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상주하는 대중 90여 명이 다 함께 봄나들이를 가는 날입니다.

어제 열반재일 기념법회를 마치고 곧바로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내려온 공동체 대중들은 하룻밤을 잔 후 아침 일찍 수련원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지난주만 해도 진달래와 벚꽃이 덜 피었는데, 어제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오늘은 곳곳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오전에는 다 함께 두북 수련원 청소, 풀 뽑기, 농사 등 각종 울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며 몸풀기를 하고 있던 대중들은 스님이 운동장에 모습을 보이자 환호를 하며 반갑게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양해 말씀을 구했습니다. 대중들은 주말에 모두 서명운동을 하러 나가는데, 공동체 대중들이 봄나들이 나온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오래전부터 공동체 대중들이 다 함께 봄나들이를 가면 좋겠다고 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그런데 어제 항의가 좀 있었어요. ‘대중부 자원 활동가들은 모든 업무에 우선해서 한반도 평화협정 청원 서명 운동을 하고 있는데, 공동체는 나들이를 가도 되느냐’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공동체에서 한 팀을 빼서 서울에 남아서 통일 염원 기도를 하겠다’ 고 그랬더니 마음이 약해졌는지 ‘그냥 다녀오십시오’ 하더라고요. 그러니 마음껏 휴식해야 됩니다.

대신에 내일 서울 올라가면 한반도 평화협정 청원 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알았죠? “

“예”

“정토회가 창립할 때 원래 계획에는 출가해서 살아가는 공동체는 사회활동보다는 주로 공동체 안에서 농사짓고 대중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따뜻한 고향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밖에서 활동하는 대중들이 주말이 되면 이곳에 와서 건강도 회복하고, 농사도 짓고, 휴식처가 될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자는 거였어요. 대중들도 은퇴하면 아등바등하면서 세상에 붙어있지 말고 공동체로 들어오도록 하고요.

곧 있으면 주 4일 근무제가 보편화될 겁니다. 3일은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 살고, 4일은 밖에 가서 일하는 ‘비승비속’의 삶이 확산되도록 하는 수행자들의 근거지를 마련하고자 정토회 설립 때부터 계획을 세웠었어요. 그런데 나라가 위태롭다 보니까 이런 꿈을 현실 속에서 실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조만간에 이러든 저러든 정세가 더 나빠지든지, 냉전구조가 해체되든지, 둘 중의 하나가 결정되는 막바지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회활동이 마무리되는 대로 다 같이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지으며 살자는 스님의 말씀에 공동체 대중들은 큰 박수로 공감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내내 법사님 4명과 함께 감자, 완두콩을 심고, 달래도 캐고, 원추리도 캐며 봄의 기운을 듬뿍 받았습니다.

먼저 감자를 심었습니다. 작년에 씨알만 한 감자를 박스에 넣어 창고에 보관했는데 올봄에 박스를 열어보니 콩나물 자라듯이 노랗게 순이 한 뼘씩 자라 있었습니다. 순을 떼고 감자를 심어도 되겠지만, 스님은 순 떼기가 아까우셨는지 흙을 얇게 깔아서 감자를 묻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니까 노란 순이 새파랗게 변해서 한 뼘씩 또 자란 겁니다.

흙에 심어놓은 감자를 박스채로 들고 밭으로 옮겼습니다. 감자를 하나씩 분리해서 심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땅을 깊이 파서 감자를 넣고, 순이 한 뼘 정도 밖으로 나오도록 심었습니다. 그리고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물을 주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감자 하나에 순이 5~7개씩 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영 불안한 표정이었습니다. 말라죽을 것 같아 보였나 봅니다. 계속 물을 줘야 하는데 스님은 계속 강연이 있고 일정이 있으니까요. 스님은 칼을 하나 들고 순을 2~3개씩 따기 시작했습니다.

“순이 많으면 수분 증발이 많고, 또 옮기는 과정에서 잔뿌리가 잘라졌기 때문에 수분을 흡수하지 못해. 순을 몇 개씩 잘라줘야겠다.”

이런 것도 스님에게는 다 실험인 것 같습니다. 작은 감자알을 심으면 순이 나오기까지 한 달이 걸리는데 이렇게 심으면 벌써 심을 때부터 순이 이 정도로 나와 있기 있죠. 이렇게 하면 감자가 더 빨리 열리는지 실험해 보는 겁니다. 일부로 이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이렇게 된 만큼 실험을 또 해보는 겁니다.

