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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하루

“조상 때문에 희귀병에 걸린 걸까요?”/ 법륜스님의 하루 2018.4.22 농사일

“조상 때문에 희귀병에 걸린 걸까요?”

2018.4.22 농사일


새벽에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스님은 공항에서 바로 봉화로 향했습니다. 새벽4시가 좀 지나 도착한 봉화엔 희광 법사님이 도량석을 돌고 있었습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눈을 조금 붙인 스님은 봉화 도착 후 바로 원고 교정과 결재 서류를 살폈습니다.

6시 반에 아침공양을 간단하게 마치고 바로 낫을 들고 산을 올랐습니다. 주변에 두릅 군락지가 있는데 경사가 제법 되고 길이 험했습니다. 연로한 희광 법사님도 올라가서 두릅을 딸 수 있도록 잔가지와 덤불을 낫으로 정돈했습니다. 그리고 봉화 대중들이 손이 닿지 않아 따지 못했던 두릅과 엄나무 순을 채취했습니다. 엄나무 순과 두릅을 희광법사님과 행자님이 맛볼 수 있게 선물하고 두북으로 향했습니다.

두북에 도착하자 스님은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텃밭의 상추를 솎고 고수를 땄습니다. 상추와 고수는 씻어서 점심 찬거리로 준비했습니다. 구름이 끼고 선선한 딱 일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점심공양 후 부서진 기와를 정비하고 화분도 정리하고 텃밭도 정비하였습니다.

밭으로 이동해 행자님들과 함께 대나무를 잘라 완두통 지지대도 만들었습니다. 밭에 쓸 지주대를 여분으로 더 만든 후 저녁이 다 되어서야 밭일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강연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19일, 김해 강연에서 소개하지 못했던 질문과 스님의 답변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희귀병으로 너무 아파서 힘든 생활을 하고 계신 60대 여성의 고민이었는데, 스님의 답변은 질문자와 청중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설 수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앉아서 이야기 하세요.”

“저는 병명을 찾지 못해서 4년 동안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희귀병으로 판정을 받고 10년이 넘게 병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질문자 울먹임) 요즘에도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마약과 진통제,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도 없고, 피부질환, 척추질환 등 14가지의 끊임없는 합병증으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 때 조상 단지를 모시고 지냈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가지고 살다가 그게 뭔지 무속인에게 물어보니 천도재를 지내야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천도재도 지냈어요. 그런데 제가 계속 이유 없이 아픈 게 그 조상단지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단지를 없애고 말았습니다. (질문자 흐느낌)

요즘에는 도리어 그 단지를 없앤 것 때문에 내가 더 고통스러워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힘들어서 물어보는 곳마다 천도재를 지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상단지를 없애서 병에 걸린 것인지 너무 궁금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조상 단지를 다시 만들어서 원래 있던 자리에 모시면 되잖아요?” (청중 웃음)

“다시요? 원래 있던 걸 깨서 부쉈어요.”

“그걸 깼으면 새 단지를 하나 사서 다시 모시면 돼죠.”(청중 웃음)

“...”(질문자 울먹임)

“조상 단지라는 게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잖아요. 조상 중 누군가가 단지를 하나 사서 ‘이게 조상 단지다’하고 의미부여를 한 것에 불과해요.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제가 그 단지를 없앴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늘 찝찝하고, 스님이 오시면 꼭 뵙고 여쭤보고 싶었어요. (질문자 울먹임)”

“그래요. 오늘 여기 와서 물어보셨으니까 집에 가는 길에 시장에서 단지 하나 사서 쌀 조금 담아 넣고 다시 모시면 돼요. 하나도 어려운 게 아니에요. 10년 전에 물어봤으면 금방 단지 하나를 사줬을 텐데요. (청중 웃음)”

“...”

“또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무엇이든 괜찮으니까 마음이 찝찝하면 또 물어봐요.”

“그런데 제가 몸이 너무 아프니까...”

“조상 때문에 아프다고요?”

“네.”

“조상이 뭣 때문에 질문자를 괴롭힐까요?”

