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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스님, 옳고 그름이 정말 없는 건가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읽다 보면 옳고 그름이 본래 없다는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이나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보면 과연 옳고 그름이 없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지요. 옳고 그름이 없다는 말이 본래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법륜 스님의 답변입니다. 



- 질문자 : “옳고 그름이란 본래 없으니 분별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또 스님께서 새만금 방파제나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말씀하신 걸 보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게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 법륜 스님 : “서울 가는 길을 부처님께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실까요? 인천 사람이 물으면 동쪽으로 가라 하실 테고 수원 사람이 물으면 북쪽으로 가라 하시겠지요. 질문하는 사람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면 서울 가는 방향 자체가 정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이치를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 합니다. 서울 가는 길을 오로지 한 가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천 사람에게는 동쪽이고, 춘천 사람에게는 서쪽이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라도 그렇게 정반대 경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동쪽이랬다 서쪽이랬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앞 사람은 인천 사람이고 뒤 사람은 춘천 사람이기 때문에 실제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현실을 무시한 관념의 세계에서는 정반대 대답이라고 문제를 제기 할 수도 있으나 현실의 삶에서는 그렇게 상반된 대답이 분명히 모순 없이 존재합니다.


옳고 그름이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할 뿐입니다. 시공을 떠나서는 옳고 그름을 따질 근거가 없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에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空)’의 도리입니다. 옷을 입는 것이 옳은가요, 아니면 벗는 것이 옳은가요?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목욕탕 안’에서는 벗는 게 옳고 ‘목욕탕 밖’에서는 입는 게 옳겠지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찰나적 지점에서는 옳고 그름이 나타나지만 그 기준이 항상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제법(諸法)은 공(空)한데 인연을 따라서 만법(萬法)이 나투는 이치입니다.


그러니 분별심 내지 말라는 말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생태계가 죽든지 살든지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외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지고 그 판단에 의해 행동을 합니다. 저마다 각자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그런 다양한 생각과 행동들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분별해 자기 마음의 괴로움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짓지 말라는 것이지, 세상이 어떻게 되든 상관 말고 내버려두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도 자기 마음의 괴로움이 되지는 않아야 합니다.


재산을 다 뺏겨도 가만히 있고, 폭행을 당해도 가만히 있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가만히 있으라는 식은 불법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바람피우는 남편이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 남편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 때문에 내가 괴로워한다면 그건 남편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같이 살든 헤어지든 간에 내 마음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을 해야 당사자들에게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지혜로운 길이 열립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내 생각과 의견을 밝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하는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합니다. 그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4대강 개발 때문에 지금 내 마음이 괴롭다면 그 괴로움은 내가 경계에 끄달려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 생각은 저마다 다른 법이고 세상일이 다 내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세상이 내 생각과 의견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그것이 내 마음의 괴로움으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경계에 따라 마음이 흔들려서 상대를 탓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그렇게 현실에 접근해야만 쓸 데 없는 갈등이 줄어들고 보다 지혜롭게 문제에 대처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법륜스님의 새책 <인생수업>이 출간되었습니다. 법륜스님은 말합니다.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 행복하게 나이드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즉문즉설과 함께 쉽고 재미나게 엮어져 있습니다. 지금 인터넷서점에서 구매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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