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

“간호사인데요, 자꾸 힘든 병동에서 일을 하라고 시켜서 화가 납니다.”법륜스님의 답변

법륜 2016. 10. 18. 15:41

2016.10.17 방콕 즉문즉설 강연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방콕에서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스님은 인도 일정을 마치고 델리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항상 방콕을 경유하여 방콕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해왔는데요. 이번에는 1월 성지순례 때 들리지 못할 것 같아서 이번 10월에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제 상카시아 석가족 초청으로 평화 담마 행진을 마친 스님은 델리불자회 법당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새벽 1시에 법당을 나온 스님은 새벽 3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로 방콕으로 향했습니다.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 현지 시간으로 아침 9시가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앉은 채로 꼬박 밤을 샌 셈입니다. 

문화원 입구에는 얼마 전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태국 국왕 서거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걸려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검은색 옷과 흰색 옷 차림의 사람들이 많았는데, 국왕의 서거로 슬픔에 빠진 태국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국은 지금 국왕 서거 이후 1년 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하고 전국적인 추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자리를 가득 메운 100여 명의 청중들은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강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태국 국왕의 서거에 대해 추모의 시간을 잠시 갖자”고 하면서 청중들과 함께 묵념을 했습니다. 

잠시 깊은 침묵이 흐른 후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올 여름이 유난히 더웠다고 하면서 이런 이상기후현상은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가져온 결과라는 점을 강조하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두만강변의 홍수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알려주며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총 5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 중에서 직장에서 자꾸 힘든 역할에 자신을 배치해서 화가 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간호사를 한 지 8년차입니다. 8년간 가장 힘든 병동에서 일을 했는데, 이제는 좀 쉬운 파트로 갈 차례가 되었어요. 그런데 어려운 파트가 신설되었는데, 저한테 또 그 어려운 파트로 가라는 거예요. 저는 결혼했기 때문에 이제 아기를 가지려고 하는 참이고, 또 쉬운 파트로 가려고 8년이나 고생을 했는데, 다시 또 어려운 파트로 가라고 하니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고, 화가 나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쉬운 파트와 어려운 파트의 차이가 뭐예요? 쉬운 파트는 질문자 전공대로 간호 일을 하는 곳이고, 어려운 파트는 간호 일과 상관없는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곳이예요?” 

“그건 아니고요, 쉽게 말씀 드리면, 가벼운 교통사고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데가 쉬운 파트이고,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체위 변경도 해줘야 하고, 가래도 지속적으로 빼줘야 하는 등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들고 더 많은 기술과 경력을 요구하는 데가 어려운 파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자가 경험이 많고, 질문자의 간호 실력이 높다고 생각하니까 질문자를 거기에 배정했을 것 아니에요?”

“그건 아니고요, 힘든 파트일수록 간호사들의 사직 비율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자꾸 바뀌거든요. 제가 그런 파트에 신규로 가서 지금까지 8년 동안 있게 된 겁니다.” 

“만약 질문자가 스님이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질문자는 이왕 스님이 되었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예불도 하고, 참선도 하고, 밥 먹고 나서는 경전공부도 하고, 오후에는 신도들을 위해서 법문도 하는 스님이 되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스님이 되었어도 참선은 다리가 아파서 못하고, 경전은 목이 아파서 못 읽고, 법문은 대중들이 딴 짓을 하거나 졸아서 하기 싫다면서 그저 설렁설렁 다니면서 차나 마시고, 잠이나 자는 스님이 되는 게 좋겠어요?”  

“저는…” (질문자가 답하기 곤란한 듯 웃기만 함)

“그것처럼 질문자도 이왕 간호사가 되었으니까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게 간호사잖아요. 그래서 목에 낀 가래를 혼자 못 빼내는 환자가 있으면 간호사가 도와줘야 하잖아요. 환자 혼자 못 하는 일이 있으니까 간호사가 필요한 거잖아요. 그런데 간호사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파트는 환자가 다 알아서 하니까 간호사가 필요 없다는 것 아니에요. 질문자는 왜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도 간호사가 필요 없는 데에 가서 있으려 합니까. 그렇게 간호하기가 싫으면 간호사를 그만두면 되잖아요. (모두 웃음) 


남편하고 의논해서 ‘나 그냥 집에서 애나 키우면서 놀래요. 그러니까 당신 혼자 돈 버세요. 내가 아끼면서 살게요’라고 하세요. 질문자는 일은 쉽게 하고, 돈은 더 받겠다는 심보 아니에요?” 

“예, 맞아요.(모두 웃음) 8년 동안 고생했으니까 이제 저도 좀 쉬운 파트에서 쉽게 돈 벌고 싶어요.” 

