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 끝에 맞이하는 강연 날, 푸름이 날로 짙어지는 봄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온 고등학생부터 반백의 어른들까지 삼삼오오 성남시청 온누리홀로 모였습니다. 모두 표정이 밝고 가볍습니다. 강연이 시작하기 전, 사전 영상을 따라서 낯선 옆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니 강연장에 모인 관객이 한마음이 됩니다. 좌석 수가 600석인데 사람이 가득 차서 좌석이 모자랐습니다. 총 합해서 700여 명이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사회자의 소개로 관중의 힘찬 박수와 함께 스님이 등장했습니다. 스님은 “잘 지내시죠?” 인사를 하고 옛말에 ‘계절은 봄인데 마음에 봄이 오지 않으면 봄은 왔으되 봄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며 오늘 마음에 봄이 오는 대화를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특히 가족관계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자녀와의 소통이 힘든 어머니, 부모님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딸, 어릴 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시댁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심하게 떨어 고민인 40대 여성, 남편의 10년 외도를 뒤늦게 알고 난 후 이혼을 고민인 60대 여성의 질문, 14년 간 해온 직장생활의 어려움, 용서와 중도를 실천하면서 겪는 혼란, 입시 경쟁 속에서의 선택에 대한 고민 등 11명의 관객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중, 오늘은 두 개의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휴직 후 다시 복직하려니 두려움이 생긴다는 직장인의 고민입니다.

“저는 회사를 14년 정도 다니다가 업무가 갑자기 바뀌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어 6개월 정도 휴직을 하고 다음 주에 다시 복직할 예정입니다. 휴직 기간 동안 다른 일도 좀 경험해보고 싶어서 동네 어르신에게 목공 일을 배웠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막노동 일이라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회사에 다녀야겠다, 회사가 더 낫겠다’ 싶어서 다음 주에 복직을 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막상 복직을 하려니까 또 어렵고 힘들어지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까봐 걱정입니다. 요즘 너무 불안해서 아침 5시에 일어나서 108배도 하고 명상도 하지만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이 계속 생깁니다. 제가 어떤 마음을 갖고 복직을 해야 할지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왜 휴직했습니까?”

“14년 정도 다녔는데 업무가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좀 개인적인 업무를 했는데 아예 다른 업무를 맡아서 여러 사람들과 단체 생활을 하게 되었거든요.”

“지금 업무가 어려운 거예요, 단체 생활이 어려운 거예요?”

“단체 생활이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단체 생활이 어려우면 단체 생활을 하지 않는 업무는 할 수 없었습니까?”

“제가 선택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지금 들어가도 또 단체 생활을 해야 돼요?”

“예, 맞습니다.”

“군대는 다녀오셨습니까?”

“예.”

“군대에서는 단체 생활을 어떻게 했어요?”

“그때는 그냥 악으로 깡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질문자 웃음)

“이번에도 악으로 깡으로 해보세요.” (모두 웃음)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자꾸만 마음이.......”

“회사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군대보다는 덜하지 않을까요? 회사가 군대보다 심할까요?”

“군대보다는 덜하지만.......” (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군대는 더 심하게 대하는데도 버텼잖아요. 회사는 월급도 많이 주는데 왜 못 버텨요? 지금처럼 너무 노는 데 위주로 기준을 잡으면 힘들죠.

질문자처럼 단체 생활이 힘들어서 휴직한 경우는, 휴직을 하자마자 정토회 백일 출가에 들어와야 해요. 백일 출가 프로그램은 군대보다 조금 더 세요. (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군대는 6시에 일어나지만 백일출가는 새벽 4시에 일어나거든요. 4시에 일어나서 아침에 108배하고 한 시간 정진하고, 그 다음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 먹고 하루에 300배씩 절해야 하고,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해야 해요. 그리고 100일 동안 자신이 먹을 비용 100만원은 들고 들어와야 해요.

백일 출가 기간이 끝나면 노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다 취직을 합니다. 그 이유를 종교적으로는 ‘아, 부처님께 기도를 했으니까 부처님의 가피로 일자리를 찾았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돈을 내고 온갖 허드렛일을 했기 때문에 밖에 가서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거예요. (모두 웃음) 어떤 일을 해도 이보다 더 심한 일은 없어요.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일하는 직장이 우리나라에 어디 있어요?

