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울산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행복한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마친 스님은 오후에 농사일을 하다가 저녁 무렵이 되자 다시 강연을 하기 위해 창원 늘푸른전당으로 향했습니다.

늘푸른전당은 창원시민과 청소년들에게 푸르른 쉼터가 되어주는 곳입니다. 며칠째 흐리고 쌀쌀하던 날씨가 오후가 되니 해가 화사하게 비춰줍니다. 한결 따뜻해진 날씨 덕분에 생활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행복하면 살기가 더 편안해지겠지요.

강연이 시작되기 3시간 전부터 봉사자들은 5개의 코너를 꾸미느라 분주하면서도 깔깔 호호 즐거운 모습입니다. 특히 ‘한반도 평화협정 백악관 청원 서명운동’ 코너가 눈에 들어옵니다.

5시가 조금 넘어서자 일찌감치 한두 분씩 오시더니 접수 코너가 바빠집니다. 포토존에서 “김치” 하며 사진 찍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서명하는 분, 책을 사는 분, 질문지를 작성하는 분도 보입니다. 일찍 자리에 앉은 분들은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보며 기다립니다. 어느새 650여 석의 객석도 꽉 차 활기가 넘칩니다.

스님 소개 영상이 끝나자 무대의 조명이 켜졌습니다. 법륜스님의 등장에 청중들은 큰 박수로 맞이합니다.

스님은 “따뜻한 봄날은 농사짓는 게 제일 좋다”라고 하시면서,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다가오는 이때에, 위험이 있다면 막는 쪽으로, 기회가 있다면 살리는 쪽으로 가야한다”라는 말씀으로 대화의 문을 여셨습니다. 마음에 봄이 오려면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행복할 권리를 행사해야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오늘은 총 여덟 분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큰아이가 대학을 다니다가 공황장애가 왔는데 부모인 내가 그동안 몰랐다는 죄책감이 들어서 마음이 힘들다는 분, 4년 째 방에서 나오지 않는 딸 때문에 울먹이는 분, 주임을 맡아 중간 자리에 앉아 위아래로 치이신다는 분, 선택을 하면 후회가 많고 현재에 만족을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지혜를 가질 수 있을지 묻는 분, 5살 아들이 내 까르마를 닮았을까봐 걱정이라는 분, 고2 아이가 현실의 자기와 생각 속의 자기가 차이가 커서 너무 힘들다며 5일간 학교를 나가지 않아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무엇을 선택할 때 빨리 고르지 못해서 고민이라는 초등 6학년 여자 어린이, 팽이치기를 하는데 친구들이 안 시켜줘서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라 힘들다는 초등 4학년 남자 어린이 등, 다양한 연령대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 중간관리자로서 어려움을 토한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다른 팀원들보다 어린 나이에 주임 직책을 맡아서 지난 3년 동안 싫은 소리 한 마디 못 하였습니다. 화 한 번 시원하게 내지 못하고, 결국 스트레스로 주임 직책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중간관리자는 원래 욕먹는 자리인가요? 제 경험으로는 위에서도 뭐라고 하고, 아래서도 계속 뭐라고 하는 총알받이 자리 같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하고 욕을 감내하기만 했었습니다. 제 아래 세 명의 조장이 있었는데, 한 명은 열심히 일하였지만 나머지 둘은 저를 너무 힘들게 하였습니다. 늘 이런 저런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고, 앉으면 회사 욕을 하거나 제 욕을 해서 팀 내 분위기를 흐리곤 했습니다.

제가 만약 다시 주임이 된다면 과감히 조장을 바꾸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든 다독여서 같이 가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용서하라지만, 그리고 그게 저를 위한 것임을 알지만 그 순간 생겨나는 미움과 섭섭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요?” (모두웃음과 박수)

“네, 질문자는 보통 수준의 사람이네요. 특별히 부족한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닌 것 같네요. 그러면 앞으로 그저 평사원으로 지내는 수밖에 없어요. (모두 웃음) 그냥 평생 평사원으로 지내면 돼요. 평사원으로 있으면서 질문자도 늘 불평하며 생활 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야당은 비판만 하면 되잖아요. 국가 경영에 있어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니까, 국정운영에 대한 걱정 없이 그저 정부 여당이 잘못하면 그것에 대한 비판만 하면 돼요. 그래서 야당은 하기 쉬운 면도 있습니다. 반면 여당은 국정 운영이 잘못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권한이 많이 주어진 만큼 어려움이 따릅니다.