공동체가 농사를 지으려면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스님은 늘 앞장서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감자 싹을 잘라서 꺾꽂이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감자가 달리긴 했으나 크기가 작아서 상품성은 없었지만 말이죠.

또 씨감자 연구소에서 사 온 감자알을 심기도 했고, 남은 감자를 잘라서 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완두콩도 심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스님은 밭 주면에 보이는 달래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여기 있다’ 하며 삽으로 땅을 파면 법사님들이 달래를 골라내었습니다. 또 길가에 핀 민들레도 캐고, 원추리나물도 캐었습니다.

밭일을 마치고 모두가 민들레, 원추리, 달래를 한소큼 들고 내려왔습니다. 오늘 소득은 정말 짭짤했네요.

마당 비닐하우스에서는 여러 종류의 씨앗 모종판을 만들었습니다. 싹이 트고 어느 정도 자라면 밭에 옮겨 심을 계획입니다.

모종판 만드는 일을 마치고 나서는 밭에서 캐온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원추리나물을 다듬는 스님의 손길이 무척 숙련되어 보였습니다. 늘 ‘나는 농부의 자식’이라고 말하던 스님의 말이 생각나면서 어릴 때부터 스님은 이런 삶이 몸에 베어있으시구나 싶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경주 남산 순례를 함께 했습니다. 순례를 시작하기 전 스님이 대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봄에 농사일 하니까 좋아요?”

“네!”

“요새 미세먼지 때문에 서울 사는 거 안 좋아요. 중국의 미세먼지가 서쪽에서 밀려오기 때문에 소백산맥, 태백산맥의 동쪽으로 넘어와서 살아야 돼요.” (모두 웃음)

스님의 환한 웃음에 대중들도 활짝 웃으며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코스는 경주 남산의 남사면인 새갓골로 올라가서 열암곡 석불좌상을 지나 봉화대를 거쳐 용장골로 내려오는 코스입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들은 산 아래에서 진달래 꽃구경하고 놀다가 차를 타고 다니며 평지에 있는 유적지를 구경했습니다. 건강 상태에 맞게 프로그램을 달리 운영하는 모습에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서울, 문경 대중들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진달래가 활짝 핀 골짜기마다 탄성을 지르며 사진도 찍고 찍어주기도 하면서 고된 줄도 모르고 까르르 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자 스님은 잠시 멈춰 서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천천히 산길을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급기야 길옆으로 비켜나시더니 “여러분들 먼저 올라가세요”라고 하시며 대중들을 먼저 올려 보냈습니다.

늘 앞장서서 산길을 올라가시던 스님이었는데, 오르막길을 어느 때보다 조심히 올라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송수신기로 한 말씀하십니다.

“내 인생에서 오늘 처음으로 똥차가 되어보는 것 같다. 하하하”

스님은 호탕하게 웃으셨지만, 점점 연세가 들어가는 스님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움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열암곡 석불좌상에 이르러서 줄을 지어 참배하였습니다. 바로 옆에 새로 발견된 ‘넘어진 부처님’께도 참배하면서 다 함께 모여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였습니다. 진달래가 피어있는 기슭을 걸어 용장골 모전석탑에 도착하여 역시 다 함께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였습니다.

경주 남산은 오랜만에 봄나들이에 나선 서울, 문경 대중들을 맞이하느라 보기 어려웠던 진달래들을 분주하게 피어 올렸습니다.

설잠교를 지나 진달래가 만발한 곳에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너도 나도 환호하며 모여든 대중들은 진달래보다 더 화사한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용장골로 내려온 스님과 대중들은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두북 정토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련원 정문 앞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서 또 한 번 탄성을 자아내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공동체 대중들만을 위한 특별한 즉문즉설 시간입니다. 스님은 먼저 수행공동체의 일원인 우리들이 어떤 관점을 갖고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산행은 잘 하셨습니까?”

“(대중들) 예.”

