 사준 적도 없고, 학교 보내준 적도 없잖아요.(모두 웃음) 한 면으로 보면 내가 원하는 만큼 부모가 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질문자가 여기까지 오도록 먹여주고 입혀주고 보살펴준 건 부모예요. 질문자는 지금 그 점은 잊어버리고 있는 거예요.”

“잊지는 않았는데요. 감사한 면이 많이 있기는 해요.”(질문자 울먹임)

“그게 애증(愛憎)이에요. 아까 부모가 늙어서 연민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은 ‘애’고 날 때렸다고 말하는 것은 ‘증’이고요. 이렇게 애증이 계속 윤회하는 거예요. 즉 교차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질문자는 이렇게 암송하면서 절을 하세요. ‘그래도 나를 낳아주시고, 그래도 나를 키워주시고, 그래도 나를 학교에 보내주셨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당분간 이 생각만 하라는 거예요. 그 생각만 자꾸 하면서 절을 하면 때린 건 별로 문제가 안 돼요. 내가 배고플 때 종아리 한 대 맞고 밥 먹는 게 나아요, 안 맞고 굶는 게 나아요?(모두 웃음) 종아리 한 대 맞고 밥 먹는 게 훨씬 낫습니다.

이건 북한 난민 애들을 돕는 일을 하다 알게 되었어요. 중국에서 넘어온 북한 꽃제비 애들이 연길시장에서 찐빵이든 빵이든 음식을 훔쳐서 도망가면 주인이 따라가서 때려요. 그런데 맞으면서도 아이는 음식을 놓지 않고 계속 먹어요. 때리면 손에 쥔 걸 놓고 달아나야 할 텐데, 뒤에서 때리고 발로 차는데도 계속 먹는 거예요. 그 아이에게 맞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일단 배를 채우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우리가 생각해보면 그렇게라도 보살핌 받은 건 감사한 일이에요. 물론 정서적으로까지 보살펴주면 더 좋다는 건 저도 알고 여기 모두가 다 알아요. ‘그러나 그러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질 이유는 없다. 그래도 버리지 않고 나를 키워줘서 고맙다.’ 질문자가 이런 관점을 가지면 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렇게 관점을 바꿔보세요.

두 번째, 어머니도 그런 인색한 아버지 밑에서 같이 살다 보면 닮게 마련이에요. 그래도 어머니가 질문자더러 ‘배고프니까 빵 사와라’ 이렇게 시키지 않고 자기가 가서 자기 빵 사먹는 건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에요.(모두 박장대소) 아버지가 지금 83세라니까 어머니는 70대 후반쯤 되실 텐데, 그 정도면 노인이잖아요. 노인들은 딸이 있으면 보통은 ‘배고프다. 네가 가서 빵 좀 사와라’ 이래요. 그러면 질문자가 두 사람 몫을 사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머니가 자기가 가서 조용히 자기 거 사다 먹는 게 뭐가 문제예요? 아주 훌륭한 부모예요.(모두 큰 웃음과 박수)

사물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내 것까지 사다주면 더 좋기야 하겠지만,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그만큼의 어머니는 안 돼도 나더러 자기 것까지 사오라는 것보다는 나은 어머니예요. 여러분들은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기 때문에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안 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고,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된다고 해서 그게 손해 끼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 돈 가지고 자기 빵 사와서 먹잖아요.(모두 웃음)