질문자도 지금 이야기하는 수준에서는 평사원만 하면 되겠어요. (모두 웃음) 회사에서 아무리 승진시켜준다고 해도 ‘아닙니다, 저는 밑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른 분을 승진시켜 주십시오. 저는 승진시켜주지 않아도 열심히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위에서도 겸손하다며 좋아할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러니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평사원만 하면 되는데, 그래도 질문자가 언젠가 관리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처럼 생각해서는 관리자의 역할을 해내기가 힘들어요. 자기에게 관리자를 시킬 때는 자기가 잘나서 관리자로 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의 역할을 하라고 주는 거예요. 평사원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되지만, 중간관리자는 업무 관리와 함께 사람관리도 해야 합니다.

평사원은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 처리만 하면 되지만 관리자가 되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어 준 일이 마무리가 되면 다시 통합하는 역할까지 해야 해요. 일을 나누어주지 못하고 혼자서 다 맡아서 한다면 그것 역시도 평사원 수준의 역할밖에 못하는 거예요. 혼자서 열심히 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재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들을 놀게 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일을 나누어 주지 못하면 관리의 능력이 부족한 거예요. 동시에 일이 마무리가 되면 그것을 통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 통합의 단계에서는 책임도 질줄 알아야 해요.

평사원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만 지면되지만, 중간관리자는 만약 다섯 명에게 일을 나누어주고 통합했는데 그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다른 사람이한 일에 대한 책임까지 함께 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하라고 평사원보다 월급을 더 주는 거예요. (모두 웃음)



사람 관리에 있어서도 평사원은 마음에 안 들거나 부당하다 싶으면 불평을 해도 돼요. 자기 밑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저 위만 쳐다보고 불평만 하면 되는 거예요. (모두 웃음) 그런데 중간관리자는 밑에서 올라오는 불평, 불만도 들어주어야 하고, 아랫사람들을 관리 못했다고 내려오는 윗사람들의 압박도 견뎌내야 해요. 중간관리자에게는 늘 위, 아래서 압박이 같이 옵니다. 그런데 이 단계를 거쳐야 회사에서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어요. 그 단계에서는 불만을제기하는 아랫사람만 있을 뿐 더 이상 압박을 주는 윗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중간관리자 단계를 거쳐야만 최고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며느리입장일 때에는 시어머니 역할이 참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시어머니 입장이 되어보면 안 그래요. 윗사람을 모시는 게 쉬울까요,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게 쉬울까요? 아랫사람의 입장일 때는 윗사람이 되어서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게 쉬워 보이지만 막상 아랫사람을 거느려보면 그게 더 어렵습니다.

질문한 내용을 보면 지금 수준에서는 그냥 평생 평사원 하면서 지내면 되고 (모두 웃음) 그런데 자기가 승진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따르는 권리와 책임을 감내해야 합니다.”

“네.”

“아랫사람이 자기에게 불평, 불만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해요. 또 그들이 잘못하는 것은 중간관리자로서 책임져주어야 합니다. 그런 불평을 들어내라고 월급도 더 주고, 그런 책임을 지라고 그만큼의 지위를 주는 거예요. 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중간관리자로서의 어려움도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 자리가 승진의 길인 거예요. 쉬우면 누구나 하려고 하고 또 아무나 시켜도 되잖아요.

자기에게 주어진 일과 사람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승진의 기회도 주어집니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둘 수 있어야 특별 승진도 하지, 그렇지 않으면 늘 나이 서열대로만 승진 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질문자가 퇴직할 때나 되어야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 웃음)”

“네.”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둘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자기보다 젊은 사람을 윗사람으로 둘 수도 있어야 해요. 가끔 회장이나 사장 아들이 임원으로 회사에 올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나이도 어린 게 뭘 알겠어?’하는 태도로 대하면 안 돼요.

직위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회사 내에서의 위치일 뿐입니다. 사장이든 부장이든 그 역할을 맡은 것뿐이에요. 그러니 회사에서 역할을 맡을 때만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거나 사석에서는, 선배는 선배로서 대우하고 후배는 후배로서 존중해주고, 모두를 친구로 대해야 해요. 거기에 가서도 회사에서처럼 사장 역할을 하거나 부장 역할을 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회사를 관두면 주변에 친구 한 명 안 남아요.

부장이나 사장은 주어진 역할이에요. 대신 주어진 역할이니까 그 역할을 또 해내야 해요. 나이가 어리다고 ‘나는 저 사람보다 어리니까 지시를 못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직책에 맞는 역할을 해낼 수 없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직책이 그런 역할이니까 상대방이 나이가 많든 적든 경험이 많든 적든 필요한 지시는 해야 하는 거예요.”