“피곤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 손 들어봐요. 가서 주무세요.(모두 웃음)

우리 공동체 성원들을 정의할 때 ‘종교인이다’, ‘신앙인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수행자다’라고 합니다. 이 ‘나는 수행자다’ 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들의 자기 정체성이에요. 종교인들은 ‘나는 믿는 자다. 신앙인이다.’ 이걸 자기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지요.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과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수행자는 수행하지 않는 자와 어떤 차이가 나야 될까요?

수행자는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괴로워하거나 괴로운 이유를 핑계를 대고 합리화한다면 여러분들은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시키는 거니까요. 우리 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사람이 죽거나 병들면 ‘하늘의 뜻이다’, ‘네 사주팔자다’, ‘전생의 과보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했습니다. 왜 아픈지, 왜 죽는지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랬던 거지요. 그런데 오늘날 의학은 그걸 어떻게 정의합니까? 우리가 왜 아픈 거예요? ‘아프다’는 게 뭐예요?”

“(한 대중) 나이가 먹어서요.”(모두 웃음)

“그럼 젊은 사람은 왜 아플까요?(모두 웃음) 한 마디로 기능의 고장이에요. 원인을 추적해 보면 어느 부분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고장 난 거예요. 기능이 약화된 것도 일종의 고장이지요. 그 고장을 고치면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걸 하늘에 빌거나 굿을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 고장 난 부분만 찾아서 개선을 하는 것, 이것이 치료예요. 그래서 의학자는 우리의 신체구조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그 각 기능의 작용에 대해서 연구를 하는 거예요. 소위 신진대사에 대해 연구를 해서 어느 부분이 어떻게 고장 났기 때문에, 어느 기능이 어떻게 저하됐기 때문에 아프냐는 걸 밝혀내는 거죠.

옛날에는 ‘죽을 때가 됐다’ 거나 ‘병날 때가 됐다’는 둥 온갖 얘기를 했죠. 전염병이 돌면 ‘하늘이 노했다’, ‘임금이 잘못했다’, ‘특정 종교를 안 믿었다’, ‘마녀들 때문이다’라고 얘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마녀사냥도 하고 그랬잖아요. 역사 속에서 우리가 수도 없이 겪었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 몸에 어떤 세균이, 바이러스가 침공해서 어느 부위를 고장 냈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개선하려고 세균은 어떻게 막을 건지를 연구해서 항생제가 나왔지요. 항생제가 나오면서 엄청나게 죽어가던 사람들의 죽음을 막아냈잖아요.

그러면 우리 마음이 괴롭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것도 옛날에는 하늘의 뜻이라거나 전생의 과보라거나 사주팔자라고 설명을 했지요. 그래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하늘에 빈다든지 굿을 했잖아요. ‘절에 가서 빈다, 교회에 가서 빈다’는 것도 굿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굿’이란 우리나라 전통적인 무교에서 하는 기도, 제사 형식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절에서 천도재를 지낸다, 교회에서 미사를 올린다’ 그러면 그건 건전한 것처럼 생각하고, ‘굿을 한다’ 면 굉장히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종교의 제사를 지내는 양식이라는 측면에서는 똑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부분, ‘왜 사람이 괴로울까?’에 대해서 많은 탐구와 연구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 또한 정신작용의 고장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셨어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 육체의 병이 육체 기능의 고장인 것처럼 마음의 병도 정신작용의 고장이라는 거예요. ‘괴롭다’는 건 마음의 병이거든요. 그럼 어디서 고장 났느냐, 그 원인을 규명해서 그것을 치유하면 괴롭지 않은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마치 고장 난 육체를 고쳐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육체의 기능이 애초에 잘못됐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현대의학으로 개선을 못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 우리는 기능이 저하된 것을 개선하려 할 게 아니고 그 기능의 약함을 받아들여야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정신작용도 마찬가지예요. 고장 난 것은 원인을 찾아서 치유하면 되고, 기능이 저하된 것은 어느 정도 내가 수용해 내면 괴롭지 않게 살 수가 있습니다.

신체장애로 다리를 절뚝거린다고 그 사람이 건강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아픈 것과 장애는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정신작용의 기능이 생길 때부터 일종의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감수해야 됩니다. 그런 장애가 있다고 해서 내가 괴로울 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게 큰 차이예요. 수행자에게 괴로움이란 하나의 정신적인 병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규명해서 치유하면 바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괴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빌 일도 없고, 굿을 할 일도 없는 거예요.

