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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하루

"볼 수도, 들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본래면목은 무엇입니까?" / 법륜스님의 하루 2018.4.20 각해 보살님 발인

"볼 수도, 들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본래면목은 무엇입니까?"

2018.4.20 각해 보살님 발인


어제 광주에서 강의가 끝나고 자정 넘어 울산 두북에 도착한 법륜스님은 잠시 눈을 붙이고 오늘 아침 일찍 두북에서 출발해 아침 7시에 故각해 보살님 장례 영결식에 참여했습니다. 각해 보살님은 정토회 창립 초창기에 많은 가르침과 도움을 주신 고문님이십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중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의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스님은 각해 보살님의 영정 앞에 삼배를 한 후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조문을 온 대중들과 함께 영가 천도재에 참석했습니다. 천도 기도를 시작하면서 스님은 영가를 위해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각해 이방화 영가시여. 살아생전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이것이 나다, 이것이 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옳다고 주장하였는데 이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냄새 맡을 수도 없고, 맛볼 수도 없고, 감촉할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지금에 이르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고.

각해 이방화 영가시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고.
각해 이방화 영가시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고.
각해 이방화 영가시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고.

각해 이방화 영가시여, 이 법사의 물음에 쾌활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영가가 살아생전에 비록 살생을 하고, 투도를 하고, 사음을 하고, 망어를 하고, 술을 먹고 취하여 오계를 범해 많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꿈속의 일이라 깨어나면 허망한 것과 같이, 이 본래면목을 알아차린다면 모든 죄업은 즉시 사라지고 해탈 열반을 증득할 것이거늘, 이런 염불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각해 이방화 영가시여, 만약에 영가가 이 법사의 물음에 막힘이 있어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영가가 살아생전에 방생의 복을 짓고 보시의 복을 짓고 청정하게 살고 진실을 말하고 맑은 정신으로 아무리 많은 복을 지었다 하더라도 이 또한 꿈속의 일이라, 깨고 나면 허망한 것과 같아 지금 뚜렷이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지 못한다면 해탈 열반의 길은 아득하나니, 만약에 영가가 그렇다면 여기 법사와 대중이 영가를 위하여 부처님의 갖가지 미묘 법문을 들려드리오니 이 법문을 잘 들으시고 이 축원의 힘을 빌어 저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즉시 환생하시어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소서.

여기 모인 대중들은 일심으로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오니 이 염불 공덕으로 영가시여 살아생전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친한 이든 원수 맺은 이든 모두 다 허망한 것이오니, 일시에 내려놓고 부디 왕생극락하옵소서.”

스님의 축원을 들으며, 생과 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법에 따라 수행의 지침을 주셨던 각해 보살님께 지극히 감사한 마음을 담아 대중들의 염불도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스님은 평소 각해 보살님을 따르던 신도님들에게 위로와 당부의 말씀을 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늘 바른 가르침을 주시던 각해 보살님이 이제 열반하셨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을 계속해 주세요.”

발인이 끝나고 화장을 기다리는 동안 한 보살님이 평소 유튜브로 스님의 법문을 들어왔다며 인사를 여쭙자, 스님은 그 보살님의 가족 분들과 인사를 나누시고, 돌아가신 가족을 위해 축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영결식을 마치고 화장장에 들러 염불을 하며 기다리다가 나머지 일정을 유수 스님께 부탁하고, 유족들에게 인사하고는 두북 수련원에 들렀습니다. 잠깐 짬을 내 이제 막 피어나는 엄나무 순을 따기 위해 가지를 쳐내고, 어린 순을 땄습니다. 하루 이틀만 지나면 순이 억세 져서 먹기 어려울 뻔했는데, 오늘 때맞춰 딸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스님은 창고 안에서 도구들을 착착 빼내 오더니 사다리를 타고 올라 순이 붙어있는 나뭇가지들을 잘라냈습니다. 보기에도 독해 보이는 가시들이 빼곡하게 가득 찬 나뭇가지에 신기하게도 여리고 여린 연둣빛 순이 꽃을 피우고 몸집을 불려 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초여름 날씨처럼 무더웠습니다. 한낮에 따다 보니 금방 시들어버리는 게 안타까우셨는지 “원래 이른 아침에 따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할 수 없다” 며 아쉬워했습니다.

점심 밥상은 텃밭에서 막 따온 여린 상추와 고수, 그리고 엄나무 순, 두릅나물 등을 간장, 초고추장, 된장 등 갖가지 양념에 찍어 먹는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입 안 가득 알싸한 봄 향기가 퍼지며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었습니다. 두부를 송송 썰어 넣은 구수한 된장국에 밭에서 막 따온 신선한 푸성귀를 보니 절로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과 서울 대중들에게 맛보게 해주고 싶으셔서 엄나무 순을 단정하고 곱게 싸서 차에 실으시고는 곧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저녁에는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을 비롯하여 불교계 활동가들과 평화재단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불교계의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식사상은 스님이 직접 농사지은 상추, 고수, 쌈채소와 두북 수련원에서 채취해 온 엄나무 순을 데쳐서 준비했습니다. 평화롭고 감사한 밥상, 자연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건강한 밥상에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불교계 현황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교계의 역할 등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눈 후 오늘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함께 만든 사람들
이새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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