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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밝고 행복해지는 길

2018. 7. 22. 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 _ 충남대학교 정심화홀

어제 가을 경전반 졸업식에 이어서 오늘은 가을 불교대학 졸업식 및 수계식을 했습니다. 날씨는 더웠으나 구름이 드리우고 매미가 노래해주니 조금은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불교대학 학생들이 졸업식장에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승전고를 울리는 병사같이 감격한 표정입니다. 봉사자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줬습니다.

수계식과 졸업식은 1,2부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하느라 많이 분주했으나 대중들은 서로 가사를 챙겨주면서 기다렸습니다. 오전 10시, 타종과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 식을 시작했습니다. 유수스님의 수계식 인례에 따라 스님은 수계산림법회를 진행했습니다. 스님은 수계를 받았으니 오계를 지켜 재가수행자로서 살아가며 더욱 수행정진 하길 당부했습니다.

오후 1시에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서로 나누어 먹는 도시락은 참 꿀맛 같아 보입니다. 한편 무대 위에서는 2부 공연 연습으로 땀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안산법당의 신나는 공연과 서초법당의 노래로 2부를 열었습니다.

정토회 대표 김은숙 님은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졸업이 행복한 마음의 씨앗이 되어 경전반까지 가서 꽃을 피우길 바란다고 축사를 했습니다.

안양법당 장영애 님은 정토회를 만나지 못했으면 아직도 원망하며 살았을 텐데 지금 이대로, 행복을 느끼고 열심히 수행정진하면서 환경실천도 하고 있다고 수행담을 말했습니다.

졸업생 대표로 서대문 법당 황말옥 님이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올리고 졸업생들은 한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 노래로 1년간 이끌어주신 스승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이어 졸업장 수여식을 했습니다. 전국 144개 정토법당의 1349명이 참석했습니다. 개근상과 정근상 수여식에서는 스님이 한 명, 한 명을 모두 악수로 축하하고 격려했습니다.

이어 스님의 졸업축하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어릴 때를 돌아보면 빨리 크고 싶었지요? 중학생 언니가 교복 입고 학교 나가는 걸 보면 굉장히 부럽단 말이에요. 중고등학생이 되고 보니까 대학생이 부러워요. 시험 공부 안 해도 되잖아요.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니까 엄청나게 부러운 거예요. 그렇게 몇 년 지나 대학생이 됐어요. 대학교 다니면 ‘이게 최고다!’ 이럴까요, 취직을 한 선배들이 부럽죠. 대학 간 이유가 취직하려고 갔으니까요. 그래서 또 취직을 했어요. 그러면 이제 끝일까요? 결혼해서 애기 낳고 가정을 이룬 선배들이 부러워요. 그래서 여자친구, 남자친구도 사귀고 선도 보고 해서 가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지금 행복해요, 골치 아파요? (모두 웃음)

애 낳아서 키우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애를 낳았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 애가 엄청나게 애를 먹이죠.

그렇게 여러분들이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고, 60이 되고 지금까지 왔는데, ‘아, 이제는 살 만큼 살아봤다. 먹을 만큼 먹어봤고, 입을 만큼 입어봤고, 돈도 벌 만큼 벌어봤고, 아는 것도 배울 만큼 배워봤고, 할 짓은 다 해봤다’ 이런 사람 손들어 봐요. (손드는 사람 없음)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서 어린애들 보고 이러죠. ‘아이고, 너는 좋겠다. 근심걱정도 없고.’ 또 청소년들을 봐도 부러워요.

좋아 보여서 죽어라고 올라갔다가 자기 출발점을 되돌아보면서 거기가 더 좋아 보인다면 이건 잘못 산 거 아니에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미국 가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과 같아요. 그래서 미국 갔는데, 거기서 한 30년 살다가 보니까 한국이 더 좋아 보이고 고향에 가고 싶어 하는 것과 똑같단 말이에요. 여기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됐을 텐데요.

그래서 인생 문제가 끝이 안 난다는 거예요. 아무리 세상일을 배워도 행복하지 않아요. 재물을 구하고, 권력을 구하고, 인기를 구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가 않아요. 여러분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보다 아는 것도 훨씬 많고, 키도 커졌고, 돈도 그때보다 많이 가지고 있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옷도 그때보다 잘 입고, 먹는 것도 낫게 먹고, 다 따져보면 좋아졌어요.

그런데 여러분들 인생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보다도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렇지가 않아요. 그렇다면 불행해지기 위해서 지금까지 죽어라고 열심히 살아온 것밖에 안 되지 않아요?

이걸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해요. 인생을 거꾸로 산다는 거예요.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는 괴로움이 오히려 많아졌습니다.
이런 모순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분이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그분은 왜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됐을까요? 그분은 왕자로 태어나서 왕이 될 사람이었어요. 돈, 권력, 인기가 모두 있는 가운데 괴로웠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자기 경험적으로 알고, ‘그럼 도대체 뭐가 행복으로 가는 길일까?’라고 사색하며 많은 탐구를 하신 거예요.