경제적으로 넉넉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인기가 많은 것과 육체적 건강이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사람 중에도 병든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 중에도 건강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역시 정신도 이런 조건들 때문에 괴로워해야 될 일은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 중에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부처님은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지만 행복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없기 때문에, 인기가 없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건강이 안 좋기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그건 핑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꼭 괴로워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 괴롭지 않은 삶, 괴롭지 않은 상태를 열반, 즉 닙빠나(Nirvana, 열반)라고 해요. 이게 수행자가 갈 길이에요. 여러분들이 수행자로서 공동체서 산다면 나이가 적든 많든, 남자든 여자든, 키가 크든 작든, 재능이 있든 없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수행자라면 괴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이 곳에서 괴로움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방법을 배웠다면 그걸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째, 내가 괴롭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고, 둘째 다른 사람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삶으로 나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괴로워하면서 봉사를 한다면, 세상에는 좋은 일일지는 몰라도 수행자는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치료의 관점을 분명히 갖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다면 그것을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치료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해요.

괴로워하면서 남의 괴로움을 없애는데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신뢰가 없어집니다. 자기 정체성을 정확하게 알고 살아가는 게 좋아요. ‘내가 키는 작고, 나이는 많고, 몸은 좀 아프다 하더라도, 배운 지식이 적다하더라도, 모아둔 재산도 없고, 결혼도 안 했더라도 나는 그래도 괴롭지는 않다.’ 이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살면 살수록, 위축됩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아프고, 모아둔 재산은 없지.

그래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병들어서 죽으면서도 ‘부처님, 저는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돌 맞아서 죽은 앙굴리말라도 죽으면서 ‘저는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라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들은 내일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나서 죽게 되었다 하더라도 순간에 ‘스님, 저는 아무런 번뇌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모두 웃음)

“네”

“네라고? (모두 웃음) 그래서 스스로 괴롭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의 괴로운 사람들에게 괴롭지 않은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이것을 옛날 말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고 표현합니다. 정토회라는 것은 여러분들 빼고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한 명이 정토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모여 있는 여러분이 정토회입니다. 자기를 늘 돌이켜보면서 먼저 내 괴로움을 치료하러 온 것을 명심하세요. 괴로움은 정신작용의 어느 부분이 고장 난 것이에요. 그 원인이 무엇이냐,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에 대한 원리가 고집멸도입니다. 고란 이것이 병이다, 집이란 이것이 병의 원인이다, 멸이란 이것이 병의 원인이 소멸된 열반이다. 도란 어떻게 치료할 것이냐? 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여기 마음 병을 치료하는 모든 것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수행자의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어떤 의무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언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자 이렇게 말씀드리고 대화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후 질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총 6명이 자신의 고민을 질문했는데, 오늘은 그중에서 어떻게 하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통찰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통찰력이라는 게 우리가 말하는 ‘지혜’라는 건데, 전모(全貌), 즉 전체의 모습을 본다는 거예요. 우리는 한 면만 볼 줄 알잖아요. 위만 볼 줄 알고 아래를 못 본다든지, 왼쪽만 볼 줄 알지 오른쪽은 못 본다든지, 앞은 볼 줄 아는데 뒤는 못 본다든지, 이러는 것을 편견(偏見)이라 그러지요. 우리들도 보긴 보고 알긴 알아도 주로 편견을 갖기가 쉽다는 거예요. 그 사람의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의 행동만 보고 어떤 결정을 한다든지, 나에 대한 비난만 보고 결정을 한다든지 하는 게 편견이잖아요. 나는 그 사람을 안 좋아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사람은 괜찮은 사람일 수가 얼마든지 있거든요. 그 사람이 짜증은 좀 내지만 다른 재능이 많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여러 측면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즉문즉설 할 때도 늘 ‘남편이 술을 마셔서 못 살겠다’고 질문을 하면, 아내가 원하는 만큼은 안 되지만, 즉 아내는 남편이 10점이길 원하는데 남편이 술을 마셔서 7점이라면, 그래도 7점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6점이나 5점이나 3점인 사람에 비해서는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을 버리면 7점 되는 사람을 다시 구할 수가 있느냐? 구할 수 있다면 그건 선택의 여지가 있는 거겠지만 실제 그런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그럼 이건 언제 알게 될까요? 3점이 모자라서 버리면 버리는 즉시 7점을 같이 버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 나중에 후회하지요.