딸이 자기 혼자 가서 자기 빵만 사다 먹으면 그건 어머니 입장에서 좀 섭섭할 수 있어요. ‘죽어라고 키워놨더니 자기 입만 안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면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노인인 어머니가 자기가 직접 가서 사먹는 걸 갖고 딸이 서운하게 생각하는 건 질문자가 자기 트라우마 때문에 서운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엄마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이 지나쳐서 나이가 지금 50세가 넘었는데도 아직도 그런 생각을 못 버리고 옛날에 못 채워준 보살핌을 갈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늘 아이가 어릴 때 사랑을 듬뿍 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사랑고파병’이 걸리면 80세 노인이 되어도 이 껄떡거림이 끝이 안 나는 거예요.(모두 웃음) 먹어도 먹어도 늘 껄떡거려요. 어릴 때 배를 곯으면 나이가 들어도 먹어도 안 먹은 것처럼 허전하잖아요. 그래서 아이 때 사랑을 듬뿍 줘야 아이가 건강한데, 어릴 때 아이들이 원하는 사랑이 제대로 안 베풀어지면 나이 들어도 껄떡거리게 됩니다. 굶겨도 괜찮아요. 엄마가 같이 굶으면 아이는 상처 안 입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채워주고 돌봐주면 이런 껄떡거림이 없어져요. 지금 여러분들이 걸린 게 다 사랑고파병이에요. 사랑을 갈구하고 껄떡거립니다. 집에서 부모한테 껄떡거리다가 안 되니까 남자한테 혹은 여자한테 껄떡거리고, 그렇게 만나서 서로 껄떡거리느라 원하는 게 안 채워지니까 또 못 살고 헤어지고, 이게 반복돼요.(모두 웃음)

질문자도 지금 사랑에 껄떡거리고 있어요. 20세가 넘었으면 성인이니까 질문자가 노인을 보살펴야 할 처지인데 아직도 엄마한테 껄떡거리고 있잖아요. 과거 어릴 때의 심리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트라우마가 생기면 성장이 거기서 멈춥니다. 어떤 상처를 받으면 일곱 살이든 아홉 살이든 그 문제는 그 시기, 그 상태에서 멈춰버려요. 그래서 나이가 여든이 넘어도 늘 거기에 멈춰 있다가 그 얘기만 나오면 어린애로 돌아가 작용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그걸 치유를 해야 해요.

형제간에 만나는 건 왜 만나려고 해요? 우리 형제는 그렇게 안 다투었는데도 저는 안 만나는데요.(모두 웃음) 내가 주체적으로 안 만나면 되는데 왜 그것도 껄떡거리느냐 이거예요. 괜히 만나서 오락가락 하면 귀찮은데 아예 안 만나면 잘 됐잖아요.

그리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남는 재산은 나누게 돼 있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는 누구를 주든지 그것은 소유자의 자유고, 돌아가신 뒤에는 아무리 아버지가 유언으로 아들만 주라고 남겨도 효력이 없으니까 그것도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모두 웃음) 그건 무조건 법적으로 1/n로 나누기로 돼 있습니다. 딸 여섯에 아들 하나면 어머니까지 해서 1/8로 나누도록 돼 있기 때문에 그건 질문자가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동생이든 오빠든 누가 와서 ‘도장 찍어라’ 해도 도장 찍어주는 건 착한 사람이 아니라 바보예요. 이건 자기 권리를 제대로 못 찾아먹는 사람이에요. 내가 보시할 수는 있어요. 오빠한테 ‘도네이션(donation)’은 할 수 있죠. 그러나 오빠가 도장 찍으라고 한다고 찍어주는 건 바보예요. 그건 변호사 선임해서 재판하면 저절로 나오게 돼 있어요. 오빠하고 언쟁할 필요가 없어요. 동생하고 언쟁할 필요도 없고요. 형제간에 왜 언쟁을 합니까? 유산 상속은 대한민국 법률에 보장이 되어 있는데요. 그래서 그것도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모두 큰 웃음과 박수) 어릴 때 좀 고생하고 살았다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아버지가 지금 83세시잖아요. 현재는 건강하신 편이지만 언젠가는 돌아가실 텐데, 이대로 돌아가시면 제가 나중에 후회를 많이 할 것 같습니다.”(질문자 울먹임)

“왜 후회를 해요? 돌아가시면 박수치고 웃어야죠.(모두 웃음) ‘아이고, 나를 그렇게 학대하더니 그것 봐라. 그렇게 죽을 것을.’ 이렇게 기뻐해야 해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질문자 울면서 웃음, 모두 웃음)

“저게 애증이에요. 여러분들이 딸에게 ‘부모 말도 안 듣는 게 어디 시집을 가겠느냐? 너 같은 게 시집 갈 수 있겠냐?’라고 잔뜩 험담을 해놓고는 저한테는 이래요. ‘스님, 어디 좋은 총각 없어요?’(모두 웃음) 그것과 똑같아요. 이게 중생이에요.