“그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래서 시끄러운 거예요. 모든 업주는 종업원이 일은 열심히 잘하고 월급은 조금만 받아가기를 원하잖아요. 그런데 똑똑한 종업원이 왜 사장 말을 잘 듣겠어요? 똑똑한 종업원은 스스로 ‘이건 이러면 되겠고, 저건 저러면 되겠다’ 하고 사리분별을 잘 할 테니까 사장이 지시하는 일 중에도 불합리한 게 있으면 ‘그건 그러면 안 되고 이래야 합니다’ 라고 할 거 아니겠어요. 똑똑한 사람은 의견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또 모든 업주는 말도 잘 듣고, 일도 잘 하는 종업원을 원하지요. 말을 잘 듣는다는 건 시키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는 거잖아요. 동남아인이나 멕시칸 종업원에게 ‘여기 하나만 놓으라’고 하면 딱 하나만 놓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립니다. ‘2개 놓으라’고 하면 딱 2개만 놓고 기다리고요. 그런데 그걸 ‘속 터져 죽는다’ 하면서 답답해하는데, 그럴 일이 아니에요. 

그 종업원이 ‘하나 놓으라’ 하면 2개 놓을 줄 알고, ‘2개 놓으라’ 하면 3개 놓을 줄 안다면, 왜 내 밑에 오래 붙어있겠어요? 일을 딱 1, 2년만 배우고 독립해서 자기 가게를 열겠지요. 그렇게 시키면 시키는 일밖에 못하기 때문에 10년씩 내 가게에서 일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 그 종업원이 나처럼 일을 잘하길 원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나처럼 잘하면 그 종업원이 사장하지, 왜 내 밑에서 종업원을 하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사람의 욕심입니다. 월급은 조금 받으면서 일도 알아서 잘하길 바라고 또 오랫동안 일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에요. 그런데 종업원은 일은 가능하면 적게 하고 월급은 많이 받기를 원하잖아요. 세상이라는 게 이 두 입장의 충돌과 갈등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직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왕에 참선하려고 스님이 되었으면 참선을 많이 하고, 교화하려고 스님이 되었으면 교화를 많이 하고, 공부를 하려고 스님이 되었으면 공부를 많이 하면 되는 거예요. 그게 힘들다면 안 하면 되고요. 

그런 것처럼 어차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할 거면, 그 시간에 환자를 1명이라도 더 많이 돌보는 게 좋은 거예요. 저 같으면 월급을 좀 적게 받아도 힘든 파트를 자원하겠어요. 거기에 가면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파트에 자원해서 가고, 내 일 다 해 놓고 옆에 사람이 못한 일까지 거들어 주겠다는 마음을 내야지, 질문자처럼 쉽게 일하고 돈 벌겠다는 그런 마음을 내면 질문자는 돈벌이 하려는 사람이지, 간호하려는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건 질문자가 했던 ‘나이팅게일 선서’도 어기는 일이에요. (모두 웃음)


우리나라 의료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되어야 합니까? 어릴 때부터 누가 아프다고 하면 손도 주물러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물도 떠다 주는, 그런 사람이 의사가 되어야 하지요. 

우리가 클 때 보면 애들 중에도 누가 체했다고 하면 손도 잘 따주고 그러는 애가 있잖아요. 배우지 않았는데도 그런 일에 관심이 있어서 유별나게 잘 하는 애가 있단 말이에요. 옛날엔 그런 사람들이 다 의사가 됐습니다. 옛날 의사들은 자기가 좋아서 의사가 됐기 때문에 다 창조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료도구가 굉장히 부족했음에도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어떤 사람이 의사가 됩니까? 자질과 전혀 상관없이, 돈벌이가 잘된다고, 공부 좀 잘 한다고 의사가 됩니다. 수학이나 국어, 영어를 잘 하는 것과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잘 치료하는 건 큰 상관관계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아이가 공부 좀 잘 하면 ‘의대 가라’, ‘한의대 가라’ 라고 하잖아요. 또 문과에서 공부만 좀 잘 하면 ‘너 법대 가면 되겠다’ 라고 하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힘든 데도 돈 때문에 그 공부를 했으니까 이제 정식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궁리만 하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환자한테 과잉진료를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안 해도 되는 검사를 하라 그러고, 과잉 처방을 하고, 안 해도 되는 수술을 하라 그러고 말이에요. 그래서 문제예요.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문제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질문자도 돈에 물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 질문자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환자의 가래를 더 빼주고, 간호를 많이 해주세요. 앉아서 놀면 뭐해요? 번뇌만 생기지요. 어떤 간호사가 말하기를, 윗사람이 자기를 미워해서 다른 간호사들은 환자 4명을 담당하는데 자기만 6명을 담당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저에게 환자 6명이 배정된다면 저는 기뻐하겠어요. 이왕 간호하는데 4명 도와주느니 6명 도와주는 게 더 보람되지 않을까요? 