이혼한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대부분 후회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내 인생에서 이혼 하나는 잘했다’는 사람은 제가 볼 때 10명 중 1, 2명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된다’는 데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사물의 전모를 보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나’라는 걸 내려놓고, ‘내가 옳다’는 걸 내려놓고, ‘내 거’라는 걸 내려놓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내려놔야 오히려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고, 남 보듯이 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 감정은 안 그렇지요.

우리는 좋은 점 속에 나쁜 점도 봐야 되고, 나쁜 점 가운데 좋은 점도 봐야 됩니다. 이런 게 동시에 본다, 통찰력이 있다는 거예요. 통찰력이라는 것은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보고,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고, 내 편만 보지 말고 상대편도 보고 그럴 때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정치도 그렇지만 다른 것도, 다 자기 이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보기 때문에 통찰력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통찰력을 얻으려면 ‘나’라는 걸 내려놔야 돼요. 내 생각, 내 관점, 이런 걸 내려놔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지요. 이렇게 안다고 그게 내려놓아지느냐 하면 잘 안 내려놓아져요.

그래서 항상 자기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내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다.’ 이렇게만 알아도 상대의 비판을 조금 수용할 수가 있는 거예요. ‘이게 옳다’가 아니라 ‘이건 내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다.’ 그랬을 때 약간 열릴 공간이 생긴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통찰력을 키우려면 고생을 많이 해야 돼요.(모두 웃음) 그런데 고생을 겪으면서 괴로워하면 트라우마, 상처가 됩니다. 또 자기 트라우마가 생기면 객관적 판단에 장애가 되니까 트라우마 없이 고생을 많이 해야 돼요. 고생을 많이 한다는 건 뭘까요? 만약에 왕족이 서민 친구를 따라 서민 취급을 받으면서 3년 동안 고생을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중에 왕이 되어서 어떤 사건을 볼 때 굉장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요? 가난하게 살아보면 부유하게 살 때 전혀 눈에 안 보이던 걸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고생’은 통찰력을 갖는 한 요인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찰력을 키우려면 젊을 때 일부러라도 고생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주어진 고생을 피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런 고생을 어떻게 피해 보려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일부러도 해야 될 일인데, 주어진 것을 피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주어지는 것도 지금 안 하려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잖아요. 그런 삶의 태도로는 통찰력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정토회에 살면서 부엌에 가서 밥을 해 보니 ‘이 많은 대중들을 먹여 살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싶지요? 그냥 앉아서 주는 밥상만 받아먹다 보면 그 파 한 뿌리, 상추 하나, 하나를 다 다듬고, 씻어야 된다는 걸 거의 못 느낍니다. 그저 자기 입맛에만 기준을 두지요. 그래서 농사도 지어봐야 되고, 부엌일도 해 봐야 되고, 천대도 좀 받아봐야 되는 거예요. 즉, 입장을 바꿔놓고 좀 살아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통찰력을 키우려면 이론적으로는, 나를 중심으로 보지 말고 상대편 입장에서, 또 여기만 보지 말고 저기를, 또 현재만 보지 말고 미래를, 이렇게 해서 사물 전체를 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로는 잘 안돼요. 제일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해 보는 거예요. 그래서 스님들이 옛날에 초견성(初見性), 즉 이치적으로 알면 그 단계는 보림(保任)이라고 했습니다. 이치적으로 아는 건 단박에 알 수도 있고, 3일 만에 알 수도 있고, 3년 만에 알 수도 있는데, 이걸 경험적으로 자기화하는 것, 이것을 보림이라 그러는데, 그러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려요. 그걸 위해서 10년, 20년, 30년 세월이 걸리는 거예요.