거기다가 단체 생활이에요. 30명씩 한 방에서 자고 일어나요. 30명씩 자면 잠자리가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런 생각은 실제 생활을 안 해봐서 하는 거예요. 30명이 아니라 50명이라도 눈을 감았다 하면 벌써 뜰 시간이에요. (모두 웃음) 그러니까 인원수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눈을 감으면 벌써 뜰 시간이 되니까요. 이렇기 때문에 밖에 가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질문자가 오히려 이런 일을 했으면 복직하는 게 굉장히 쉬웠을 겁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놀지 않고 목수일이나 막노동을 좀 했다는 거예요. 그건 잘 했어요. 그냥 놀았으면 복직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이걸 했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항상 ‘그래도 막노동보다는 낫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일용직 막노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것도 못 구하는 사람은 더 많아요. 그러니까 항상 일을 하면서 ‘아이고, 월급도 많고 이게 힘이 덜 든다’라고 생각하세요. 관점을 거기에 딱 잡으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요.”

“감사합니다, 스님.” (질문자 웃음, 모두 박수)

“다음에 또 못 견뎌서 휴직을 하게 되면 딱 100일만 휴직하고 백일 출가를 하세요. 그러면 직장 생활은 죽을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모두 웃음)

저는 지금 세계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전부 할인 비행기 표를 끊어서 중간에 몇 번씩 갈아타고 공항에서 12시간씩 기다려요. 그런데도 힘이 안 드는 이유는 현지에 가면 더 형편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제가 필리핀 민다나오나 인도, 아프가니스탄을 가면 늘 산을 걸어다녀야 해요. 학교를 짓는 곳에 방문하려 해도 두세 시간씩 걸어가야 해요. 한참 걷다가 지나가던 트럭 한 대가 뒤꽁무니에 태워주면 그 털털거리는 트럭 뒤에 타고도 기분이 참 좋아요. 트럭 뒤에 먼지 맡으면서 가도 좋은데 일반 승용차나 봉고차를 타면 더 좋겠죠. 그런 비포장도로에서 가도 좋은데 한국 같은 이런 평평한 도로에서 봉고차를 타면 더 좋고요.

그래서 제가 오늘만 해도 여기 강연 끝난 뒤 또 경주, 울산까지 밤새 내려가야 하는데 아무 불평이 없어요. 이 좋은 도로에 이 좋은 차를 타고 가는데 무슨 불평이 있겠어요?

그런데 비행기 타면 더 좋잖아요. 거기에다가 비행기 타면 밥도 줘요. (모두 웃음) 오지에 가서 생활하는 데 비하면 비행기 밥은 특식이에요. 공항에서 자면 화장실도 있고요. 더운물, 찬물도 잘 나와요. 냉난방도 잘 되고요. 그러니 무슨 불평이 있겠어요?

제가 강의를 하고 강사료를 안 받는 이유도 그래요. 만약 일반 회사에서 저를 초청해서 이런 강의를 한다면 적어도 이백만원은 줄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스님이 1년에 강의를 100번 한다면 강사료만 해도 몇 억 벌겠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저는 강사료를 받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과잉 계산된 것이니까요.

어제, 그제도 제가 심어놓은 상추를 채취한다고 하루종일 일했어요. 그걸 다 한 잎 한 잎씩 따고 다듬고 물에 씻어서 네 박스를 마련하기까지 7시간을 꼬박 일했어요. ‘이걸 시장에 팔면 5만원 될까?’ 물으니 5만원 어치밖에 안 된대요. 그러니 농민들의 노동이 얼마나 저평가되는지를 알 수 있죠. 반면 제가 강의하는 게 얼마나 고평가되는지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그렇게 저평가되는 농사일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을 벌 수가 없고, 고평가되는 일은 놀아도 돈을 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차별은 개선이 돼야 해요.

그런 저평가되는 농사일을 안 하고 살면 저도 모르게 붕붕 떠서 살 거예요. 그러나 저의 일상을 저평가 되는 곳에 두고 살기 때문에 마음이 붕붕 뜨지 않는 거예요. 질문자도 막노동을 해봤기 때문에 직장에 복직해도 불편이 적을 수 있어요.”

“복직해서도 목공일은 계속 배울 생각입니다.”

