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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카톡 보냈는데 답변 안 오면, 하루 종일 신경 쓰여요. 어쩌죠?” 법륜 스님의 답변

2016.12.04 청년학교 8기 수료식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전국 10개 도시에서 제 8기 청년학교를 수료한 80여 명의 청년들의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1일부터 12월 3일까지 10주 동안 ‘법륜 스님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시대’를 주제로 그룹 세미나, 역사탐방, 청춘캠프, 특강 등 다채로운 학습을 마무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지난 10주 간의 청년학교 모습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며 추억을 되새긴 후 두 명의 청춘남녀가 나와 수료 소감문을 발표했는데요. 이별, 실직으로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던 여학생은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며 밝게 웃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10주 간 수고했던 청년들을 격려하며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공부과정에서 생긴 의문이나 풀리지 않는 고민,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껏 해보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수학 개념을 묻는 질문부터 직장, 연애, 인간관계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그 중 카톡 답변이 안 오면 예민해진다는 질문과 문답을 소개해드립니다. 상대방이 내 카톡을 읽었는데도 답변이 안 올 때 은근히 신경 쓰이는 마음, 공감하시나요? 이 작은 마음의 움직임에서도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카톡을 보냈는데 상대방이 읽어놓고 답장이 안 올 때, 하루 종일 생각나고 신경 쓰여요. 굉장히 예민해지는데 어떻게 하면 될지 잘 모르겠어요.” 


“그 정도면 약간 심리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에요. 기분 나빠요?”


“괜찮아요.”


“내가 카톡을 보내는 건 내 자유에요. 그런데 상대에게는 답을 안 할 자유가 있는 거예요. 나는 상대에게 ‘나 너 좋아해’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좋다고 말 못하고 떨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상대에게도 ‘싫어요’ 할 자유가 있습니다. 이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좋다’는 말을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싫어요’라는 소리를 듣기 힘들어서 그래요. 눈치 보는 거예요. ‘언제쯤 얘기할까’ 하고 망설이는 것은 내가 ‘좋아요’하면 상대도 ‘좋아요’ 하고 답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답을 내가 강요하는 거지요. 이건 비민주적이에요.

 



질문자에게 제가 좀 세게 이야기했나요? 괜찮아요?” 


“예.” (모두 웃음, 박수) 



“여러분이 ‘심리가 불안하다’라고 느낄 정도가 되면 정신질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애인하고 헤어지고 너무너무 괴로워서 매일 그 생각만 하고 운다면 정신질환에 속해요. 다만 그것은 몇 개월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이 되지요. 이런 경우를 ‘자연 치유’라고 합니다. 


우리 몸에 상처가 났을 때 어떤 것은 치료를 제대로 안하면 덧나서 큰 병이 되고, 어떤 것은 그냥 저절로 낫는 게 있어요. 감기 같은 게 그래요. 90퍼센트는 저절로 두면 낫습니다. 그런데 감기도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폐렴으로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감기는 병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감기도 병입니다. 감기도 병이듯이 여러분들이 정신적으로 어려운 것도 다 병에 속합니다. 그러니 치료를 해야 해요. 


몸의 병도, 마음의 병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내가 죽어서 괴로워하던 마음의 병이 몇 년 지나면 치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괴로움을 못 견뎌서 자살한 사람도 있어요. 세상에선 그 죽음을 ‘사랑’이라고 하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보면 ‘질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작은 정신질환이라도 합리화하지 말라는 겁니다. 질문자는 카톡의 답신에 대해 계속 생각나는 걸 합리화하고 그냥 두면 안 돼요.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기면, ‘어? 또 계속 생각나네, 병이다.’ 하며 머리를 흔들고 생각을 놓아야 합니다.  


카톡 보내는 건 내 자유고 상대가 어떻게 대응해도 그건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을 보면 젊은 사람인데도 상대의 자유를 별로 인정 안하는 것 같아요.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네가 감히 나를 안 좋아해?’ 이런 입장이에요. 


여러분들이 민주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이 안 되어서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자기감정도 표현을 잘 못하는 거예요. 내가 감정을 표현했을 때 ‘상대가 동의해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표현을 못하는 겁니다. 감정 표현을 편안하게 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대의 반응은 그의 자유’라고 인정하는 것이에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상대방은 나를 싫다고 했어요. 그렇게 되면, 내가 그만둘 수도 있고, 그래도 나는 상대가 좋으면 다시 가서 ‘그래도 네가 좋다’ 이렇게 표현 하면 됩니다. (모두 웃음) 


상대가 또 ‘싫다니까!’ 하면 알았다고 하고요. 그리고 이튿날 다시 가서 ‘그래도 네가 좋은 걸 어떡하니?’ 이렇게 이야기 하면 됩니다. 상대가 화를 내면서 ‘싫다니까!’라고 하면 알았다고 하고 이해하려는 연구를 해야 해요. 상대가 날 좋아하게 만들려면 연구와 투자를 해야 합니다. 상대의 친구들한테 상대가 좋아하는 걸 물어보고 좋아할 만한 선물을 보내고 그걸 집어던지면 또 연구를 하고요. (모두 웃음) 



옛말에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해요. 그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는 건 괜찮지만 막무가내로 하면 안 됩니다. 막무가내로 하면 할수록 상대가 나를 더 싫어해요. 