“글쎄요, 저는...”

“아픈 사람이 나을 때 ‘조상 덕으로 나았다’라고 말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조상이 무슨 이유로 후손을 아프게 하겠어요.”

“그럼 조상 때문에 제가 아픈 게 아닙니까?”

“그럼요, 그건 아니에요.”

“제가 시할머니에, 시어머니까지 정성스레 모시면서 한 집에 4대에 걸친 가족이 다 같이 살았어요.”

“정성스레 모셨는데 조상이 질문자를 왜 괴롭히겠어요? 도대체 누가 조상이 질문자를 괴롭힌다는 소릴 해요?”

“(질문자 울먹임) 제가 조상 단지를 깨버려서요...”

“그래요. 조상 단지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설령 조상 단지 때문이라고 하면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새 단지를 하나 사서 조상 단지를 다시 모시면 돼요.”

“그냥 아무단지나 괜찮습니까?”

“네. 시장에 가서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걸로 사서 깨끗하게 씻은 다음 그 안에 쌀 넣어서 잘 봉해놓으면 돼요.”

“그래도 괜찮습니까?”

“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조상 단지도 처음에 그렇게 만든 거예요. 아니면 그게 단군 할아버지 때부터 질문자에게로 내려온 걸까요? (청중 웃음) 시어머니가 만들었거나 시할머니가 만들었거나 아니면 그 위에 조상 누군가가 만든 거예요.

저도 어릴 때 저희 집 천정 아래 구석에 조상 단지가 늘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가족 중 그걸 누가 깨버렸는지 모르겠어요. (질문자와 청중 웃음) 그래서 지금은 없어요.(질문자 웃음) 제가 집에 계속 있었으면 누가 깼는지 알텐데, 저는 일찍 절에 들어와서 살았으니까 그 후로 누가 깼는지는 몰라요. (청중 웃음)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서양 사람들은 원래 제사를 안 지냈으니까, 조상 단지라는 게 없잖아요. 그러면 서양 사람들이 희귀병에 걸릴 때는 조상 단지 때문은 아닐테고, 무엇 때문일까요?”

“...”

“그러니까 조상 단지와 내 희귀병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질문자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찝찝했다면,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단지 하나를 사서 원래 모시던 자리에 얹어놓으면 돼요. (청중 웃음) 일체유심조라는 말 들어봤어요?”

“네.”

“일체유심조는 ‘모든 것은 마음이 일으키는 바’라는 말인데, 지금 조상 단지에 대한 생각도 내 마음이 일으키는 거예요. 그러니 새로 하나 사서 만들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네. 스님 그런데 제가 하루 24시간 내내 통증이 심한데요.”

“조상 단지에 대한 처방은 내줄 수 있지만, 육체적인 통증은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건 육체에서 느끼는 통증이기 때문에 그냥 감내하거나, 진통제 주사라도 맞아서 통증을 완화하거나 이 둘 중 하나로 선택을 해야 하는 문제예요. 멀쩡한 사람이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맞는 것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통증을 잊기 위한 용도로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맞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도 만약 통증이 아주 심한 병에 걸려서 마약성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면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런 병이라면 마약성 주사라도 한 대 맞고 나아야지, 무얼 위해서 주사도 안 맞고 죽는 선택을 해요?”

“네..”(청중 웃음)

“그러니 그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청중 웃음)”

“제가 마음을 밝게 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질문자 울먹임)”

“지금 몸이 많이 아픈 상태잖아요?”

“네, 많이 아픕니다. (질문자 울먹임)”

“지금 몸이 아픈 상태인데 거기에 마음까지 같이 아픈 게 나아요, 몸만 아픈 게 나아요?”

“제가 지난 10년 동안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는 것이… 지금 설움에 복받쳐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요, 지금 많이 힘들다는 건 이해가 돼요.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살아있는 게 나아요, 죽는 게 나아요?”

