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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문즉설

“엄마의 육아 & 국가의 보육정책, 아기가 행복하려면?” 법륜 스님의 답변

2016.11.12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추계 학술대회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스님은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추계학술대회 초청 강연에 참석해 ‘혼돈의 육아 현실, 유아교육의 정도를 찾아서’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습니다. 강연이 열린 서울시 인재개발원 배움관에는 전국에서 온 유아교육학과 교수님, 유치원 원장님과 선생님 등 2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학술대회를 주관한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회장 임재택 교수님은 인사말에서 “정부의 보육정책마저 제대로 기준을 잡지 못하는 혼돈의 육아현실 속에서 유아교육과 보육의 정도를 찾아서 그 실현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법륜 스님의 초청하게 됐다” 라며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행사장에는 박원순 서울시장님도 함께 자리해 행사에 앞서 스님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님은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키워보지 못한 스님한테는 안 맞는 주제라며 큰 웃음을 선사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시간 30분 동안 어떻게 해야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는지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주제는 스님한테 안 맞는 주제네요. 저는 결혼도 안 했고, 애도 안 키워본 사람인데, 왜 저한테 이런 주제를 주는지 모르겠어요.(모두 웃음) 




사실 지금도 얘기하기가 조금 꺼려집니다. 왜냐하면, 제가 솔직하게 얘기하면 여기 계신 분들의 이해관계에 손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들 비위를 맞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제가 여러분들 비위를 맞출까요?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릴까요?”


“스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모두 웃음) 


“그래 놓고 댓글에다 제 욕 쓰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박수)

 


“육아의 목표는 첫째, 아기가 행복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겁니다. 그럴려면 엄마가 행복해야 합니다. 둘째, 이 아이가 자라서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존력을 갖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원시 시대에는 수렵, 채취 능력을, 농경시대에는 농사 기술을, 산업시대에는 지식 기술을, 미래 시대에는 창조력을 가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개도 제 새끼를 제가 키우고, 고양이도 제 새끼는 제가 키웁니다. 개가 ‘내가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야 나중에 개답게 될까?’ 이런 걸 연구하면서 키우나요? 어미 개가 저 나름대로 살면 새끼가 그걸 보고 그냥 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모가 행복하게 살면 아이도 행복해지는 거고, 부모가 자긍심을 갖고 살면 아이도 자긍심이 생깁니다. 아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고 무조건 열등감을 갖는 게 아니라, 엄마가 가난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갖고 전전긍긍하면 아이도 열등의식을 갖게 됩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학습을 통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냥 보면서 따라 배우는 겁니다. 엄마가 한국말을 하면 아이도 한국말을 하고, 엄마가 김치를 먹으면 아이도 김치를 먹고,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도 따라서 불안하고, 엄마가 편안하면 아이도 따라서 편안하고, 그래서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도 행복합니다. 


육체적으로는 태중에 있을 때가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우리가 너무 신경을 쓰면 소화가 잘 안 되듯이,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 엄마가 너무 신경을 쓰면 아기도 영향을 받습니다.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는 엄마가 편안해야 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기를 가지면 부정 타니까 상갓집에도 가지 마라. 개 잡는 것도 보면 안 된다’고 했던 거예요. 그게 축적된 경험에 의한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태교는 아기의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만약 산모가 약물을 잘못 먹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아기가 유산이 되거나 유전적인 요인이 없는데도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아가 형성되는 태어난 후 3년이 사람의 일생 중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LA에 있는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의학부에서 낸 연구결과로는 3살이 될 때까지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와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의 뇌를 측정해 봤더니 학대받은 아이의 뇌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를 사진과 함께 본 적이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다른 장기는 계속 변하지만 뇌는 일정하게 형성되면 죽을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3년이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첫째, 국가 정책으로는 아기를 낳은 엄마가 최소한 3년은 제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합니다. 남자가 군대에 가는 것보다 이게 국가의 미래에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3년 동안 엄마들에게 유급휴가를 줘야 합니다. (모두 환호와 박수) 




둘째, 출산여성에게 3년간 유급휴가를 못 준다면, 현재 1년간 유급휴가는 주도록 되어있으니까 거기에 2년간 무급휴가라도 더 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은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제도가 되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엄마는 아기를 돌봐야 합니다. 이건 제도와 관계없이 엄마의 의무입니다.