집에서 그대로 생활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는데 도저히 답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왕위를 버리고 출가를 해서 6년간 온갖 고행을 해봤습니다. 그 당시엔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고행을 했기 때문에 그분도 그걸 따라 해본 거예요. 그런데 고행도 끝까지 가 봐도 답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그분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게 중도(中道)입니다. 두 가지 길 중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두 가지 길이 뭘까요? 기존 세상의 기득권자들, 즉 주류가 가는 길이 쾌락주의였어요. 새롭게 문제를 제기한 비주류가 가는 길이 고행주의였어요. 그분은 쾌락과 고행이라는 두 가지를 다 해본 거예요. 해보고 그 두 가지가 모두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해서 버리고 새로운 길, 소위 중도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 정진하셔서 깨달음을 얻으셨고, 정말 자유롭고 행복한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헤매고 있는 거예요. 좋은 잠자리에 누웠는데도 악몽을 꾸면서 막 아우성을 치는 것과 같아요.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제각기 꿈이 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뱀한테 쫓기고, 어떤 사람은 강도한테 쫓기고, 어떤 사람은 도둑맞아 울고, 어떤 사람은 싸워서 울고, 이렇게 그 꿈은 다 다르지만 다들 악몽을 꾸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깨워줘야 되겠다고 결심하셨어요. 무슨 꿈을 꾸든 깨면 다 해결이 돼요. 이게 깨달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꿈꾸는 사람들을 깨우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뭘 준 게 아니에요.

그래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통해서 무지에서 깨어나서 행복하고 자유로운 길을 가셨어요. 그 사람들을 우리는 ‘수행자’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는데, 그 ‘제자’라는 의미가 수행자예요. 괴로워하던 사람들이 부처님과 대화를 하다가 깨우치는 과정을 기록해 놓은 게 경전입니다.

그래서 수행으로 가는 사람들은 첫 번째, 스스로 처음으로 깨달은 붓다와 또 우리에게 이 길을 안내해주신 붓다를 존중하고, 존경하고, 그분께 귀의합니다. 이게 귀의불(歸依佛)이에요. 두 번째는 우리를 깨우치는 그 진리의 길, 그분의 말씀에 귀의합니다. 이게 귀의법(歸依法)이에요. 또 그 가르침을 따라서 자유와 행복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들이 수행자들이에요. 이 수행자들의 공동체에 나도 참여하겠다, 귀의하겠다, 이게 귀의승(歸依僧)이에요. 그러니까 수행의 길을 가는 사람은 무슨 신을 믿는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게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거예요.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다음에 그 길을 가려면 맨 먼저 최소한의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이게 오계(五戒)예요. 조금 더 나아가면 팔계를 받고, 조금 더 나아가면 출가 수행자는 이백오십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출발이 첫째, 계라는 말이에요.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선정을 닦습니다. 그래서 지혜를 증득하지요. 그래서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닦는다’라고 해요.

이렇듯 수행자라고 하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첫째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사람이고, 두 번째가 계정혜 삼학을 닦는 사람이에요. 이게 수행자의 의미입니다.

계정혜 삼학을 닦는 것 중에 오늘 여러분들은 첫 번째인 계율을 받았어요. 그것을 지켜서 그런 관점에서 인생을 살아가면 여러분들의 삶이 훨씬 행복해집니다. 과거의 내 삶은 지금 좋다고 막 했더니 나중에 나쁜 결과가 와서 고통의 윤회를 만들었고, 남을 위해서 헌신했더니 내가 괴롭고, 내 이익을 추구했더니 나중에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어요. 내 딴에는 늘 잘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지금처럼 됐어요. 내가 게으르고 못되게 굴어서 그렇다면 몰라도, 내 딴에는 착하고 바르게 남을 위해서 산답시고 평생을 부지런히 살았는데 결과가 이러니까 우리가 다 억울한 거예요. 그런데 그걸 다 살펴보면 이렇게 어리석어서, 몰라서 제가 제 발등을 찍듯이 인생을 살아온 거예요. 이 무지를 깨우치게 되면 여러분들의 인생이 훨씬 더 밝아지고 가벼워지고 행복해집니다.

이걸 공부하는 게 정토불교대학입니다. 여러분들이 들어와서 1년간 공부를 했는데 과연 좋아졌는지 물어봤는데 좋아진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다행이에요. 여기는 지식을 배우는 데도 아니고, 부처님한테 ‘사업 잘 되게 해주세요’, ‘죽어서 극락 가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데도 아닙니다. 여기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자신의 삶을 좀 더 아름답게 가꿔가는 곳이에요. 그런 학교를 1년 다닌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야말로 공부 중의 산 공부, 최고의 공부예요. 이거야말로 대학(大學)이라고 이름 붙일 만합니다. 지금 대학이라고 하는 대학들은 대학이 아니라 소학이에요. 돈 버는 학교잖아요. 이거는 진짜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학교예요.