제가 법문하는 강연장에 다른 강연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면 제가 기뻐해야지 왜 싫어하겠어요. 다른 강연장에는 30명 앉아 있고, 제 강연장에는 500명 앉아 있으면 제가 더 좋아해야지요. 이왕 하는 법문인데 1명이라도 더 듣는 게 낫잖아요. 질문자는 좀 이상하네요.(모두 웃음) 

질문자는 아침마다 ‘내 직분에 충실하자’는 마음을 내어보면 좋겠습니다. 그게 직업윤리입니다. 한국은 지금 다들 돈에 미쳐서 직업윤리라는 게 없습니다. ‘내부자들’이라는 영화 봤지요? 기자든 검사든 다 돈으로 연결되어서 직업윤리에 충실하기는커녕 부정부패를 일삼아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대학도 권력과 결탁해서 비리가 많다고 요즘 신문에 나잖습니까. 그러니 질문자는 우선 직업윤리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비록 당신보다 지위가 낮고, 당신보다 돈도 적고, 당신보다 지식이 얕지만, 나는 당신보다 정직하고, 당신보다 성실하고, 당신보다 행복하다.’ 이런 걸 인생의 지표이자 나의 아이덴티티로 삼아야 합니다. 그럴 때 윗사람들에 대해서도 비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호단체인 우리 JTS의 모토가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고, 어린 아이는 제때 배워야 합니다’ 입니다. 거기에는 ‘어차피 이 돈으로 사람을 도울 바에야 더 필요한 사람들을 돕자’는 뜻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래서 JTS는 우리나라보다는 동남아나 외국을, 동남아나 외국에서도 더 오지로 들어가서 돕고 있습니다. 그저께 저도 네팔에서 지진 피해를 입은 학교 준공식에 참석하고 왔는데요, 평소엔 카트만두에서부터 지프차를 타고 8시간 가는 거리였는데, 그날은 9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정도로 오지에 학교를 지었습니다. 왜 그렇게 먼 데까지 가서 구호활동을 하느냐고요? 카트만두에서 4시간 떨어진 곳까지는 외국 NGO가 많이 진출해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일감이 부족할 정도예요. JTS는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그 먼 곳까지 가게 된 겁니다.  

 이런 오지에 가면 경쟁자가 없습니다. 필리핀의 민다나오도 매일 무슬림 총격이 일어나고, 신인민군 총격이 일어나니까 겁이 나서 아무도 안 가는 곳인데, JTS는 거기까지 가서 학교를 40개도 넘게 지었습니다. 그런 오지는 아무도 안 가니까 우리가 가면 엄청나게 환영받습니다. 

그러니 돈을 조금만 가지고 가도 환영받는 데로 가지, 뭣 때문에 돈 많이 들이고도 별로 환영도 못 받는 데로 가겠어요? 그런 오지는 우리가 가주는 것만도 고맙다고 난리이고, 자재만 사다줘도 자기네가 다 짓겠다고 난리예요. 그러면 학교건물 같은 큰 건물은 주민들이 못 지으니까 우리가 자재비도 대주고, 기술자도 대줍니다. 그러면 마을주민들이 다 몰려나와서 힘을 보탭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 그랬거든요. 그렇게 해서 건물이 완공되면 얼마나 기뻐하는지 아세요? 자기네가 지었기 때문에 명실상부하게 자기네 학교가 생긴 거니까요. 우리가 지어주면 1년 뒤엔 다 부서집니다. 주민들이 벽돌이고 판자고 다 뜯어가거든요. (모두 웃음)

그런데 자기네가 지어놓으면 자기네 학교라고 아끼니까 우리가 따로 관리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자기네가 뼈 빠지게 학교 지어놓고 자기네 아이들을 그 학교에 안 보내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건물을 지어주면 또 동네마다 찾아다니면서 ‘아이들 학교에 보내라’하고 설득하러 다녀야 해요. 

그러니까 제 말은 ‘환영받는 데가 낫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스님은 왜 하필 그 오지로 가서 일을 하시느냐?’고 합니다. 성경을 인용하자면 이게 ‘오병이어의 기적’이에요. 예수를 따르던 수천 명이 산상에서 설교를 듣고난 후 예수께서 ‘갖고 있는 음식이 있으면 다 모아보자’ 해서 나온 게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에 불과했는데, 그걸 나누어 먹으니까 수천 명이 먹고도 남더라는 거 아닙니까. 

