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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미국, 번영을 이어가려면?" 미국시민 질문에 스님의 답


뉴욕 맨하탄, 유니언 신학대학의 소셜 홀에서 미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열렸습니다. 나흘 동안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이어지는 발표와 토론을 듣고자 교통비를 들여 온 참가자들은 300여 명나 되었습니다. 


군사 경제적으로 월등한 지위를 갖는 미국, 그 힘으로 세계를 움직이며 유지되는 그들의 부강함. 그런 그들에게 법륜스님은 맨 얼굴을 보도록 거울을 비췄습니다. 참여불교 대표로 참석한 법륜스님의 '뉴욕판 즉문즉설'이 열린 것입니다.



▲ 미국을 구하고 세상을 치유하는 법에 대해 질문하는 마이클과 그에 답하는 법륜스님


갓 스무 살 넘은 한 미국인 청년은 어렸을 때와 달리 점점 신념이 줄어든다며 하나님의 뜻을 더 굳게 마음에 다질 방법을 물어왔고, 젊은 흑인 활동가는 명상을 통해 어떻게 단련해야 인종, 게이와 같은 소수자 차별에 대한 의식을 남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습니다. 이에 대한 법륜스님의 문답이 이어지며 질문자들은 질문 속에 들어 있는 자신들의 에고와 자존심, 남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욕망을 보게 되었고, 청중도 공감대를 이뤄갔습니다. 그리고 희끗한 머리의 한 미국인 신사가 법륜스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 질문자 : “제 이름은 마이클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은 아니고… 어떻게 하면 미국을 구할 수 있고,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다소 엉뚱한 뉘앙스의 거창한 질문에 청중들이 웃었습니다) 


- 법륜 스님 : "미국은 힘이 강합니다. 강한 힘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남을 돕는 데 쓰면 좋은 효과가 납니다. 남을 헤치는 데 쓴다면, 아주 나쁜 효과가 납니다. 저는 9·11이 일어났을 때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 있었습니다. 그때 전 세계가 난리였습니다. 그 마을만 조용했습니다. TV, 라디오 등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전 '어떤 사람이 잘 사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먹는 것과 입는 것도 부족하고, 질병도 있는데…. 하지만 그때 미국 사람이 느낀 불안과 공포는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 계속 오면서 미국이 점점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공항의 검문은 강화됐고,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에 들어오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관공서도 마찬가지로 출입 단계가 매우 복잡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걸까?' 자문해봤습니다. 이런 데 쓰는 돈의 일부를 절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쓴다면 보다 평화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9·11 때 제가 편지를 썼어요. '당신들이 격는 고통은 정말 클 겁니다. 큰 분노가 일어날 겁니다. 감정대로 한다면 범인을 잡아서 보복을 해야 합니다. 나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봅시다. 미국이 진정한 기독교 나라라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자신을 못 박은 사람을 위해서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하듯이,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감정을 억제하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그들에게 조금만 자비를 베푼다면, 미국은 부강함을 오래토록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똑같이 보복으로 간다면, 100년이 지난 뒤에 오늘을 되돌아 봤을 때, 그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지는 것처럼 제국이 이날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구나를 알게 될 겁니다.' 


미국은 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우리 모두 다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찾으려 했다면…. 10여 년이 지난 다음 어땠을까요? 아프가니스탄 공격, 이라크 공격, 그래서 응징을 했을지는 몰라도 얼마나 많은 돈을 썼나요? 지금 얼마나 긴장하고 있고 두려워 합니까?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라는 성인의 말씀은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아직도 미국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살려서 미국의 번영을 이어갈 것이냐, 역사 속 많은 제국처럼 몰락해갈 것이냐' 이것은 오늘 우리의 선택입니다. 더 나은 안전과 번영을 위한다면 감정을 넘어선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오늘 이런 모임을 갖는 것도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희망을 만들어봅시다." 


질문했던 미국인 신사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가슴 깊이 감사하다'며 인사했고, 그 자리에 모인 미국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쳤습니다. 법륜스님이 답하는 중간에도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yes" 라고 화답했습니다.



▲ 청중은 하버드에서 비교종교학과 불교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자 사회활동가들로, 불교 수행을 통한 사회변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듣고 있는 청중들. 


분노가 기승을 부리는 그 안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오롯한 깨어있음이 있을 때 미래 역시 살아갈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미국의 쇠락이 바로 9·11 그 시간이었을 것이라는 각성이 일어날 것이라는 법륜스님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미국이 참담하게 피해를 입은 그 시간이야말로 세상에 용서를 구했어야 할 순간 아니었을까 생각이 되어졌습니다. 


이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는 '북한과 미국에 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위협으로 불안한데,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법에 대해 한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여러 답변 가운데, 법륜스님의 평화에 대한 정의가 행사에 참가한 미국인들에겐 가장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 법륜스님 :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생명과 재산을 유지되는 것도 평화지만, 거기에 사람답게 먹고사는 것도 포함돼야 합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북한의 주민들은 한국전쟁 당시 죽었던 300만 명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가 1990년대 말 식량 부족으로 죽어갔습니다. 우리에겐 평화지만, 그들에겐 현재 전쟁보다 더한 고통이 흐르고 있습니다. 기아의 고통이 극심해지도록 작용하는 국제적 관계망까지 살피는 것이 보다 적극적인 희망을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희망은 절망의 시간, 환호의 시간, 그 매시간 속에 절망과 함께 존재합니다. 오늘 우리의 사려 깊은 선택 속에 희망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미움, 화가 아닌 ‘사랑’이 정의를 뒷받침한다면 세상의 갈등이 조금은 덜어질 것이며, 희생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이 글이 많은 분들에게 읽혀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