그런데 우리가 입학해서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50퍼센트가 떨어졌어요. 그중에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진 사람도 있겠지만 제가 볼 때는 돈 버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되니까 떨어져나간 거예요. (모두 웃음) 안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을 더 잘 버는 공부였으면 이렇게 떨어졌을까요? 안 떨어졌어요. 여기 다니면 출세한다 했으면 안 떨어졌을 거예요. 여기까지 와서 ‘이거 다니면 돈이 더 잘 벌리나? 이거 다니면 시험에 합격하나?’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뭐 해봐야 그런 거하고 별로 상관이 없으니까, 지금 돈 버는 게 더 급하니까, 출세가 더 급하니까 결국은 다니다가 그만두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한 번 자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서 ‘아, 이런 방식으로 산다고 인생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걸 알아야 해요. 그런 걸 먼저 자각하고 불교대학에 입학한 사람들은 새로운 길, 새로운 걸 발견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런 고뇌 없이 그냥 ‘아, 돈이 좀 더 잘 벌릴까? 여기 다니면 뭐 좀 더 잘 될까?’ 이래서 온 사람은 다니다가 재미가 없어져요. 일반 절에서는 ‘여기 와서 기도하면 복 받는다, 죽어서 좋은 곳 간다’ 이러니까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뭐가 있을 거라는 기대라도 갖고 하는데, 여기는 그런 얘기 안 하잖아요. 극락 간다는 소리도 안 하고, 다음 생에 예쁜 여자로 태어난다는 소리도 안 해요. 우리는 그런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지금 내가 더 자유롭고 행복해지느냐, 그리고 지금 내가 한 일이 미래의 자산이 되도록 살아가느냐에 초점을 둡니다. 지금 하는 게 오히려 미래의 고통이 되는 삶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삶에 후회가 없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좋아서 했는데 미래에 손실이 생기니까 후회를 하잖아요. ‘아, 그때 결혼 안 할 걸’, ‘그때 그 사람하고 할 걸’ 이런 식으로 계속 후회해요.

여러분들이 지금 배운 교과 과정을 정리해보면 제일 첫 번째로 배운 게 실천적 불교 사상이었습니다. 실천적 불교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뭘까요? 우리가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것은 뭘 더 얻어서가 아니에요. 지금 못 얻어서 괴롭고 더 얻으면 행복할 거라는 게 이 세상의 가르침이에요. 내 힘으로 안 되면 하나님이며 부처님한테 부탁해서 뭘 얻어서 해결하려는 게 종교예요. 그런데 수행은 그런 길이 아니에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참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몽을 꾸는 사람이 강도로부터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서 고난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잠에서 깸으로써, 즉 꿈에서 깸으로써 벗어나는 거예요. 관점이 이런 거예요. 이 깨달음을 통해서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거예요.

일반 절에서도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불교가 종교화됐기 때문이에요. 원래는 수행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화됐어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들이 하도 돈을 좋아하고 출세를 좋아하니까 수행으로는 장사가 안 돼서 결국은 다 ‘부처님 믿으면 돈도 많이 벌고, 부처님 믿으면 내생에 좋은 데 간다’ 이런 식으로 바뀌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게 지금은 왜 가능할까요? 아까 말씀드렸듯 부처님은 먹고 입고 자는 데 걱정 없는 삶에서 인생의 고뇌를 문제 삼았기 때문에 이 길을 찾았어요. 그런데 북한 주민들처럼 한 끼 먹는 게 늘 어려워서 자기 평생의 소원이 소고기국밥에 흰 쌀밥 먹는 것이면 어떨까요? 늘 입는 옷이 없어서 헐벗고 살기에 죽기 전에 비단옷 한 번 입어보는 게 꿈인 사람, 집도 없어서 늘 다리 밑에 살면서 기와집에 한 번 살아보는 게 꿈인 사람은 어떨까요? 이렇게 생존에 헐떡거리는 사람은 그 처지가 복을 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먹는 것도 옛날 왕보다 더 잘 먹고, 입는 옷도 옛날 왕들이 입던 비단옷보다 나아요. 우리가 사는 집도 기와집보다 나은 아파트잖아요. 옛날에 왕이 탔던 마차보다 요즘 기차가 낫고요. 지금 우리 삶이 이렇게 좋아졌는데도 우리가 괴롭다고 한다면 우리의 처지가 고타마 싯다르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질 때가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지금의 시대적 요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뇌에 가장 합당한 가르침이 될 수가 있습니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대구법당 졸업생들이 준비한 댄스공연은 신명나고 오후의 나른함을 날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불교대학을 위해 1년간 봉사한 담당자들을 격려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누구보다 학생들의 응원이 많았습니다. 이 학생들도 다시 담당이 되어 이 자리에 서길 바래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신명옥, 김광섭, 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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