“좋아요. 그래서 나중에 목공일해서 먹고만 살 수 있게 되면 그냥 그 단체 생활 하지 마세요. 목공은 자기 혼자 해도 되잖아요. (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그렇게 하면 좋죠.”

“스님 말씀 들으니까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마지막으로 당찬 고등학생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청년세대가 앞으로 어떤 삶의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야하는지, 스님이 되신걸 후회하지 않는지, 자신의 신념대로 사는데 주변의 비난을 어떻게 감수하는지에 대한 3가지 질문에 스님은 자상하게 대답해주었습니다.

“저와 같은 나이인 고등학교 1학년 때 출가하셔서 스님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님이 되신 길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 때까지 스님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고등학교 다니다가 옆에 절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 계신 스님한테 붙들려서 반 강제적으로 스님이 됐어요. (모두 웃음)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아인슈타인을 능가하는 물리학자나 천문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고 공부도 제법 했는데 결국 과학과는 정반대되는 종교의 길을 온 거예요. 저는 종교를 믿는 것도 싫어했어요. 종교란 게 너무 허황된 소리를 하잖아요. 처녀가 애를 낳았다든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걸었다든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그런 얘기를 하니까요. (모두 웃음)



그런데 이제 이 길을 온지 거의 50년이 됐어요. 올해로 딱 49년이 됐는데, 이것도 오래 하니까 할 만하네요. (질문자 웃음, 모두 웃음) 젊을 때는 조금 회의적인 때도 있었지만 오래 하니까 할 만해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좋아서 결혼하고, 자신이 좋아서 애 낳고, 자신이 선택하고도 지금 못 살겠다고 하지만, 저는 전혀 제가 원하지 않은 길인데도 지금 만족하고 살아요. 지금 누가 ‘그때로 돌아가서 다른 거 해볼래요?’라고 해도 별로 다른 걸 하고 싶지 않아요. 지나놓고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승려는 늙을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늙을수록 가치가 있는 게 두 가지인데 바로 호박하고 스님이에요. (모두 웃음) 호박은 늙어야 맛이 있고 승려도 늙어야 말에 힘이 실려요. 젊을 때는 이게 힘든 일이지만 늙으면 달라요. 제가 올해 66세인데, 30대부터 이런 얘기를 했지만 그때는 사람이 5명도 안 모였어요. ‘젊은 게 뭘 아느냐?’라고들 했거든요. 그때는 주로 중,고등학생과 청년들만 제 말을 듣지, 어르신들은 안 들었어요. 40대에 가면서 이제 일반인들이 조금 듣기 시작했고요.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와서 듣잖아요.

제가 안 죽고 앞으로 10년 뒤까지 산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가치가 더 있을 거예요. 머리가 하얗고 수염이 하얗수록 제 말이 더 믿음이 가거든요. (모두 웃음) 이건 제 말 내용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순전히 나이 때문에 오는 거예요. 옛날에는 댓글도 ‘네가 뭘 아냐?’, ‘해보지도 않고 책만 보고 하는 소리다’ 이런 얘기 많이 들었어요. ‘결혼해봤냐? 애 낳아봤냐?’ 이런 소리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이제 60세가 넘어가고 70세가 다 돼가니까 요즘엔 그런 반론은 굉장히 적어요. 제가 80세가 돼버리면 이런 반론은 싹 없어질 거예요. 제가 말하면 무조건 다 맞는 줄 알아요. (모두 웃음) 이건 순전히 나이 덕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늙을수록 좋지, 늙는 거를 두려워하진 않아요. 남들이 나이를 실제보다 올려서 본 적은 있어도 낮춰 본 적은 없어요. (스님 웃음, 모두 웃음)

질문자가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요. 다만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학교 그만둬도 괜찮아요. 그런데 자신이 과연 책임을 지겠느냐,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생각해봐야 해요. 예를 들어 이혼하는 건 자유지만 제가 볼 때, 약간 후회할 것 같은 사람한테는 제가 얘기를 하거든요. 질문자도 지금 학교를 그만두거나 다른 걸 선택하면 지금은 괜찮을 것 같지만 지나놓고 보면 후회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대학은 안 가더라도 고등학교까지는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요? ‘내가 뭘 하든지, 가령 농사를 짓더라도 기본상식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학교생활에 우선 충실하면 어떨까 싶어요.”