엄마가 아기를 돌봐야 한다는 건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자랄 권리가 있다는 뜻으로써 이건 아기의 권리입니다. 반면에 여자로서 직업을 계속 가질 수 있다는 건 여성의 권리입니다. 이 두 가지 권리가 상충된다면 아기의 권리가 우선입니다. 그런데 가끔 여성들 중에는 여성의 권리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던데, 그런 분은 엄마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아기의 권리도 지키고, 여성의 권리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3년간 유급휴가를 주는 것입니다. 3년간 유급휴가를 못 준다면 현행대로 1년간은 유급휴가, 2년간은 무급휴가라도 줘야 합니다. 무급휴가를 줘야 한다는 건 경력 단절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회사에서 유급 휴가를 주는 게 부담스럽다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아기를 업고 일을 하면 됩니다.(모두 웃음) 


재택근무도 안 된다면, 엄마가 아기를 업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만약 일반인이 하루 8시간 일해야 된다면 아기엄마는 하루에 4시간 일해도 되도록 해 주고, 회사에 수유시설도 갖추고, 또 아기가 울면 엄마는 눈치 보지 않고 일을 멈추고 아기를 돌볼 수 있도록 해 줘야 합니다. 즉 우리 사회 전체가 아기 양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공공기관에 서류를 하나 떼러갔더니 담당자가 저쪽에서 아기에게 수유를 하고 있다면 수유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모두 웃음) 



그럼 육아정책에 대한 재정부담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국민 모두가 분담해야 하니까 국가가 그 회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제도적으로 지원을 해야 되겠지요. 예를 들어 지금 남한에 온 탈북민이 회사에 취직하면 정부에서는 그 회사에 3년간 매달 50만 원씩 지원을 합니다. 또 장애인을 고용해도 그렇게 지원해 주는데, 아기를 가진 엄마를 위해서도 정부가 회사에 지원을 해 주면 됩니다. 


만약 국가재정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아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독신세(獨身稅)’를 걷어서 재정을 마련하면 됩니다.(모두 웃음과 박수) 


만약 아기를 낳아서 어린이집에 맡기면 어린이집 비용이 공짜고, 제 엄마가 키우면 별 혜택이 없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겠지요?” 


“예.” 


“그럼 이 정책은 여성을 위한 정책은 되겠지만 아기를 위한 정책은 아닙니다. 엄마로부터 아기를 떼어놓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정책이 생겼을까요? 아기에게 투표권이 없어서 그래요. 아기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이런 정책이 생길 수가 없지요.(모두 박수) 



사실 미래사회의 주인은 지금의 아기들이잖아요. 그러니 제대로 하려면 아기한테도 투표권을 줘야 합니다. 아기한테 투표권을 준다는 건 엄마가 투표권을 2개 갖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기를 위할 수 있게 제도를 바꿀 수가 있을 거예요. 이렇게 아기가 행복하도록 해주는 것이 질병과 사회혼란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복지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 바탕이 안 되어있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실제 아기를 낳아서 키워보면 제 아이 하나 키우기도 어렵잖습니까. 그런데 애도 안 낳아본 스물 두세살 먹은 처녀한테 아기 네다섯 명을 매일 돌보라고 한다면 그게 가능한 일이겠어요? 그런 처녀가 아기 네 다섯 명을 돌보다 보면 어떻게 아기를 안 꼬집을 수가 있겠어요? (모두 박수) 


그러니 세 살 이하의 아기들을 돌볼 보육 교사는 대학을 나오거나 대학원 나왔다고 뽑을 게 아니라 2명 이상의 자녀를 길러본 40세 이하의 여성을 뽑아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맞습니다.” (모두 박수)  


“저의 가장 큰 안티 세력이 ‘30대 직장맘’이라는 거 아세요? 그분들은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엄마가 키우라고요? 우리는 어쩌라구요?’ 하면서 항의를 해요. 그래서 제가 육아에 대한 강의를 되도록 안 하려고 하는데, 하도 강권을 해서 제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나 제가 아무리 직장맘들한테 욕을 얻어 먹어도 이 얘기는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아기를 위한 일은 사람의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니까요. 남녀는 평등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에게는 미래사회의 주인이 될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육아에 비협조적이라고 해도 엄마는 아기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무너지는 집에서도 아이만은 품에 안아서 살리고 자신은 죽는 것이 모성애거든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왜 여자만 희생을 해야 되느냐?’ 라고 하던데, 그게 어떻게 보면 엄마의 무거운 책임이겠지만 또 달리 보면 엄마만이 갖는 생명의 큰 권리인 겁니다.  