1달러가 방콕이나 한국에서는 별 게 아니지만 오지에 가면 아이들의 며칠 식비가 됩니다. 그게 오병이어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지요. 이왕 돈을 쓰려면 그런 데 가서 돈을 쓰는 게 낫지 않아요? 

그러니 질문자도 어차피 할 일이라면 1명 돕는 것보다는 2명 돕는 게 낫지요. 그래서 제가 불자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면 기사님한테 말씀드립니다. ‘택시운전으로 돈을 벌어서 일부러 절에 보시하려고 하지 말고, 가능하면 장애인 태워주고, 시골에서 와서 길 모르는 사람 태워주고, 짐 많은 사람 태워주고, 일행 많은 사람 태워주면 그게 보시입니다’ 라고요. 돈을 좀 적게 벌더라도 그런 게 진짜 보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택시 기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피해 다니려니까 하루 종일 일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돈 벌어서 절에 보시 안 해도 되고, 교회에 헌금 안 내도 괜찮으니까, 3명 간호할 걸 5명 간호하는 게 복을 짓는 일이고 보시가 되는 거예요. 간호사 없어도 되는 곳에 가서 빈둥빈둥 놀지 말고요. 질문자는 앞으로 더 힘든 파트에 자원해서 가세요. 그래도 안 보내주면 ‘내가 복 많이 지으려는데, 왜 나를 안 보내 주느냐?’ 라고 항의를 해야 됩니다. (청중들 박수) 

그런 마음을 내면 아무 문제도 안 됩니다. 그래야 질문자가 좋은 아기도 낳을 수 있고, 잘 키울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내야 좋은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을 확 바꾸면 일하는 게 기뻐져요. 다른 사람들이 ‘아이고, 이 바보야. 너는 왜 그렇게 어려운 데만 찾아가니?’ 라고 하면 질문자는 ‘어차피 와서 하루 종일 있을 건데, 놀면 뭐해요? 가서 일이나 하지요’ 라고 하세요. 좋은 일을 하려는 데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경쟁이 치열해져서 칼부림이 날 수 있지만, 좋은 일을 하려고 경쟁하다가 칼부림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게, 질문자가 어려운 데만 찾아가겠다고 하면 경영자는 그런 걸 얼른 허락해 줄까요?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쉬운 데로 배치해 줄까요? (청중 웃음) 인간의 심리라는 게 묘한 거예요. 질문자가 어려운 데 가고 싶다고 하는 데도 막상 경영자가 ‘아니다. 너는 어려운 데 많이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쉬운 데로 가라’ 라고 하면 질문자는 ‘감사합니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자기 일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다른 사람도 도와주고, 책도 읽고 그러면 됩니다. 

우리가 너무 편리한 것만 추구하다 보니 기상이변과 같은 자연재해를 겪는 거잖아요. 편리를 추구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지나치게’ 추구하는 게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편리를 지나치게 추구해서 운동부족이 되어 비만증에 걸리는 거예요. 동물들을 보세요. 비만증이 어디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 뛰어다니다 보면 그게 운동인데, 여러분들은 걸어갈 일도 차 타고 가면서 운동부족이라고 안 가는 자전거 타고, 제자리에서서 펄쩍펄쩍 뛰잖아요. 똑바로 살아야지요. 알겠지요?” 

“예.”

“질문자뿐만 아니라 여기 오신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야 됩니다.” (청중 웃음과 박수) 

질문자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대답하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청중들도 스님의 답변에 무척 공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했던 여성 분에게 다가가 스님의 답변을 들은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의 어떤 말씀이 이 여성 분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주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사실은 스님께 질문했던 것과 같은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그런데 스님의 답변이 가장 센세이션했어요. 정말 차원이 다른 대답이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환자 4명을 돌보는 것보다 6명을 돌보는 게 더 좋은 것 아니냐 그러셨는데, 저는 환자 4명 돌보는 것을 항상 더 좋게 생각했었거든요. 피해 의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왜 나만 이렇게 많은 환자를 돌봐야하나 항상 그랬거든요. 그런데 스님 말씀처럼 다르게 생각하면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구나 알게 된 순간 큰 감동을 받았어요. 한 번도 스님이 이야기해주신 방식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거든요. 스님 답변을 듣고 마음이 되게 가벼워졌어요. 스님, 감사합니다.” 

살다보면 힘든 일을 도맡아야 할 때가 많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오늘 스님의 답변을 상기해 본다면 질문자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연을 마친 후 스님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밤 10시 40분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밤새 6시간 동안 비행을 한 후 한국 시간으로 새벽 6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한국 귀국 후에는 곧바로 10시 30분에는 김포아트홀에서 김포 시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는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원주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소식 전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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