상대가 나를 싫어해도 내가 그에게 계속 좋아한다고 고백하면 상대는 내가 치근댄다고 나쁜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고, 진정성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거부반응을 느낄 지, 처음엔 싫어 하다가 좋은 평가로 변할지는 간격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처음 고백했을 때 거절했는데도 다시 좋다고 하면 상대는 ‘진짜 좋아하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누군가가 진짜 좋으면 몇 번 시도 해보는 게 필요합니다. 몇 번 시도는 해보되 요령껏 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나는 상대를 좋아하는데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미워한다는 건 세상이 다 내 식대로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내 식대로 안 되는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런 독재 근성은 버려야 해요. 여러분들 얘기하는 걸 들어 보면 어떻게 교육을 받았는지 독재 근성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하려고 해요.”


재미있는 답변 내용에 청년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스님은 연애를 하는 법까지 들려주었는데요. 작은 심리 불안은 감기와 같기 때문에 빨리 치유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예정된 프로그램에는 기조 강연이 1시간 배정되어 있었는데요. 한 사람의 청년이라도 더 대화하기 위해 스님은 모든 시간을 즉문즉설로 채운 후 마지막에 짧게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2시간 동안 여러분들은 저에게 ‘이래서 괴롭다’, ‘저래서 괴롭다’라고 말했는데, 관점을 바꾸고 보니 괴로울 일이 아니죠?”


“네.” 


“연애를 ‘실패했다’라고 보면 괴로움입니다. 그런데 연애를 ‘경험해 봤다’라고 보면 재산이 됩니다. 두 번이나 연애를 실패했다고 보면 트라우마가 될 수 있지만, 두 번이나 경험해봤다고 보면 마음의 재산이 쌓인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같은 일도 괴로움이 될 수 있고 즐거움이 될 수 있어요.


여러분이 각자가 경험하는 일을 이렇게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자꾸 하면 훨씬 행복해질 거예요. 부처님의 가르침은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도 이렇게 연습을 해서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참 힘들잖아요. 결혼도 해야지, 직장 생활도 해야지, 공부도 해야지, 애도 낳아야지, 애도 키워야지… 이렇게 생각하면 굉장히 힘들 수 있어요. 그런데 나이가 칠십이 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애 낳을 일도 없고 공부할 일도 없고 직장 다닐 일도 없어요. 그렇게 할 일이 없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로 살래요? 공부도 해야 되고, 돈도 벌어야 되고, 애도 키워야 되지만 청년으로 살래요?” 


“청년으로 살래요. 열심히 살 겁니다.”


“열심히 살면 안 돼요. 인생은 열심히 살 만한 가치가 없어요.(모두 웃음) 산에 사는 토끼가 열심히 살까요, 그냥 살까요? 다람쥐가 나무에 올라갈 때 열심히 올라갈까요? 여러분이 열심히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예요. 그냥 사는 겁니다. 왜? 청춘은 좋은 거예요. 젊은 여러분은 결혼할 자유도 있고, 혼자 살 자유도 있고, 직장 다닐 자유도 있고, 공부할 자유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이제 나이 좀 들어서 청소년들을 보면 ‘야, 그래도 고등학생 때가 좋았다’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런데 입시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은 대학생이 좋아 보이지요. 또 칠팔십 된 할아버지들은 지금 여러분들을 보면 청춘이 좋아 보일 겁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좋은 줄 아는 것’이예요. 


여러분이 지금 내가 좋은 줄 알면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청년학교에서 여러분들이 배운 한 가지 공부입니다. 


또 다른 공부는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주권자라는 것이에요. 지금 여러분들 대다수가 개인의 성공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 온전할 수 없어요. 



일제 시대에 태어난 한 젊은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공부를 잘해서 검사가 됐어요. 삼십대에 벌써 지방 검찰청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 보니 해방이 됐어요. 그래서 친일파로 체포됐습니다.


이 젊은이가 뭘 잘못했을까요? 그가 살인, 도둑질, 성추행을 하거나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술 먹고 행패를 피운 것도 아니잖아요. 개인적, 윤리적으로 아무런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런데 이 젊은이의 인생이 어제까지는 성공이었는데 오늘 실패가 됐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시대적과제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일제 시대 우리 모두의 최대 이익이자 목표는 ‘독립’이었어요. 그는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익이자 목표인 ‘독립’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겁니다. 


그가 시대적 과제가 독립이란 걸 알았다고 해서 검사를 그만 두고 독립군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검사를 하더라도 체포된 사람 중에 독립군이 있으면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풀어주는 방법이 있겠지요. 그것도 어려우면 월급에서 일부를 독립군 자금으로 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적 과제를 알고 행동했다면, 해방 후 그가 친일파로 몰려 조사를 받을 때 그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개인적 삶을 영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공통의 이익인 ‘시대적 과제’에 대한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온전해질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 당장 사회 운동가가 되고 정치가가 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개인의 윤리적 책임뿐만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젊은이가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청년들은 시원하게 웃으며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지금 이대로 좋은 삶, 시대적 과제를 자각하는 삶!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가슴이 뛰네요.  마지막으로 스님은 청년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수료증을 주었습니다. 




다녀야만 되는 학교가 아닌, 다니고 싶어 다녔던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의 모습이 참 밝았습니다. 이제 각자 인생 학교로 돌아간 청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응원해봅니다. 


여러분도, 지금 이대로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