세 살까지는 ‘교육’이란 말이 안 맞습니다. 그 시기의 아기들에게는 뭘 가르칠 게 아니라 그냥 따뜻한 사랑으로 돌봐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돌볼 때 제일 중요한 건 돌보는 사람이 행복해야 돼요. 아기에게 무슨 기저귀를 채워주고 무슨 분유를 먹일까 하는 건, 기저귀 채워주고 분유 타주는 엄마의 생각이지 아이에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3살까지 자아가 형성되면 4살 때부터는 그 자아를 기초로 해서 뭔가 배우는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릴 때는 물이 아주 빨리 들어요. ‘따라 배우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 보는 데서는 찬물도 한 그릇 못 마신다’ 라고 하는 겁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금방 흉내 내거든요. 육체는 딱 한 번의 수정으로 결정되지만, 정신은 3년 동안 자아가 형성된 다음부터 끊임없는 학습작용을 통해 변화되어 갑니다. 즉 업그레이드를 죽을 때까지 계속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럼 어떤 것이 조기 교육일까요? 제가 방을 닦고 있으면 아이도 걸레를 가지고 막 방을 닦으려고 합니다. 그럴 때 ‘하지 마. 더럽다’ 이렇게 하면 아이가 방을 닦고 설거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다 막아버리는 거예요. 아이가 그네를 타다가 떨어질 수도 있고, 팔이 부러질 수도 있는데, 아이가 위험하다고 엄마가 그네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아이는 그네도 못 타고, 자전거도 못 타게 되는 거예요. 생존에는 위험이 항상 따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어디에 가서도 잘 사는데, 이건 순전히 조기교육 덕분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벌써 어른들 따라서 호미 들고 밭을 맸거든요. 또 요즘은 돈을 주면 좋은 장난감을 살 수 있지만, 우리가 자랄 때는 장남감이 자기 재주에 달렸었습니다. 자기가 잘 만들면 좋은 장난감을 가질 수 있고, 못 만들면 그저 그런 장난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들에게 창조 교육을 하려면 아이가 공부를 할 때 정답을 만들어서 가르치면 안 됩니다. 모방교육에는 정답이 있어서 ‘맞다’, ‘틀렸다’ 할 수 있지만, 창조 교육에서는 맞고 틀리는 게 없어요. 그냥 아이한테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하고 물었을 때 아이가 ‘저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하면 ‘아, 이렇게도 할 수 있겠다’ 하고, ‘저는 저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하면 ‘오, 저렇게도 할 수도 있겠다. 선생님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은 못했구나.’ 이런 식으로 ‘답’을 정하지 않고 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건 다 그럴 수 있는 거예요. 



다만 스스로 모순되는 게 있으면 지적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공부를 안 하는 아이에게는 이런 대화가 필요합니다. 

 

‘넌 대학 안 갈 거니?’ 

‘아니요, 대학 가고 싶어요.’

‘공부 안 해도 대학 갈 수 있니?’ 

‘아니요.’ 

‘그러면 공부를 해야 되겠지?’ 

‘그런데 공부는 하기 싫은데요.’ 

‘그러면 대학을 안 가면 되지!’


이때 ‘공부하라’고 하면 안 되고, ‘아, 공부 안 해도 괜찮아. 그런데 공부를 안 하면 대학은 못 가. 그러니 넌 대학을 안 갈 거지?’ 하면 됩니다. 대학은 가고 싶고, 공부는 하기 싫다는 게 이 아이의 모순인데, 그런 걸 엄마가 대신 해결해 주면 안 됩니다. 엄마는 아이 스스로 길을 선택하게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이의 모순을 엄마가 대신 해결해 줘서 문제가 된 게 바로 최순실씨가 정유라에게 해 준 것입니다. (모두 웃음) 


아이가 겸손하기를 원한다면 엄마가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아이가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엄마가 먼저 남편이든 시어머니께 공손한 태도를 취해야 해요. 


그러니 첫째, 교육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지시하는 게 아닙니다. 둘째, 심리를 억압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저항심이 생기거든요.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가 야단을 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이렇게 심리가 억압이 되면 나중에  저항심으로 나타납니다. 엄마가 뭐라고 할 때 아이가 대든다면 엄마는 ‘아, 아이에게 저항심이 있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도 아이가 대들면 ‘아, 저 아이의 심리가 억압돼 있구나’ 하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아이의 심리를 억압하면 안 됩니다. 


‘아이가 잘못하는데 그럼 어떡합니까?’ 하는데, 그 잘못이 뭔지를 살펴봐야 해요. 수업시간에 자는 건 잘못이 아니에요.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것,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것, 거짓말하거나 욕설하는 것, 술 먹고 취해서 행패부리는 것, 이런 건 남에게 피해를 주니 잘못된 거예요. 아이에게 ‘이런 건 잘못된 것이다’ 라고 안 가르치면 그 아이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건 엄격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3살짜리 아이가 남의 장난감을 확 빼앗으면 바로 돌려주도록 가르쳐야지, 아이가 운다고 ‘그래, 그래. 갖고 놀아라’ 이러면 안 됩니다. ‘남의 것을 뺏으면 안 되는 거다’ 라고 똑바로 가르쳐야 됩니다. 그렇다고 때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관점이 좀 달라져야 됩니다. 오늘 강의 주제가 ‘생태교육’ 이여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이가 그냥 자연 속에 있다고 생태교육이 아니에요. 자연 속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팽이를 만들든지, 구슬치기를 하든지, 연을 만들어서 연날리기를 하든지, 그런 경험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 푼 돈만 주면 살 수 있는데, 그러는 건 시간낭비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이가 팽이를 잘 만들어 보겠다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팽이를 돌려도 보고, 쳐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게 ‘연구’예요. 어떤 문제를 보면 ‘이렇게 해 볼까? 저렇게 해 볼까?’ 하면서 ‘탐구’를 하는 게 창조입니다. 탐구를 해야 창조가 나옵니다.


