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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어머니 자살 이후 재혼한 아버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서운해요" / 법륜스님 즉문즉설

“어머니 자살 이후 재혼한 아버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서운해요.”



질문자 “아버지는 굉장히 가정적인 분이셨는데 어머니가 자살하시자 1년 만에 재혼하셨어요. 저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져 9년째 한국을 안 갔어요. 어쩐지 돌아가신 엄마한테 미안하고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닫히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이 한국을 많이 궁금해 해요. 그래서 한국에 가고 싶긴 한데, 아버지를 만나면 마음이 다시 불편해질까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 돼요.”

법륜스님 “아이들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하면 데리고 가세요. 아버지를 만나기 싫으면 한국에 가더라도 아버지에게 연락 안 하고 오면 되지요.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를 보고 싶어 한다면 같이 만나도 되고요.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서 싫은 사람도 좀 만날 수 있어야죠. 엄마가 그 정도의 희생정신은 낼 수 있잖아요. 닭도 병아리를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운다는데, 아버지 만나는 일이 죽을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9년이나 딸을 못 만났으니 하실 말씀이 많을 거예요. 그럼 질문자는 그냥 들어드리세요. 왜냐하면 노인이 되면 말이 많아지거든요. 했던 얘기도 반복하고요. 그것은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아버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노인이 다 그래요. 그게 안 좋게 보여 나는 늙어서 그렇게 안해야지 생각하지만 누구든 늙으면 그렇게 돼요.

그래서 제가 불자들에게 그럽니다. 입이 간지러우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염불하던지 하나님을 부르던지 하라고 합니다. 

어릴 때는 뼈가 연하지만, 늙으면 뼈가 굳고 잘 부러지죠. 그것처럼 사유도 어릴 때는 유연하지만 나이가 60이 넘어가면 생각이 거의 고정됩니다. 변화가 잘 안 일어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회귀 본능이 생깁니다.

 가령 외국에 살고 있다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더 생겨요. 인간 존재가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접근하세요. 이것을 미리 딱 알고 있으면 나의 요구도 너무 주장하지 않게 되고, 아버님이 그럴 때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져 아버님과 함께 잘 보낼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혼은 그분의 자유,
누구도 간섭할 수 없어요.


아버지는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어머니가 선택한 것이고, 아버지와 갈등이 있어서 돌아가셨다 해도, 누구나 자살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것은 하나의 조건에 해당합니다. 자살하신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당신 인생을 선택하신 거니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편하게 보내드려야 합니다. 어머니를 안쓰러워한다고 어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게 아니잖아요. 안쓰러워하면 내 마음이 슬프고 외롭죠. 

이제 질문자는 어머니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놓아주어야 내가 자유로워질 뿐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 됩니다.  

결혼했을 때는 남편이지만 사별을 하면 더 이상 남편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가 어떤 여자와 재혼을 하던 그것은 아버지의 자유입니다. 물론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겠죠. 어머니로부터 어릴 때 은혜를 많이 입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린 것은 아니잖아요. 아버지는 그저 당신 인생을 사시는 겁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자꾸 아버지를 시비하고 그럽니까? 이런 것을 불효라고 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남의 인생을 간섭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젊은 여자가 나이든 남자를 사귈 때는 상대가 돈이 좀 있으니까 사귀는 것이지 왜 사귀겠어요? 그리고 이것은 욕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기 주관으로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남자와 결혼할 때도 남자의 재산을 보는데 하물며 나이든 남자와 결혼하는데 재산도 안 본다면 무엇 때문에 결혼하겠어요? 지금껏 질문자는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혼자서 울고불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일 당장이라도 아이들 데리고 한국 가서 아버지 만나고, 아버지의 새 부인에게도 ‘엄마’ 라고 얘기하고 용돈도 드리세요. 이렇게 털고 살면 내가 자유로워지고, 움켜쥐고 살면 내가 속박 받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정치범으로  입국 금지도 안 당했는데 왜 한국에 못 가고 그렇게 갈등만 하고 있나요.” 

“그렇네요. 고맙습니다.”


“내 삶이 자유롭고 싶다면 
부모님의 선택을 존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