그 보림, 즉 경험적인 게 없으면 입만 살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경을 해석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는 아주 잘하지만 실질적 인격은 그게 안 된다는 것이 그래서 옛날 방식으로 공양주도 해 보고, 머슴도 해 봐야 돼요. 육조 혜능 대사를 보세요. 이교도가 아니라 같은 불교도한테 탄압을 받아서 쫓겨 살면서, 사냥꾼 옆에 붙어서 살아도 보고, 죽을 위험에도 직면해 보는 등의 경험을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면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고생을 거부하게 되면 트라우마가 생겨요. 그러니까 고생한 것이 상처가 되어서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그것을 ‘경험화’ 하면 굉장한 자기의 재산으로 전환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늘 여러분들께 그걸 재산으로 전환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정토회에서 백일출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백일출가만 해봐도 취직 잘 하잖아요. 백일 출가한 공덕으로 부처님이 잘 돌봐주셔서 취직을 잘하는 걸까요? 아니요, 전에는 못할 것 같았던 일도 백일 출가해 보고 나니 ‘할 수 있다’로 사고가 전환되어서 그런 거예요. 전에는 ‘월급 200만 원 이상이 안 되면 취직 안 한다’고 했다가 월급 100만 원만 주는 일이라도 ‘일단 해 볼 수 있지.’ 이렇게 마음의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이렇게 살아보니 어때요? 한 방에 10명씩 살아도 보고, 밥도 이렇게 먹어보고 그러니까 어때요? 둘이 결혼해서 살면 이보다는 낫게 먹고, 낫게 살지 않을까요? 그럼 ‘결혼이라는 게 별로 어려운 게 아니겠다.’ 하는 마음이 들 거예요. 남자들이 여기 살아보면 실제 ‘군대 별 거 아니겠다.’ 합니다. 가보면 요즘 군대가 여기보다 훨씬 낫습니다.(모두 웃음) 그러니까 고생을 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해요.

저도 실제 아프가니스탄에도 살아보고, 비행기도 타보고, 인도에 학교를 세우면서 인도에서도 살아보고 하니까 ‘공항에서 자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이냐?’ 할 수 있는 거예요. 공항이 얼마나 좋은 집인데요.(모두 웃음) 더운물도 나오고, 찬물도 나오고, 화장실도 있고, 의자 모아서 잘 수도 있고, 좋아요. 많이 걸어 본 그런 경험이 되어있으면 트럭 뒤에 타고 털털 거리면서 다녀도 좋아요. 걸어도 다니는데 트럭 뒤에 탈 수 있으면 좋지요. 걸어가다가 트럭 뒤에 타면 얼마나 좋은지 알아요? 몇 십리 걸어서 다리가 아픈데 지나가던 트럭이 꽁무니에만 태워줘도 얼마나 좋은데요. 또 필리핀이나 인도에서는 그런 비포장도로에서도 다니는데 한국에서 고속버스 타고 다니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속버스 타고 출장 다니는 것도 불평하고, 봉고차 타고 다니는 것도 불평하고, 그러잖아요. 차가 안 가면 몰라도(모두 웃음) 뒤에 좀 끼어 타는 게 뭐가 어때요?

관점을 이렇게 잡고 고생을 좀 하면 이게 체험적으로 되기 때문에, 각오하고, 결심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게 별 게 아닌 줄 알고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통찰력이라는 게 그냥 앉아서 ‘나도 통찰력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제가 ‘나는 너희와 비교하면 나이가 300살이다’고 농담을 하잖아요.(모두 웃음) 그만큼 많은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왕따가 되는 경험, 감옥에 갔던 일, 남한테 욕 얻어먹은 일 등등. 당시에는 조금씩 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런 경험이 저를 훨씬 더 단단하게 만들고 여유 있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니 지나고 보면 다 복 아닌 게 없다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재앙이 복이다. 재앙이 복인 줄 알면 이 세상에 복 아닌 것이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복 주세요.’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재앙마저도 복인데 이 세상에 복 아닌 게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대중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통찰력이 생기려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도 함께 가벼워졌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5명이 더 질문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편리함을 자꾸 추구하게 되는데 대중들로부터 존경받는 청정한 수행공동체가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한 분, 우울증이나 강박증이 있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할 때가 있는데 이 때 어떤 태도를 갖고 함께 일해야 하는지 묻는 분, 공동체에 몸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서 분위기가 쳐질 때가 있는데 어떻게 으샤으샤 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이라는 분, 규칙적인 일을 못하고 상황이 닥치면 일을 처리하는데 계획성 있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백악관 청원 서명운동 관련 업무가 많은데 야근을 해도 되는지 생활규칙을 지켜야 하는지 궁금한 분 등 다양한 질문에 스님은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다시 한 번 수행자의 본분에 대해 강조하면서 오늘 모임을 마쳤습니다.

봄이 한창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봄에도 봄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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