“가끔 고통이 너무 심할 때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지금 말은 그렇게 해도 먹으면 진짜 죽는 약을 주면 아마 안 먹고 던져 버릴 거예요. (청중 웃음)”

“그래도 고통이 심할 때는 차라리... 제 심정을 다른 사람은 몰라요.”

“네, 많이 아플 때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고통이 심한 그 순간에는 ‘아이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이 드는데, 또 정신 차리고 보면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나아요. 그러니 질문자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부처님, 오늘도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몸은 조금 아프지만 오늘도 살아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셔야 해요.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여기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통증을 느끼지, 죽고 나면 그 통증조차도 느끼지 못합니다. 고통스러운 건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기도하라고요?”

“살아있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여기고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는 기도요.”

“그래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오늘도 살았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한 번 해봐요.”

“오늘도 살았습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만약 교회에 다니면 ‘오늘도 살았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하고, 만약 교회나 절에 안 다니면 ‘오늘도 살았습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청중 박수)

“그리고 죽는 건 내가 일부러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죽을까요 안 죽을까요?”

“네, 갈 때 되면 가겠죠.” (청중 웃음)

“그래요. 그렇게 가만히 놔둬도 때가 되면 죽을텐데 뭣 때문에 일부러 죽으려고 애를 써요? (청중 웃음)”

“그렇지 않아도 일부러 죽으려고 한 세 번 시도했는데 잘 안 죽더라고요. (청중 웃음)”

“죽는 건 때가 되면 저절로 죽으니까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청중 웃음) 그 때가 오면 안 죽겠다고 애를 써도 죽게 돼요. 그러니까 이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잊고, ‘내가 휠체어를 타고 다니더라도 오늘은 살았다’, ‘침대에서 못 일어나지만 오늘도 살아있다’ 늘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리세요. 살아있는 게 중요합니다. 나머지는 그 다음이에요.

그렇게 기도를 하면 비록 몸은 아프더라도 마음은 웃고 지낼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몸이 많이 아픈데, 여기서 마음까지 아프면 자기한테 이익이에요, 손해예요?”

“손해요.”

“여기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아픈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는 ‘몸은 나보다 편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내가 낫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가 되어야 해요.”

“(질문자 씩씩하게) 네.”

“그러니 오늘부터는 울지 마세요.”

“지금까지 안 울었습니다. (청중 웃음)”

“아까 울던데요. (청중 웃음)”

“지금까지 안 울었는데 막상 스님을 보니까..”

“안 운다고 해놓고는 또 우네요. (청중 웃음) 그러니 이제부터는 울지 말고 웃으면서 지내세요.”

“(질문자 씩씩하게) 네.”

“통증은 참아보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마약성 진통제 주사라도 일단 맞으세요. 몸이 아파서 다른 걸 못하겠는데 주사를 안 맞으면 어떡해요. 저도 편두통이심한 편인데, 어떤 때는 하루에 두통약을 16알씩 먹으면서 지낸 적도 있어요. (청중 놀람) 그렇다고 매일 그렇게 먹는 건 아니에요. 통증이 아주 심할 때 그랬다는 거죠. (청중 웃음) 안 아파 본 사람은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맞는다고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뭐라도 맞아서 통증을 완화하는 게 우선이에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우선 너무 아플 때는 진통제를 맞으세요.

부처님은 통증이 올 때 ‘아, 이게 통증이구나’하고 알아차리는 것을 가르치셨는데, 저도 통증이 아주 심하니까 막상 그게 잘 안 되더군요. (청중 웃음) 명상을 오래할 때 다리 아픈 정도의 통증은 ‘아, 이게 통증이구나’하고 알아차려지는데, 머릿 속을 송곳이 쿡쿡 지르는 것 같이 통증이 심할 때는 머리통을 없애서라도 (청중 웃음) 일단 고통을 멈추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러니 통증이 심하다고 하는데 굳이 참으시라고 못하겠네요. 통증이 심할 때 완화할 수 있는 주사가 있으면 맞으면서, 마음만은 행복하게 지내시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청중 박수)

따뜻한 봄날, 오늘도 자유롭고 행복한 마음의 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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