질문자가 아버지에 대해서 신경을 꺼도 불효가 아닙니다. 스무 살이 넘었기 때문에 부모가 자식을 돌봐주지 않아도 아무런 죄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부모에게 기대도 말고, 반대로 부모의 일을 도와주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돼요. 그런데 나를 키워준 고마움은 생각해야 해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당신이 날 키워줘서 오늘 내가 여기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해서 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만 되면 돌아가셨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불효자가 운다’ 이런 말 들어봤죠? 저렇게 살아서는 부모를 미워하고 죽어서는 후회하면 인생의 괴로움이 끝이 안 나요. 그러니까 질문자의 한을 지금 딱 놓아버려야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한이 되지 않아요.

저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아무렇지도 않아요.(스님 잠시 침묵)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조금 거짓말 같네요.(모두 박장대소) 어머니한테는 약간 빚이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저를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바쁘다고 안 갔어요. 제가 바쁜 줄은 우리 형제들이 다 알아서 ‘아이고, 엄마. 걔는 바쁘잖아’ 이랬대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숨넘어가시기 전에 이러셨대요. ‘바쁘다, 바쁘다 해도 나 죽는 것보다 더 바쁜 게 이 세상에 어디 있냐? 나는 한 번 죽으면 다시 못 보지만 자기가 하던 일은 오늘 못 하면 내일 해도 되지 않느냐?’ 이 말을 하고 숨을 거두셨대요. 돌아가신 뒤에 가서 들은 얘기예요. 그건 조금 제가 지금도 켕깁니다. 지금도 그 얘기를 하려면 약간 마음이 좀 안 좋아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사는 거예요. 지금도 어머니가 ‘와라’ 해도 ‘바빠서 못 갑니다’ 할 정도로 열심히 살면 제가 잘못한 게 없어요. 제가 지금 여기서 게으르게 살면 ‘인마, 지금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그때 왜 안 갔니?’ 이렇게 되물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것도 승화시켜서, 어머니한테 죄 안 지으려고 부지런히 살아요. 어머니가 나중에 ‘이거 봐라. 그때 다녀갔다가 이 일 해도 되잖니?’ 이 소리 안 들으려고요. 그러니까 질문자도 돌아가신 뒤는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았죠?”

“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질문자의 울먹울먹하던 목소리는 스님의 명쾌한 답변으로 밝아졌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모두 괴로움에 대한 하소연인데 스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별로 괴로워할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저절로 고민이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강의를 마치며 스님이 “유익했어요?”라고 물으니 청중들이 큰소리로 “네!”하고 답했습니다. 유익하고 즐거운 게 좋은 것이고,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아야 하고,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지속 가능한 행복이라고 강조하시면서, 따뜻한 봄날 마음의 행복을 위한 공부를 함께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이 끝나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서명 꼭 하고 주변에도 많이 홍보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두 번째로 질문하셨던 분께 다가가 소감을 여쭈어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로 힘들어했던 질문자에게 가장 와 닿는 스님의 말씀을 물었더니,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만큼 나에게 못 해줬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걸 모두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이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라고 답했습니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화해가 안 될 것 같던 80대의 아버지에게 이제 편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어 행복해진 에너지를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참석자들 또한 “지금 나부터 행복해야 너도나도 지속적으로 행복 가능하다.”, “나부터 행복해지는 게 이기적인 게 아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부족한 사람도 없다. 자기 욕심으로 인해 생겨나는 미움이고 괴로움이다. 내가 조금만 내려놓으면 잘 지낼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라는 밝은 소감을 남겨주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라운지 한가운데에서는 스님의 책 《야단법석》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한쪽은 스님의 부탁대로 한반도 평화협정 청원에 서명하기 위해 봉사자들에게 방법을 묻는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한 시민은 집에 가서 가족들과 꼭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며 전단지를 가져가셨습니다.

오늘 강연을 주관한 행복학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스님은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늦은 시간까지도 식지 않은 봉사자들의 열정에 한반도 평화가 금방이라도 올 거 같았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아직은 한반도의 봄을 확정할 수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김경란, 나현미, 오세욱, 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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