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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술에 취해 앉아서 자는 남편을 보면 화가 납니다.” 법륜스님의 답변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불교대학 입학생들을 위한 특강 수련이 있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대전, 충청, 광주, 전라, 강원, 경기동부 지부에서 300여 명의 입학생들이 참석했습니다. 




학생들은 입학 후 ‘실천적 불교사상’에 대해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스님에게 마음껏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10여 명의 질문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 여성분은 남편의 행동 때문에 화가 나서 우울증에 걸렸다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했는데요. 이 여성분과 스님의 유쾌한 문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정토불교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도 스님의 강연을 유튜브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스님의 강연을 보고 생각해보니 제가 남편에 대해 화가 나는 문제들을 많이 참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스님은 참는 게 정답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인생에 정답은 없어요. 참는 게 수행은 아니라고 했죠.”




“그런데 저는 참고 억누르다 보니 우울증까지 오게 됐습니다. 남들은 전혀 우울증 같지 않다고 하지만 저는 진짜 마음이 슬프거든요. 어떻게 하면 남편의 행동들을 봐도 화내기 보다는 이해를 할 수 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어떤 행동인데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세요.”


“술을 마시고 잠을 앉아서 자요. 앉아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끝까지 안 누워요.”


“남편이 술 마시는 게 내가 괴로운 것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건데요. 남편이 앉아서 잠을 자는 것도 뭐가 문제예요? 성철 스님도 누워서 안 주무시고 앉아서 장좌불와(長坐不臥) 하셨다고 사람들이 굉장히 신비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허리를 안 붙이고 저렇게 잘 수 있을까? 우리 남편이 도인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절을 해야죠.” (모두 웃음)


“그렇게 앉아서 졸고 나면 목이며 허리며 온 몸이 다 아프다고 하니까요.”


“괜찮아요. 질문자의 남편이 앉아서 조는 것처럼 저도 늘 차에서 자니까 이쪽 어깨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팔도 잘 안 올라가고 그래요.”


“스님도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모두 큰 웃음)




“그래요. 방금 저한테 말한 것처럼 남편한테도 ‘그렇게 앉아서 자느라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지요? 아이고, 우리 남편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주면 돼요.”


“밤마다 그렇게 술을 마시니까 제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해요.”


“남편이 술을 마시니까 남편이 정신을 못 차리지, 질문자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남편은 꼭 저랑 같이 마시기를 원하는데, 술 취한 남편 모습을 제가 봐야 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어때요? ‘술 취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술에 취하면 주정은 저렇게 하는구나’ 이렇게 구경하면 재미있죠. 사람은 술에 취하면 무의식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의식으로 ‘내가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는 의도나 의지가 다 없어져요. 자기 마음에 있는 행동을 다 하고 마음에 있는 말이 다 나옵니다. 남편이 술에 취하면 본심을 알 수 있어요. 남편이 어릴 때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떤 식으로 행동했는지 남편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들이 남 앞에서 술 안 취하려고 하는 이유가 자기 속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상대가 완전히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보고 친구를 합니다. 그 전에는 그 친구를 못 믿는다는 거예요. 사람은 의도적으로 남을 속일 수가 있으니까요. 


내 앞에서 정말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는 건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경계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에서도, 몽골에서도 친구가 되려면 술을 완전히 취하도록 마시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몽골 사람들은 저하고는 친구를 못 하겠대요. 제가 술을 안 마시니까요. (모두 웃음)


남편은 질문자를 완전히 믿으니까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시는 겁니다. 속마음이든 어릴 때 모습이든 자기를 다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게 얼마나 좋은 거예요? ‘아, 우리 남편이 나를 믿는구나’ 하면 됩니다.”


“예, 그건 맞아요.”


“그것 봐요. 그게 뭐 화날 일이에요?” (모두 큰 웃음) 


“그런데 저도 같이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까 화가 나요.”



“질문자는 술을 마시지 말고 마시는 척만 하면 돼요. 처음에는 몇 잔 같이 마시다가 남편이 술에 취한다 싶으면 술을 빨리 따라주세요. 그게 다 요령이에요. 술을 남편한테 빨리 따라주는 거예요. (모두 박장대소) 


어차피 남편은 취할 때까지 마시는 사람이잖아요. 취할 때까지 마시는 사람인데 무엇 때문에 두 시간이나 마주 하고 시간을 보내요? 빨리빨리 따라주고 빨리빨리 마시자고 재촉하면서 약간 취한다 싶을 때부터 질문자는 술을 마시지 말고 다른 데 부어버려요. 