“네, 말씀을 듣고 보니 제게 그런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모두 웃음)

“평사원만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여러모로 쉬워요. 회사가 승진을 시켜줘도 다른 사람부터 승진시켜달라고 하면 그들과 경쟁을 안 해도 되니까 우선 편해요. 그런데 회사라는 곳이 내가 승진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 승진을 시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마지못해 승진하는 거예요. 또 마지못해 하는 거니까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게 아니어서 좋아요.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질문자는 딱 평사원 체질인 것 같은데 (모두 웃음) 평생 평사원을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앞으로 평사원만 시켜줘도 고맙고, 가끔 승진을 시켜주면 사양을 했다가 억지로 시키면 또 기꺼이 해볼 수 있어서 좋아요. 평생 평사원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관리자를 해보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평사원으로 내려오면 되잖아요? 그러니 두려워 할 것도 없어요. (모두 웃음)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면 겁이 나지만, 마음을 이렇게 먹으면 중간관리자역할이 주어질 때 과감하게 한 번 해볼 수 있어요. 또 밑에서 일하다보면 중간관리자가 되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다는 나름의 아이디어가 생기잖아요? 그런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시행해보고 잘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또 평사원으로 내려오면 돼요. 이렇게 생각하면 겁날 게 뭐가 있겠어요?”

“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그간 스트레스가 풀려나간 듯 질문자는 밝게 대답했습니다. 9시가 되자 스님은 강연장 사정으로 예정된 시간에 맞춰 끝내야 하기 때문에 답변을 다 못해줘서 남은 질문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믿을 자유는 있지만 타인에게 믿음을 강요할 자유는 없습니다. 다민족 다문화 다양성을 인정하며 배타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고를 하면 좋겠습니다. 미래 사회는 지식과 기술보다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질문자를 배려하여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주시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질문을 하신 분께 찾아가 소감을 들어보았습니다.

“정확히 집어주는 단어에 쇼크를 받았으나 앞 사람의 비슷한 질문에서도 답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고, 오기 전 나의 생각과 같은 답을 얻었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저럴까 고민이 심했는데 다른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느낍니다.”

또한, 귀여운 초등학생 질문자들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천진난만하게 좋아했습니다.

강연이 끝난 후 스님은 책 사인회를 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바라봐주었습니다.

60여 명의 봉사자들은 스님과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스승의 날을 맞아 꽃다발을 드리고 <스승의 은혜>를 함께 불렀습니다. 스님은 노래를 듣는 동안 봉사자들을 둘러보면서 밝은 웃음으로 화답해주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는 스님의 모습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부처님 법 따라 스님 설법 따라 자유로워지는 이 길을 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법륜스님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다음 날, 스님은 평화재단 운영위원들과 평화재단의 방향에 대한 회의를 하였습니다.

먼저,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 관해 폭 넓은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6월 12일 싱가포르로 정해졌는데 북한과 미국이 서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제 3국을 선택한 것 같다.”
“체제보장은 해주고 싶다고 보장이 되는 게 아니다. 체제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신뢰 관계가 형성될 때까지 비핵화를 할 수 있도록 시간보장이 필요하다.”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제시해야 협상이 가능하다. 비핵화, 평화협정의 과정이 복잡하고 ‘디테일의 악마’가 도사리고 있지만 포괄적으로 일괄 타결하고 3단계 정도로 나누어 실행하면 될 것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갔습니다. 또 이러한 새로운 국면에서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부서별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도 논의하였습니다.

첫째, 평화연구원에서는 동아시아에서 냉전구도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동아시아 신 안보질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를 중점으로 연구하고,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포럼이나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마련해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북미회담이 마무리되면 각 사업을 정부의 담당부서가 나눠서 진행할 것이고 대기업들도 북한개발의 리스크가 없어진다면 투자 준비를 할 것이며 중소기업도 북한 진출을 도모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까지 이런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된 내용이 없다.” 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둘째, 평화교육원에서는 이런 일을 실무적으로 담당해나갈 중간급 인사들을 교육시키는 아카데미를 개설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셋째, 평화운동본부에서는 남북이 평화롭게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이런 큰 흐름이 되돌아가지 않도록 어려운 국면에서도 시민들이 희망과 열정으로 힘을 모아갈 수 있도록 방향성과 의미를 북돋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오늘 논의된 것을 토대로 각 부서별로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내일은 통일특위 활동가들과 함께 리더십 연수 특강을 대전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조태준, 안영주, 권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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