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부터 계속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스님은 비옷을 입고 코스모스 꽃 모종을 동네 길가에 옮겨 심었습니다. “비 오는 날 심으면 코스모스가 잘 산다” 하시며 비를 맞으며 심었습니다.

오후에 비가 그치자, 스님은 문수팀 행자들과 뒷산에 올랐습니다. 나뭇가지들이 산길을 가로막아 삐져나와 있었는데, 사람들이 산에 오르기 좋게 나뭇가지들을 쳐주면서 갔습니다.




스님은 낫으로 가지를 치고 행자들은 전지가위로 나뭇가지들을 잘라주었습니다. 큰 전지가위가 서투른 행자에게 스님은 전지가위 쓰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눈에 보이는 식물들의 이름도 알려주었습니다.

“이것 봐라, 고사리다.”

끝이 꼬불꼬불 말려있는 고사리를 가리키며 “옛날에 산에 불이 난 뒤에 가보면 고사리가 천지에 펴있었다.” 라며 이야기도 전해주었습니다.

“이건 취나물이네. 이렇게 크게 자랐구나.”

“이건 붉나무다. 가을에 잎이 아주 붉게 물들어 붉나무라고 한다.”

“이건 아마도 둥굴레인 것 같다. 차로 구수하게 마시는 것 말이다.”

이외에도 서로 비슷하게 생긴 난두나무, 제피(초피)나무도 알려주었습니다. 행자들은 “스님과 함께 산을 오르면 생생한 자연학습을 하게 된다” 하며 즐겁게 산길을 올라갔습니다.

산비탈 길에는 두북 수련원에서 가져간 코스모스를 군데군데 심었습니다. 지난 번 비온 뒤에도 밭길에 코스모스를 심었는데 자리를 잘 잡았습니다. 이번에도 자리를 잘 잡아 가을에 화사하게 피어난 코스모스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내려오는 길에도 나뭇가지를 쳐내면서 스님이 물었습니다.

“이렇게 가지치기를 하며 올라가니 기억나는 것 없나? 역사기행 때 청산리 전투터 가면 늘 이렇게 가지를 치며 갔었는데...”

그러자 함께 한 행자들도 역사기행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안개 가득한 산을 뒤로 하고 내려오니 스님과 행자들의 온 몸이 나뭇가지의 물을 맞아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사용했던 낫과 호미, 전지가위와 장화를 도랑물에 씻어 뒷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고 잠깐 휴식을 한 뒤에 원고를 살펴보며 오늘 하루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강연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5월 1일 서울 송파 강연에서 있었던 질문 중 한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르게 가볍고 창피한 질문일 수도 있어요. 여자 친구랑 1년 정도 사귀었는데, 사귀는 동안 제 나름대로는 여자 친구가 저를 너무 힘들게 한다고 생각해서 헤어지자고 몇 번을 얘기했습니다. 제가 서운하거나 힘든 걸 얘기할 때 좀 격하게 얘기하는 경향이 있어서 여자 친구에게 상처도 많이 주다가 결국에는 헤어지게 됐어요. 헤어진 지 2개월이 지났는데 너무 힘들었던 게 다 기억나면서도 너무 보고 싶어서(모두 웃음) 연락을 하고 싶어요. 그렇지만 제가 심하게 상처 줬던 게 미안해서 제가 다시 연락할 자격이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그렇게 한 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지만 결국 똑같은 문제로 싸우고 똑같이 헤어졌던 경험이 있어서 과연 연락을 해도 될까 망설여집니다.”

“그걸 뭐 따질 게 있어요? 만났다가 안 맞으면 또 헤어지면 되죠.(모두 웃음) 일단 지금 보고 싶으니까 연락을 하면 돼요. 전화해서 ‘보고 싶다’ 이렇게 연락을 하면 되죠. 낯선 사람한테도 전화하는데, 두 번이나 헤어지고 만난 사람한테 연락하는 것은 더 쉽잖아요. ‘너 옛날처럼 또 그러려고?’ 이러면 ‘지금은 아니다. 안 그럴게’(모두 웃음) 이러고 또 만나서 같이 지내보다가 또 안 되면 헤어지는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우리 옛말에 어떤 일을 해보려면 삼세번은 해봐야 한다는 말이 있잫아요. 질문자는 지금까지 두 번밖에 안 해봤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은 더 해보세요.(모두 웃음) 오늘 당장 연락해서 ‘보고 싶다’ 이렇게 전화하세요.

그러나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상대가 응할 거라고 생각하진 마세요. 나는 두 번 해봤는데도 집착이 안 끊어진다면 연락해보면 되지만, 상대는 두 번 경험해보니 ‘아, 이건 아니다’ 해서 집착을 끊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전화 해보는 건 자유예요. 해보고 상대가 ‘나는 너 안 만날래’ 이러면 ‘오케이, 알았다’ 이러면 나도 좀 집착이 내려놓아집니다. 내가 보고 싶다는 건 내가 전화하면 좋아할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상대가 싫다고 명백하게 의사표현을 해주면 ‘알았다’ 이러고 다른 사람을 찾아야지, 싫다는데 자주 찾아가거나 전화를 자주 하면 성추행이 돼요.

그런데 전화 정도는 세 번까지는 괜찮아요.(모두 웃음) 몸을 만지거나 이런 건 안 돼요. 그건 한 번만 해도 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당장 전화해서 ‘너 보고 싶다. 만나자’ 하세요. ‘싫다’ 이러면 ‘알았다’ 하고 며칠 있다가 또 전화를 해서 ‘너 보고 싶다. 만나자’ 하고요. ‘전화 하지 말라니까 왜 그래!’ 하면 ‘알았다’ 이러고 또 한 달 있다가 또 전화해보는 거예요.(모두 웃음)

그러면서 상대의 반응을 보는 거예요. 첫 번째 전화했을 때보다 1주일 지났을 때 신경질을 더 내느냐, 한 달 후에 전화하니까 짜증을 더 내느냐 이걸 보세요. 짜증이 심해지면 ‘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지만 이건 도끼날만 버리겠다’(모두 웃음) 이렇게 생각해서 그만두면 되고, ‘싫다’ 하지만 갈수록 어조가 조금씩 유해지면 ‘아, 이건 좀 더 찍어봐야 되겠다’(모두 웃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실천하면 돼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시 만나도 좋고, 못 만나도 질문자한테 유리해요. 상대의 싫다는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질문자도 정이 조금씩 떨어져 나갈 거예요. 그러니까 연락해보는 게 좋아요. 안 해보면 결혼해서까지 미련이 남아요.

오늘 전화해서 만나게 되면 다행이고, 안 돼도 좋아요. 둘 다 좋아요.(모두 웃음) 이걸 황금패라고 해요. 안 되면 정 떨어져서 좋고, 잘 되면 만나서 좋고, 둘 다 좋은 거예요. 당장 연락해보세요.”

“감사합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망설이는 일이 있다면, 오늘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글사진 문수팀 녹취 손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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