이렇게 내가 한 잔 마실 동안 남편한테 세 잔 따라주세요. 자꾸 ‘건배!’ 하고 권하고, ‘다 마셔, 다 마셔’ 하면서요. 질문자는 술을 조금만 입에 대고 다 마신 척 따라버리고 남편이 잔 비우면 다시 또 따라주고 하면 됩니다. 폭탄주를 돌려도 돼요. 남편이 빨리 취하도록 하면 시간 절약이 되잖아요. (모두 박장대소)


질문자가 이렇게 몇 번 해보고 ‘아, 이 사람 습관이 어떻구나’ 하고 남편의 습관을 찾아서 조절하면 돼요. 행동양식을 딱 알아내서 거기에 맞춰보세요. 예를 들어 ‘이 사람하고 술 마실 때 보통 두 시간 걸리는데, 오늘 또 그러면 내가 잠도 못자고 문제가 있다’ 라고 판단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한 시간 당기고 싶으면 한 시간 당기고, 30분 당기고 싶으면 30분 당길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가 바쁜 날은 술을 준비할 때 독한 술을 내서 돌리고, ‘이 사람과 대화를 좀 하고 싶다’ 할 때는 약한 술을 내서 돌리세요. 그런 날은 남편이 빨리 마시려고 해도 ‘아이고, 여보, 천천히 마시자’ 이러고요. 바쁜 날은 또 빨리 먹여서 재워놓고, 취해서 앉아 있으면 앉아 있든 말든 놔두고 질문자는 자기 볼일 보면 돼요. 이렇게 조정하면 되지, 그게 뭐 화날 일이에요?”  (모두 웃음)


“네, 스님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질문자가 환하게 웃자 청중들도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특강수련이 1박2일로 진행되다 보니 불교대학 학생들은 처음으로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요. 넓은 방에 여러 명이 숙박하고, 재래식 생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해서 학생들은 여러모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불편한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한 번 해볼 것을 권하며 학생들의 관점을 바꾸게 해서 편안한 마음이 되도록 안내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평생동안 걸식하며 생활하셨어요. 밥은 남의 집에서 얻어먹고, 옷은 시체를 싸서 버린 천을 주워 입었어요. 잠은 나무 밑이나 동굴 속에서 자고, 아무도 도와주는 시종도 없고 떠받드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만 홀로 나무 밑에서 정진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왕자로 있을 때보다 더 마음이 편안하고 한가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이 모든 불편이 나의 습관으로부터 일어남을 알고, 그 습관에 매이지 않고 어디에 처하든 인연을 따라 이루어지는 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편안했던 거예요. 심지어 남의 비난과 욕설도 새소리나 바람소리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에 편안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그런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관점을 이렇게 딱 잡으셔야 해요. 문경 수련원에 왔다가 불편해서 잠도 못 자고 화장실도 못 가고 ‘다시는 안 간다’ 이렇게 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여기 와서 불편을 느낄 때마다 무엇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거예요. 잠잘 때 불편을 느끼면 ‘아, 내가 혼자 자는 습관 때문에 그렇구나’, 화장실에 가서 불편을 느끼면 ‘아, 지금까지 내가 화장실 사용한 습관 때문에 그렇구나’ 이렇게 자기 습관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거예요. 


불편을 느끼긴 느끼지만 그것이 습관 때문에 일어난 줄 알면 그 습관을 고집하지 않게 됩니다. ‘화장실이 문제야!’ 이렇게 말하지 않아요. 이렇게 습관 때문에 일어나는 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불편을 느끼면서 불편의 원인을 알고, 그래서 불편을 만끽하는 거예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관점도 있습니다. 소승의 수행법은 불편을 느낄 때 불편을 바깥으로 탓하지 않고 다만 ‘불편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그 불편을 느끼며 알아차리는 겁니다. 그러나 대승의 수행법은 사물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소승보다 더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가서 바지를 내리면 아래로부터 시원한 바람을 느끼잖아요. ‘정토회는 화장실에도 에어컨을 설치해 놓았구나.’ 하는 겁니다. (모두 웃음) 




그것을 두려워하면 화장실에 가기가 싫어집니다. ‘여기 안 왔으면 이런 걸 어떻게 느끼겠느냐? 우리 집에 아무리 좋은 화장실이 있어도 아래에서 에어컨 바람은 안 나온다’ 이렇게 이왕  일어난 경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승 수행법이에요. 


여러분이 여기서 지내면서 불편을 느끼는 중에 수행을 하는 거예요. ‘나는 불편을 안 느낀다’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는 불편을 느낍니다. 환경이 달라지면 습관이 저항을 하니까요. 습관의 저항이 심리적으로 일어나는 게 바로 ‘불편’입니다. 그걸 알아차리면 불편을 느끼는 것으로 끝나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괴로움이 생겨요.




여기 와서 그런 공부를 하는 거예요. 스님 법문 듣는 것만 공부가 아니라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는 것도 공부고, 자는 것도 공부고, 절하는 것도 공부예요. 그래서 ‘일체처 일체시에 공부 아닌 게 없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主坐臥 語默動靜)이 다 수행이다’ 라고 합니다.” (모두 박수)


불편함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스님의 말씀에 모두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을 마치니 벌써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스님은 3시간 동안 앉아서 쉬지 않고 강연을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리에 쥐가 났는지 절뚝절뚝 걸으며 법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에는 아직도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늦가을의 풍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꽃을 보고 기분 좋으면 꽃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은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 가볍게 웃음을 머금어 봅니다. 


상대를 좋게 보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좋은 것이죠. 여러분도 그렇게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