마지막 여고생의 질문에 덧붙여 학교 교육과 자녀 교육에 대한 마무리 말씀에 관객들이 다시 숙연해집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는 질문자가 문제아 같아요? 저는 아주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 시간을 많이 써서 얘기를 했습니다.

미래 사회에는 조금 더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지식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과는 달라요. 제가 어릴 때 주산, 암산을 잘 했어요. 초등학교 때 이걸 잘 하면 굉장히 똑똑한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런 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지금은 전자계산기를 누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우리가 엄청난 지식을 쌓았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비효율적이에요. 마치 조선시대 말기에 서당에 가서 과거시험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런 교육은 지금 효율성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밖에 교육받은 경험이 없으니까 자식들을 다 그렇게 교육시켜요.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창의성이 제일 중요합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창의력과 해결능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럴려면 사고가 자유로워야 해요. 정답이 있다고 자꾸 주장하면 안 돼요. O, X로 가면 안 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가 얘기하면 ‘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 그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네’, ‘어, 그건 나도 생각 못해본 건데’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해요. 지적할 때는 본인이 한 말에서 앞과 뒤의 모순을 지적해줘야 하고요. 제가 여러분과 대화할 때 주로 여러분들이 직접 한 말의 앞뒤가 모순인 걸 지적하잖아요. 그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창의력을 키우는 게 매우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아직 나온 건 아니에요.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 어떻게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는 식의 교육은 앞으로 점점 효율이 떨어집니다. 여러분들도 짐작하겠지만 일류대학이니 뭐니 하는 게 앞으로 10년, 20년, 30년 지나도 남기는 남겠지만 무척 약해질 거예요. 그건 인정해요?”

“예.”

“왜 여러분들은 공부만 잘하면 문과는 무조건 법대 가서 변호사 되라고 하고 이과는 무조건 의사 되라고 해요? 의사는 어릴 때부터 아픈 사람을 보면 안쓰러워하면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물이라도 떠다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공부만 잘 하면 의사 되라고 해요. 돈 많이 번다고요. 돈 벌기 위해서 의사가 되기 때문에 지금 문제입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성형외과로 주로 가버리고, 또 여러 가지 과잉 진료를 해요. 그러니까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지켜질 수 없는 거예요. 부모가 돈 많이 번다고 애를 의과대학에 보내니까 지금 이런 사회적 부작용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저런 학생들의 얘기도 귀담아 들어야 돼요. 또 부모는 저런 자식을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 나름대로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 부모 말을 안 들으면 ‘아이고, 우리 아이는 큰 인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스무 살이 넘어도 부모 말에 고분고분하면 사실은 인생에 별로 전망이 없습니다. (모두 웃음) 내 말 잘 듣는 걸 좋게 여기는 건 어릴 때 하는 거예요. 성인은 자기 나름대로 결정하고 판단하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따뜻하게 보살피고, 커서는 자립하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사랑이에요. 어느 대학에 보내느냐, 유학을 보내느냐 하는 게 부모의 사랑이 아닙니다. 뭘 하든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심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사랑이에요. 이 점을 여러분들이 꼭 다시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박수)

11가지 질문과 답변을 오가며 묵직하게 다가오는 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스님의 “인생 거꾸로 살지 말아라!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씀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습니다. 삶의 관점을 바로 세우고 이 생각 저 생각하기보다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저기 자리를 떠나기 아쉬워하는 관객들, 밝은 미소와 함께 물 흐르듯 온누리홀을 나서는 관객들, 두 시간 동안 강연한 스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관객들, 로비에서 스님의 책 사인회에 줄을 서고 강연의 감동을 이야기하는 관객들 등,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한 장의 행복한 사진이 됩니다.

스님께 많은 질문을 한 여고생은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신념을 가지고 살아라.”라는 스님의 말씀에 감명을 받았다며 어머니와 함께 강연장을 떠났습니다. 또 스님 책 사인회 줄에 서 있는 아주머니는 “아는 분의 권유에 못 이겨 강연회에 왔는데 귀한 말씀을 많이 듣고 가서 너무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다. 봉사자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회는 무엇보다 봉사자들의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스님과 단체사진을 찍을 때 웃음 바이러스가 퍼진 듯 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준 강연회였습니다.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모두 공감하며 하나가 된다면 말입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윤여정
사진
권류경
녹취_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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