팔만대장경을 다 외워도 그건 그냥 ‘문자 박사에 불과하다’, ‘알음알이에 불과하다’ 그러잖아요. 선(禪)에서는 ‘이 뭐꼬?’ 라는 탐구를 통해서 사물의 진실을 볼 때 그걸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남이 무(無)자 화두를 들고 깨우쳤다고 하니까 자기도 무(無)자 화두를 든다면 그것은 사구(死句), 즉 죽은 글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공부하는 건 미래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 것에 지금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적으로도 굉장히 비효율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창조력이 더 중요한 때입니다.


다시 정리해 보면, 교육의 목표는 첫째, 아이가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좀 잘한다고 ‘너는 법대 가서 변호사를 해라. 너는 의대 가서 의사를 해라’ 라고 하는데, 그건 순전히 돈 때문에 변호사, 의사가 되라는 것이잖아요. 옛날에 가난했을 때에는 그랬던 게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누구나 밥은 먹고 옷은 입고 살잖아요. 그러니 너무 어른들 생각을 강요하지 마세요. 그러면 행복하지 못합니다. 


둘째, 창조력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창조는 집중에서 나옵니다. 화두를 참구할 때 우리가 ‘이 뭐꼬?’ 하면서 집중하듯이요. 그런데 집중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집중이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게임을 할 때는 좋아서 집중이 되니까 엄마가 불러도 들리지 않으니 대답도 안 하잖아요.    


          

이제 교육의 관점이 좀 바뀌어야 합니다. 아이가 행복해지려면 어릴 때가 가장 중요해요. 가능하면 심리적으로 억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저항을 하면 그 심리적 억압을 풀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아이가 하자는 대로 ‘오냐, 오냐’ 하면서 해주라는 게 절대 아닙니다. 윤리적 원칙을 갖고, 남을 해치는 것에 대해선 정확하게 지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욕심 때문에 아이들한테 공부를 잘해야 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의 학교성적이 떨어진 건 아이가 남한테 피해를 준 것일까요?”


“아니에요.” 


“다른 아이들한테 공덕을 쌓은 거예요. 자기 성적을 떨어뜨려서 남의 성적을 올려줬으니까 오히려 칭찬을 해 줘야 되는 거예요.(모두 웃음) 


아이가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져서 자책을 하면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더 잘 하면 되지,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니’ 이렇게 다독여 주고, 꼭 아이의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안 좋은 학교로 전학시켜서 아이 성적을 저절로 올려주는 방법이 있습니다.(모두 웃음) 


그런데 엄마의 욕심으로 커트라인이 200점인 학교에 성적이 200점인 아이를 억지로 집어넣기 때문에 그 아이는 학교에서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매번 꼴찌밖에 못 하니까 열등의식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최고점수가 200점인 학교에 아이를 집어넣으면 아이는 놀아도 반에서 1등을 할 수 있잖아요. 이렇게 부모는 아이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괜찮아, 네가 다니는 학교가 좋아서 그래. 이 학교에서 꼴찌해도 다른 학교에서 1등 하는 것보다 나아.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해 줘야 합니다. 


여기에서 ‘스님은 자식이 없으니까 그런 소리를 한다’ 라고 생각하는 분 계시지요? (모두 웃음) 



그러니 여러분이 조금 생각을 바꾸셔서 아이들이 행복하도록 도와주시고, 아이들이 살 시대에 맞는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우리 시대에 배운 식으로 아이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기본바탕이 되는 윤리만 딱 가르치고, 나머지는 간섭을 안 할수록 좋아요. 그리고 엄마가 보기에 ‘아이를 저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으면 엄마가 아이와 뭐든 같이 하면서 함께 하는 가운데 아이가 잘못으로부터 좀 빠져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습니다.” (모두 박수)



스님의 열정적인 강연에 청중들 모두가 환호하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행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여러 차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특히 세 살때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대목에서 유아교육 관계자들이 약간의 반발을 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스님의 설명을 충분히 듣고 나서는 적극적인 공감과 박수를 보내어서 잔잔한 감동이 일기도 했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요. 말 못하는 아기들의 권리를 대변하고자 하는 스님의 진심이 통했나 봅니다. 



오늘은 아기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엄마가 육아를 어떻게 해야 하고, 국가는 보육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기가 행복한 세상을 함께 만듭시다. 소감은 댓글로 남겨주시고, 공감한다면 이 글을 주위에 공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